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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재벌-65화 (65/175)

65화

나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말에 궁금증을 가져서인지, 일제히 시선이 아버지의 입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번 말해 보거라.”

“혹시 정환이가 회사에 입사하는 시기를 1년만 앞당기면 어떨까 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판단을 내린 게냐.”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제환이가 경영권을 포기함으로써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장 동성 무역만 하더라도 갈피를 잡지 못한 직원들이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내 정치에 신경을 더 쓰고 있더군요.”

“그래서?”

“가장 큰 이유가 동성 무역을 누가 이끌 건지에 대해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환이가 1년만 일찍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판단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 말도 일리가 있었다. 원래라면 2년 전에 내가 회사에 들어감으로써 동성 무역을 이끌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을 볼 시기였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한 선택을 하면서 3년이란 공백기가 생겼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큰아버지가 동성 무역에 시선을 두기 시작했다.

당연히 직원들은 확실하지 않은 후계자에 갈피를 못 잡고는 사내 정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대현아,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싶구나. 회사 일이란 것이 그렇게 갑작스러운 결정을 하면 직원들이 많은 혼란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구나.”

“직원들의 혼란이 아닌, 형님의 계획에 혼란이 오는 게 아닙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지금 직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게 무슨 이유겠습니까. 형님이 동성 무역에 시선을 두니까 직원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는 거 아닙니까.”

큰아버지도 머릿속에 있던 계획이 어그러질까 봐 아버지 의견에 반대되는 말을 꺼냈다.

지금 순간에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다음 세대인, 아버지 세대. 당사자인 정환이와 지우 형은 할아버지의 승낙이 있기 전에는 어떠한 의견도 내비칠 수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 규율에는 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 다툼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발언권도 없었거니와 자식인 내가 함부로 끼어들었을 때, 두 분 다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기에 대화를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조용히 못 하겠느냐! 대성이 네 마음도 잘 알겠다만, 대현이가 말을 할 차례이지 않았느냐. 아무리 기분이 나쁜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말할 때는 들어주는 게 경영인의 기본자세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화를 내자 곧바로 사과를 건네는 큰아버지.

확실히 큰 아버지도 경영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의 반발을 함으로써 할아버지에게 생각할 시간을 벌게 해주고, 자신이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단 걸 넌지시 내비친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게, 적절한 시기에 사과를 건네며 대화에서 빠진다.

그동안 큰아버지를 너무 얕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대화였다.

달그락― 달그락―

할아버지도 아버지의 의견에 고민이 되기 시작했나 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찻잔에 수저를 만지시며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일단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결정이 될 것 같구나. 정환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저 역시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제가 3년 정도의 시간을 가졌던 건 형이 자리 잡는 기간이 그 정도는 필요하기에 조금 느슨하게 잡은 경향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변한 만큼, 저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환이 네 말대로 상황이 변한 건 맞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고 갑작스러운 결정은 더 큰 혼란을 가져올 게야. 그 흐름을 가져올 준비는 됐느냐?”

“물론입니다. 형보다는 부족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일단 정환이는 아버지와 이야기가 됐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확고한 대답을 건네기는 힘들었을 테니.

‘지금 들어가면 조금 곤란할 수 있을 텐데…….’

지금 동성 무역은 말 그대로 혼란의 시기. 아버지가 준비하던 제일 날카로운 칼인 이민호 사장님이 빠지면서, 조금은 큰아버지의 흐름으로 바뀌었을 확률이 높았다.

‘사장님이 준비한 카드를 써야겠군.’

마지막에 사장님이 준비했던 카드를 정환이에게 넘기면 얼추 균형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빠져서 생긴 변화인 만큼, 이 정도의 도움은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 역시 네 아비 말 대로 정환이가 동성 무역에 1년 먼저 들어가는 걸 반대하느냐?”

“오늘은 모두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저도 솔직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한번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 보거라.”

“작은아버지 앞에서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동성 무역을 작은아버지가 가져갈 수 있었던 건 제환이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제환이 능력은 인정하고 있었기에 별말은 안 하고 있었고요.”

“…….”

“하지만 앞에 대화처럼 상황이 변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동성 무역을 가져가는 건 장남인 아버지나, 장손인 제가 가져가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정환이에 비해 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겠다.”

지우 형이 민감한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말한 부분은 확실히 경쟁하겠다고 결정하지 않았다면 꺼내기 힘든 말. 지우 형 역시 오기 전에 큰아버지와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왔었나 보다.

사실 지우 형 말대로 아버지가 동성 무역의 사장 자리에 앉아 있는 건 나의 존재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재능을 알아본 할아버지가 다음 세대에는 유지를 선택하고, 내 세대에는 발전을 선택했었기에 나에게 맞춰 모든 준비를 해놨던 거였다.

당연히 동성 그룹의 컨트롤 타워인 동성 무역에 나를 앉히기로 결정했고, 나에게 최대한 맞춰서 준비할 수 있었던 게 아버지였던 만큼, 아버지가 동성 무역 사장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 거다.

‘내가 경영권을 가져가지 않게 됐으니, 상황이 변한 건 맞다.’

내가 보기에도 지우 형의 능력은 정환이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능력은 둘 다 엇비슷했기에 조건을 따져야 됐다.

보통 재벌가의 그룹을 물려봤는데 가장 큰 조건은 장남이냐 아니냐로 나뉘었다.

한마디로 지우 형 말처럼 동성 무역을 가져가는 건 지우 형의 명분이 더욱 높다는 얘기.

자칫하면 민감한 주제인데도 이야기한 걸 보면, 큰아버지 역시 오늘을 준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 제환이 너는 지금 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

“……!!”

할아버지가 말을 내뱉은 순간, 모두가 일제히 할아버지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예상 밖의 상황.

지금 할아버지의 질문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앞에까지의 대화 중에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거론됐지, 직접적으로 대화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런 상태에서 나에게 의미를 물어온다는 것.

이제는 나를 한 사람의 경영인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걸 공식적으로 선언한 거나 다름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당황하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나는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JH 그룹이 동성 그룹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이 성장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이곳은 할아버지의 집. 할아버지가 주인인 곳이며, 동성 그룹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곳이다.

당연히 할아버지의 의견으로 결정돼야 하고, 할아버지가 중심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할아버지의 발언으로 인해, 그 중심에 내가 추가된 거다.

앞으로 동성 그룹의 결정에 나의 의견도 들어간다는 얘기.

너무나 뜻밖의 상황에 오랜만에 당황한 것 같았다.

‘정신 차리자.’

당황했지만, 어쨌든 답을 들려줘야 했기에 지금 이 대화를 상기시키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대답을 드려야 될까?

만약 사적인 공간에서 이런 물음을 던졌다면, 당연히 정환이의 편을 들어줬을 거다.

‘동성 그룹을 생각하자.’

지금 대답은 우리 집안만 생각해서는 안 됐다.

할아버지가 나를 인정해 준 만큼, 나 역시 동성 그룹만을 생각해서 대답해야 했다.

모두가 있는 곳. 모두를 위한 발언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가 이 대화에 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껴도 되니까 질문을 한 거 아니겠느냐.”

처음엔 겸손으로 시작했다.

“그럼 주제넘게 의견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보거라.”

“재벌에서의 경쟁은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저희 집안 또한 친척끼리 잦은 교류가 있지 않고, 사이가 좋다는 말도 못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죠.”

“…….”

“과연 경쟁이 끝나고 나서도 지금과 같은 사이가 유지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한 쪽이 승자의 위치를 가져간다면, 다른 한쪽은 패자의 위치를 가져가게 되겠죠. 필연적으로 양쪽 다 승자가 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할 테고요.”

“그래서?”

“제가 정당한 경쟁을 요구했으니, 그에 맞는 해결책을 동시에 드리겠습니다. 정당한 경쟁으로 승자가 됐다면, 패자를 만들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준우승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군요.”

“준우승이라……. 해결책은 어떻게 되느냐.”

“제가 만들 JH 중공업 사장 자리를 경쟁에서 진 사람에게 양보하도록 하죠.”

“……!!”

“……!!”

할아버지의 발언으로 놀란 표정을 짓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아마 역대 명절 중에 제일 많은 충격을 받는 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게 맞는 거다.’

내가 JH 중공업 사장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어떠한 패자도 남게 되지 않는다.

동시에 정당한 경쟁이라는 조건부를 담으면서, 서로의 능력만을 이용한 경쟁이 된다.

결국 끝에는 능력에 의한 패배였기에, 어쩔 수 없이나마 인정하게 될 테고 그와 동시에 동성 무역 못지않은 JH 중공업 사장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될 테다.

‘나도 혈연이 그 자리에 앉는 게 마음이 편하고.’

정환이와 지우 형 둘 다 내가 인정하는 경영인.

모르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은 것보다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사장 자리에 앉는 게 나에게도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허허, 그 누구도 내놓지 못할 해결 방안을 제환이 네가 내놓는구나.”

“…처음부터 생각하고 계셨던 거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 게냐. 나는 모르겠구나, 끌끌.”

“…….”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능청 떠시는 할아버지.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까의 발언이 이런 것을 원하고 던진 질문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넘어간 거다. 나 역시 해결책을 던지고 싶었기에.

‘알긴 알지만…….’

뭔가 웃음을 지으시며, 내 눈을 피하는 할아버지를 보니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절대 모르고 넘어간 게 아닌, 내 뜻대로 넘어갔단 걸 알리고만 싶었다.

“다음에는 쉽게 넘어가 주지 않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 게야? 이 할아비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

“그리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도 능력인 게야.”

“나중에는 그 상황조차 만들기 쉽지 않을 겁니다.”

“허허, 그건 그때 가서 보면 되겠구나.”

계속해서 말리는 느낌이 들어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 말대로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도 능력이었기에 이번만큼은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다들 정환이 의견에 동의하느냐?”

내 얘기가 끝났다는 걸 알아챈 할아버지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동의하는지 말을 건넸고, 모두가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 별다른 반발 없이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해왔다.

‘아무도 손해는 없겠군.’

나에게는 능력 있는 경영인이, 경쟁하는 두 사람에게는 차선책이. 할아버지에게는 집안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회장 자리를 넘길 수 있는 방법이.

그 누구도 손해 볼 일이 없는 해결책을 제시하며, 식사 자리를 기분 좋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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