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할아버지 집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큰아버지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바쁘게 움직여야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큰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이번에 아버지에게 했던 말 있지 않으냐.”
“정당한 경쟁을 원한다는 얘기 말입니까?”
“그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구나. 사실 제환이 네가 정환이에게 힘이 되는 말을 전했다면, 이런 기회조차 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돕는 게 맞지 않습니까. 사실 큰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가 동성 무역을 양보하라고 했을 때 속이 많이 상했을 거 아닙니까.”
내가 학창 시절 때, 큰아버지 역시 할아버지가 동성 무역을 넘기라고 했을 때 속이 많이 상했을 거다.
장남으로서 자존심도 상했을 거고, 자신의 자식들에 대한 생각으로 답답함도 많이 느꼈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명절이나마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건, 어쩌면 큰아버지의 배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제환이 네 말대로, 그때는 속이 많이 문드러졌었다. 우리 세대는 경쟁할 기회조차 안 주고 제환이 너를 선택한 걸 보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지. 술이 없으면 잠조차 들지 못하는 나날도 있었고.”
“…….”
“하지만 커 가는 너를 바라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겠더구나. 어린 나이에 저런 독기와 능력을 보여주는데 커서는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인정은 했지만, 그때 내 마음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어.”
“이거 의도치 않게 미움을 샀네요.”
“그래, 너라면 인정할 수 있었지. 인정받을 만한 능력이 있었고. 단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언제든 내 능력을 보여준다면 동성 무역을 가지고 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지.”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는 알 것 같다.
그간 큰아버지가 얼마나 큰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는지.
과거 자신의 속마음을 건네는 큰아버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며, 얼마나 힘든 과거였는지 조금이나마 전달이 됐다.
“솔직히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동성 무역에 언제든지 넘어갈 준비도 하고 있었고. 그런 사이에 소식이 들려오더구나. 네가 경영을 포기한 채,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제가 글을 쓴다는 말을 전할 때이군요.”
“아비 된 입장으로써 큰 욕심이 났었다. 나는 동성 에너지만 갖고 있어도 괜찮았다. 그것만 하더라도 어디 가서 재벌이라는 타이틀을 내밀 수 있었으니. 하지만 우리 지우는 경쟁도 못 해보고 장손인 아이가 동성 에너지 사장으로 머물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 들더구나.”
“이해합니다.”
“말이 길었구나.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과거에 대한 생각만 하면 기분이 이상해져서 그런 것 같다. 긴말 안 하마. 경쟁할 기회라도 줘서 고맙구나. 절대 더러운 수작은 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
“지우 녀석도 능력껏 경쟁을 하다, 자신이 지면 큰 미련을 남기지 않을 거야. 다시 한번 고맙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자식을 둔 아버지의 입장이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무뚝뚝한 큰아버지가 이 정도로 고맙다는 말을 계속하는 걸 보니, 자식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고맙다는 말은 괜찮습니다. 사실 이전에 큰아버지가 장남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동성 무역에 남아 계셨다면, 명절에 이렇게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그거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JH 중공업이라면 동성 그룹과 비교해도 아쉽지 않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우리는 두 명이 경쟁하는 걸 옆에서 응원하도록 하죠.”
“그래. 능력 있는 조카를 둬서 큰아버지가 자식을 볼 면목이 생겼구나.”
“그럼 저는 가 봐야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큰아버지.”
“그래, 내가 너무 많은 시간을 잡고 있었군. 어서 가 보거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눈다면, 큰아버지가 조카 이상의 관계로 만들 것만 같아 대화를 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아버지와는 지금의 관계가 딱 적당했다.
고마운 조카로 여겨지는 지금이.
내가 그 이상의 존재로 인식이 박힌다면, 앞으로 관계가 이상해질 걸 알고 있었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대화를 끊은 거다.
‘옆에서 지켜봐야지.’
제발 지금의 마음이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
서로 더러운 수작을 부리지 않고, 가족이라는 범위 안에 있을 수 있도록 말이다.
경쟁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기로 결정한 나는 밖으로 향하는 가족의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설날이 지나가고 다음 날.
오랜만에 일과 집필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서일까? 몸이 개운해진 것 같다고 느낀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슬슬 마무리 짓자.’
「회고록」의 마무리.
갈라치기에 대한 마무리를 짓기로 결정해서일까?
글을 쓰는 속도가 평소의 배 이상으로 늘어나며, 빠른 속도로 완결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글을 쓰는 와중에 주인공과 주변 인물에 감정 이입을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갈라치기가 명사가 되는 과정을 그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나중에 사람들이 심각성을 느껴 돌아보기만을 바라며 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이잉―
글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10화 분량을 남기며 완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간이 아침 10시.
전화 온 핸드폰의 시간을 바라보니 벌써 오후 6시가 돼 있는 게 보였다.
집필을 시작하면,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집중되는 게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 작가님!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오랜만에 가족들을 봐서 그런지, 좋은 명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팀장님은 어떻게 잘 보내셨습니까?”
- 어휴… 말도 마십시오. 작가님 덕분에 승진도 하고, 출판사를 다니면서 역대급의 성과금을 받아서 그런지 명절이 부담되지도 않고, 즐겁기만 하더라니까요?
“다행이네요.”
- 집필은 잘되고 계실까요?
아직 팀장님에게 보낸 원고는 한창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서일까?
완결을 지을 거라는 사실을 모른 팀장님이 집필이 잘되냐는 물음을 건네왔다.
“사실 작품을 슬슬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완결까지 10화 정도만 더 쓰면 될 것 같네요.”
- 네?! 벌써 완결을 지으려고요?
“벌써는 아닐 겁니다. 지금 쌓인 원고가 다섯 권 분량이 넘으니까요.”
- 아니, 그 정도나 쌓았단 말이에요? 와… 이 사실을 독자님들이 알기라도 한다면, 작가님 찾으러 가는 거 아닙니까? 지금도 2화씩 풀고 있는데도 더 달라고 맨날 댓글 달던데.
“과분한 사랑이죠.”
- 이거 제가 좋은 소식을 전하려다가, 오히려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네요.
그렇지 않아도 팀장님이 전화한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고 있었다.
두 번째 작이 완결되고 있다는 걸 모르는 팀장님이 이 시기에 전화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 작품에 대한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려고 연락했나 보다.
“어떤 소식이길래 연락을 주신 거죠?”
- 이거 전화로 소식을 전해 드리는 건 처음 같네요. 이번에 좋은 소식과 함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좋은 소식 먼저 듣도록 하죠.”
- 저희가 만화책을 해외에 유통하지 않았습니까?
“기억납니다.”
- 그게 지금 대박이 났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다른 나라에서까지 연신 완판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요. 오랜 기간을 생각해서 많은 부수를 찍었던 만큼, 여기서 들어오는 수익이 장난 아닐 겁니다.
“수익이라…….”
- 아차, 작가님이 JH 그룹 주인이셨죠. 처음에 그런 것을 모르고, 작가의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생각해서 그런지 깜빡깜빡하네요. 그래도 그만큼 작가님 작품이 잘나가고 있단 소리니, 좋은 소식일 겁니다.
팀장님 말대로 수입적인 면이 좋기보다는 내 작품이 해외에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게 기분을 좋게 만들어줬다.
물론 온전한 내 작품은 아니다. 내 작품을 원작으로 그린 만화일 뿐.
그렇다고 해도 전개와 밑바탕은 내 작품이었기에 뿌듯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제안은 뭐지?’
그와 동시에 뒤에 말할 제안이 뭔가 하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짐작 가는 바가 없어서 드는 궁금증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제안들이 생각나서 그중에 어떤 걸 말하려고 하는 건지 궁금했다.
‘제발 사인만 아니길.’
지금 유명세를 이용해 사인회를 하자는 말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작가로서 독자들을 만나는 게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은 두 번째 작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세 번째 작을 집필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었기에,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 드는 생각이었다.
“확실히 잘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좋긴 합니다. 제안은 어떤 건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 이것과 연결된 제안입니다. 해외에서 만화책이 말도 안 되는 관심을 받으면서, 독자들이 한 가지 요구를 해 오고 있습니다.
“독자들이요……?”
- 작가님 원작을 영어로 번역해서 출간해 주면 안 되냐고 그렇게 원성이 자자합니다.
“…….”
- 저희 출판사 입장에서야 당연히 하고 싶습니다. 수익이 발생하는 건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작가님 의견이 중요해서 혹시나 하고 물어보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은 있으세요?
“저도 손해 보는 것도 없고, 온전한 제 글을 찾는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죠.”
뭔가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만화책이야 인기를 끄는 건 이해가 간다. 내 글이 원작이라고 하지만 만화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그림이 주였으니까.
하지만 온전한 내 글을 요구한다는 말을 들으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글을 번역하고 책으로 나온다 해도, 반응이 싸늘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찾아주는 것만으로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팀장님에게 소식을 들을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드는 것 같아 이제는 전화가 기다려질 것만 같았다.
- 그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반응이 엄청날 겁니다. 제가 아는 작가님의 작품은 최고거든요. 물론 두 번째 작은 한국 정서에 맞아서 해외에 먹히긴 힘들 겁니다. 그래도 첫 번째 작은 대박이 날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에이, 감사하다는 말은 저희가 드려야죠. 작가님 작품 하나가 저희 출판사 전체 이익보다 높은걸요? 심지어 엔터 출판사가 인수하고 나서도 말이죠.
“팀장님이 열심히 움직여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거 아니겠습니까.”
-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니까 괜히 진짜 저 때문인 것 같아 뿌듯하네요. 그럼, 일이 진행되는 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팀장님과 전화를 끊고 나니, 묘한 기분과 함께 다음 작에 주제가 정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해외에 내 작품의 스토리가 먹힌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리고 두 번째 작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번 정권이 친중, 친러인가?’
물론 메시지를 전달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전에 인기가 있어야 가능한 방법이었으니까.
‘무협을 써 보자.’
하지만 최대한의 재미를 넣어서 두 개의 국가를 공략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로부터 무협을 좋아한 한국. 그리고 무협의 본고장인 중국을 말이다.
만약 내가 쓰는 무협이 큰 인기를 끈다면, 나중에 재밌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마무리 짓자.’
세 번째 작 장르를 결정한 나는 빠르게 집필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두 번째 작을 마무리 짓기 위해 다시금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