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76화 (76/175)

76화

* * *

기사가 나가고 다음 날.

이번 싸움은 JH 그룹이 이겼다고밖에 할 수 없는 반응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틀 연속 하한가를 치고 있는 대현 자동차.

그와 반대로 이틀 연속 모든 종목이 상한가를 치고 있는 동성 그룹.

두 가지가 합쳐지니 누구라도 JH 그룹이 승리했다는 건 알 수 있을 거다.

이에 대한 보답이라고 해야 할까?

불과 이틀이란 시간 만에 동성 그룹은 꿈에 그리던 재계 순위 한 자릿수에 올라갈 수 있었다.

‘JH 그룹 주식을 살 수 없으니, 동성 그룹의 주식이 오르는 건 당연하지.’

그것뿐만이 아닐 거다.

JH 그룹이 앞으로 펼쳐 나갈 사업이 동성 그룹과 연계할 수 있는 게 너무나 많았다.

일단 동성 건설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전이었다면 일거리가 없어 대대적인 직원 채용을 꺼려야 할 동성 건설. 하지만 앞으로는 일거리가 넘칠 수밖에 없었다.

호남 지역에 세우는 생산 공장. 우선 이것만 하더라도, 조 단위의 규모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더해서 사옥들.’

이번에 세우는 그룹의 사옥들 또한 다 합치면 조 단위 정도의 예산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당연히 앞으로의 일거리가 부족할 리가 없는 동성 건설은 자연스럽게 주식 가치가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런 동성 건설의 사장인 작은아버지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으니…….’

가해자 신분에 있던 사람 중 대현 그룹의 직계인 정민지와 그의 보호자로 온 정민우 빼고는 모두가 실형을 피해 가지는 못할 거다.

더군다나 호남 지역의 정치 색깔.

지금 대통령이 당선된 여당이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호남 지역에서 동성 건설과 JH 그룹의 이미지는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으니, 정권에서조차 이번 일을 이상하게 처리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회장님, 대현 그룹에서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싸움은 저희가 이긴 게 아닌가 싶군요.”

“어쩌면 당연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상상도 못 하고 있었을 테니. 사실 그 어떤 회사가 오더라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을 겁니다.”

“하기야… 형찬 씨가 발명해 낸 배터리가 말이 안 되긴 하죠.”

“이게 끝이 아닐 겁니다. 앞으로 대현 그룹의 행보를 계속해서 방해할 생각입니다.”

“대현 그룹은 회장님과 척을 진 걸 뼈저리게 후회하겠군요.”

“그렇게 만들어야죠.”

이번 승부로 대현 그룹이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생각도… 그렇다고 전쟁을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둘 중의 하나는 한국에서 이름이 지워지게 되는 그런 전쟁을 이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현 그룹에 공식 입장은 뭐라고 하던가요?”

“1년 안에 성과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발등에 불이 붙은 거나 다름없죠.”

“사실상 패배 선언이나 다름없군요.”

“1년이란 시간을 번 거나 다름없죠. 이번 싸움은 KO라고 봐야 됩니다.”

“그럼 싸움에서 승리했으니, 소소한 세리머니를 취하도록 할까요?”

“지시만 내려주시면 즉시 움직이겠습니다.”

처음으로 대현 그룹과 정면으로 맞붙어서 승리를 가져와서일까?

이 기쁨을 나 혼자 느끼고 싶지 않았다.

“대대적인 직원 채용과 동시에 연봉이나 성과금, 복지 같은 경우를 대현 그룹을 거론하면서 기재하기로 하죠.”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비용적인 모든 면에서 대현 그룹의 10퍼센트 이상을 약속한다고 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겠군요.”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대기업으로 거듭났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저희는 급여를 아껴서 돈을 버는 게 아닌, 기술력과 수출을 통해 돈을 버는 겁니다. 지금 주는 급여는 직원들에게 충성심을 불어넣어 줄 겁니다.”

“반대로 대현 그룹 직원들에게는 사기가 저하되는 소식이겠군요.”

“뭐… 전쟁에서 패배한 진영은 사기가 저하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전쟁에서 이긴 거로 만족할 생각이 없다.

원래 싸움에서 이기는 순간, 패배자 쪽 진형은 분위기가 최악으로 가라앉는다. 거기에 싸움에서 이긴 우리가 전리품을 화끈하게 풀면 어떻게 될까?

최악으로 가라앉은 분위기에 한 번 더 찬물을 끼얹는 계기가 될 게 틀림없었다.

“앞으로 저희 JH 그룹의 모토는 대현 그룹보다 한발 앞서서입니다. 직원들의 능력과 급여, 회사의 이미지… 이 모든 걸 포함해서 말이죠.”

“참… 대현 그룹은 어쩌다 회장님을 건드려서……. 그럼 그렇게 일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서실장님도 고생하셨으니까 성과금이 나갈 겁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과 함께 밖으로 향하는 비서실장님.

비서실장님의 말을 듣고, 창문 밖을 바라보니 거리를 돌아다니는 많은 차들이 보였다.

그런 차들의 대부분이 대현 자동차와 기어 자동차.

저 차들이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최대한 괴롭혀 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 * *

기어 자동차 사무실.

“와… 대현 그룹보다 무조건 10퍼센트 높게 주겠다고? 이거 완전 대박 아니에요, 팀장님?”

“그러게……. 솔직히 나도 구미가 당기긴 하네.”

“팀장님만 그런 거 아닐걸요? 지금 제 동기들도 몰래 지원서 내보겠다고 난리라니까요?”

“근데 이런 얘기를 나한테 해도 되냐?”

“에이… 팀장님이니까 시원하게 말하는 거죠.”

김 대리가 말해 오는 JH 자동차의 소식.

이 소식을 들으면 복잡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지금 내가 가진 팀장 자리는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 원래 대로라면 지금의 JH 자동차를 만든 김형찬 씨가 가져가야 할 자리.

하지만 이제는 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그 사람 때문에 나에게까지 기회가 오게 된 거다.

과연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이 괴롭히던 사원이 기어 자동차를 넘어 대현 자동차와 경쟁하고 있는 회사의 대주주가 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금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 성과도 형찬 씨가 연구한 게 틀림없어…….’

지금 생각해 보면 정황상 부장님이 주도했다는 연구도 형찬 씨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단 부장님의 실력.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기어 자동차를 한 단계 올릴 정도의 성과를 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 후에 시작된 사내 정치…….’

성과를 내고 나서 시작된 사내 정치.

굳이 성과를 낸 마당에 같은 팀원인 형찬 씨를 압박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때 형찬 씨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정도.

그런 형찬 씨를 자신의 라인으로 끌어들였으면 끌어들였지, 굳이 사내 정치를 시도했던 게 말이 안 됐다.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간 형찬 씨의 승승장구.’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저번에 부장님의 성과는 형찬 씨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부장님이 스트레스를 받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충분히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임원이란 별자리가 예약됐는데 굳이 히스테리를 부릴 이유가 하등 없었단 말이다.

‘아마 형찬 씨가 승승장구한다는 사실에 압박을 받았겠지.’

지금 머릿속에 드는 생각들은 비단 나만 하는 게 아닐 거다.

형찬 씨와 같은 회사 생활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생각해 볼 만한 주제였다.

“팀장님, 오늘도 부장님은 화나 있겠죠? 요즘 왜 이렇게 우리들을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네요.”

“그러게…….”

옆에서 부장님에 대해 말해 오는 김 대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를 거다.

기어 자동차에 들어 온 건 형찬 씨가 나간 후니.

“곧 있으면 부장님 올 시간이네요……. 쯧…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경력 쌓고 JH 자동차에 노리는 건데.”

“조용히 하고 일에 집중해. 부장님 오시면 또 뭐라고 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 역시 JH 자동차에 입사 지원서를 작성해 놓은 상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현 자동차는 어떻게 살아날 수 있겠지만, 기어 자동차가 지금 경쟁에서 살아남기에는 요원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다들 뭐 하고 있어!! 회사가 너희 놀이터야?! 누가 잡담하고 있으라 했냐고!!”

“…….”

모두가 JH 자동차의 조건을 보고 마음이 심란해져 있어서일까? 그런 분위기가 소란스럽게 느껴졌는지 사무실로 복귀한 부장님이 오자마자 화를 내기 시작했다.

“X발. 누군 위에 불려가서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지 죽어라 회의하고 왔는데, 너희는 어떻게 벗어날지 궁리하고 있냐? 기어 자동차가 우스워?!”

“…….”

“어이, 이 팀장. 자네가 말해 봐. 지금 이 분위기가 정상이야? 나는 그 자리에 있을 때 어떻게든 회사에 도움이 되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해서 결과로 보여줬어. 자네도 슬슬 결과로 보여줄 때 아니야?”

“…….”

짜증이 난다.

누가 봐도 형찬 씨가 했던 연구를 자기가 한 것처럼 으스대면서 압박을 하는 이 상황이.

이 순간만 넘기면 기필코 JH 자동차로 입사할 거라고 다짐하며, 부장이 뱉어내는 말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에이 씨……. 내가 잘못 생각했어. 딴 놈을 팀장 자리에 앉혔어야 했는데……. 됐고, 가서 일이나 봐. 앞으로 성과가 있을 때까지 다들 정시 퇴근은 꿈도 꾸지 마.”

“…….”

“내가 다시 돌아올 때 누구 하나라도 사라져 있어 봐. 그때는 가만 안 둘 테니까.”

자신이 돌아오기까지 누구 하나 자리에 뜨지 말라고 경고하고는 다시금 밖으로 나간 부장님.

저런 사람을 볼 때면, 세상에 권선징악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 못된 일을 저지른 게 확실한데, 누구보다 임원이란 자리에 빠르게 오르는 걸 봐라.

언젠가 저 사람이 심판 받기를 바라며, 기분을 삭이기 시작했다.

“팀장님…….”

“왜 그래. 또 떠들고 있다가 부장님 들어오면 큰일 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 기사 좀 봐야 될 것 같은데요?”

“기사?”

기분이 상해 있는 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기사를 확인하라는 김 대리.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나는 김 대리가 틀어 놓은 기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

“팀장님… 이거 우리 회사 얘기 맞죠?”

“…그런 것 같네.”

“그럼, 여기에 나온 기술을 훔치고 사내 정치했다는 사람은 누구예요?”

“…몰라도 된다.”

“누군진 몰라도 큰일 났네요. 조 단위의 돈을 가진 사람이 고소까지 진행한다고 했으니까. 참 누군진 몰라도 인생 망했네요. 승진 노리다가 고소도 당하게 되고, 김형찬 연구소장님 정도면 업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할 텐데…….”

“그러게……. X됐네.”

기사를 보며 X됐다고 말을 되뇌는 나.

분명 누군가에게 안 좋은 상황임에도 왜 이렇게 웃음이 지어지는지 모르겠다.

“팀장님, 왜 웃고 계세요?”

“응? 내가 웃고 있었어?”

“네. 방금까지 부장님 때문에 표정 완전 안습이었는 데, 지금은 완전히 밝아 보이는데요?”

“모르겠다. 부장님이 내 감정을 이렇게 오락가락하게 만들어 주시네.”

“…무슨 소리지. 하여튼 이 사람은 불쌍하게 됐네요.”

“뭐가 불쌍하냐. 권선징악이지.”

김 대리가 보여준 기사는 세상에 권선징악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형찬 씨가 직접 말한 거라고 하니, 확실하게 벌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띠리링―

“김 대리, 전화 좀 받아 봐.”

“네.”

기사를 보고 느껴지는 행복감은 좀 더 만끽하고 싶었기에 김 대리에게 전화를 받으라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1분 정도가 지났을까? 전화를 끊은 김 대리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래? 어디서 전화 온 건데.”

“…부장님을 찾고 있다는데요?”

“어디서?”

“감사실에서요…….”

김 대리의 말을 들으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내가 받았다면 좀 더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역시 아직 세상에는 권선징악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을 들게끔 해준 JH 자동차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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