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 * *
사회자가 자신을 부르자 당황한 박제환.
‘할아버지가 시킨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출판사에서 준비했다고 하기엔 나와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워하는 게 보였다.
그렇다고 사회자가 멋대로 준비한 거냐?
그것도 아닌 것 같은 게 사회자 또한 출판사 직원들이 당황한 걸 보고, 자신 역시 얼떨떨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후…….”
이대로 있으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걸 감지한 나는 숨을 한 번 내쉬고는 사회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박제한 작가라고 합니다.”
“이야~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박제환 작가님을 직접 옆에서 마주하니 저 역시 떨려옵니다. 혹시 큰 성공을 거둔 작가로서 여기 모인 작가분들에게 위로되는 말씀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그럴 입장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왕 불러주신 거 후배 입장으로서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사업가 박제환이 아닌, 작가 박제환으로서는 뭐라고 조언해 줄 게 없었다.
나보다 먼저 작가라는 길을 걸으신 분들이고, 업계를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분들이 대부분.
시기와 운이 겹쳐서 성공한 나와는 다르게 시장이 커지기 전부터 글이 좋아서 작가라는 직업을 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보다는 후배로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사회자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잡아 들었다.
“일단 가장 먼저 하고 싶은 한마디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저 역시 작가님들의 글을 좋아하고, 작가님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화도 내며 즐거움도 느끼는 그런 한 명의 독자였습니다. 제가 힘들 때 힘이 돼 주는 글을 써주시던 여기 계시는 모든 작가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전생부터 웹소설이란 것을 좋아하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준 앞에 있는 작가님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
가장 먼저 하고 싶던 한 마디가 ‘감사합니다’였다.
짝짝―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진심을 담아 허리를 숙이자,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작가님들에게 존중을 건넨 만큼, 보답으로 존중이 돌아왔나 보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건 운과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이 과분하게도 독자분들에게 사랑받고, 관심을 받을 수 있던 것도 앞서 나간 선배 작가분들의 노력 덕분이겠죠. 제가 앞에 서서 여러분께 할 수 있는 말은 약속인 것 같습니다.”
약속이란 말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는 작가님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만큼, 저 역시 뒤따라오는 후배들을 위해 이 업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에 모두가 도전할 수 있게, 자신이 도전하고 싶을 때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업계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
전생에서 나를 위로해 주던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글을 쓰면서도 주변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할 생각이고.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존중이 잘 닿았기를 바라며 마지막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제가 나서서 돈을 주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단, 시장이 이 이상 후퇴하지 않게, 작가라는 직업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에 맞서 싸워 줄 수 있는 그런 버팀목이 돼 주겠습니다.”
웹소설 작가들은 언제나 목소리를 내기 힘든 조건에 있었다.
자신들이 주력으로 삼는 플랫폼에서 수수료를 높이고, 불합리한 일 처리를 하더라도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언제나 목소리를 높이면 돌아오는 건 수익의 악화였으니까.
그렇다고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누가 나서려고 한단 말인가.
그 역할을 내가 해주겠다는 거다.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글에 집중할 수 있는 내가 말이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나에게 또다시 들려오는 박수 소리.
아까와 차이점이 있다면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과 모두가 일어서서 박수를 건넸다는 거다.
“이야… 역시 회장님이라 그런지 우리 작가님 말하는 게 멋지시네요……. 저 감동했습니다.”
머쓱해하는 나에게 한마디 넌지시 내뱉는 팀장님.
“도대체 누가 기획한 겁니까?”
“엥? 작가님이 부탁하신 거 아니에요? 저희는 말을 멋있게 하시길래, 당연히 작가님이 부탁한 건지 알았는데…….”
“…….”
역시 할아버지가 중간에 손쓴 게 맞았나 보다.
전화할 때 들뜬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냥 넘어간 나를 자책하며 행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작가님, 이제 자유 시간을 가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 저는 자리를 비켜드릴게요.”
“이야기 좀 나누다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출판사 사장님의 말을 끝으로 공식적인 행사는 마무리됐나 보다.
이제는 친분 있는 작가끼리 의견을 나누는 시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 내가 팀장님을 보내고, 와인을 먹고 있자 한두 명씩 내 주변으로 오는 게 느껴졌다.
“저… 반가워요. 혹시 이야기 좀 나눠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선배님.”
“…….”
“무슨 문제라도…….”
“그… 선배라는 말이 뭔가 낯서네요.”
“다른 곳에서 회장일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만큼은 온전한 작가이고 싶네요.”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갑자기 막힌 작품 때문.
사업적인 이유가 하나도 없는 만큼, 오늘은 작가로서 본분을 다하고 싶었다.
“혹시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를 집필하게 된 계기를 물어도 되나요? 사실 저는 글을 읽으면서 분명 기성 작가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글이라는 게 읽다 보면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인지 보이기 마련이라…….”
“음……. 그냥 감정 이입을 했던 것 같네요. 제가 힘들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고, 두 번째의 삶을 살아야 될 때… 그때도 처음처럼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썼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공감 능력이 대단하신가 보네요. 부럽습니다. 작가로서 최고의 재능 중 하나인데…….”
공감 능력이 대단한 게 아니다.
실제로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았고, 내가 느끼던 감정을 판타지 형식으로 풀어썼을 뿐.
하지만 전생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각색해서 말을 전달했다.
‘기성 작가님들이 많네…….’
전생이 아니더라도 지금만 해서 기성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나 역시 작가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대화를 나누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쉽네…….’
그와 동시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신분이 있어서일까?
다가오는 작가님들이 나라는 사람을 작가로만 보는 게 아니라, JH 그룹의 박제환으로 보는 게 은연중에 느껴졌었다.
작품에 대한 갈망이 큰 지금,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아쉽게 느껴진다.
‘저 사람은…….’
많은 작가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팀장님이 총탄 작가님이라고 말했던 사람.
전생부터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의 작가였기에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 * *
오랜만에 만난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총탄.
“야……. 아까 박제환 작가님이 이야기했던 거 멋있지 않았냐?”
“그러니까……. 솔직히 우리 플랫폼에 손해 봐도 아무도 뭐라고 못 하잖아. 더군다나 박제환 작가님이 나서신다면, 뭐라도 답변은 줄 거 아니야.”
“요즘 들어 밖에서 뭐 하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웹소설 쓴다고 하고 있다. 이전에는 뭔가 부끄러웠는데 박제환 작가 때문에 인식이 바뀌었는지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하더라.”
“이놈의 자식이 박제환 작가가 아니라, 작가님이다.”
“…….”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료 작가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장르 소설 작가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긴 했다.
이전에는 다른 곳에 가서 직업을 설명할 때, 프리랜서라고 말하고 다녔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평범치 않다는 사실에 장르 소설 작가라고 설명하고 다녔었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직업이어서일까?
대부분이 뭐 하는 직업이냐고 설명을 요구했고, 돈은 되냐는 무례한 질문도 많이 했었다.
‘그런 게 확실히 줄었단 말이지…….’
박제환 작가가 웹소설 업계에 영향을 끼친 건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정석처럼 되어버린 편당 결제 시장.
박제환 작가의 첫 작품이 나오기 전에는 정액제 시장이 좀 더 앞서 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나를 포함한 대부분 작가가 독자들을 접하기 힘든 편당 결제 시장보다 정액제 시장에서 글을 썼고.
그러다가 한 번에 팡 터진 박제환 작가님의 작품으로 순식간에 독자들이 편당 결제 플랫폼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다른 작가들도 같이 옮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뤄진 수익의 안정화.
예전에는 완결작에서 유의미한 수익을 얻기 쉽지 않았다.
편당 결제 시장이 정착된 지금, 오래전에 완결된 작품에 큰 수입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박제환 작가님의 작품으로 시작됐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겠네.’
분명 이철민 팀장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을 전했지만, 형식적인 말이나 다름없을 거다.
실제로 지금 작가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대화를 나누기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야, 총탄아. 쳐다만 보지 말고 너도 가서 대화 좀 나눠봐. 무슨 애인 보듯 쳐다보고 있냐.”
“…저 사람들을 뚫고 어떻게 대화를 하냐.”
“그 소심한 성격이 문제라니까. 그것만 아니었으면, 너를 따르는 작가들도 많을 텐데. 그래도 지금은 인정. 박제환 작가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니까.”
“…….”
내가 박제환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게 티가 났을까?
옆에 있던 동료 작가가 한번 가보라는 말을 전했다.
솔직히 솔깃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꿔야 되는데…….’
매번 나에게 걸림돌이 되는 문제.
소심한 성격이 이번에도 나의 욕심을 가로막았다.
옆에 있는 작가야 친해져서 상관이 없다지만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좋은 성격은 아니었다.
내 작품을 보고, 글을 가르쳐 줄 수 있냐는 사람과 어떻게 하면 그런 필력을 가질 수 있냐는 사람들이 많이 접근했었다.
그럴 때마다 성격이 소심해서인지 대체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동료 작가는 그게 아쉽나 보다.
우리 같이 기성 작가들은 작품이 안 써지면 출판사를 차리는 보험이 있었다. 그만큼 업계를 많이 굴렀고, 글을 잘 봐준다는 메리트가 있어 충분히 유의미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고.
“쯧…….”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이때까지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지금만큼은 아쉬운 적이 없던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작품을 썼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 건지 등, 많은 부분을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소심한 성격이 싫어지는 하루 같다.
“총탄아. 박제환 작가님 이쪽으로 오는 거 같지 않냐?”
“설마…….”
“아니, 맞다니까? 눈도 이쪽을 보고 있는데? 설마 나를 알아본 건가?”
“…그럴지도?”
확실히 옆에 있는 동료 작가도, 업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작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진짜 나랑 대화를 나누고 싶다 했을지도…….’
피식―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다가오는 박제환 작가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더욱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반갑습니다, 총탄 작가님. 팬입니다.”
단 두 마디.
두 마디를 들은 나는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