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 * *
‘오늘이네…….’
그 어느 날보다 기다려온 날이어서일까?
작가의 밤 이후로 3일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하루가 1년처럼 느껴졌었다.
그동안 써진 글자는 역시 0글자.
오히려 작가님들을 만나기 전보다 더욱 안 써진 기분이다.
‘아니지.’
안 써진 게 아닌, 안 썼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작가님들의 말을 들은 나는 뭔가 깨달은 게 있었고, 그동안 글을 쓰기보다는 웹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며 다른 소설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확실히 웹소설을 안 읽어봤다는 걸 기억할 수 있었다.
‘낯설었어…….’
독자로서 글을 보는 것과 작가로서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서일까?
예전에 재밌기만 하던 글들이 조금은 낯설 게 느껴졌다.
동시에 얼마나 작가들이 고심하고,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정을 추가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옛말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바가 그와 비슷한 것 같다.
그동안은 뭘 몰랐기에 느끼지 못했지만, 두 작품을 쓰면서 작가로서 느끼는 게 있었기에, 안 보이던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기대된다.’
그런 대단함을 3일 동안 뼈저리게 느껴서일까?
오늘 있을 작가님들과의 만남이 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런 설정들을 넣은 거지.
어떻게 그런 전개를 펼친 건지.
왜 이런 캐릭터를 중간에 추가시킨 건지.
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드디어 이 질문을 작가님들에게 물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뜬 나는 서둘러서 외출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 *
‘홍대는 변하지 않는군…….’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젊음의 거리.
예술계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영감을 표출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거리 홍대.
올 때마다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 반갑게 느껴졌다.
“저 절대 나쁜 사람 아닙니다.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안 될까요?”
“…….”
“이상한 눈빛으로 볼 수밖에 없는 건 알겠지만, 뭔가 찝찝하군요.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증거는요? 자신이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정상적인 사람 없던데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뭐야……. 동성무역 상무보? 보기에는 젊어 보이는데…….”
“운이 좋아서 이른 나이에 진급할 수 있었습니다.”
“거짓말. 뭐 재벌가 그런 사람인가? 어쩐지 다른 사람이랑 느낌이 다르더라.”
주변에서 버스킹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거리를 걷다 보니, 그녀와의 첫 만남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내 답답한 마음을 목소리로 위로해 주던 그녀.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용기 내서 접근한 그 날.
결국 명함만 건넬 뿐, 그 어떠한 연락 방법도 얻어낼 수 없었다.
“저 어차피 주말마다 여기 올 테니까, 놀러 오도록 하세요. 당신은 관객으로, 저는 버스킹 하는 가수로. 저는 그런 관계가 좋거든요.”
“…알겠습니다.”
대신 그녀가 주말마다 버스킹하는 자리를 알아낼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이었다.
재벌가란 사실을 드러내고, 오히려 관계에 악화를 불러온 적이.
당황스러운 마음도 들고 어째서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다음에 또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가지며 그날은 그렇게 헤어질 수 있었다.
‘운명에 맡겨야지.’
그런 그녀를 또 한 번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첫 만남을 가진 건, 앞으로 다섯 달 뒤.
그녀가 언제부터 버스킹을 한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나마 전생에 느꼈던 죄책감을 풀어내는 나만의 방식인가 보다.
단지… 또 한 번의 운명이 허락해서 그녀를 마주친다면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 보고 싶었다.
* * *
타닥타닥―
문자로 보내 준 장소에 도착하자 보이는 장면.
모두가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치고 있는 모습이다.
전형적인 작가들의 작업 공간.
뭔가 다 같이 모인 장소에서 글 쓸 생각을 하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반갑습니다.”
“…….”
반갑다는 말을 건네자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
저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만났던 작가가 내가 이곳에 오기로 한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는 걸.
나를 발견한 작가들의 시선이 처음에는 누군가 하는 표정으로 반기더니, 이내 입을 벌리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바, 바, 바, 박제환 작가님?!”
“맞습니다. 노경호 작가님 소개로 오늘부터 같이 작업하기로 한 박제환 작가입니다.”
“…….”
“…….”
“혹시 전달이 안 됐을까요?”
끄덕끄덕―
혹시 전달이 안 됐냐는 질문을 하자,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작가들.
어떻게 보면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작업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처음 하는 경험이란 게 생각났다.
이때까지 같이 일했던 모두가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학벌을 가진 사람들.
또한 꿈을 좇기보단 성공을 좇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도 성공을 좇긴 하겠지만, 가장 큰 목표로 둔 건 꿈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거다.
과연 꿈을 좇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을 할까?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다시금 기분이 들뜨기 시작한다.
“여, 여기 들어오세요. 작가님!”
“감사합니다.”
모두가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이 급하게 자리를 만들더니 나를 안내해 준다.
“그, 총탄 작가님도 이곳에 온다고 하던데.”
“아!! 그건 전해 들었습니다. 총탄 작가가 무협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웬일로 작업실에 오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사정이 있었군요.”
“혹시 실례가 될까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작가님은 우리 업계를 대중에게 알려준 분이신데, 같은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는 저희가 영광이죠!”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그… 혹시 새로운 작품의 장르가 무협인가요?”
“네,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들려오는 질문에 맞다는 대답을 전하자,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리는 작가들.
그와 동시에 감격한 듯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박제한 작가님이 무협을…….”
“드디어 우리 무협도 날아오를 준비 하는 건가?”
“전문가물과 헌터물 다음은 무협……. 나 좀 흥분될지도……?”
“…….”
마지막에 들려오는 말은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들 반겨주는 느낌이 들어 다행이었다.
자신들의 공간에 외부의 인물이 들어오는 만큼, 불편하게 느낄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는데 눈치를 보니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노경호 작가님은 사무실에 출근 안 하시나요?”
“아마 어젯밤 늦게까지 집필하느라 곧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양반, 분명히 작가님에 대한 생각도 까먹고 있을 겁니다. 작품에 대한 생각밖에 없거든요.”
“그래도 박제환 작가님인데 설마 까먹었을까?”
“우리한테 말하지 않은 거 보면 틀림없어.”
“내가 봤을 때, 알고 있다는 것에 한 표. 최근에 우리 보고 실실 웃는 거 보면 분명 숨기고 있는 게 있었거든. 단지, 늦잠 자느라 늦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동감.”
서로 노경호 작가님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
대화 사이에서 서로가 얼마나 친하게 지내는지 느껴졌다.
‘그나저나 서프라이즈는 보통 자신도 있을 때 하지 않나?’
노경호 작가님이 내가 온다는 걸 모를 리는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문자를 나누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대화를 들어보면 어제 밤늦게까지 집필하다가 늦잠을 잤다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것 같았다.
“그럼 노경호 작가 올 때까지 사무실에 대한 설명을 해드려도 될까요?”
“저야 감사드리죠.”
이 사무실에 리더 역할을 하는 노경호 작가님이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 * *
작가 사무실로 향하는 노경호 작가.
‘아 씨……. 어제 밤늦게까지 집필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충분히 숙면을 취하고, 작가 사무실로 향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됐었으니까…….
급하게 집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을 때, 나의 눈을 사로잡은 빛나는 맥주…….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힘겨운 집필을 마치고, 심신이 힘든 나에게 자신으로 치유하라며 유혹하는 맥주.
어떻게 이를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수치나 다름없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여긴 나는 그 유혹에 도망갈 수 없었고, 무리해서 세 캔 정도를 마시고 나니 즐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때까진 분명 행복했는데…….’
그때까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내일 있을 박제환 작가님의 방문.
서프라이즈를 위해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던 동료 작가들.
이것들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잘 수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떠서 확인한 시간 오후 3시.
순식간에 행복하던 감정이 절망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작가님이 오시기로 한 시간이 오후 2시이니 이미 동료 작가들과 인사를 나눴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어디 보자…….’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니, 화면에 보이는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
그와 동시에 내 번호로 와 있는 협박성의 문자 메시지들.
확실히 동료 작가들과 박제환 작가님이 만났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간 어떤 노력을 했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됐나 보다.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했기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그 어떤 날보다 대충, 신속 정확하게 챙기고는 작업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자식들은 뭐지?’
헐레벌떡 도착한 작업실 앞에 보이는 수상한 사람들.
오늘 방문하는 박제환 작가님을 생각하니, 그들이 더욱더 수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눈을 속일 수 있어도 내 눈은 피하기 어려웠을 거다.
무려 무협 소설을 쓰면서 단련된 심안과 주인공이 되어 헤쳐나간 온갖 권모술수로 다져진 나였으니.
‘분명 작가님의 돈을 보고 미행한 사람들이다.’
이 사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 긴장하면 안 된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수상한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는 게 느껴진다.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게 딱 맞아떨어졌다고 확신이 서는 순간이었다.
“잠깐!!”
긴장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나에게 잠깐이라고 외치며 다가오는 수상한 사람들.
난 빠른 속도를 내며 사무실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실을 작가님께 알려야 되는 게 내 사명이었다.
대롱대롱―
“이거 안 놔!!”
“너 누구야!!”
“너야말로 누구야!! 너희들 수상한 사람이란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참 나……. 너야말로 네 행색이 수상하단 걸 모르는 건가? 요즘은 개나 소나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군.”
“범죄……?”
지금 이놈들이 뭐라고 하는가…….
역시 작가님을 노릴 정도의 똑똑한 사람인가 보다.
순식간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이 상황.
적인 걸 알지만서도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은 작가님을 위해 내 한 몸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먹은 나는 행동으로 옮겼다.
“박제환 작가님!! 도망가십쇼!! 제가 이 한 몸 바쳐 시간을 끌도록 하겠습니다!!”
* * *
사무실에서 노경호 작가를 기다리던 박제환.
“작가님들, 밖이 조금 소란스러운 거 같지 않습니까?”
“조금 시끄러운 것 같긴 하네요.”
곧 있으면 노경호 작가님이 온다는 말을 들어 기다리고 있는데 밖이 조금 소란스러워지는 게 느껴졌다.
“뭐……. 홍대니까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 거겠죠?”
나 역시 홍대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박제환 작가님!! !%!#$%!#$”
“…….”
“…….”
이번에는 확실히 알겠다.
저 소란이 나와 관련된 거라고.
“방금 제 이름이 들린 것 같군요.”
“저도 들은 것 같습니다. 이 목소리는 노경호 작가 같은데…….”
궁금증을 느낀 나는 안에 있던 동료 작가님들과 함께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그런 우리의 눈에 비치는 광경.
나의 경호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초라한 행색에 노경호 작가님이 보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