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 *
보고를 받고 있는 김수현 비서실장.
“그러니까……. 지금 회장님 동생분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거야?”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처음 둥지를 옮기고 가장 먼저 조사했던 일. 회장님이 특별히 부탁하셨던 동생분의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이번에 일이 첫 출발을 알리는 만큼, 최선을 다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사를 맡긴 팀원에게 보고를 들으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경우엔 회장님과 정민우 상무의 좋지 않은 관계가 영향이 갔다고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당연히 정민우 상무의 성격상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있는 동생에게 화풀이했을 테고, 그 화를 풀 방법을 찾던 정민우 상무의 동생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회장님의 친척 동생분에게 시선이 보냈을 거다.
‘근데 수위가 강하단 말이지…….’
차라리 직접적인 괴롭힘이나 폭력만 있었다면 더 나았을 것 같았다.
외면적인 상처보다 가장 치료가 어렵고 발견하기 어려운 게 내면의 상처.
즉, 남들이 보는 것보다 마음고생이 훨씬 심했을 거란 얘기다.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것과 더불어 정신적 고통도 선사한다.
은밀하게 따돌리고, 세상에 혼자 남겨져 있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결국에는 피해자 스스로 잘못이 있나 생각이 들게까지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 문제가 보통이 아닌 건 알고 있을 거야. 회장님 작은아버지께선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조사하고, 가해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그룹의 자식인지,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지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해.”
“합법적으로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합법의 정의는 남들과 달라. 불법을 저질러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 그게 합법이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조사해. 기간은 이틀이다.”
“그렇게 되면 활동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시간 아끼겠다고 회장님 친척 동생분 마음 상처가 커지면 어떤 말을 들을 것 같아. 활동비 한도는 무제한.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우리가 처음으로 보고를 하는 건데, 그게 안 좋은 소식이다. 그렇다면 최대한의 조사로 회장님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로 보답할 수밖에 없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가 봐.”
팀원이 나에게 건네준 보고서를 보니, JH 그룹과 대현 그룹은 절대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 정도면 전생부터 이어져 온 악연이 아닐까 싶을 정도.
대현 그룹과 관계가 있는 족족 악연으로 이어져 있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재벌 특성상 이득으로 인해, 회장님과 대현 그룹이 화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이 정도면 확신할 수 있다. 그 어떠한 이해관계가 있어도 둘은 화해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면 될 것 같다. 대현 그룹과의 이해득실을 생각하지 않고, 확실하게 망가뜨리기 위해.
‘챙기길 잘했군.’
혹시 몰라서 대현 그룹을 나올 때, 공격할 무기 몇 개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때 챙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다른 곳으로 갔다면 절대 사용할 수 없는 평생의 비밀로만 간직했어야 될 무기였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대현 그룹의 위치는 막강하니까.
하지만 대현 그룹과 전쟁을 결정한 지금은 그 어떠한 이해득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됐기에, 이 무기를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회장님의 분노가 보통이 아니겠군.’
분명 나에게 지시를 하실 때, 말하는 억양에서 혹시나 하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혹시나 자신의 친척 동생이 안 좋은 상황에 있지는 아닐까 하는 감정이 말이다.
혹시나가 진실이 된 지금, 회장님의 분노가 클 거라고 생각하며, 이번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박혜지.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지?’
매번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마다 드는 의문.
왜 이렇게 나는 멍청한가이다.
나도 다른 친척들처럼 똑똑했으면 부모님들에 자랑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멍청하기만 할까?
내가 잘나갔다면 얘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무시는 안 당하지 않았을까?
아니……. 선생님이 나에게 좀 더 관심을 주지는 않았을까?
부족하기만 한 나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기만 했다.
‘2년만 버티면 돼…….’
2년만 버티면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다.
분명 고등학교는 민지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다.
부모님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시험을 일부러 못 봐서라도 다른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노력할 거다.
2년을 생각하기만 해도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괜찮다.
버틸 만했다.
하지만 그 기간이 5년으로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모두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에서 홀로 버텨야 하는 그곳.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그곳에서 말이다.
‘아빠랑 엄마도 이런 나를 미워할까?’
매번 부모님에게 상담해 볼까 하면 드는 생각.
이런 나를 부모님이라도 혐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학교에 있는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걸 보면, 나에게 큰 문제가 있는 거다.
이런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한다면 부모님조차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까 너무 두려웠다.
얘들은 괜찮았다. 2년만 버티면 안 봐도 될 사이니.
선생님도 괜찮았다. 1년만 버티면 안 봐도 되니까.
하지만…….
하지만 평생을 봐야 할 부모님이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지금이 그나마 괜찮았다.
나 혼자만 버티면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을 이 상황이.
부모님에게 실망 어린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
괜히 힘든 티를 내서 부모님이 질문을 해오는 상황조차 만들고 싶지 않았다.
‘푸르다…….’
책상 옆으로 보이는 바깥.
창문을 향해 하늘을 바라보니, 푸르다는 느낌이 든다.
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나도 저 하늘을 날아다니면, 자유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 혹시 나만 사라지면 모든 게 나아지지 않을까?
부모님도 사실은 나를 싫어하고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얘들이 나를 싫어하는 걸 생각하니 나만 사라지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눈 딱 한 번만 감는다면…….’
눈 딱 한 번 감고 저곳에서 뛰어내리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 좀 더 아프면 괜찮다.
분명 잠시 더 아플 뿐이지, 지금처럼 나아지지 않은 현실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
오늘도 평소와 같이 뛰어내릴 용기조차 가지지 못한 나는 책에 시선을 돌렸다.
나는 이런 아이다.
뛰어내릴 용기조차 없는 아이.
이런 아이에게는 고통을 벗어날 용기조차 없는 거다.
흔히 말하는 쓸모없는 아이.
누구라도 괜찮으니 이런 지옥 같은 상황에서 나를 구해 줬으면 좋겠다.
그게, 더 큰 고통이라도 말이다.
‘아니야, 나는 괜찮잖아!!’
탁탁―
이런 생각을 했다가는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칠 수 있었기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나는 두 뺨을 두드리고는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내가 갖고 있는 감정과 완전히 상반되는 생각을 각인시킨 채,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분명 공부에 집중해서, 성인이 된 다음 모두가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 된다면 그때는 달라진 시선으로 나를 대하지 않을까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되새김하며, 오늘도 유일한 희망인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뚝뚝―
‘뭐지…?’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데, 나에게서 떨어지는 눈물에 책이 젖기 시작한다.
분명 나는 괜찮은데, 왜 이렇게 매일 눈물이 나는 걸까?
역시 내가 이상한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괜찮은 게 아닌 건가?
오늘도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에 내가 이상한 거라고 판단을 내린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김수현 비서실장에게 보고받는 박제환.
처음 비서실장님에게 지시를 내린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것 같다.
원래라면 한 달 정도 뒤에 받아야 될 보고.
급하게 보고드려야겠다는 말을 듣고는 무슨 일인가 하고 회사로 나왔다.
근데…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니까… 혜지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거 봐라. 비서실장님이 이해가 가질 않는 말을 해 온다. 누가 봐도 귀엽게 생기고, 실제로도 귀여운 혜지가 왜 남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냐는 말이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다.
학생 때는 이유 없이 사람이 싫을 수도 있고, 그게 곧 괴롭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일 수는 있다
근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저랑 관계가 좋지 않은 정민우 때문이 가장 크다 이겁니까?”
“…가장 크기보단 그게 시발점이 된 것 같습니다.”
“…….”
혹시 전생에도 이런 이유 때문에 혜지가 크게 다쳤던 걸까?
실수가 아닌, 버티기 힘들어서 베란다에서 떨어진 걸까?
그걸 나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는?
알고도 대현 그룹에게 대항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 보고를 받으면 많은 의문이 풀려야 되는 게 정상이건만, 갈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꽈악―
콰직―
“회, 회장님…….”
나도 모르게 감정 조절이 안 됐나 보다.
살짝 주먹에 힘이 들어가니, 그대로 부서져 버리는 볼펜.
원래 나에게 친척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이렇게 이성이 마비되어서 아무런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아니면, 나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는 사실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단 사실을 알게 된 이 상황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공감이 커져서인 건가?
머릿속에서 해답은 떠오르지 않고, 계속해서 의문만이 떠올랐다.
지금 감정으로는 어떠한 해답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해답이라면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당장 혜지가 있는 학교로 향해서 이 의문을 풀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도저히 지금 느껴지는 분노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연락은 나중이다.’
지금 작은아버지에게 연락한다면 실수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생활하고 있기에 혜지가 이런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눈치조차 못 챘는지.
어째서 전생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도 대현 그룹에게 대항하지 않았는지.
많은 의문과 함께 분노가 끓어 올랐고, 지금 작은아버지에게 연락하는 순간, 의도치 않은 말을 할 것 같은 나는 이번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 당장 차를 준비시켜 주세요. 제가 운전을 했다가는 실수를 저지를 것 같군요.”
“…곧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보고할 내용은 이게 끝입니까?”
“아닙니다. 가해자들이 어떠한 일을 저질렀는지, 어느 그룹의 자제인지, 어떻게 해야 그들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지 조사를 마친 상태입니다.”
“가면서 듣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여기서 보고를 듣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 시간 동안 혜지는 자신을 자책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다.
더 빨리 이 사실을 깨우치지 못한 나에게 분노가 일어남과 지금이라도 알게 됐다는 사실에 안도가 동시에 느껴졌다.
“후…….”
언제나와 같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최대한 가라앉힌 채, 숨을 깊게 내뱉고는 비서실장님이 준비한 차를 타고 혜지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