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71화 (71/175)

71화

* * *

혜지가 있는 교실의 문을 연 박제환.

예상은 하고 있었다. 혜지가 괴롭힘당하고 있다는 걸 보고받았기에 알고 있었다.

지금 시간도 마찬가지. 점심시간이 가장 많은 괴롭힘을 받는 시간인 것도 알고 있었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 있었지만, 직접 내 두 눈으로 이 광경을 보니 시간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장도 마찬가지.

모든 게 얼어붙은 듯한 기분이 든다.

“혜지야, 일어나.”

내가 본 혜지의 모습은 무릎을 꿇고 어딘가로 기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

사람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이성이 마비되고 주변 상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줄 알았다.

이곳에 올 때 마비된 이성으로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걱정도 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이렇게 화가 난 적이 없어서인가?

처음 겪는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생기면 머리가 식는다는 걸.

지금 나의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 오빠…….”

“뭐 하고 있어. 우리 혜지처럼 예쁜 아이는 그런 표정 어울리지 않아.”

“…….”

나를 발견한 혜지의 표정.

어딘가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혜지같이 예쁜 아이에게는 저런 표정이 어울리지 않았다.

전생에서부터 누군가 피해를 주길 극도로 싫어하던 혜지. 누가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어째서 전생의 혜지가 병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했는지.

이런 경험을 갖고 있으니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거다. 아무렇지 않은 행동들이 남에게 얼마나 상처로 다가오는지.

“우리 혜지, 오늘은 학교 쉬자. 아니다. 한 달 동안 여행도 다니면서 좀 쉬는 걸로 하자.”

“그치만…….”

지금 공부가 문제가 아니다.

학교는 더더욱.

어떻게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게 먼저.

아무리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예쁜 혜지에게 저런 표정은 어울리지 않는다 말이다.

“저… 작가님.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혹시 입 좀 다물어 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지금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를 것 같네요.”

“…….”

뒤따라온 담임이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려고 하는지 말을 걸어왔다.

너무 역겨웠다. 알고 있는데도 대현 그룹이 무서워 방치하고 있었다는 게.

복수하는 거는 가해자와 똑같은 사람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X까.’

똑같은 사람이 돼도 상관없다.

이대로 학교 측의 처벌에 맡기기에는 이 분노가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혜지를 괴롭히던 이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되돌려주기로 다짐하며, 주변에 있던 아이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눈에 담기 시작했다.

‘저 자식이 민우의 동생이라 이거지…….’

이걸로 대현 그룹과의 전쟁은 시작이다.

조금도 뒤로 무를 생각이 없다. 앞으로 한국에서는 대현이라는 글자를 달고 사업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만들 생각이다.

“당장 관련 있는 얘들 보호자 다 부르도록 하세요.”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저기요. 그 혜지 친척 오빠시죠? 요즘 사람들에게 관심받는다고 뭐라도 된 것처럼 하는데, 괜찮겠어요? 저 대현 그룹의 정민지예요.”

“…….”

“지금이라도 상황 파악하셨으면 그냥 돌아가도록 해요. 괜히 일 크게 만들어서 저희 부모님까지 알게 되면, 동성 그룹이랑 JH 그룹 한국에서 사업 못 합니다.”

“야.”

“왜요?”

“그 주둥이 좀 다 물자. 네가 어리다고 봐주는 것도 슬슬 한계치를 넘으려 하니까.”

“…….”

자신이 대현 그룹 3세라는 사실을 밝히면, 내가 겁먹을 줄 알았나 보다.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 나오니,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애초에 나는 대현 그룹과 공존할 생각이 없었다.

기존에도 전쟁하려고 했지만, 다시 한번 나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

절대 멈출 수 없는 싸움이라고.

“안녕하십니까. 서울중학교의 백승철 교장이라고 합니다. 혹시 저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떠신지……. 작가님도 아시겠지만, 평범한 아이들이…….”

“좀 다물고 형식적이나마 일 처리를 하면 안 되겠습니까? 도대체 어디까지 절 실망시킬 생각입니까.”

“그게 무슨!!”

“잘 들어요. 지금 당장 얘들 보호자 부르고. 반성문이랑 증거 다 확보한 상태니까 발뺌할 생각하지 마시고 일 처리하도록 하세요. 저는 혜지 데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테니까, 다들 모이면 그때 오도록 하죠.”

“…….”

“보호자에는 혜지 부모님도 예외 없습니다.”

계속해서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려는 학교에 짜증이 난 나는 관련 있는 사람들의 보호자를 부르라고 말은 전했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 혜지에게 안심을 주는 게 먼저였다.

이런 쓰레기 같은 소굴에 혜지가 더 있다가는 더 한 상처를 받을 수 있었기에 어떻게 할 줄 몰라 하는 혜지를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 * *

“좀 괜찮아진 것 같아?”

“…….”

학교 뒤 편에 있는 잔디밭.

아무도 없는 곳을 찾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됐다.

잔디밭에 도착한 나는 혜지와 함께 그곳에 앉았고, 침울해 있는 혜지에게 괜찮냐는 말을 전했다.

“오빠는 나 안 싫어?”

“…….”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의 상처가 큰 것 같다.

보통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은 그 상처가 자신으로 인해 생겼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마음의 화살이 자신에게로 향하게 되고, 무슨 일이 생기든 자신의 탓으로 돌려 버린다.

지금 혜지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이 못났기에 발생했다고 생각하나 보다.

“우리 혜지가 왜 싫겠어? 오빠한테는 귀여운 동생이기만 한데.”

“하지만… 다른 재벌가 사람처럼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혜지가 이상한 말을 하네? 우리 혜지가 어때서. 당장 다른 얘들을 봐봐. 오늘 거기에 있는 얘들이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해, 아니면 말썽을 안 부리기라도 해. 이렇게 건강하게만 자라주는 것만으로 우리 혜지는 잘하는 거지.”

“…….”

내 말을 듣고 자신의 두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 혜지.

안타깝다.

지금이야 내가 조기에 발견했기에 안 좋은 선택을 피할 수 있었다.

전생에서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그렇게 완벽해 보이던 혜지의 모습이 상처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생에서 내가 원하지 않던 경영을 이어 가며, 동성 그룹을 지키려고 했던 것.

다 가족들을 위해서였다.

그런 내가 조금은 먼 가족이라고 챙기지 못한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져 왔다.

“혜지, 오빠랑 약속 하나 할까?”

“약속……?”

“응. 우리 혜지, 지금 일어난 일들이 혜지 때문이라고 탓하지 않기로.”

“…학교 반 친구들도 모두 얘들 편을 들었는걸?”

“그건 얘들이 나쁜 거지, 우리 혜지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혜지를 못 믿겠다면 오빠를 믿어.”

“…그럼 선생님들은 왜 재들 편든 거야? 다들 나보고 말썽 좀 그만 부리래…….”

“그 선생들도 나쁜 거야. 아무리 혜지가 오빠 동생이어도 나쁜 짓을 했다면, 바른 아이가 되도록 바로잡아 줬을 거야. 하지만 이번 일은 우리 혜지 잘못 하나도 없어. 다른 사람들이 나쁜 거고, 이렇게 만든 사회가 나쁜 거야.”

“…….”

안타깝다.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할 선생이란 작자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잘나가는 그룹 자제들의 편을 들어주다니.

그것도 옳고 그름 따윈 전혀 상관하지 않고, 피해자보고 말썽부리지 말라고 말하는 이 상황이 너무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사회를 바꾸자고 노력할 생각은 없었다.

단, 우리 가족만큼은 이런 불합리함을 겪지 않게 만들 생각이다. 더 높은 그룹의 자제들을 위해 사회가 움직인다면, 내 가족들을 더 높은 그룹의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다.

‘제물은 대현 그룹이 좋겠어.’

그 발판은 대현 그룹이 만들어 줄 거다.

대한민국에서 재계 순위 2위인 대현 그룹.

그런 그룹과 전쟁에서 이기고 나면, 그 자리는 우리 그룹이 갖게 되는 거다.

“오빠…….”

“응? 할 말 있어?”

“…….”

혜지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까?

나를 부르고는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편하게 말해도 돼. 무슨 말을 하든 오빠는 혜지 편이니까.”

“…부모님한테는 말 안 하면 안 돼……?”

“…왜 그렇게 생각했어?”

“이런 나를 보고 실망하면 어떻게 해…….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는데, 안 좋은 일로 학교 오게 하고……. 분명 실망하실 거야.”

역시 지금 사회는 착한 사람은 살아남기 힘든 구조인가 보다.

이렇게 남을 생각하는 혜지가 큰 상처를 받게 된다니…….

분명 자신도 견디기 힘들 건데, 그 와중에 부모님 생각까지 하며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

아마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도 방금과 같은 이유도 있을 것이며, 자신으로 인해 대현 그룹에 피해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오빠가 장담할게.”

“뭐를……?”

“혜지가 무슨 일이 있어도, 혜지 부모님은 너의 편일 거라고.”

“하지만…….”

“그게 가족이고, 그게 부모야.”

“…….”

“만약 이걸 혜지 탓을 한다면, 작은아버지는 부모의 자격이 없는 거야. 내가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부모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위로의 말을 건넴에도 쉽게 안심하지 못하는 혜지.

참…….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게 또다시 화가 날 것만 같았다.

지금은 내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혜지가 우선이었기에 최대한 혜지를 위로하며, 말없이 혜지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 * *

딸이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단 소식을 듣고, 학교로 향하는 박제현.

“여보……. 연락이 온 게 사실일까요?”

“…제환이도 있다고 하니까 사실일 확률이 높지.”

딸이 다니는 학교를 향해 달리는 차 안.

처음 학교에서 온 연락을 받았을 때 눈앞이 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 혜지. 처음 어렵사리 딸을 얻게 됐을 때, 그때의 감정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아내가 출산하고 있을 때, 들리던 비명, 그걸 밖에서 듣고 있던 나. 아내에게 힘이 돼줄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답답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처음 본 나의 딸 혜지. 마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게 아닌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저 어린아이의 웃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아부…….”

처음으로 아부라는 단어를 내뱉었을 때.

그때도 잊지 못하겠다.

늘 표정이 없던 나조차 그때만큼은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가장 처음 내뱉은 단어가 아부라니…….

그때부터였나 보다. 욕심이 많지 않던 나에게 재산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게.

재벌에게 있어 재산은 늘 다툼의 시작점이었다.

형님들과 누님. 절대 다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재산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딸이 나에게 웃음을 지어주는 그 날 처음으로 재산에 욕심이 생겼었다.

‘하나라도 더 물려주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처음 딸에게 아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부터 형님과 큰형님의 뒤를 열심히 쫓으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부족하지 않던 재산이 더욱더 늘어나 만족스러운 숫자로 변하기 시작했다.

통장에 모이는 돈을 보면서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이 많아졌다 생각했고, 더욱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그게 독이었나…….’

딸을 위한다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됐나 보다. 잘 지내고 있는 줄만 알았던 딸의 학교에서 온 연락.

내 딸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란다.

그것도 제환이가 먼저 가서 뒤집어 놨기에, 연락이 온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빠로서 실격이나 다름없었다.

딸을 위해 일을 열심히 했다는 건 변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선 안 됐다…….

딸이 어떤 일을 겪고 있고, 어떤 학교생활을 보내는지 아는 게 먼저였다.

“여보, 우리 혜지 별일 없겠죠?”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 오늘 일 지나면, 여보는 혜지에게 집중하도록 해. 사모님들 그만 만나고.”

“미안해요……. 혜지를 위한다는 말은 변명이겠죠…….”

“딸의 상처는 그 어떠한 변명으로도 피해 갈 수 없어. 지금부터라도 잘하도록 하자고…….”

“그래요…….”

“이 비서, 좀 더 속도를 내도록 하지.”

“예, 사장님.”

딸이 있는 학교로 달리는 차.

분명 평소보다 빠른 속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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