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 * *
대현 그룹이 반박 기사를 내기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났다. 역시나 이번에 있는 그룹끼리 경쟁이 대중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였나 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방송에서 그룹끼리의 경쟁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 김지섭 교수님께서는 이번에 있는 두 그룹의 경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일단, 저는 박제환 작가님의 팬이라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대한민국에서 박제환 작가님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대현 그룹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 마땅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 대현 그룹이 낸 반박 기사에 저도 공감이 갔거든요. 제가 박제환 작가님을 참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JH 자동차에서 성과를 낸 적도 없거니와, 실질적인 결과물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대현 그룹의 의견이 더 맞다고 생각하나 보다.
이해가 간다. 실제로 아직까지는 티슬라와 지분 교환 말고는 어떠한 결과물이 없었으니.
‘아직까지’는 말이다.
- 제가 생각하기에는 JH 자동차가 기술적인 경쟁보다는 언론에 대한 경쟁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확실히 이게 맞는 방법이긴 합니다. 아무리 JH 그룹이 뛰어나다고 해도 대현 그룹의 유구한 역사를 한 번에 쫓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요.
- 하지만 기존의 자동차 회사를 인수했잖아요.
- 그 회사도 대현 그룹과의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걸 기억해야 됩니다. JH 그룹의 가장 큰 무기는 언론입니다. 박제환 작가님의 인기는 그 정도로 엄청나죠. 그걸 이용해서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게 아닌가 싶네요.
- 기술보다는 인기를 이용한다는 얘긴가요……?
- 그렇죠. 더군다나 이번 기사로 인해 동성 그룹. 즉, JH 자동차는 피해자라는 인식을 받게 됐습니다. 당연히 대중들은 가해자 위치에 있는 대현 그룹보다 JH 그룹 편에 설 확률이 높고요.
-그렇게 듣고 보니, 박제환 작가님이 굉장히 똑똑한 것 같네요……. 어떤 결과물 없이 몇 개의 기사로 인해 무형적 가치를 얻어내고…….
- 맞습니다. 그가 똑똑하다에는 어떠한 이견을 달 생각이 없습니다. 단, 길게 봐서는 국민들도 대현 그룹에 편에 서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장, 대현 그룹에 주가가 떨어지면, 누군가의 가족들은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습니까.
방송을 보고 있자니, 전문가라는 사람이 대현 그룹의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 그렇지만 티슬라와 지분 교환과 함께, 연구 결과도 나누기로 했잖아요.
- 그 티슬라도 한국에서의 결과물은 처참합니다. 당장 배터리 문제도 개선해야 되고, 인공 지능 부분도 많이 손 봐야 되죠.
- 그걸 개선하면 어떻게 될까요?
- 개선한다면… 어쩌면 대현 그룹이 아니라, 삼오 그룹을 넘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단, 개선한다면 말입니다. 그게 쉬웠다면 모두가 회장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참, 이런 걸 보면 박제환 작가가 머리를…….
뚝―
방송을 보던 나는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곧장 TV를 꺼버렸다.
저런 사람이 전문가라니…….
자신이 그렇게 똑똑하다고 인정한 나라는 사람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런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나 보다.
아마 오늘 저 방송 이후로 대중들의 반응은 또 한 번 바뀔 거다. 어느 편에 서야 될지 갈팡질팡하던 이들에게는 방금의 방송이 의견을 결정하게 해주는 큰 계기가 될 테니.
‘그럼 나도 의견을 정하는 데 도와줘야지.’
반대로 나도 도우면 된다.
당신들은 그냥 나만 믿으면 된다고.
대현 그룹이 없어지고 사라지는 일거리는 내가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겠다.
“어떻게… 형찬 씨는 미국에 잘 도착했다고 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아까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군요. 좋은 소식을 들고 말이죠.”
“좋은 소식은 이미 기정사실 아니겠습니까. 그저 통보하러 가는 거나 다름없죠.”
“이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1차전은 저희의 판정승이 되겠군요.”
“아마, 지금 떨어지고 있는 동성 그룹의 주가도 회복을 넘어 상한가를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현 그룹은 더 한 하한가를 치고 말이죠.”
하루빨리 대현 그룹의 주가가 다시 한번 땅끝으로 떨어지는 그 광경을 보길 기대하며, 느긋하게 결과물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 * *
오늘 미팅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이민호 사장.
“민호 씨, 이렇게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걸까요?”
“형찬 씨……. 너무 앞서 나가는 결과물은 때론 모든 이에게 배척되곤 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지금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나는 일론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속이는 게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나 보다.
형찬 씨가 연구해서 만들어낸 최종적인 결과물은 1,00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용량.
하지만 결과물을 있는 그대로 밝힐 수는 없었다.
당장 지금 협상하러 가는 600킬로미터의 용량만 하더라도, 많은 이해관계를 설득해야 되는 과정이 남아 있었다.
이런 마당에 본래 연구 결과를 가져가면 어떻게 될까? 단언컨대, 여기저기서 형찬 씨를 납치하기 위해 수작을 부릴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이번 일로 회장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사실 이번 결과 하나로 대현 자동차를 뛰어넘을 성과가 아닙니까.”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사실 이번에 추가해서 받기로 한 JH 자동차 10퍼센트 지분도 과한 건 아닌가 싶네요.”
“물론 다른 회사였다면, 그 정도로 주지 않을 겁니다. 몇백억은 고사하고 몇십억을 줄 확률이 높죠.”
“역시 그렇죠? 이번에 배터리 용량 증가까지 기사가 나면 주가가 훨씬 오를 텐데.”
“최소 시총 50조는 넘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15퍼센트면… 와……. 단숨에 조 단위의 부자가 됐네요.”
“그럴 만한 성과를 냈으니까, 부담은 안 느끼셔도 됩니다.”
형찬 씨와 이번 성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약속된 장소 앞에 도착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들어가죠.”
미팅 자리로 향하기 전.
오늘 있을 협상은 편하게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협상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것 같다. 우리가 연구해 낸 결과물을 티슬라에게 좀 나눠 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 대신 미국의 힘을 좀 빌릴 수 있겠지.’
에너지 시장에서 성과는 반대급부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결과물로 들어올 압박을 이제 커가고 있는 JH 그룹으로만 막을 수 없었기에 티슬라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티슬라는 미국과 협상을 하겠지…….’
온전히 우리의 결과물임에도 양보해야 되는 지분이 아깝게 느껴지긴 했지만, 욕심을 부리다 모든 걸 잃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회장님의 결정도 이해가 갔다.
‘표정이 궁금하네…….’
이 결과물을 보고 일론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불려 온 그가 결과물을 보고 놀랄 표정을 생각하니, 앞에 있을 미팅이 재밌을 것 같아, 형찬 씨의 뒤를 따라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 * *
일론을 발견한 이민호 사장.
“오랜만에 뵙니다, 미스터 킴, 미스터 리.”
“반가워요, 일론.”
“오랜만이에요, 일론!”
오랜만에 본 우리가 일론은 반가워서일까? 가볍게 포옹하며,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 역시 이번의 만남이 반갑게 느껴졌기에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근데, 이번 만남에 대해 제대로 들은 게 없어서 그런데 혹시 무슨 성과라도 있는 겁니까?”
아직 형찬 씨의 연구 결과를 일론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런 우리가 만남을 청한 게 궁금하게 느껴져서인지, 일론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사실, 여기 있는 킴이 또 한 번의 성과를 낸 게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정형화를 연구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하지만 파급력이 너무나 큰 연구라 티슬라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더군요.”
“…이번에는 어떤 말도 안 되는 결과이길래…….”
“에너지 산업에 전반적으로 충격을 가져다줄 겁니다.”
“…미쳤군요. 자동차에 관한 거라면 가리지 않고, 결과물을 내는군요…….”
일론도 이번에 만들어 낸 결과물에 파급력을 지레짐작해서일까?
반가워만 하던 표정이 짐짓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결과물부터 들어 볼 수 있겠어요? 마음 같아선 어떻게 연구를 시작했고, 어떤 과정으로 진행됐는지 하나하나 다 듣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군요.”
“배려 감사합니다. 이번에 킴이 시내 연비로 완전한 충전을 할 시 600킬로미터 이동할 수 있는 배터리를 연구했습니다.”
“…이곳에 왔다는 건 성공을 했다는 말이겠군요…….”
“그렇습니다.”
“…….”
연구 결과를 들은 일론은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하며, 많은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JH 자동차가 단독으로 연구한 걸 저에게 가져왔다는 건 도움과 동시에 저희에게도 결과물을 나눠주겠다는 겁니까?”
“정확합니다. 저희와 같이 합작 회사를 세우기로 하죠. 이름은 JH 배터리로 말이죠.”
“합작이라……. 지분은 어느 정도 주실 생각입니까.”
“50억 달러에 15퍼센트를 줄 수 있어요.”
“…돈을 열 배로 줄 테니, 지분을 더 주라고 한다면 당연히 안 되겠죠?”
“일론도 아시지 않습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란 걸.”
“그렇죠. 50억 달러는 선물에 불과하겠죠. 제가 할 역할은 주변에서 들어오는 압박을 막는 거겠고요.”
“역시 말이 잘 통해서 좋군요.”
JH 배터리 지분 15퍼센트에 5조 원.
일론 말대로 5조 원은 선물밖에 되지 않는 돈이다. 그만큼 JH 배터리의 가치가 높다는 얘기고.
“15퍼센트면 명분은 서지만, 확실하게 막아내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나머지 5퍼센트는 미국 정부에게 20억 달러에 넘길 생각입니다. 이 부분은 일론이 나서줘야겠고요.”
“애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온 거군요.”
“아무래도 저희 회장님이 먹잇감을 발견한 것 같아서요. 시간을 들인다면 더 한 이득을 챙길 수 있겠지만, 한국 재벌 특성상 얕보이면 곤란하거든요.”
“대현 자동차에 대해서 말하는가 보군요. 한국에서 대현 그룹이 저희 티슬라에 대해서 언급할 때마다 같잖게 느껴지더군요. 곧 있으면 상황이 바뀔 것도 모르고, 하룻강아지가 자신이 범인지 알고 짖고 있는 그 꼬라지가 말이에요.”
“저희 회장님도 그런 모습이 기꺼웠는지, 이번에 전쟁을 하려고 하더군요.”
“뭐… 제가 미국은 확실히 설득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 압박들도 티슬라에서 최선을 다해서 막아내도록 하죠. JH 자동차는 즐기도록 하시죠. 성과를 사방에 알리며 대현 자동차 따위는 상대가 아니란 걸 알리도록 하세요.”
역시 일론과는 말이 잘 통하는 것 같다.
방금 대화를 살펴보면, 일론도 그간 대현 그룹이 JH 자동차를 거론하면서 동시에 티슬라를 들먹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외적인 것은 자신이 책임질 테니, 실컷 두드려 패라는 말을 전한다.
‘회장님이 좋아하시겠군.’
이번 소식은 회장님이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한 나는 일론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해해 줘서 고맙군요, 일론.”
“노노.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티슬라를 대표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제가 JH 그룹과 손을 잡은 건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아닌가 싶군요.”
“그럼 비즈니스 대화는 이쯤으로 하도록 하죠.”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그렇지 않아도, 미스터 킴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죽는 줄 알았는데.”
일이 끝났다고 느낀 내가 비즈니스 대화는 그만하자고 말을 전하자, 일론이 반색하며 그러자는 말을 전한다.
그만큼 형찬 씨가 연구해 낸 결과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게 많나 보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나는 회장님에게 보고도 드릴 겸 잠시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진짜 좋아하는군.’
발걸음을 다른 쪽으로 옮기며, 둘이 대화하는 걸 지켜보니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는 둘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