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 *
교무실로 향하는 박혜지.
‘무섭다…….’
아니, 두렵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제환이 오빠가 옆에서 힘이 되는 말을 해줬기에, 조금 괜찮아진 줄 알았건만 다시 그곳으로 향할 생각을 하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민지를 만난다는 사실도 무서웠지만, 그것보다는 아빠가 나를 바라볼 시선이 두려웠다.
제환이 오빠 말로는 아빠가 분명 나를 걱정하고 있을 거라 했다. 속으로 그럴 거라 몇 번을 되뇌었지만, 혹시라도 나 때문에 학교를 오게 해서 실망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괜찮아, 혜지야. 너 잘못한 거 없어. 걱정할 필요도 없고.”
“응…….”
내가 겁먹은 게 티가 났을까? 아니면 손을 맞잡고 있는 제환이 오빠에게 떨림이 전달되어서일까? 제환이 오빠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전해 왔다.
그래도 내 옆에 제환이 오빠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만약 제환이 오빠 없이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나도 모르게 도망가버릴 것만 같았다.
“…….”
마음을 진정시키고 발걸음을 옮기자 어느새 눈앞에 교무실이 보였다.
이곳의 문을 여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볼 거다. 그중에는 민지도 있을 거고, 민지와 같이 나를 괴롭히던 얘들도 있을 거다.
그리고… 그리고 아빠와 엄마도 저 안에 있을 거다.
이곳으로 오면서 마음이 진정된 줄 알았건만, 문 앞에 서니 더욱더 긴장되기 시작했다.
꿀꺽―
마음을 다잡자고 생각한 나는 침을 한번 삼킨 채, 직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분명 마음을 다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또 겁이 나기 시작할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차마 앞에 있을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할 것만 같아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모르겠다…….
용기를 내서 문을 열긴 했지만, 혹시나 나를 향한 부모님의 눈빛이 실망으로 가득해 있지 않을까 겁이 난다.
‘무서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에게 여러 명의 시선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여러 명의 사람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
그런 나를 보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게 들린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누굴까…….
선생님? 아니면 민지? 그것도 아니면… 부모님?
겁이 남과 동시에 누군가 하는 궁금증이 들어 살짝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니 어느새 내 앞에 도착해 있는 아빠가 보였다.
‘실망을 드려선 안 돼…….’
이미 늦었을 수 있지만, 지금에서라도 실망을 드려선 안 된다.
최대한 눈에 힘을 꽉 주고는 눈물이 흐르지 않게 괜찮다는 말을 속으로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부모님.
이내 손을 뻗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를 안아준다.
이렇게 아빠의 품에 안긴 게 얼마 만일까…….
혹시나 나약한 내가 들킬까 봐 그동안 피해만 다녔는데, 오랜만에 느껴지는 아빠의 품이 반갑게 느껴졌다.
꽈악―
아빠도 오랜만이어서일까?
힘 조절을 잘 못 하는 것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 세게 느껴지는 아빠의 포옹.
그럼에도 아프기보다는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빠에게 사과부터 전해야 될 것 같았다.
지금도 바쁘게 일하고 있을 텐데, 괜히 나 때문에 학교에 오게 됐으니.
“아빠, 죄…….”
“미안하다……. 혜지야…….”
“…….”
“그동안 너무 고생했겠구나……. 아빠가 미안해…….”
“아빠…….”
“그리고 사랑한다…….”
뚝― 뚝―
지금 흐르고 있는 건 내 눈물일까, 아니면 아빠의 눈물일까?
나를 안고 흐느끼고 있는 아빠.
나도 모르게 그간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 *
교무실에 도착하고 30분 후.
교무실에 처음 도착하고 나서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소란은 마무리됐고, 각 보호자들과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 자식이 올 줄은 몰랐군.’
민지라는 아이의 보호자로 끽해야 비서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호자라고 온 사람을 보니 정민우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마 내가 있단 소식을 듣고 의식해서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 그럼 이야기를 좀 나누도록 하죠. 도대체 왜!! 바쁜 사람들을 학교에 오라 가라 했고, 무슨 자신감으로 우리를 이곳에 불렀는지.”
가해자들의 보호자를 대표해서 발언하는 정민우.
나이가 가장 어림에도 불구하고, 저 무리를 대표하는 듯했다.
‘작은아버지가 주도해야 된다.’
이 대화에 내가 먼저 끼어들었다가는 작은아버지의 입장은 곤란해지게 된다.
어디까지나 내가 나설 수 있는 건 작은아버지가 허락하거나, 작은아버지의 대화가 끝나고 난 그 이후.
그때가 내가 낄 수 있는 시기였다.
“제 딸이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그쪽에 있는 전부가 가해자 신분이고요. 여러분들이 이곳에 온 이유 중에 이것 이상의 필요가 있겠습니까?”
“말조심하시죠.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에 가해자니 어쩌니 하는 게 불편하군요.”
“확정이라……. 이런 상황에서도 증거를 찾는 걸 보니, 아주 썩은 사회를 보는 듯한 기분이군요.”
“거, 연장자라고 대우해 줄 때 말 좀 똑바로 합시다.”
“증거를 그렇게 좋아하니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오자마자 제 조카가 증거를 챙길 수 있어서.”
“…….”
증거를 챙겼다는 말과 함께 내가 처음 받아놨던 반성문을 꺼내자, 민우가 당황해하는 게 보였다.
이 상황이 발생할까 봐 혹시나 해서 곧바로 챙겼는데, 나 역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내용을 읽어보니, 애들 간의 다툼이 있었나 보군요. 좋게 사과드리고 없던 일로 합시다. 피차 소란이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을 텐데.”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죠? 누구 맘대로 좋게 끝낸다, 어쩐다고 하는 겁니까!!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가해자가 그딴 식으로 말해도 됩니까?!”
“듣자 듣자 하니 웃기네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요? 뭐… 법대로 하겠다는 겁니까? 감당할 수 있겠어요?”
“감당이라……. 자식이 폭력을 당했는데, 감당 못 하겠다고 물러설 생각 없습니다.”
“저기요. 말 좀 가려가면서 해요. 그 동성 그룹의 집안 유전잔가? 왜 이렇게 나이를 먹으나 안 먹으나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거야? 방금 한 말 그쪽 입장입니까? 아니면, 동성 그룹의 입장입니까.”
“…….”
“하기야… 동성 무역도 아니고, 고작 동성 건설 사장님에게 묻는 것도 조금 그렇긴 하네요.”
작은아버지가 잠시 고민했다는 걸 느꼈을까?
기세를 가져갔다고 생각한 정민우가 더욱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런 민우를 노려보던 작은아버지가 주먹을 꽉 쥐고는 몸을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마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동성 그룹에 피해가 올까 봐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나 보다.
“동성 그룹이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장담하죠. 여기 있던 모든 이가 제가 눈 감을 때까지 편히 살지 못할 겁니다.”
“참 나……. 저기요. 그 뚫린 입이라고 막 뱉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동성 그룹 입장이냐고요, 아니면 그쪽 혼자 생각이냐고요.”
“참 싸가지가 없는 게 대현 그룹 유전자인가? 가족끼리 쌍으로 지X을 하네. 참으려고 했더니 말할 때마다 풍겨 오는 악취에 짜증이 나서 가만히 못 있겠다.”
참으려고 했다. 그래도 작은아버지가 해결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서.
작은아버지의 마지막 발언으로 할 수 있는 말은 다 한 거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내가 나서야 될 차례.
그렇지 않아도, 한마디 한마디가 들려올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참기 힘들었는데, 적당한 타이밍인 것 같았다.
“뭐, 뭐야?!”
“귀가 막힌 거냐? 한 명은 약쟁이에 한 명은 학교 폭력 가해자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뉴스 아니냐?”
“…뒷감당할 수 있겠냐?”
“감당은 무슨. 야, 네 집안 단속이나 잘해라. 오늘부터 JH 그룹과 대현 그룹은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생각 없으니까.”
“네가 아주 기고만장하는구나……. 만년 적자인 티슬라와 손을 잡았다고 뭐라도 된 것 같아? 네가 벌었다던 16조? 그 정도야 그룹 차원에 나서면 아무것도 아니야.”
“너희는 그걸 1년 안에 할 수 있고?”
“…….”
내가 하는 말에 뭐라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 정민우가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기 시작했다.
“거기 있는 모든 분들. 저 역시 약속드리겠습니다. 앞으로 편하게 살 생각 접으세요. 그리고 학교 폭력은 공론화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방송에 나와 달라는 방송국이 많았는데, 겸사겸사 진행하면 될 것 같네요.”
“작, 작가님!!”
“에잉, 쯧……. 어린놈이 대현 그룹의 무서움도 모르고 말을 함부로 하는고만.”
“16조를 자신의 실력으로 벌었다고 착각하는 건가?”
“티슬라가 미국에서나 인정받지, 한국엔 들어오지도 못할 텐데…….”
내가 복수의 말을 내뱉자, 여기저기서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한둘씩 해오기 시작했다.
저들은 모를 거다.
이미 대현 그룹과의 전쟁 준비를 마쳤다는 걸.
아마 상황에 따라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아 참!! 그리고 여러분들 뒷주머니 두둑하던데요? 조금 조심 좀 하지 그랬어요.”
“…….”
“이번에 JH 그룹 비서실장님이 새로 왔는데, 한번 인사나 하실래요?”
옆에서 모자를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비서실장님.
내 말을 듣고는 모자를 벗고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입니다, 상무님.”
“너, 너는…….”
“참, 뒷주머니가 어찌나 많던지, 그렇게 칠칠치 못하고 다니면 어떻게 하냐. 일단 처음 선물은 그걸로 하지.”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그걸 터뜨린 순간, 대현 그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말 못 들었냐?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생각 없다고. X신아, 전쟁하자는 얘기야.”
“…….”
전쟁이라는 말을 내뱉자 같은 곳에 있던 모두가 벙찌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내 옆에 있는 작은아버지도 놀란 말을 들었다는 듯이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쪽에 있던 분들도 같은 주머니를 찬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이참에 일 좀 쉬시면서 얘들 정신교육 좀 다시 시키도록 하세요. 물론 다시 사회에 나올 생각하지 마시고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막을 테니.”
“…….”
“그럼 다음에 만나도록 하죠. 누가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만날지 모르겠지만, 한쪽은 울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 장소도 철창이 가로막고 있을 거고.”
마지막 말을 내뱉은 나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혜지를 데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학교도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을 거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인기를 끌고 있는 나다. 그런 나의 친척 동생이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모두의 시선이 이곳으로 향할 테니.
“비서실장님.”
“예, 회장님.”
“그거 잘 엮어서 터뜨리도록 하세요. 정민우 자식은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감옥에 넣도록 하세요.”
“예, 회장님. 아마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배터리 용량 증가 건. 그것도 티슬라와 빠르게 이야기해서 합작 회사 설립 진행을 서두르라는 말을 전해 주세요. 그게 확정되는 순간, 대중들에게 알릴 겁니다. 저희 그룹과 대현 그룹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예, 회장님.”
아무래도 세 번째 작은 잠시 뒤로 미뤄 놔야 될 것 같다.
도저히 대현 그룹에게 한 방을 먹이지 않고서는 편한 마음으로 집필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제환아……. 괜찮겠느냐?”
“걱정하지 마세요, 작은아버지. 어차피 해야 될 일, 그 시기가 좀 더 가까워졌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것보다는 혜지에게 관심을 주도록 하세요.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위한다지만, 그걸 자식이 모르면 무슨 소용입니까. 조금은 표현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이번 일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일을 잠시 멈추고 혜지와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대현 그룹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아마 동성 그룹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앞으로 있을 전쟁.
대현 그룹은 JH 그룹을 상대하는 것만으로 벅참을 느낄 게 틀림없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마지막에 누가 웃을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다는 그 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