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 * *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박제환.
대현 그룹의 공식 입장과 대현 그룹의 편에 있던 방송이 나가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도 아무런 대응조차 못 하고 지난 일주일. 이제는 부정적인 걸 넘어서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사기꾼이라는 말을 다 들어보는군.’
심한 경우에는 사기꾼이 아니냐는 의견이 달려 있었다. 우리가 말했던 JH 자동차는 허상의 회사이고, 티슬라와 손을 잡고 사기를 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말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티슬라의 시가 총액은 지금만 하더라도 대현 자동차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이런 티슬라를 걸고 사기를 칠 리도 없거니와 공식적인 방송에서 허위사실을 기재할 리가 없었으니.
‘그만큼 실망하고 있단 거겠지.’
그만큼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런 대응도 없는 JH 자동차에.
이제는 그 실망감을 기대감으로 돌려줄 때가 온 것 같다.
방금 걸려 온 이민호 사장님의 전화.
충분히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줄 만한 소식이었다.
‘그리고 호남 지역에 생산 공장의 신설.’
이 두 가지 소식이 합쳐지는 순간 우리 그룹이 판정승을 거두는 건 기정사실이다.
대현 그룹에게 존재하지 않을 것 같던 경쟁자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소식.
대현 그룹에게는 악재를 가져다줄 것이며, 동성 그룹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거다.
‘상한가를 치겠네.’
JH 그룹의 주식이 시장에 풀리지 않은 만큼 동성 그룹에 주식이 대신해서 올라갈 걸 알고 있었다.
그간 할아버지도 심적 고생이 심했던 걸 알고 있기에, 충분한 보상이 되기를 바라며 기사가 올라오는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 * *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진 박대호 회장.
“자네, 지금 술이 들어가? 손자 놈이 사기꾼이냐 아니냐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 데……. 참 자네도 어떻게 보면 흔들림이 없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손자가 사기꾼이라니. 그건 모르는 놈들이 하는 말이고.”
“허허……. 손자 사랑은 알아줘야겠다니까.”
오랜만에 마시는 이 회장과의 술자리여서인가?
술이 달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제환이 자식 때문이겠지.’
제환이가 건네준 소식이 술에 달콤함을 부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앞에서 걱정하고 있는 이 회장을 보니 술자리가 더욱 즐겁게 느껴졌다.
“참, 이번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자네 그룹도 한 자릿수로 올라가는가 싶더니만, 곧바로 손자가 말썽을 부려서 제자리를 찾아가는고만……. 우리 박 회장 기분도 씁쓸할 텐데, 여기 술은 내가 사도록 하지.”
“허허……. 자네 승호랑 요즘 연락 안 하나?”
“승호? 그 자식이 결혼하고 나서 나를 찾아오지도 않아.”
“그래서 그렇고만.”
“그게 무슨 소리야.”
“승호가 자네한테 아무 말도 안 한 거 말이야.”
제환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승호 녀석이라면 알고 있을 거다. 제환이가 반격의 준비를 마쳤다는 걸.
승호의 할아비 되는 녀석이 그런 사실도 못 들었다고 하니, 얼마나 자신의 손자에게 관심이 없는지 알 수 있었다.
“거 뜸 좀 그만 들이고 시원하게 말 좀 해 봐. 우리 승호가 뭘 나한테 말을 안 했다는 거야.”
“…내 자네니까 말하는 거야.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아 좀 알았다니까. 이놈의 영감이 뭘 말하려고 이렇게 폼을 잡는 거야.”
“대현 그룹에 주식 넣은 거 있으면 전부 빼.”
“…….”
“이번에 제환이가 반격 준비를 마쳤어. 내가 생각하기에는 대현 그룹은 당분간 제기 불가야.”
“…그 정도야?”
“상황 파악을 한 대현 그룹은 두 가지 선택밖에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제환이 녀석과 계속해서 싸우든가, 그게 아니면 상황을 파악하고 제환이에게 용서를 빌어야지.”
이 회장에게는 두 가지 선택을 말했지만, 무슨 선택을 하든 한 가지 결과만이 남아 있다.
한 그룹만이 살아남을 때까지의 전쟁.
나 역시 이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손녀에게 그딴 상처를 남겨?’
감히 동성 그룹의 사람에게… 그것도 어디 하나 손댈 곳 없는 우리 손녀에게 몹쓸 기억을 남긴 그 녀석들과 절대 한 하늘 아래 공존할 생각이 없었다.
나 역시 제환이 녀석과 손을 잡고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대한민국에 두 번째라 불리는 대현 그룹과 말이다.
“자네 눈빛이 왜 그래?”
“아 차……. 이거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감정이 제어가 안 됐나 보군.”
“자네가 감정 조절을 못 하는 것도 오랜만이군. 도대체 무슨 기억이길래…….”
“됐고, 술이나 마시자고. 자네는 오늘 술자리가 끝나면 무조건 대현 그룹에서 주식을 빼도록 해. 장담하는데 하한가는 무조건 찍을 거야.”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고맙네, 미리 말해 줘서.”
“별거 아닐세.”
다시금 손녀가 당했던 것들을 생각하니, 술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앞에 있는 술이 모자라다 생각이 들어 더 추가한 뒤 오랜만에 과음을 하기 시작했다.
* * *
대현 자동차 본사 옥상에 있는 두 남성.
“후……. 요즘 분위기가 좀 괜찮아져서 다행이네요. 그렇지 않아요? 부장님도 걱정 많으셨잖아요.”
“사실 JH 자동차보다 티슬라랑 지분 교환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었지. 그래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 보니까, 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저는 솔직히 박제환 작가님 팬이었거든요? 진짜 대현 자동차 다니지만, 혹시나 해서 동성 그룹 주식 엄청나게 사놨는데… 뭔가 기분이 묘하네요.”
“뭐야? 너도 동성 그룹 주식 사 놨어?”
“부장님도요?”
오랜만에 괜찮아진 분위기에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온 남성.
매일 주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부장님도 동성 그룹 주식을 사놨다니까 뭔가 반가운 기분이 느껴졌다.
“대현 자동차는 오를 게 없지만, 동성 그룹은 성공하면 오를 가능성이 높잖아. 그래서 한번 무리해서 사놓긴 했는데, 점점 떨어지기만 하더라고.”
“사람들이 등을 돌려서 그런가 봐요. 아무런 소식도 없기도 하고, 사실 전기차라는 게 배터리에 대한 한계가 있다 보니까, 쉬운 시장이 아니잖아요.”
“김 대리는 주식 언제 정리하게?”
“저요? 벌써 10퍼센트나 떨어진 마당에 더 떨어질 일 있겠어요? 조금 더 길게 보려고요.”
“에이, 그 시드머니를 묵혀서 뭐할 거야. 다른 데 돌려야지.”
“그런가요? 저는 그래도 박제환 작가님 생각해서 좀 더 묵히기로 하죠.”
솔직히 나도 뺄까 말까 수없이 고민했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회고록」이라는 작품. 그 소설을 생각하면 박제환 작가님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런 무리한 싸움을 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대현 자동차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지만, 이곳에서 임원이라는 별을 달 리가 없었기 때문인지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깊지가 않았다.
“이참에 나는 빼야겠다. 언제 더 떨어질지 모르니까.”
말이 나온 김에 주식을 빼겠다며, 핸드폰을 만지던 부장님.
그렇게 몇 초 정도가 지났을까?
핸드폰을 만지던 부장님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러세요, 부장님.”
“김, 김 대리……. 지금 빨리 주식 확인해 봐.”
“…설마 하한가인가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주식을 확인하라는 부장님.
결국 터질 게 터지고 말았나 보다. 도대체 무슨 일이 터졌길래 하한가를 찍고 있을까?
궁금해진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켜고, 주식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주식을 확인한 나는 부장님과 마찬가지로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하한가를 치고 있긴 했다. 단지, 동성 그룹의 하한가가 아닌, 내가 몸담고 있는 대현 자동차의 주식이 말이다.
‘JH 자동차가 뭘 한 거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슨 일이 있어야 한순간에 두 그룹의 위치가 바뀔 수 있을까?
하한가를 치는 대현 자동차와 반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는 동성 그룹.
이건 분명 JH 자동차에 뭔가 터진 게 틀림없었다.
“부장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잠시만 기다려 봐. 확인하고 있으니까…….”
“…….”
뭔가를 바삐 읽기 시작하는 부장님.
이내 손에 있던 담배를 던지고는 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야, 김 대리. X됐다. 우리 회사 비상이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내려가서 자리 지키자고.”
“…….”
X됐다는 말을 남긴 채, 급하게 내려가는 부장님.
무슨 일이 일어났긴 했나 보다.
우리 회사에게 안 좋은 일이 말이다.
‘좋아해야 되나……?’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 산 주식이 상한가를 친 거에 기뻐해야 되는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위기에 몰렸다는 거에 슬퍼해야 되는지 헷갈린 나는 부장님을 따라 바삐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대현 자동차 사장실.
“김 비서!! 갑자기 우리 회사 주가가 왜 이래!!”
“그게……. 한번 기사를 확인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가져와 봐!”
기사를 확인해 보라는 김 비서.
도저히 주가를 틀어 놓은 화면을 다른 데 돌릴 정신이 없기에 김 비서의 폰으로 기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
“…….”
큰일이다…….
분명 우리 그룹의 무난한 승리로 가져갈 것 같던 JH 그룹과의 전쟁이 묘하게 흘러간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 자식들이 호남 지방에 5조를 투자해서 생산 시설을 만든다, 이 말이야?”
“…그것도 일차적인 투자입니다.”
“…얘네들 미친 거 아니야? 무슨 정신으로 5조를 꼬라박는 거야?”
“밑에 기사도 한번 확인해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건가?
당장 5조 원을 생산 시설에 투자한다는 기사만 해도 뒷골이 당겨져 왔는데, 김 비서가 다른 기사도 확인해 보라는 말을 전해 왔다.
“……!!”
밑으로 내리자 보이는 또 다른 기사. 도저히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란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 분명 이건 꿈인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한 번에 일어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김 비서… 이 기사에 있는 말 사실이야?”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솔직한 말로 JH 자동차에 화해의 손길을 건네야 되지 않을지…….”
“이런 X발 그걸 말이라고 해?! 사과도 아니고 화해하자고 하면, 걔들이 좋다고 알겠다는 대답을 줄 것 같아? 그 머리는 장식이야?!”
“…….”
JH 그룹이 멍청이도 아니고, 이때까지 싸우다 상황이 불리하니까 화해하자는 말을 건네면,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올까?
비싼 돈을 주고 옆자리를 내어 준 비서라는 놈이 저딴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그룹은 어떻게 되는 거야?”
“…대책안을 모색해야 됩니다. 지금 시장은 대부분이 전기차로 넘어가는 분위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배터리가 발명됐으니…….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차로 넘어갈 게 틀림없습니다.”
“X발……. 수소 자동차는 어떻게 돼가고 있어?”
“솔직한 말씀을 드리자면, 수소보다는 전기 쪽이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않을까 하는…….”
“이런 X같은… 뭔 놈의 답이 그따위밖에 없는 거야?! 이래도 안 된다 저래도 안 된다, 지금 뭐 하자는 거냐고!!”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이는 김 비서.
뭐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
조금은 화를 가라앉히며 기사를 읽기 시작하자, 마지막에 적힌 한마디가 뼈아프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JH 배터리는 모든 자동차 회사에 문이 열려 있습니다. 단, 대현 자동차는 제외하고 말이죠.]
“…….”
도저히 지금 상황으로는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야 될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