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68화 (68/175)

68화

“일단 우리 그룹이 원하는 방향부터 말씀드리도록 하죠. 이게 비서실장님에게 반가운 소식일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그룹 뜻은 확고합니다.”

“…….”

별다른 말 없이, 곧바로 비서실장님이란 호칭으로 불렀기 때문일까,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의 말을 기다리는 게 보였다.

“아직 비서실장님은 모르겠지만, JH 그룹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김형찬 씨가 기어 자동차에서 사내 정치를 당해 쫓겨나서 저희 그룹에 합류한 겁니다.”

“기어 자동차면…….”

“대현 그룹의 계열사라고 할 수 있죠.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저 역시 비서실장님에게 골프채를 든 정민우 상무와 악연으로 이어진 사입니다.”

“…….”

“저희 그룹은 대현 그룹과 치킨 게임을 할 겁니다. 모든 걸 빼앗거나, 모든 걸 잃거나. 둘 중의 하나만이 있을 겁니다.”

내가 전생을 겪으면서 생각했던 목표이다.

대현 그룹과의 전쟁.

둘 중의 하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이어 나갈 생각이다.

아직까지도 전생에 날 공격한 대현 그룹을 생각하면, 짜증이 일어난다.

그런 대현 그룹과 상생할 마음은 없었기에, 전생이 복수를 지금에서야나마 시작할 생각이다.

더군다나 앞에 있는 비서실장님도 민우와 개인적인 악연이 있는 사람.

우리 그룹의 머리를 맡을 사람이 나와 은원 관계 역시 일치하니,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는 회장님이 웃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니죠. 제가 아니라 우립니다. 같이 싸운 모두가 웃을 수 있게 저 역시 노력하겠습니다.”

“정민우 상무에게 복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까 생각했는데, 새 직장을 구하자마자 곧바로 칼을 빼 들 수 있어서 너무 만족스러운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은 이릅니다. 저희가 제대로 칼을 빼든 건, 2018년이 될 겁니다. 그전에는 준비를 해야죠. 저도, JH 자동차도 말이죠.”

“저 역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서실장님에게 말했던 대로 아직까지는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대현 그룹의 전체라고 할 수 있는 대현 자동차와 경쟁을 하기 위해선, 우리에게도 자동차 모델이 나와야 했다.

지금 기존에 있던 공장들도 인수하고, 새로운 공장도 신설하고 있지만 아무리 급하게 움직여도 최소 2018년은 넘어야 첫 모델의 실물을 볼 수 있을 거다.

‘그때부터가 진짜 전쟁이다.’

그때는 진짜 대현 그룹과의 전면전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모든 걸 가져 가냐인 치킨 싸움.

나는 그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 연구했던 정형화로 공정 비용을 절감하면서 이익으로 남기는 게 아니라 절감된 돈을 다시 한번 투자한다.

그렇게 되면 동급의 차보다 한층 더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다.

거기에 한 번 더 대현 자동차에게 한 방을 먹일 무기.

배터리 용량의 증가.

형찬 씨 말 대로라면, 한 번의 충전으로 1,000킬로미터를 탈 수 있는 배터리를 발명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은 좀 더 손 볼 것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할뿐더러 1,000킬로미터까지 늘이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전했다.

‘티슬라와 합작으로 배터리 회사를 만든다.’

이 배터리 회사는 대현 그룹을 제외한 자동차 회사에 개선된 배터리를 제공할 생각이다.

거기서 제외된 대현 자동차는 어떻게 될까?

과연 다른 배터리 업체들이, 이미 앞서나간 우리를 보고 나서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

모든 것들을 종합하고 나니, 대현 그룹과의 치킨 게임에서 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이번 일에 집중하자.’

아직은 대현 그룹과의 경쟁이 시간이 남은 만큼, 다른 일부터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JH 자동차가 성과가 나오기 전에 비서실장님께서는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어떤 걸 하면 되겠습니까.”

“저희 그룹 계열사 들이 쓸 사옥 세 곳을 매입해 주도록 하세요.”

“곧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혜지라는 제 친척 동생이 있습니다. 혜지 주변 상황이 어떤지, 교우 관계는 어떤지 제대로 조사해서 보고해 주세요.”

“그다음은 어떤 걸 하면 되겠습니까.”

“이것들을 마무리했다면, 제가 연락하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해 주시고, 경호 업체도 계약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남은 시간은 JH 그룹의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도록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이 하기에는 많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앞의 비서실장님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전담한 비서들을 대표하는 사람. 다른 비서분들을 이용하면 충분히 짧은 기간 안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이었기에 믿고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새로 관계를 맺은 만큼, 다시 한번 약속드리죠. 비서실장님의 아이가 자랐을 때, 비서실장님은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어 있을 겁니다. 자신에게도 떳떳한 아버지가 말이죠.”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군요. 그 전에 떳떳하기 위해선 제 치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현 그룹이 사라져야 되고요.”

“그렇게 될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를 마친 우리는 똑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서로의 눈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분명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곳이 황무지는 아닐 거다. 그곳이 내가 생각하는 목표와 맞아떨어지길 믿어 의심치 않은 나는 비서실장님과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 * *

오늘도 힘없이 중학교로 향하는 박혜지.

“하… 가기 싫다…….”

늘 가는 학교이지만 오늘은 더더욱 가기 싫었다.

예전에는 그나마… 그나마 버텨볼 만이라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친척 오빠가 유명해지고, 대현 그룹과 경쟁이라는 단어를 생방송에서 꺼낸 이후로 그때부터는 예전보다 더한 괴롭힘으로 이어지게 됐다.

‘그냥 도망갈까?’

명절이 끝나고, 오랜만에 학교에 가는 이런 날이면 눈 딱 감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만일 뿐.

실천할 수 있는 용기 따위는 없었다.

퍽―

“아 씨……. 아침부터 학교 가는 길을 막고 난리야…….”

“…….”

“눈에 좀 안 띄면 안 되냐? 그럼 서로가 편하잖아. 너도 안 맞아도 되고, 나도 너를 보고 기분이 상하지도 않고.”

“미안…….”

학교를 등교하고 있을 때, 뒤에서 튀어나와 어깨를 치는 여자.

나를 괴롭히는 무리 중의 한 명이었다.

저런 얘들이 열 명 정도가 되니, 도저히 학교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예전에는 무시만 했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건드리지는 않았는데…….

상황이 안 좋은 쪽으로 변한 게 친척 오빠 때문이어서일까?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괜히 오빠가 미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야, 민지가 가지고 오란 건 챙겼지? 너 만약에 까먹고 안 가져왔다고 하면, 오늘 각오해라. 너한테 어울리는 선물을 줄 테니까.”

“아니야……. 챙겼어…….”

“에효… 얘가 목소리에 힘아리가 없니.”

탁―

목소리에 힘아리가 없다며 머리를 때리고, 학교로 향하는 여자.

아프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이제는 떨어질 자존심도 없다.

아까는 친척 오빠 때문이라고 했지만, 이 모든 게 내가 못났기 때문이다.

그냥 처음부터 민지한테 잘 보였으면, 이러지도 않았을 텐데…….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민지한테 반항했다가 이 꼴이 된 건지…….

중학교를 입학했던 그 날로 돌아간다면, 민지가 내미는 담배도 받았을 것이며, 절대 대드는 말은 하지 않았을 거다.

‘아빠한테 말 할까?’

아니다…….

아빠한테 말한다고 뭔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민지의 아버지는 대현 자동차의 사장.

동성 그룹에서도 변변찮은 계열사 사장인 우리 아빠가 해결해 주지 못할 거다.

‘할아버지는…….’

솔직히 무섭다.

할아버지에게 말을 한다면, 뭐라도 바뀔 것 같긴 했지만, 그 엄한 할아버지에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말을 전하면, 나에게 쏟아질 그 눈초리가 너무나도 무서울 것 같았다.

그 실망이 나에게만 향한다면 괜찮았다. 분명 내가 적응하지 못한단 걸 알게 되면, 아빠 또한 할아버지에게 질책받을 게 틀림없었다.

‘그럼 제환이 오빠한테…….’

이건 더 아닌 것 같았다.

방금까지 속으로 그렇게 욕했으면서, 갑자기 잘나가기 시작했다고 친한 척하는 게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만약 제환이 오빠가 글을 쓰지 않고, 지금처럼 잘나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황을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잘나간다고 친한 척하기엔 그런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속으로만 삭였다.

이번에 사인받을 때도 솔직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민지가 받아오라고 해서 용기를 낸 거지만, 평소에 아는 척도 안 하다가 조금 잘나가니까 사인해 달라 했던 그때가 너무 부끄러웠다.

“후…….”

어차피 변하지 않을 현실에 상념을 털어내며, 한숨을 쉬고는 거의 다 도착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점심시간.

‘잘 넘겼다…….’

평상시와 다르게 얘들에게 관심을 받지 않고 점심시간까지 잘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라면 쉬는 시간마다 얘들에게 조롱거리가 돼야 할 텐데, 웬일인지는 몰라도 민지가 아직까지 학교에 오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 같았다.

드르륵―

“……!!”

민지가 학교에 오기 전에 다른 곳으로 향하려던 나는 열리는 뒷문에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민지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

어쩌면 두려움이란 감정이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아 씨……. 개빡치네.”

“민지야!! 무슨 일 있어? 오늘 너무 늦게 와서 걱정됐잖아…….”

“하……. 집안 분위기 짜증 나서 좀 걷다가 왔어. 아니, 그놈의 JH 자동차가 뭐라고 나한테까지 뭐라 하는 거야!!”

가방을 내려놓으며 짜증을 내고 있는 민지에게 얘들이 하나둘씩 달려가 왜 늦었는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애들에게 짜증을 내며, 왜 늦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민지.

그 안에서 ‘JH’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또 한 번 심장이 멎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다고 느낀 내가 도망가야 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나를 발견한 민지가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야, 너 내가 가져오란 거 가져왔어?”

“으, 응……. 혹시 몰라서 다섯 장 정도 챙겼어…….”

“가져와 봐.”

친척 오빠의 사인을 가져오라는 민지의 말에 겁먹은 나는 서둘러 가방 속에 있는 종이를 꺼냈고, 곧바로 민지의 앞으로 향했다.

“여기…….”

“이게 그 말 많은 사람의 사인이란 말이지?”

“…….”

내가 건넨 종이를 들고는 이리저리 돌려보는 민지.

“풉!! 이거 뭐냐? 사랑하는 혜지의 친구들에게? 야, 너희 오빠 뭘 모르는 거 아니냐? 너한테 친구가 어딨다고 이런 말을 적고 그러냐?”

“…….”

“야… 내 말이 우스워? 왜 아무 말도 없냐? 이제 너까지 나를 무시하는 거야?”

“아, 아니…….”

찌이익― 찌이익―

내가 말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는지, 제환이 오빠가 사인해 준 종이를 한 장 한 장 찢으며 다가오는 민지.

괜찮다…….

어차피 늘 맞던 거 오늘은 강도가 조금 세질 뿐이다.

나만 참는다면 우리 가족들도 이대로 웃으며 지낼 수 있다.

그래도… 조금은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