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78화 (78/175)

78화

* * *

전화를 끊은 이철민 팀장.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한다.

방금 전화를 통해 들은 작가님의 말.

작가들의 밤에 참석하겠다는 의사였다.

전혀 상상조차 못 한 성과를 얻은 것 같다.

‘사장님도 엄청 좋아하겠네…….’

사실 사장님이 나에게 넌지시 물어 온 적이 있었다.

작가님에게 작가들의 밤에 참석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지만 솔직히 쉽지 않았다.

이때까지 휴재 없이 원고를 넘겨준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시간을 내주라 한다는 말인가.

한국을 넘어 미국까지 떠들썩하게 만드는 그룹의 주인인 작가님에게 연락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되나 망설이고 있을 때, 걸려 온 작가님의 전화.

마치 가뭄 속의 단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참석한다는 말.’

이 말은 단비를 넘어 가뭄 속에 홍수가 아닌가 싶다.

아까 사무실에서 급하게 전화를 받으러 가자 모두가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었다.

그만큼 내가 자리를 피해서 전화를 받은 적 없었거니와 지금 시기는 작가들의 밤에 많은 작가님을 초대하기 위해 모두가 예민하라 하던 시기였으니까.

그런 이들에게 어떻게 보면 치트키나 다름없는 소식을 전한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하늘 높이 오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달칵―

전화를 끊고, 사무실에 들어가자 모두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들의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중에 의아함을 느낀 한 명만이 나를 쳐다보며 질문을 던진다.

“팀장님, 뭐 하세요? 그 표정은 뭐고요?”

“어떤 표정인 것 같아?”

“…제가 물어봤는데요?”

“완전 만족을 넘어 의기양양한 표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

“혹시 방금의 전화가 지금 한껏 올라간 어깨에 힘을 보태주었나요?”

침을 삼키며, 혹시나 하고 질문하는 팀원.

“정답.”

“…….”

정답이라는 말에 또 한 번 침을 삼키는 직원.

아니, 앞의 직원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알게 모르게 대화에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들 작가님들 섭외하느라 마음고생 많았지?”

“…….”

“설마……?”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솔직히 팀장님이라도 힘들지……. 작가님이 얼마나 바쁘신 분인데.”

모두가 기대감을 가지면 실망이 커질까 봐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혹시 자네들은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을 믿는가?”

“…오늘부터 믿어볼 수 있겠습니까?”

“팀장님……. 지금 장난하는 거면 저 화날지 몰라요…….”

“내가 박제환 작가님 섭외했다. 작가들의 밤에 꼭 출석할 테니, 날짜 잡히는 대로 연락해 주라고 하더라고.”

모두가 기대하는 대답을 전하자 순식간에 찾아오는 정적.

이내 한두 명씩 내가 하는 말을 깨닫기 시작하더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

사무실이 떠나갈 정도의 함성들.

다들 고생했다는 말을 전해 오기 시작한다.

사실 내가 한 건 없지만, 모두가 칭찬하는 마당에 아니라고 말하기도 뭐 해서 지금 분위기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하… 진짜 작가님들 섭외하기가 진짜 까다로웠는데…….”

“무슨 하나같이 들려오는 대답이 박제환 작가님 오냐는 말이더라고요. 저희도 묻기조차 어려운 걸 어떻게 대답할지 힘들었는데…….”

“아니, 그러면 장소 바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출판사를 먹여 살리는 작가님이 오시는 데 체육관은 좀…….”

“내가 사장님에게 말해 봐야지.”

팀원이 말했던 대로, 지금 예약한 체육관은 작가님을 모시기에 부족함이 있어 보였다.

분명, 사장님도 작가님을 초대했다고 하면 다른 대안을 생각할 거라고 예상했기에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전했고.

“왜 이렇게 시끄러워? 무슨 함성 소리가 사장실까지 들리던데?”

“사, 사장님!!”

안 그래도 사장님을 언제 찾아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까의 함성 소리를 들은 사장님이 궁금한 마음이 들어 내려오셨나 보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같이 좀 좋아하자.”

“사실… 제가 담당하는 작가님 있지 않습니까.”

“박제환 작가님?!”

“맞습니다. 방금 연락을 했는…….”

“뭐래?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니고? 일은 잘되고 계신 데? 작품은? 차기작은? 뭐래?! 도대체 뭐라 하신 거냐고?!”

“사, 사장님……?”

“…크흠. 작가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

작가님의 얘기를 듣자, 이성을 잃은 사장님이 자신도 뭔가 잘못됐다고 판단했는지 곧바로 제정신을 찾으셨다.

“이번에 작가의 밤에 참석할 의향이 있다고…….”

“이 팀장!! 자네는 우리 출판사의 보물이며, 보배가 틀림없어. 내 출판사 창단 이래 아주 완벽한 인재를 여기서 다 보는구만. 하여튼 자식이란 놈이 자네 자리를 탐낼 때 뭔가 싸하더니, 이런 인재를 놓칠 뻔했어!”

“…….”

“당장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호텔을 빌려서 한번 크게 벌여보자고. 거 노래하는 사람도 부르면서, 뭔지 알지? 우리가 작가님 덕분에 번 돈이 얼만데 이 정도는 해야지.”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우리 이 팀장 고생했으니까, 오늘 회식 한번 해. 여기 법인 카드.”

고생했다며 카드를 내미는 사장님.

카드를 받아들자,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사장실로 올라가시는 게 보인다.

“자, 다들 들었지?”

“…사장님이 작가님 팬인가 보네요…….”

“아무래도 사업하시는 분이니…….”

“어째, 저희보다 더 좋아하는데요?”

“그러게. 우리는 회식이나 하자고.”

우리보다 더 즐거워하는 사장님을 봐서일까?

모두 즐거워하던 분위기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변했고, 회식을 하라는 말에 웃음을 지으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 *

팀장님에게 작가들의 밤에 대한 소식을 듣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 내가 참석하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역대급으로 많은 작가가 참여하기로 했다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른 출판사에 있던 작가들도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차기작을 엔터 출판사와 하기로 하면서 작가들의 밤에 참여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내가 그 정도인가?’

지금 들려오는 나의 인기가 사업가로서인지, 작가로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작가들과의 만남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내가 걷고 있는 거리 홍대.

재벌로서 삶을 살아온 나와는 거리가 좀 먼 곳이었다.

내가 술을 좋아하고, 젊은 시절 많은 곳을 놀러 다녔다면 모르겠지만 전생에서부터 경영에만 집중했었기에 익숙지 않은 거리다.

그럼에도 이곳이 기억 속에 제대로 남아 있는 이유.

그녀를 처음 본 곳이 홍대였기 때문이다.

‘좀 괜찮아진 것 같군…….’

팀장님의 연락이 오기 전.

내가 세 번째 작품을 집필한 글자는 단 한 글자도 없었다.

너무 답답한 마음이 들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홍대로 나왔는데, 좋은 기억을 간직한 곳이어서인지 기분이 전환되기 시작했다.

‘답이 없는 건가?’

전생을 경험하고, 과거로 돌아오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지만, 의도적으로 피했던 생각.

그녀에 관한 생각이었다.

의도적으로 피해 왔지만, 계속해서 고민해 왔던 것 같다.

과거로 돌아온 내가 그녀 앞에 서도 되는 건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승호와의 약속 때문에 홍대의 카페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때의 나는 경영에 대해 어떻게 해야 되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그걸 발견한 승호가 상담을 해주기 위해 홍대로 나를 불렀던 거다.

그렇게 승호와의 약속 장소로 향하던 나.

답답한 마음을 가지며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가 들려온 그녀의 노랫소리.

왠지 모르겠지만, 답답한 내 마음을 달래주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참… 그때 승호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 기분은 처음 느껴 봐서일까?

신기한 마음이 든 나는 승호와의 약속을 생각지도 못한 채, 그녀가 노래 부르는 곳 앞에 앉아서 한 시간가량을 머물렀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버스킹하던 그녀의 시간이 끝나갔고 자연스럽게 의식을 되찾은 나는 승호와의 약속이 생각이 났다.

동시에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그녀를 놓쳐야 되는가.

지금 그녀와 헤어진다면 답답한 내 마음을 위로해 주던 노래는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건가?

많은 생각과 겁이 동시에 들면서 나도 모르게 말도 안 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고 번호를 받았지…….’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 이성에게 말을 걸고, 번호를 얻었다는 게.

그때의 그녀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겁을 먹은 것 같으면서도 어떤 사람인가 궁금증을 가진 듯한 그 눈빛.

그런 그녀에게 절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며 결사적으로 어필해서 겨우 번호를 알 수 있었고, 그게 그녀와 인연의 시작을 알리게 되는 계기였다.

‘작품이 안 되니까 별생각이 다 드네…….’

오늘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별생각이 다 든다고 생각하면서, 버스킹하는 사람들의 노래를 들으며 홍대를 걷기 시작했다.

* * *

‘하… 답답하네…….’

시간이 흘러 작가의 밤이라고 불리는 모임에 참가하는 당일.

그간 속 시원하게 써지지 않은 글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뭐가 문제일까?

팀장님 말대로 그간 두 작품을 쓰면서, 머릿속에 있던 전개를 다 소비해서?

많은 걱정과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 작품에 대한 해답이 이번 모임에 있길 바라면서 외출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고려호텔이라 했던가?”

오늘 약속 장소인 고려호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고려호텔이라면 할아버지의 지인분이 사장 자리에 앉아계신 곳.

고려호텔에 갈 생각을 하니, 문득 할아버지에게 연락을 안 한 지 오래됐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뭐 하세요, 할아버지.”

- 네놈이 웬일이냐. 평소에 전화를 그렇~게도 안 하던 제환이가 웬일로 전화를 했을까?

“…죄송합니다.”

- 아니다. 나는 괜찮은데 내 친구 놈들이 그러더구나. 자신들 나이 때는 무엇보다 손자놈들의 재롱 보는 재미로 산다고.

“저는 재롱 부릴 나이는 지났잖아요.”

- 그냥 말해 봤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전화 한 거냐?

“사실 세 번째 작품을 집필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잘 풀리지 않아서 다른 작가들을 만나려고 하거든요. 장소가 고려호텔이라서 연락드렸어요.”

- 세 번째 작품? 「회고록」은 어쩌고 세 번째 작품을 말하는 게냐?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모르고 있나 보다.

하기야 「회고록」이 연재되고 있는 회차로부터 완결까지는 100화가량이 남은 셈.

모르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 작품은 완결까지 다 적고 다음 작품을 집필할 차례거든요.”

- 뭬야?! 내가 하루하루 기다리면서 보고 있는 작품이 완결이 났다고?!

“…다음 내용이라도 알려드려요?”

- 절대 안 되지!! 내 하루 낙을 빼앗을 생각이냐? 절대 한마디도 말 거라.

“네……. 어쨌든 겸사겸사 생각나서 연락드렸어요.”

- 그러니까… 내 다음 시간을 책임져 줄 작품이 잘 안 풀려서 작가들을 만난다 이거지? 그게 고려호텔이고?

“그렇죠……?”

- 그럼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지. 할아비가 고려호텔 운영하는 친구에게 말해 놓으마. 잘 좀 대접해 주라고. 요즘 우리 그룹이 제환이 네 때문에 한 자릿수로 올라가고 나서 얘들이 들러붙으려고 아주 난리란 말이지……. 아마 잘 챙겨줄 거다.

“그러시지 않아도 괜찮긴 한데……. 이왕 해주는 거 감사합니다.”

- 곧바로 감사하는 말을 하면 어디가 아픈 게냐? 그럼 끊으마.

고려호텔 사장에게 말을 해놓는다며 전화를 끊은 할아버지.

이왕 도움을 구하러 가는 곳인 만큼, 다른 작가들에게 잘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나는 애써 말리지는 않으며 호텔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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