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73화 (73/175)

73화

* * *

이틀 뒤.

처음에는 언론들이 우리가 준 주제를 다루길 꺼리는 분위기를 풍겼다.

이해가 갔다. 그들에게 대현 그룹이 주는 광고가 만만치 않을 테니.

그래서 그들에게 대책안을 줬다. 동성 그룹과 JH 그룹이 빠진 광고만큼 맞춰주겠다고.

이 사실을 들은 언론사들은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제안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 그룹에서 주는 광고와 두 그룹에서 주는 광고는 그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자극적인 소재를 무시하긴 힘들 테지.’

대기업에서 일어난 비리. 그 밑으로 줄줄이 엮인 비자금 조성. 이런 자극적인 주제를 무시할 수 있는 언론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더해서 학교 폭력.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여서일까?

언론에서 대현 그룹에 대해 보도하자마자,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다.

‘아쉽네…….’

그 와중에 아쉬운 건, 대현 그룹이 잘 피해 갔다는 거다.

완전히 피해 간 건 아니지만 그간 대현 그룹이 돈을 뿌린 게 있어서인지, 언론사에서 대현 그룹에 대해서는 메인으로 다루지 않고, 그 밑에 기업들의 비리를 중점으로 다뤘다.

그것만 하더라도 가해자 신분에 있던 보호자들은 징역을 피해 가지 못할 거다.

“회장님, 대현 그룹에서 비상 소집을 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회의 내용까지 파악하기에는 어렵겠죠?”

“아무래도 회의에 들어갈 정도면 상당히 고위급이라 접촉하기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반응을 확인하고 있는 나에게 대현 그룹이 비상 소집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마 똥줄 좀 타고 있을 거다. 그들에게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는 주가가 보일 테니.

과연 어떤 식으로 대응해 올까? 그게 뭐가 됐든, 정면으로 맞받아칠 자신이 있는 나는 그들이 무슨 무기로 꺼내올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슬슬 저희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하죠.”

“예, 회장님. 조금 서둘러서 일을 진행하기로 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힘내 주도록 하세요. 이번 일로 대현 그룹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못하겠지만, 분명 메꾸기 힘든 피해를 줄 수는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 우리가 준비한 공격은 대현 그룹에게 상처는 남길 수 있을 거다. 물론 그 상처가 대현 그룹을 한 번에 죽일 정도로 깊은 상처는 아니다.

단, 무시하기만은 어려운, 무시한다면 계속해서 피가 흐르는 그런 상처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 공격은 마무리가 아닌, 시작을 알리는 포성.

전생의 악연을 다시금 시작하려고 하니, 긴장되는 마음과 기대되는 마음이 동시에 들기 시작했다.

* * *

대현 그룹 회의실에 앉아 있는 정민우.

‘젠장…….’

짜증이 난다. 나중을 위해 따로 뒷주머니를 찬 게 이렇게 크게 돌아올 줄이야…….

아니……. 이게 다 그년 때문이었다.

동생이라는 년이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말썽을 부려 이런 사태를 만들다니.

이틀간 동생에게 화풀이했지만, 아직까지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감히 동성 그룹 주제에 대현 그룹에게 덤벼?’

이번 기사는 우리 그룹을 향한 전쟁 선포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재벌들이라면 누구라도 뒷주머니를 차는 건 당연했다. 그걸 건드려서 기사화하고, 전 국민이게 알린다?

적당하게 경쟁하고자 하는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고 봐야 했다.

“다들 모였어?”

“예, 회장님.”

“그럼 회의를 시작하지. 자네들도 오늘 올라온 기사를 확인했겠지? 지금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벌써부터 대주주들에게 연락이 오고 있다고.”

“이번 사태는 JH 그룹과 대현 그룹이 저희에게 전쟁 선포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회장님.”

“누가 그걸 몰라?! 왜 이딴 빌미를 주냐 이거야!! JH 그룹이 이빨을 들이민 걸 진작 알았으면 조심해야 했을 거 아니야!!”

“…….”

회의실에 울려 퍼지는 할아버지의 호통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누구 하나 나설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정민우 상무.”

“예, 회장님…….”

“책임져야지.”

“…….”

“도를 넘었어. 네가 한 실수는 뒷주머니를 찼다는 게 아니야. 그걸 누군가에게 걸렸고, 대중들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이야.”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당분간은 대현 건설에서 반성 좀 하고 있어.”

“…….”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내 탓이 아닌, 동생 탓이라고 변명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에서 한마디라도 내뱉었다가는 더한 호통이 날아올 걸 알고 있었다.

화도 나고, 억울한 감정도 느껴졌지만 되돌릴 수 없는 사실에 일단을 알겠다는 말을 전했다.

어차피 긴 시간은 아닐 거다. 길어야 1년이 최대일 거다. 그 시간만 건설 쪽에 있다가 다시 돌아오면 된다.

안다. 알고 있는데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박제환 그 자식을 찢어발기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우선 정민지 그년부터 제대로 교육해야지.’

이 모든 게 그년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니, 다시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김 이사.”

“예, 회장님.”

“자네 이제 쉴 때 안 됐어? 지금까지 달려왔으면, 한 몫 두둑이 챙기고 뒷선으로 물러날 때 됐잖아.”

“…….”

“자네가 민우 거 챙겨서 1년 정도만 좀 쉬고 있어. 나오면 쓸 만한 계열사 사장 자리 준비해 둘 테니까.”

“…예, 회장님.”

비리에 대한 건 김 이사가 짊어지려나 보다.

김 이사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조건일 거다.

감옥에 간다고 하더라도 다른 죄수들과 차이점도 있을 거고, 그룹에 법조인들이 머지않은 기간에 빼내 줄 테니.

나오면 계열사 사장 자리에도 앉을 수 있겠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이제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다들 어떻게 해야 될지 의견 하나씩 내놓도록 해. 자네부터 말해 보게.”

“예, 회장님. 저는 전면전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요. 세금이나 뒤에서 하는 것들은 이득에 비해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더더욱 대중들에 시선이 집중된 지금 그런 짓을 했다가는 더한 후폭풍이 올 수 있고요.”

“간략하게.”

“지금 JH 자동차의 성과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티슬라와 기술적 제휴. 티슬라가 추구하는 건 전기차와 고인공지능을 탑재한 차입니다. 아직 발전이 미비한 배터리에 대해서 걸고넘어지는 겁니다.”

“더.”

“그리고 우리도 언론에 호소하는 겁니다. 기술적으로 이길 자신이 없는 JH 자동차가 우리를 향해 여론몰이를 한다고. 자신이 있으면 올바른 경쟁으로 보여주라고 말입니다.”

처음부터 결론에 가까운 의견이 나온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세금에 대한 걸 딴지 걸자니, 그 부분은 대현 그룹이 걸리는 게 더 많았고, 뒷공작을 펼치자니 대현 그룹과 JH 그룹에 너무 많은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이럴 때는 우리가 앞서나간 부분을 강조하는 거지.’

말이 좋아 미래 기술이지, 현재는 아무런 기술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거다.

더해서 실질적 성과가 아무것도 없는 JH 자동차.

애초에 이 정도로 과민 반응할 이유조차 없었다.

“이번에 JH 인베스트먼트가 큰 이익을 얻었다던데, 세금 문제는 없는 거야?”

“사실… 그 부분을 건드리면, 오히려 저희가 역풍을 받을 겁니다.”

“다른 사람도 의견을 내보도록.”

첫 의견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만큼 JH 그룹이 보여준 게 없었고, 더러운 일을 하기에는 시선이 너무 많이 쏠려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JH 그룹은 피해자로 각인돼 있다.’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동성 그룹 식구는 대현 그룹의 피해자로 각인이 돼 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일을 진행했다가는 피해자에게 보복한다는 인식이 생겨, 대현 그룹에 더한 피해로 돌아올 게 뻔했다.

“그놈이 JH 자동차에 8조를 투자한다고 하던데, 그건 사실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순차적이라는 말에 집중해야 됩니다. 8조를 투자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실질적으로 아직 부지 선정도 제대로 안 됐습니다.”

“그것도 언론으로 건드리면 되겠군. 아직 말뿐인 그룹이란 건가……. 하… 이딴 그룹이 덤벼든다고 주가에 영향이 가다니……. 대현 그룹도 어지간히 얕보였나 보군.”

“…….”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보낸다.

짜증이 난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는 시선이 틀림없었다.

기필코 내가 회장 자리에 오르는 순간, 여기 있는 모든 인원을 갈아치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동성 그룹하고 연결된 거 다 끊도록 해. 그놈들이 전쟁을 걸어온 마당에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 갈 순 없지.”

“…회장님, 외람된 말이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그룹도 당장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걸 누가 몰라?! 지금 손해를 신경 쓸 시기는 지났어!! 이놈들이 전쟁하자고 말해 오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만큼 다른 그룹도 우리를 얕볼 수밖에 없어. 지금부터 우리 그룹과 동성 그룹은 전쟁이니까 다들 명심해!!”

“예!!”

“예!!”

“회의가 끝나는 대로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들 빠르게 정리해서 언론에 뿌려. 당장에 주가는 내려가겠지만, 결국 JH 자동차라는 경쟁 업체가 사라지면 회복할 수밖에 없을 거야. 이번 일을 처리하면서 확실히 해. 덤비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가 되도록.”

마지막 말을 마친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회의장을 먼저 나가버린다.

머리가 바삐 회전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아버지 눈에 다시 들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젠장…….’

뭐라도 해야 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무력감이 피어오른다.

“쯧쯧… 있는 자식들이라고 이 모양이라니…….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대현 건설에서 머리 좀 식히고 있어.”

“아버지…….”

“그리고 상대를 보는 눈을 길러. 지금 회장님께서 회의를 진행했다는 것만으로 박제환이라는 아이를 인정한 거야. 당장 네 나이대 어떤 아이가 덤빈다고, 우리가 다 회의장에 모일 것 같아? 앞으로는 인정하는 것도 기르도록 해.”

“…….”

나에게 한마디 말을 던지고는 나가는 아버지.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X발…….’

이건 절대 내 탓이 아니다.

분명 노력했고, 끊으려고 발악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들면, 당연히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어딨지…….’

한번 대중들에게 들켜서 끊어버린 약.

오늘은 맨정신으로 하루를 보낼 수 없음을 느낀 나는 따로 숨겨둔 약을 빨기 위해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 * *

다음 날.

‘대현 그룹이란 건가?’

기사를 확인하니, 하루 만에 여론이 반반으로 갈리기 시작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는 대현 그룹이 보복을 시작했다는 의견을 말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JH 그룹이 실적이 없으니 언론 플레이로 대현 그룹과 경쟁을 한다는 의견을 말해 온다.

‘정민우는 또 피해 갔군…….’

예상은 했지만, 매번 법의 망을 피해 가는 정민우를 보니 대한민국에서 재벌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대한민국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만연해 있는 것 같았다.

“석준 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일주일 안에 생산 공장 부지 선정에 대해 발표하겠다고 합니다.”

“다행히 시기가 맞아떨어졌군요.”

“사실, 대현 그룹이 공격해 올 만한 게 딱히 없는 만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에 시기를 맞출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슬슬 JH 자동차도 움직이도록 하죠.”

“예, 회장님.”

언론 플레이로 공격해 온 대현 자동차. 다행히 JH 자동차의 성공적인 출범을 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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