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86화 (86/175)

86화

* * *

처음으로 홍대에 나온 김서아.

‘후… 떨리네…….’

오늘은 버스킹을 도전하기로 한 첫날.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를 생각하니까 떨려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간 고민도 많았다.

내가 이런 취미를 즐겨도 되는 걸까?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 한 시간을 더 하는 게 옳은 판단이 아니었을까?

이런 고민들이 버스킹을 도전하기로 하는 마음을 가로막아 왔었다.

‘하지만… 버틸 수가 없는걸…….’

그래. 좀 더 여유로워지면, 그때 취미로 해보자.

계속해서 노래 부르고 싶다는 욕심을 좀 더 가라앉힌 채, 아르바이트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병은 커져만 갔고,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하게 병을 치료해 줬던 게 노래.

그런 노래마저 부를 시간이 없으니, 당연히 마음이 병들 수밖에 없던 것 같다.

‘그래… 취미지…….’

예전에는 꿈으로 자리했던 노래.

이제는 취미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쓸쓸해져 왔다.

처음 오디션을 보고 대형 기획사 소속으로 연습생이 됐을 때.

그때까지만 해도 노래라는 것은 나에게 취미가 아닌 꿈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취미로 여길 수밖에 없게 된 한 사건.

“너 마음에 든다. 야, 다음에 얘 데리고 와.”

꿈에 부풀어 소속사에서 상주하며, 노래를 연습하고 있을 때 들려온 한마디.

나에게 처음으로 사회를 가르쳐 준 말이었다.

“서아야. 딱 한 번……. 딱 한 번만 눈 감고 술만 마시면 너는 이제 스타가 될 수 있다니까? 잘 생각해 봐. 김제앙 상무님이면 KJ 그룹의 후계자로 불리는 사람이야.”

KJ 그룹.

내가 속해 있는 KG 엔터의 대주주로 있는 회사이며, 대한민국 10대 대기업에서 늘 빠지지 않은 그룹이었다.

그런 그룹의 후계자이니 김 실장님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애초에 연예계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도 모를 만큼 어린 나이도 아니었고.

이제 막 어른이 된 스무 살이었지만, 어엿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였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나 역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노래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이런 더러운 수작으로 사람들에게 관심받기엔 그때의 나는 어렸고, 충분히 도전해 볼만 하다는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다.

‘몰랐어…….’

몰랐다. 그런 자신감도 그 사람의 눈 밖에 나면 꺾일 수밖에 없다는 걸.

“죄송합니다. 저희도 방송에 출연시켜드리고 싶은데, 아시다시피…….”

매번 어렵게 스케쥴을 잡을 때마다 들려왔던 말.

아시다시피…….

그럴 때마다 나에게 쏟아지는 원망의 눈빛.

그때부터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소속사에서의 지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레슨도 받을 수 없던 그 상황.

모든 게 그 사람의 한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 취미로 하면 되는 거야!!’

이제는 꿈으로 생각할 수 없지만, 괜찮다.

이렇게라도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으니까.

과거를 생각하니, 착잡해진 마음이 든 나는 어렵게 중고로 구입한 버스킹 장비들을 설치하며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애초에 돈을 벌고 싶어서 시작한 노래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자 시작한 노래.

비록 나를 알아보고, 내가 노래를 낼 수는 없지만 버스킹을 하다 보면 한두 명에게만큼은 내 마음이 전달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아.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으로 버스킹을 하기로 한 김서아라고 합니다!! 열심히 해볼게요!!”

처음이라 그런지 뭐라고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돌아다니던 사람들에게 인사한 나는 눈을 감고 노래 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뭘 부를까…….’

어떤 노래를 불러야 처음 버스킹을 잘 시작할 수 있을까…….

밝은 노래?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끌리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처음인 만큼 의미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상황이지만,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지금의 답답함과 어려운 상황은 금방 지나갈 거라고 되뇌는 노래.

‘소나기’라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이 노래처럼 지금의 어려움은 금방 지나갈 거라고 믿고 싶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마음 편히 노래만 부를 수 있는 그 날을 생각하며,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긴장하지 마, 서아야…….’

오랜만에 사람 앞에서 부르는 노래여서일까?

1절을 부르는 내내 목소리가 떨려왔다.

1절이 끝나고 반주 시간.

그나마 한두 명이라도 남아 있었기에 심호흡하고, 마음을 되잡기 시작했다.

‘눈 감고 부르자.’

의미 있는 노래인 만큼, 마지막이라도 좋게 맺고 싶었다.

눈을 뜨고 사람들과 마주한 채 부르면, 제대로 된 마음을 전달해 드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나는 눈을 감고 노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됐다!!’

노래를 부르면서 드는 생각.

음정과 박자가 정확히 들어맞으며, 감정을 실을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슬슬 노래가 끝나가는 시간.

마지막이나마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싶어진 나는 용기를 내서 눈을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

그런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사람이 보인다.

나의 노래를 듣고,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신기하게 보인 걸까?

여러 사람이 그 남자를 가리키며 수군대는 게 보였다.

‘내 노래를 듣고 울어주는 건가?’

한 사람에게나마 위로가 됐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더욱더 열심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참……. 잘생긴 남자가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길래,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 걸까?

저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다음 곡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노래를 듣고 있는 박제환.

‘사람들이 알아봤나?’

방송 이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모자와 마스크를 쓰며 가리고 다녔다.

당연히 얼굴이 보이지 않은 만큼, 알아보는 사람도 적었고.

하지만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특이하게 느껴졌을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고, 여기저기서 내 이름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작가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게 좋으면서도, 이럴 때는 조금씩 불편하게 느껴진다.

조용히 앉아서 그녀의 노래에 집중하고 싶었는데…….

순간, 많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와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그래……. 전생에 내가 이기적인 선택을 한 만큼, 사랑은 아니더라도 도움은 줄 수 있지 않을까?

짧은 시간에 많은 고민을 했고, 아직까지 정답을 내리지 못했다.

“저… 혹시 박제환 작가님 아니세요?”

“아, 네…….”

“오!! 저 진짜 팬인데 사진 찍어주시면 안 돼요?”

“죄송해요……. 지금은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사인만이라도…….”

곤란하다는 나의 말을 듣고, 실망을 하던 사람이 내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해가 가지 않을 거다.

갑자기 눈물이 흘린다는 게.

솔직히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이유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건지 나 역시 이해가 가지 않은 상황을 남한테 설명하기는 곤란했기에, 사인을 해주고는 다시 노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추가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 의중을 확인한 경호원들이 나를 지켜 줬기에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다.

‘끝나가나?’

아쉬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분명 노래를 몇 곡 듣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버스킹이 마무리되는 시간이 다가오나 보다.

“처음으로 버스킹하는데,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마지막 곡을 부르려고 해요. 마지막 곡으로 조금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조금만 욕심 내볼게요. 이해해 주세요.”

무슨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걸까?

뭐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곡이라도 더 들을 수 있으니.

“마지막 곡은 자작곡. 제가 힘들 때마다 가슴에 되새기는 노래예요. 과거의 후회는 잠시 접어둔 채, 밝은 미래를 바라보자는 뜻이죠. 당장은 비가 와서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우울함과 슬픔은 미래의 무지개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서 한번 지어봤어요.”

나 혼자 의미부여 하는지 모르겠다.

뭔가 그녀가 나에게 들려주는 말 같았다.

과거의 후회는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말…….

혹시 전생의 후회는 이번에 만남을 위한 준비가 아니었을까?

더 나은 관계를 위한 후회였나?

나에게 한 말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내 마음대로 해석이 되기 시작한다.

“그럼 ‘무지개’라는 곡을 들려드릴게요.”

이 노래는 전생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다시 한번 집중해서 듣고 싶다.

만약…….

노래를 듣고 다시 한번 나에게 힘이 돼준다면, 욕심을 부려보고 싶다.

아니, 욕심이 아니더라도 그녀가 꿈을 위해 달릴 수 있게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그 끝이 사랑이 아니어도 좋았다.

단순히 그녀가 좀 더 행복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노래를 통해 위로를 주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와……. 노래 진짜 좋다. 그렇지 않아?”

“그러게? 저 사람 가수 해도 되겠는데?”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나를 발견한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금 그녀에게 집중된다.

그만큼 그녀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위로는 강렬했다.

“…….”

시간이 흘러 노래가 끝나가고 있다.

그녀가 말했던 대로 노래의 의미는 과거의 후회는 접어두고,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자는 말.

이때까지 고민했었던 문제의 답이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끝에 닿은 결론.

저번 생의 후회는 접어두자는 결론이 나왔다.

저번 생에 그녀에게 못해 줬던 만큼, 이번에 좀 더 노력하면 된다.

그 과정 속에 다른 그룹과의 경쟁이 있어도 상관없었다.

나에게 그룹은 부차적인 문제였기에.

‘어디 가서 고개 숙일 만큼 약하지도 않다.’

더군다나 지금의 JH 그룹은 어디 가서 고개 숙이고 다닐 정도로 작은 그룹이 아니었다.

애초에 다른 그룹과의 경쟁이 겁났으면, 대현 그룹과의 전쟁도 시작조차 못 했을 거다.

마음속으로 앞으로 취해야 할 행동을 정리한 나는 노래를 마치고 짐을 정리한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

“어!! 아까 눈물 흘렸던 사람이다!! 반가워요!!”

“아… 네…….”

“사실 노래 부르면서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몰라요. 다른 사람들은 집중 못 하고 있는데 그쪽만 집중하면서 듣고 있더라니까요? 와… 눈물 흘렸을 때는 진짜 최고!! 처음이에요. 노래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

역시 전생의 그녀와 모습이 닮아 있었다.

분명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잃어버리지 않은 밝은 모습.

나에게 없었던 모습이기에 더욱 끌렸는지 모르겠다.

“혹시 버스킹은 매주 하는 건가요?”

“음……. 그러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찮아서요. 좀 더 여유로워지면 지금 시간을 지킬 예정이에요.”

“…번호를 얻을 수 있을까요?”

“번호요?”

번호를 얻을 수 있냐는 말에 당황하는 그녀.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혹여나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대 이상한 사람 아니고요. 그냥……. 노래가 너무 힘이 돼서 조금 더 듣고 싶어서요.”

“와……. 반칙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거절해요.”

“…….”

“원래는 번호 안 주는데, 노래 듣고 싶다 해서 주는 거예요.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그동안 겉모습만 보고 번호를 달라는 사람이 엄청 많았거든요.”

하긴……. 그녀 정도 외모라면 번호를 요구받지 않는 게 이상했다.

실제로 전생에서도 그녀에게 접근한 남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물론 그게 독이 돼서, 김제앙이라는 사람과 악연이 이어졌지만…….

‘이번 생에는 내가 고리를 끊는다.’

이번 생에는 겁내지 않을 생각이다.

전생처럼 흠집이 무서워서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자요!! 처음으로 주는 번호니까, 영광으로 알아요. 그럼!!”

“…….”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는 나에게 종이를 내미는 그녀.

그 종이에는 익숙한 그녀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꼬옥―

전생과 같이 다시 시작된 인연.

이번 생에서는 후회되지 않은 선택을 하기로 한 만큼, 그녀를 웃게 해주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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