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70화 (70/175)

70화

* * *

혜지의 학교로 향하는 차 안.

“일단 가해자들의 신상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노로 인해 제대로 운전을 못 할 것 같은 나를 대신해 운전석에 앉은 비서실장님.

내가 조금은 이성을 찾았다고 생각했는지, 가해자들의 기본적인 신상을 말해 오기 시작했다.

일단 이름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다. 얘들이 누구고, 어떤 사람인지.

비서실장님도 큰 뜻을 두고 이름을 말하는 건 아닐 거다.

이름을 다 말한 비서실장님이 각자 이름에 맞춰 어떤 그룹의 자제인지 말하기 시작한다.

가만히 앉아서 비서실장님이 말하는 그룹들을 생각하니, 한 가지 결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전부 다 대현 그룹과 관련된 그룹이군요.”

“그렇습니다. 대현 그룹의 계열사 고위직 자식들이거나,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자제가 대부분입니다.”

“한마디로 민지라는 아이 중심으로 뭉쳤다는 얘기고요?”

“아마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부모님에게 교육받았을 겁니다. 민지라는 아이와 친하게 지내야 된다고. 그런 게 영향이 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원래 재벌가 자식들은 집안의 힘이 곧 자신의 힘으로 변했다.

혜지 나이 때의 자제 중 가장 힘이 센 아이는 민지라는 아이일 거다.

삼오 그룹의 자제는 나이가 겹치지도 않거니와 같은 곳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쉽지 않았을 거고.

‘진짜 악연인가?’

대현 그룹을 생각하니, 이런 게 악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생부터 계속해서 이어져 온 악연.

하필 내 친척 동생에게도 그 끈이 이어졌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짜증이 밀려오는 듯했다.

우리 그룹이 좀 더 잘나갔으면 지금처럼 쉽게 대하지는 못했을 거다.

나야 들이박을 용기가 있었고, 공부나 다른 면에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였기에 민우 자식이 쉽게 상대할 수는 없었던 거였다.

하지만 민지의 부모님. 즉, 작은아버지가 이끄는 회사는 동성 그룹 중에서 힘이 약한 곳이었다.

민지라는 아이는 그걸 잘 알고 있는 아이이고, 혜지를 건드려도 별 피해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지금처럼 괴롭힘을 지속해온 거일 테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조치는요?”

“일방적인 방법으로는 학교에서 징계를 내리도록 조치를 취하는 겁니다. 전학을 보내든가 말이죠. 하지만 대현 그룹의 힘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겁니다.”

“비서실장님이 생각하는 방법은요.”

“대현 그룹과 전쟁을 하는 겁니다.”

“지금도 전쟁을 하는 게 아니던가요?”

“지금은 폭풍이 몰아오기 전 고요함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계기로 회장님이 그 시작을 알리는 걸 말하는 겁니다.”

시작이라…….

이미 나는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다.

더 이상 같은 하늘 아래, 대현 그룹과 좋은 경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둘 중의 한 곳은 무조건 사라지게 되는… 그런 전쟁을 할 생각이었다.

“방법은요?”

“마침 제가 퇴사하기 전에 준비한 무기가 있습니다. 대현 그룹 정민우 상무의 비자금에 관한 것이죠. 이걸 잘만 이용하면 이번에 친척 동생분을 괴롭힌 가해자들의 그룹도 엮을 수 있을 겁니다.”

“…잘도 그런 걸 챙길 수 있었군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정민우 상무가 흘리는 것이 많았고, 비자금을 만드는 일이 잦다 보니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JH 그룹처럼 대현 그룹과 진정한 전쟁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면, 영영 꺼낼 생각이 없는 무기였고요.”

“이 은혜는 보답하도록 하죠.”

“아닙니다. 저 역시 정민우 상무한테 당한 게 많거든요.”

비서실장님과 어떻게 일을 진행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혜지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도착했다.

“이곳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학교에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동성 그룹 자제분의 보호자입니다.”

“혹시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뒤에 계시는 분이 동성 그룹의 박제환 작가님이십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경비원분도 내 얼굴을 알아서일까? 팬이라는 말과 함께,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혹시나 작은아버지께 연락이 가기라도 했다면, 많은 설명과 함께 시간이 지체될 걸 알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주차하고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친척 동생분은 2학년 3반입니다.”

“주차하고 곧바로 교무실에서 보는 걸로 하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혜지가 있는 곳으로 곧바로 향하면, 일이 어정쩡하게 흘러갈 수 있었기에 나는 곧바로 교무실에 오라는 말을 건넨 채,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교무실이 적혀 있는 곳 앞에 서 있는 박제환.

‘여긴가?’

내 얼굴이 대중들에게도 알려져서일까?

교무실로 향하는 도중에 나를 발견한 여러 학생이 수군거리는 게 느껴졌다.

벌써부터 시끄럽게 만들기 싫은 나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며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무실로 보이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드르륵―

교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누가 들어온 건지 확인하는 여러 선생님이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이내 누군가 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발견한 사람들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여기 2학년 3반 담임분이 누구시죠?”

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이 분위기조차 화가 난 나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담임이 어딨냐는 질문을 던졌다.

“접니다만…….”

“반갑습니다. 혜지 친척 오빠 박제환이라고 합니다.”

“…….”

조심스럽게 손을 든 남성에게 혜지를 거론하며, 내 이름을 전하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찔리는 게 있을 거다. 비서실장님의 보고 속에는 이 남성도 알면서 쉬쉬하고 넘어갔다는 말이 있었다.

“제가 왜 왔는지는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어떤 이유로 오신 건지…….”

“모르신다니,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저는 돌아가서 지금 있던 일들을 공론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때마침 미국에서 제 작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겁니다. 그럼.”

눈동자를 굴리며 고민하더니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미는 혜지의 담임선생님.

길게 이야기하기도 싫고, 증명하기도 싫었기에 공론화시키겠다는 말을 건네고, 곧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잠, 잠시만요!!”

“뭐죠? 아는 게 없다 해서, 뉴스를 통해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잡는 이유가 뭡니까?”

“알고 있습니다!! 혜지가 좋지 않은 일을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죠. 좋지 않은 일이 뭐죠?”

“…따돌림입니다.”

일단 증거 확보. 학생들이 따돌림을 시켰다는 증거와 이를 담임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방금 발언으로 인해 공론화가 되었다.

“얘들이 따돌렸다는 증거는요?”

“몇 번 저한테 걸렸고, 반성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반성문을 보여주시죠.”

“…….”

반성문을 보여달라는 말에 고민하는 담임.

이내 마음을 먹었는지, 발걸음을 옮겨 종이 몇 장을 가져왔다.

‘형식적이군…….’

반성문에는 별다른 말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고, 그에 따라 약간의 괴롭힘을 했다.

한마디로 형식적인 반성문이라는 얘기다.

‘이것만 해도 괜찮다.’

일단 이것만으로 괜찮다. 나중에 자신들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는 발뺌을 방지할 수 있었으니.

“제가 혜지 좀 만나러 가도 되겠습니까?”

“그건 좀……. 제가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비서실장님의 보고에 따르면, 혜지의 괴롭힘은 모든 시간에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점심시간이 끝나갈 즘.

모두가 반에 있을 시간이었기에 혜지가 괴롭힘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다.

아직까지도 분노로 인해 이성이 마비됐긴 했지만,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끌고 가기 위해 집중하며 생각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같이 가실 겁니까?”

“…같이 가겠습니다.”

같이 가겠냐는 질문에 눈을 질끈 감고 대답하는 담임.

아마 알고 있을 거다.

지금 시간에도 혜지가 괴롭힘당하고 있다는 걸.

* * *

교실에 있는 박혜지.

“야, 똑바로 꿇고 있어. 너 때문에 요즘 집안 분위기 짜증 나니까. 오빠 놈은 왜 나한테 화풀이하고 지X이야.”

“…….”

“이게 다 너희 친척 오빠 때문 아니야. 되지도 않는 게 어떻게든 관심 좀 받겠다고, 경쟁한다고 하지 않나. 말도 안 되는 걸로 티슬라를 들먹이진 않나.”

“미안…….”

“닥X. 내가 네 대답 들으려고 말했냐? 무릎이나 똑바로 꿇고, 반성문이나 작성해.”

뭐라고 적어야 될까?

친척 오빠가 대현 그룹에게 경쟁한다는 말을 꺼내서 미안하다고?

그런 오빠를 말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모르겠다.

뭐라고 적어야 민지의 화가 풀릴지 모르겠다.

‘괴롭다…….’

아무리 괜찮다고 되뇌려고 해도 괴롭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민지 뿐만이 아니다.

민지와 같이 나를 둘러싸서 지켜보고 있는 얘들. 그런 애들을 말릴 생각하지 않고, 이제는 적응됐다는 듯 나를 구경하는 반 친구들.

아니, 구경을 넘어서 가끔씩 웃음을 짓는 아이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소름 끼치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로 내가 잘못한 것만 같아서.

만약 민지가 잘못된 거였다면 반 친구들이 저런 태도를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원인은 나한테 있는 게 맞았나 보다.

“야! 빨리 안 적어!?”

“으, 응.”

10분만 버티며, 이 지옥 같은 시간도 잠시 피할 수 있었다.

10분 뒤면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

최대한 그때까지 뭐라도 지어서 적어야겠다.

‘제환이 오빠가 동성 그룹인데 감히 대현…….’

민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반성문을 적기 시작한 지금, 차라리 맞았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평소처럼 더러운 물건을 나에게 던졌으면 좋겠다.

내가 조금 편해지고자 가족의 이름을 거론하고, 대현 그룹을 찬양하는 글을 적는 건 온전한 정신으로 견디기가 힘들었다.

정신이 고통스럽다는 걸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 이년 일부러 시간 뻐기는 거 봐라. 야, 너 미쳤냐?”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민지가 쓰고 있는 반성문을 빼앗아 가며, 이때까지 적었던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제환이 오빠가 동성 그룹인데… 풉… 야, 너는 자존심도 없냐? 네가 그나마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준 동성 그룹을 뭐 이따위로 표현했냐?”

“…….”

“민지야, 대박!! 얘 진짜 미쳤나 봐!! 이거 찍어서 SNS에 올릴까?”

“으……. 나라면 차라리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겠다. 이게 뭐냐…….”

반성문을 읽고, 나를 벌레 보듯이 쳐다보는 얘들.

괜찮다. 저런 시선 이제는 익숙했다.

여기서 반발이라도 했다가는 더한 괴롭힘으로 돌아올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뭐 나쁘진 않네. 어차피 점심시간도 끝나가니까 반성문은 이걸로 하고 마지막 미션을 줄게.”

“마지막 미션……?”

“일어서지 말고 기어서 네 자리까지 이동해. 그러면 반성문은 그만 적게 해줄게.”

“…….”

“싫어? 반성문 더 적을래?”

반성문을 적으며 우리 가족들을 깎아내릴 바엔 차라리 기어가는 게 나은 것 같다.

어차피 평소에 하던 일에서 조금 더 괴로울 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야, 뭐 해. 고맙단 말은 하고 기어가야지.”

“…….”

“기본 아니야?”

“고마워…….”

고맙단 말을 입 안에 담는 게 고통스러웠지만, 선생님이 볼 때 자리에 기어가는 건 더더욱 싫었기에 애써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기어갈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자, 출발!”

그런 나에게 출발하라는 민지.

평소 하는 짓인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하기 싫은지 모르겠다.

‘곧 선생님이 온다…….’

선생님이 이 광경을 보는 건 더욱 싫었기에 애써 마음을 다잡고 이동하려는데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 게 느껴졌다.

드르륵― 탁―

“혜지야, 일어나.”

“…….”

무릎 꿇고 있는 나에게 일어나라고 말하는 제환이 오빠.

이 모습을 보여줬다는 치욕감과 함께,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모습을 발견했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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