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 * *
작가의 밤에 도착한 한 남성.
‘꽤나 무리했네.’
오랜만에 참석한 작가들의 모임.
이전과 달라진 규모에 내심 놀라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도 이런 모임이 여러 번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고려호텔 같은 곳을 빌릴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한 장소를 빌려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데 의미를 뒀었다.
‘오늘 박제환 작가님이 오신다고 하셨나?’
최근 들어 이런 모임을 오지 않던 내가 참석한 이유.
다른 어떠한 이유 없이 오직 박제환 작가님을 뵙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거다.
아직도 처음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라는 작품을 읽고 느낀 그 감정을 잊지를 못하겠다.
그때 내가 집필하고 있던 작품이 「나는 왕족이다」라는 작품.
한 가지 상상으로 작품이 시작됐다.
대한민국에 괴수가 생기고, 그것들을 처리하는 능력자들이 있다면 어떨까?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내가 그런 능력을 갖춘다면?
설정을 짜고 나니, 자칫하면 심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인공에게 한 가지 특별함을 부여했다.
그렇게 시작한 작품이 「나는 왕족이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있었는데…….’
글을 집필하면서 들던 생각.
이건 무조건 통한다였다.
내가 글을 쓰면서 읽기에도 너무 재밌었고, 무협 판타지와 같이 하나의 주제를 선도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들뜨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본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비슷한 시기에 연재를 시작한 박제환 작가님의 작품이었다.
그때 그 작품을 본 나의 기분은 완패와 함께 내가 가야 할 이상향을 찾은 느낌이었다.
나에게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헌터라는 주제를 교과서처럼 완벽한 설정을 부여했다.
거기에 쉽게 질릴 수 있다는 완성형 먼치킨물.
그런 주인공을 계속해서 성장시키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걸 확인하고 처음으로 작품을 읽으면서 완패라는 기분을 느꼈다.
‘두 번째 작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들이 작품을 집필할 때 자료 조사는 기본이다.
하지만 박제환 작가님의 두 번째 작.
단순히 자료를 조사한 데 그치지 않고, 수준급의 지식을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해서 사람들이 알아먹기 쉽게 조리해 맛있는 음식으로 바꿔 내놓았다.
‘작가들이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흥행과 동시에 해냈다.’
작가들이 글을 집필하면서 가장 욕심이 나는 것.
바로 메시지를 담는 거다.
물론 상업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면 욕심이 난다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자칫 작가의 생각이 들어간 작품은 사람들이 피하게 되는 경향이 있으니.
이게 순문학과 웹소설의 차이였다.
순문학은 사람이 느낀 철학과 자신이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책에 담겨 있었다.
웹소설은 사람들의 욕망과 대리 만족이 느껴지는 소설.
그런 소설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으면, 굳이 웹소설을 읽으러 온 사람이 그 작품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 총탄 작가님 아니세요?!”
“아, 안녕하세요. 이철민 피디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이제는 총괄팀장이지만요. 저를 다 기억해 주시고 감사하네요.”
“저야말로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변 작가들한테 팀장님 말 듣고, 꼭 한 번 작업같이 하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하하……. 저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제가 하는 일이 좀 바뀌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박제환 작가님을 서포트하고 있다고…….”
“오!! 알고 계시네요?”
“오늘 박제환 작가님이 온다는 소문은 사실이죠?”
“그럼요!!”
생각에 잠겨 있는 나에게 다가온 한 남성.
출판 업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기성 작가 목록에 올린 사람이라면, 한 번씩 거쳐 간다는 남성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라는 작가를 알아본다는 사실에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박제환 작가님과 이야기 좀 나눠주실 수 있나요?”
“…네?”
순간 귀가 잘못된 건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사실 박제환 작가님이 집필하는 데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제가 아는 총탄 작가님이라면 재미 부분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요.”
“…….”
“혹시 어려울까요?”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재차 질문하는 이철민 팀장님.
감히 내가 박제환 작가님에게 조언을 줄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각을 이어가다 둘러본 주변.
모든 작가들이 귀를 기울이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보였다.
여기에 있는 모든 작가들이 기성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나는 재빨리 대답을 건넸다.
“물론입니다!! 시켜주세요!!”
“다행이다. 작가님이 총탄 작가님과는 꼭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했는데.”
“…….”
“그럼 좀 이따 뵙겠습니다.”
좀 이따 보겠다며 떠나는 팀장님,
떠나는 그를 보면서 단 한마디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내가 존경하고 이상향으로 삼은 작가님이 나와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에 들려왔던 팀장님의 한 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며, 작가 인생 통틀어 최고의 한마디를 들은 것 같아 오늘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고려호텔에 도착한 박제환.
전생에 많이 읽어보고, 좋아했던 소설을 쓴 작가들을 만나는 자리여서일까?
그 어떤 자리보다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나는 사업가가 아니라 작가가 천직이었나 보다.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회장님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이 정도로 떨리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사람의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어디 있지?’
연회장에 많은 사람이 존재했지만, 그중 내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
이철민 팀장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소개받아야 했기에 연회장으로 들어 온 나는 팀장님을 찾기 시작했다.
“작가님!!”
“오랜만이네요, 팀장님.”
“그러게요. 아, 맞다! 호텔 측에서 작가님 오신다고, 음식이랑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해 주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뭐… 제가 한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보이네요?”
물론 사람이 많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작가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 사이에 사업가로 보이는 사람도 여럿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 작가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자기들도 껴 달라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제가 뭐라고…….”
“에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업가 겸 작가인데, 당연히 모두가 만나고 싶어 하지 않겠어요?”
“혹시 총탄 작가님은 오셨나요?”
“그렇지 않아도 아까 이야기 나눴는데, 흔쾌히 이야기를 나누시겠다는데요?”
“다행이네요.”
전생부터 가장 좋아하고 재밌게 읽었던 작가.
총탄 작가님이다.
총탄 작가님은 자칫 잘 못 하면 전문성이 부족할 수도 있게 느껴지는 글들을 자신이 가진 필력으로 무마시키는 능력이 엄청났다.
내가 이번 작에 가장 추구하고 챙겼으면 하는 항목.
바로 극강의 재미로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그런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금 진정됐던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것보다 다들 작가님한테 인사하고 싶어 하는 눈치네요…….”
“…좀 많긴 하네요.”
“이게 다 작가님의 힘 아니겠습니까?”
“작가분들은 지금보다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 만나고 싶은데, 다른 분들과 먼저 인사를 나누기로 하죠.”
“그러실래요? 제가 사장님한테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하죠.”
출판사 사장님에게 말을 하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팀장님.
이곳에 있는 작가님들과는 형식적인 인사보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고 싶었기에 사업가들부터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반갑습니다, 작가님. 엔터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상호 사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작가의 밤이라는 모임을 빛내 주셔서 감사드리죠. 작가님 작품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게 봐주시니까, 고맙군요.”
“제가 작가님을 직접 뵈면 가장 먼저 하고 싶던 말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 아들놈이 실례를 범했다고…….”
“지나간 일이니 괜찮습니다.”
“그래도 죄송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건 작가님이 대작을 쓴 것과 JH 그룹 회장인 걸 떠나서,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겁니다. 사실 매니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작가님들을 최대한 돕기 위한 건데…….”
“사과 받아들이겠습니다.”
사장님을 보고 있자니, 한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호부견자’라는 사자성어.
이런 뛰어난 부모를 두고, 그런 행실을 하고 다니다니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인사를 나누고 주변을 둘러본 사장님.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고 느꼈는지 인사를 건네고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사람들.
“안녕하십니까, 작가님. 먼피아 사이트를…….”
“저는…….”
“작가님, 반갑…….”
자신들이 맡고 있는 사업체를 말하며, 명함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나라는 사람은 작가로서 나왔기에,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누고는 준비된 자리로 향했다.
* * *
박제환 작가를 바라보는 총탄 작가.
‘대단하네…….’
박제환 작가가 연회장에 들어오자 인사를 건네던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큰 사업체를 굴리는 사람들이었다.
더군다나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장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입장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작가님들과 인사 한번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는 걸 보니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박제환 작가님은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단순히 그냥 글 쓰는 사람?
그게 아니라면 업계 선배로서 존중해 주고 있을까?
조금 이따 나눌 대화를 생각하니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어떻게 그를 대해야 될지…….
그가 어떻게 나를 생각하고 있을지…….
“야, 박제환 작가님 대단하지 않냐? 지금 조 단위를 굴리는 사람이 이런 자리에 온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이런 거 보면 막 뿌듯하지 않냐? 우리가 종사하는 업계에 능력 있는 사람이 도전하고 있잖아.”
“그렇지? 요즘은 어디 가서 웹소설 쓴다고 하면, 박제환 작가님 때문에 부끄럽지 않다니까.”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작가들이 나누는 대화.
나 역시 공감하고 있었다.
사실 웹소설을 쓴다는 걸 좋아하는 작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물어보면 당당하게 웹소설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그런 인식을 바꿔 준 박제환 작가님.
그렇기에 더욱 고맙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대박……. 박제한 작가님이 한마디 해주시려나 본데?”
“그러게……. 사전에 이야기된 거겠지?”
“장난하냐? 이야기 안 된 채로 진행할 리가 없잖아.”
“근데 저 당황하는 표정을 나만 보이냐?”
“설마…….”
행사를 진행하고 있던 사회자.
그가 박제환 작가님을 단상으로 부르며, 한마디 해줄 수 있냐는 말을 전한다.
보통 저런 자리는 미리 고지하고, 앞에서 할 말도 준비하게 해주는 게 정석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당황하고 계시지……?’
분명 그렇게 진행됐으면, 저렇게 당황할 리가 없을 텐데…….
사회자의 부름에 크게 당황하는 작가님.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속에 있는 말을 한다면, 작가님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
작가님의 마음을 확인한다면, 조금 이따가 대화에서 작가님을 어떻게 대할지, 나 역시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