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 * *
작품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은 지 3일 정도가 지났다.
마무리에 대한 플롯은 다 짜져서일까, 하루에 집필하는 속도가 평소보다 빨라졌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완결까지 작품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마지막까지 이상한 전개나 개연성이 어긋나는 부분이 없나 확인한 나는 특별히 이상한 부분을 찾지 못했고, 다 쓴 원고를 출판사에 보냄으로써 「회고록」이라는 작품을 내 손에서 떠나보낼 수 있었다.
‘문학이라는 건 대단하군.’
평소에도 문학이 가진 힘에 대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 번째 작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현 대한민국에 대한 실태를 전달할 때, 그때 또 한 번 문학이 가진 힘에 대해서 다시금 대단하단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와 글을 쓰겠다는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개혁을 외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사업가 박제환으로서 수익을 챙기게 되니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한 달 뒤에 집필을 시작하자.’
「회고록」을 완결까지 집필한 나는 언제쯤 세 번째 작을 시작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배우들에 비유하면 될 것 같다. 배우들도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감정을 집중하다 보면, 메소드 연기가 나오고 작품이 끝나고도 그 배역이 되어 일상을 살아간다고 한다.
배역에서 원래 자신으로 돌아가기까지가 적어도 한 달은 걸린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회고록」을 쓰며, 주인공에게 많은 감정을 이입했고, 아직 후유증이 남아 있었기에 세 번째 작은 한 달 뒤부터 집필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 것도 많기도 하고.’
그걸 제외하고서도 한 달 동안 할 게 많이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친척 동생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알아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다음은 JH 그룹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번 살펴봐야 했다.
더해서 형찬 씨가 연구했다는 배터리 용량의 증가. 그걸 어떻게 이용해야 될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했다.
물론 이민호 사장님이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만,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나의 의견도 빠질 수는 없었다.
‘더해서 우리 그룹 회사들의 사옥을 얻어야 된다.’
이제는 엄연히 대기업이라고 불려도 부족하지 않은 우리 그룹 산하의 회사들.
사옥을 구매할 정도의 여력은 되었기에, 사옥을 어떻게 세울지 고민도 해봐야 했다.
‘이참에 나도 이사를 가고 말이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안전도 보장이 안 될뿐더러, 나중에 직원들이 드나들기에 불편하다고 느낄 만한 곳.
애초에 이번 투자를 마치고 나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기에, 이사를 갈 집도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할 게 많네…….’
글을 쓰고 나서, 한 달 동안 해야 할 걸 정리하다 보니 확실히 할 게 많다는 게 느껴졌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시간도 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는 이번 한 달 동안 바쁘게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컴퓨터의 전원을 끈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외출할 준비를 마치고, 집 밖으로 나온 박제환.
일을 처리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비서실장님과 만남을 가지는 것이다.
점점 켜져 가는 그룹에 나 역시 비서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곧바로 최고의 인재로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이민호 사장님에게 건넨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이민호 사장님보다 뛰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사장님의 안목을 믿고 있었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여보세요?”
- 예, 회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혹시 저번에 부탁한 비서분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 연락하면 곧바로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회장님에게 맞춰서 비서 팀을 다 만들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아마 지시만 내려주시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준비를 마쳤을 겁니다.
“그럼 제가 문자를 넣을 테니, 그곳으로 한 시간 뒤에 보는 걸로 하죠.”
-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JH 자동차 때문에 바쁘실 텐데, 이것저것 시키는 게 많은 것 같아 죄송하군요.”
- 제가 하는 것 이상의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전혀 그런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는 새로운 비서분을 통해 사적인 것들을 처리할 테니, JH 자동차에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이때까지는 마땅히 시킬 사람이 없어, 사적인 부탁들도 이민호 사장님에게 연락했던 적이 많았다.
이제는 JH 자동차도 많이 바빠질 시기였기에, 앞으로는 새로운 비서분을 통해 사적인 일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나도 이제는 안전을 챙겨야 된다.’
지금도 할아버지가 지원해 주신 경호원분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을 거다. 하지만 JH 그룹의 규모가 그 이상으로 커진 만큼, 새로운 경호팀도 구해야 했다.
이 모든 걸 내가 하기에는 효율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나를 담당하는 비서 팀을 만들기로 결정한 거다.
한 시간 뒤에 만날 새로운 비서실장.
전생에 나와 함께했던 이민호 사장님 만큼은 아닐지라도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들었다.
한 시간 뒤.
약속 시간에 맞춰 카페에 도착하니, 예약된 자리에 미리 앉아 있는 한 명의 남성이 보였다.
그런 남성의 첫인상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아직 나를 발견하기 전이었기에 많은 걸 살펴볼 수 없었지만, 혼자서 기다리고 있는데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 걸 보면, 비서로서 부족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이번에 비서실장 직함을 갖게 된 김수현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앉도록 하죠.”
장소에 도착한 나를 발견하고,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새로운 비서실장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생에 일면식이 있던 사람인가?’
이번 생에는 글을 쓰는 데 집중했기에 여러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이 든 걸 보면, 전생에서의 인연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혹시 이전에 어디서 근무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공백기가 반년 정도 되고, 그전에는 대현 그룹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
대현 그룹에서 근무했다는 이 남자.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확실한 건 전생에 내가 이 남자를 마주쳤던 건, 대현 그룹과 관련돼 있지 않다는 거다.
만약 대현 그룹에서 있었다면, 필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어야 될 인물이었다.
대현 그룹에 있었다는 걸 듣고서도 확실히 기억나지 않은 건, 내가 이 남자를 만난 건 그 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현 그룹과 저희 그룹의 관계는 알고 계십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대현 그룹과는 경쟁하는 사이 아닙니까.”
“전에 다니던 회사의 눈치가 보이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제가 그만둔 이유를 모르시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혹시 제가 그만둔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제가 평가받는 자리이지만, 저 역시 제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다시 알아볼 생각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일단 첫인상은 합격이다. 자신이 평가받는 자리인 걸 파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다.
이렇게 강단 있는 사람은 두 가지로 나뉜다.
사회성이 부족해 금방 관둘 사람과 이민호 사장님과 같이 끝까지 함께 가는 사람.
되도록 후자에 위치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제가 대현 그룹에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자식 때문입니다.”
“자식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최근에 하늘이 도와줘서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가지게 됐고, 아이가 처음 나와 저를 향해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
“그때 제 감정은 뭐라 할까……. 이 아이의 미소가 평생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후에 아이가 자랐을 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현 그룹의 비서 정도면 부족하지 않은 자리일 텐데…….”
아무리 내가 대현 그룹과 경쟁을 하고 있고, 악연이 이어졌다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됐다.
대현 그룹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가는 그룹.
그런 대현 그룹의 비서에 있을 정도면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정도의 직업은 되는 걸로 알고 있다.
“맞습니다. 그래서 버텨보려고 했고요. 하지만 제가 모시고 있는 상무님이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저에게 쏟아지는 분노와 체벌들이 저를 망설이게 만들더군요.”
“상무라면…….”
“회장님과 아시는 사이일 겁니다. 정민우 상무님이시죠. 정민우 상무님은 자신이 화가 나실 때마다 골프채를 들고는 한 대에 백만 원이라는 돈을 지불하시곤 하셨죠.”
“…….”
“지금이야 괜찮습니다. 버티면 되니까요. 하지만 늙어서 정민우 상무님을 모실 때, 이 버릇이 고쳐질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그런 내가 이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스스로 떳떳하지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만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예전에 일하면서 엮였던 이민호 사장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새로운 둥지를 찾을 생각이 없냐고. 어쨌든 자식은 먹여 살려야 했기에 제안을 받았고, 그 자리가 JH 그룹 회장님의 비서실장이라고 하니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왔습니다.”
이 남자의 얘기를 듣다 보니,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전생에 동성 그룹을 이끌 때조차 약속이 잡기 힘든 사람.
나중에 가서는 대현 그룹 회장의 비서 자리보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
‘삼오 그룹의 킹메이커라고 불리는 사내다.’
전생의 이 남자를 기억하니, 또다시 기분 좋은 나비 효과가 발생한 것 같아 들뜨기 시작했다.
‘대현 그룹의 공격을 막게 도와준 것도 이 때문인가?’
대한민국의 1등 기업인 삼오 그룹.
삼오 그룹의 회장이 별세하면서, 승계 구도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정해지지 않은 후계자 자리에 욕심을 가진 삼오 그룹의 사람들.
사람들은 삼오 그룹 회장 자리에 능력 있는 차남이 앉을 거라고 예상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하지만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던 장남이 말도 안 되는 선전을 하면서 결국 삼오 그룹 회장 자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그때 삼오 그룹 장남의 머리와 손발. 즉, 모든 역할을 대신하던 사람이 내 앞에 있는 이 남자였다.
이제야 대현 그룹이 우리 그룹을 공격해 올 때, 왜 삼오 그룹이 도움을 줬는지 알 것 같았다.
이상하게 호의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대현 그룹과의 악연 때문이었나 보다.
“말하고자 하시는 바가 어떻게 됩니까.”
“단,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시면 회장님을 위해 열심히 일해 보고 싶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나중에……. 저희 아이가 다 자라서 나중에 저를 봤을 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게 도와주십시오. 저 스스로도 떳떳할 수 있는 그런 아버지가 말입니다.”
미래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오 그룹의 실질적 주인을 얻기에 너무나 간단한 약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미래를 직접 겪은 나는 이 남자의 질문에 대답이 정해졌다고 생각한다.
“장담하죠. 아이가 자랐을 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어디 가서 아버지를 자랑하고 다니는 그런 아버지로 만들어 드리죠.”
“…….”
“어떻게 마음은 정하셨습니까?”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회장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다는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새로운 비서실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