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 *
“반갑습니다……. 총탄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는 김지상 작가입니다.”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자,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소개하는 총탄 작가님.
글을 읽으면서 작가님은 활발한 성격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사실, 제 작품 집필하면서 작가님 작품을 읽어봤거든요. 저랑 비슷한 시기에 「나는 왕족이다」라는 작품을 집필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진짜 재밌게 읽었습니다.”
“…말이라도 감사드리네요.”
“작품을 보면서 웹소설이란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가님 작품에 비하면 부족하죠.”
지금까지는 서로 형식적인 언행들.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제가 「회고록」을 마지막으로 해서, 총 두 개의 작품을 완결 지을 수 있었습니다. 아, 물론 완결 분량까지 썼을 뿐, 아직 연재되고 있지만요.”
“근데…….”
“혹시 이 두 작품을 어떻게 읽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다.
비단 앞에 총탄 작가님한테만 묻고 싶었던 건 아니다.
장르 소설을 집필하는 모든 기성 작가님들에게 묻고 싶었다.
평소에 궁금증을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제가 입에 발린 말을 잘 못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듣던 중에 가장 반가운 소리입니다. 세 번째 작을 집필하려고 하는데, 한 글자도 안 적혀지더라고요. 마침 쓴소리가 필요하던 참이었습니다.”
다행이다.
입에 발린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어서.
솔직히 불만도 많았다. 이곳에 모여 있는 작가들에게 작품에 대한 질문을 하면 모두가 결과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결과가 대성공이니, 작가님이 쓰신 작품들도 대박 작품 아니냐고.
그런 대답보다는 원론적인 답변이 필요했다.
어떤 점이 아쉬웠고, 어떻게 작품을 바라봤는지.
앞에 총탄 작가님이 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절대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일 뿐, 절대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됩니다.”
“배려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작가님도 아시겠지만, 몸에 쓴 음식들이 건강에 좋지 않겠습니까. 부디 좋은 음식을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마음 편히 말하겠습니다.”
“물론이죠.”
뭔가 생각하던 것들이 있었을까?
편히 말하겠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작품에 대한 견해를 비추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충분히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서, 객관적인 사실과 제 주관적인 걸 어느 정도 섞어서 말씀드릴게요.”
“좋습니다.”
“첫 번째 작과 두 번째 작. 모두 성공 요인이 뚜렷하다고 생각합니다.”
“…….”
“단, 그 요인 중에 작가님이 조정할 수 있는 요소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웃음이 지어진다.
동시에 기대감이 들기 시작한다.
작가님과 대화로 인해 세 번째 작에 대한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작의 성공 요인. 작가님이 노리신 건지 모르겠지만, 시기적 대리 만족이라고 해야 될까요? 베이비붐 세대. 장르 소설을 읽는 주 독자층이 대리로 느끼고 싶었던 걸 정확히 저격했습니다.”
“시기적이라면…….”
“주 독자층들이 IMF를 거치고 힘든 시기를 견뎌서 슬슬 커리어 안정기에 들어섰죠.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라는 작품. 독자들의 휴식 욕구를 정확히 저격했습니다. 동시에 사람들이 참신하다고 느낄만한 헌터물. 장르적 요소도 성공 요인이 크고요.”
“한마디로 제 필력보다는 다른 외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는 거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작가님이 썼던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쓴다면, 더 재밌게 쓸 자신도 있거든요. 이 말은 저뿐만이 아닌 다른 동료 작가들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총탄 작가님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겠다.
내 필력이 나쁘단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시기와 설정이 더욱 잘 맞아서 떨어졌다는 얘기.
다른 사람들은 이게 실력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해서 만들어낸 것들이 아니었기에 똑같이 다음 작도 적용할 수 있냐고 물으면, 그럴 자신이 없었기에 실력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내심 각오하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들으니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나도 작가이긴 하나 보다.
“두 번째 작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작은 전문 지식입니다. 보통 전문 지식이 들어간 장르는 재미보다는 어떻게 전개하냐가 중요하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작가님이 재벌가 사람이라는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저번 정권에 대한 문제도 있었고요.”
“흠……. 장르 소설에 대한 강점보다는 제 경영 지식에 대한 강점이 두드러졌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렇다고 작가님 필력이 안 좋다는 건 아니지만, 세 번째 작의 기준을 앞에 작품들과 맞춰서 생각하는 것 같아, 저도 그에 맞춰 답변을 드린 겁니다. 다음 작도 전문가물을 쓸 생각이시면,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아쉽게도 다음 작은 무협을 생각하고 있다.
즉, 앞서 집필했던 작품만큼 성공을 보장하긴 어렵다는 얘기.
갑자기 승부욕이 들기 시작했다.
뭐를 시작하든 최고의 실력을 갖추자는 내 욕심이 다시금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웹소설이란 무엇일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군요. 그래도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작가님의 작품은 소설로서 정답에 가까웠지, 장르 소설로 치면 정답에 가까운 소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총탄 작가님이 생각하는 웹소설은 뭡니까?”
“앞서 말한 대리 만족과 5분이란 시간 동안 한 편을 재밌게 읽도록 할 수 있는 능력. 순수 문학이 작가에 맞춘 소설이라면, 장르 소설은 독자들의 입맛에 맞춘 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르 소설은 독자들의 입맛에 맞춘 소설이라는 말…….
이 말을 들으니, 확실히 총탄 작가가 앞서서 했던 말이 이해가 간다.
내 작품은 소설로서 정답에 가까웠지만, 장르 소설로서는 정답이 아니라는 말.
실제로 내 만족을 위한 소설을 썼었지, 독자들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고 집필해 왔었다.
‘물론 조금씩은 했었지…….’
조금이 문제다.
총탄 작가님 말대로라면 독자들의 입맛이 전부가 아닌가.
다른 사람이 말한 거였다면 의심해보겠지만, 내가 소설을 읽고 순수 재미로는 최고라고 생각했던 작가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믿음이 갔다.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총탄 작가님 말대로 제 앞선 두 작품은 제 입맛에 맞춘 작품들입니다. 한번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무협 소설을 써 보고 싶습니다.”
“…무협이란 장르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자신이 있는 건, 재미에 관해서는 그 누구에 뒤지지 않다는 겁니다.”
“재미라는 것만 가져갈 수 있어도 좋을 것 같군요.”
원래 하나씩 모아서 만들어지는 게 완벽이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는 법.
그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재미라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읍…….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어떻습니까?”
“어떤…….”
“저도 최근에 가지 않았지만, 작가 사무실이 있습니다. 장르 소설을 집필하는 기성 작가들이 모여서 작업하는 공간이죠. 만약 박제환 작가님만 괜찮으시면, 저도 당분간 작가 사무실에 출근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실례가 아닌지…….”
“아까 작가님이 했던 말을 듣고 느낀 바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제 막 두 작품을 쓰신 작가님이 장르 소설 업계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주신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역할은 못 할지언정 도움은 드리고 싶군요.”
“그렇다면 꼭 같이 작업해 보고 싶습니다.”
단, 하나라도 배울 수 있다면 상관없다. 그게 얼마나 걸리던.
애초에 이번 생은 작가로서 인생을 살기로 결정한 만큼, 작가 사무실이란 곳은 꼭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한 데, 저희 작업실은 어떻습니까?”
“어!! 그러고 보니, 너희 작업실 사람들 다 무협 쓰지 않나?”
“맞아. 물론 작가님이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우리 작업실에 있는 사람들이 무협 쪽에서는 가장 이름 있다고 생각하거든.”
“하기야……. 근데 너 신입 안 받는다 하지 않았어?”
“나도 너처럼 작가님이 했던 말을 듣고, 조금 생각하게 되는 뭔가가 있더라고. 아! 절대 작가님의 도움을 받고자 그런 건 아닙니다. 진지하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드리는 제안입니다.”
혹시나 나를 이용한다고 오해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옆에 있던 동료 작가분이 뒤에 말을 덧붙인다.
‘무협 쪽에서 이름 있는 사람이라…….’
이전에도 관심이 생겼지만, 방금 말을 들으니 더욱 구미가 당기기 시작한다.
“혹시 「XXXXX」 작품을 쓰신 작가님 아십니까? 제가 제일 재밌게 읽던 작품을 쓰신 분인데, 혹시 같은 작업실에 있으신가 해서 궁금하네요.”
“오!! 영광입니다. 그거 제가 쓴 작품이거든요!!”
“…꼭 그 작업실에 가고 싶군요.”
“저희는 언제나 환영이죠. 무협을 쓰면서 너무 진중해지지 않게, 젊음의 거리 홍대 쪽에 있습니다. 막힐 때, 가끔 밖에 나가서 버스킹 듣는 게 장난 아니거든요. 관심 있으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작가들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군요.”
“그럼요!! 방음도 완벽해서 안에서는 시끄럽지도 않아요. 어떻게… 총탄 너도 올 거지?”
“…그래야지? 내가 말 한 게 있으니까……. 그리고 기대되기도 하거든. 과연 독자님들 입에 맞춘 작품을 박제환 작가님이 쓰면 어떨지 하는.”
기대가 된다는 총탄 작가님.
나 스스로한테 기대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나 역시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과연 내 입맛이 아닌, 독자 입맛에 맞춘 소설을 또 한 번 성공시킬 수 있을까?
이번 작품이 작가로서 또 한 번의 도전이라고 생각한 나는 재밌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장소는 문자로 드려도 될까요? 저희는 언제든 모여있으니, 편하실 때 오시면 됩니다.”
“번호 알려드리겠습니다. 문자 한번 부탁드려요.”
“와우……. 제가 박제환 작가님 번호를 알고 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겁니다.”
“같은 작가인걸요.”
“그렇죠……. 같은 작가이죠…….”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오늘에 만남은 시작이나 다름없었기에, 다른 작가님들과도 이야기가 나누고 싶어진 나는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만약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군.’
작가 생활하는 나에게 지금의 기회는 말도 안 되는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2016년에 있던 대통령의 탄핵.
2018년에 있는 미중 무역 전쟁.
2019년부터 시작되는 바이러스.
2022년에 전쟁 발발.
그 모든 기회보다 오늘 얻은 기회가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나라는 작가가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오늘의 기회가 말이다.
세 번째 작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고 생각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연회장을 돌아다녔고,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고려호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번에 얻은 기회.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작가로서 성장하길 바라며 세 번째 작품에 대한 구상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