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62화 (62/175)

62화

* * *

형찬 씨 집들이가 있던 다음 날.

어제 하루 만에 온 연락이 거짓말 안 하고 100명이 넘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일 때문에 전화가 아닌,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사람의 전화는 받았지만 뭔가 업무로 이어질 것 같은 사람의 전화는 될 수 있으면 피했다.

‘명절 되기 이틀 전에 만난다.’

어제 못 받았던 전화들은 명절이 되기 이틀 전에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연락할 생각이다.

물론 연락이 온 모든 사람에게 전화할 생각은 없다. 연락이 온 사람 중 앞으로 있을 사업에 필요한 사람을 골라서 순차적으로 연락할 예정이었다.

사업에만 목매달 것도 아닌데, 굳이 모든 사람을 챙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 글 좀 써야겠네.’

요즘 일에만 집중해서인지, 슬슬 비축했던 분량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지금 전개는 대통령이 탄핵당한 걸 기점으로 속도를 빠르게 가져가고 있어, 주인공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두 번째 작은 개인적으로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 싶었다.

내가 작품으로서 사람들에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지, 과연 그것들을 보고 글을 읽던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슬슬 세 번째 작도 써야 될 것 같고.’

이번에 분위기를 조성시키기 위해 독자들에게 큰 메시지를 던져서일까? 슬슬 두 번째 작에 대한 생명이 끝나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직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지만, 4개월 전보다는 사람들의 몰입이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다음 작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 작은 성장과 재미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쓰고 싶었다.

사회적인 풍자나 메시지는 이번 작으로 충분했다. 작가로서 메시지는 던졌으니, 이제는 재미라는 부분을 챙기고 싶었다.

주인공이 성장하며, 주변 인물들과 세력을 불리는, 그 안에 대화를 통해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말이다.

세 번째 작에 대한 구상을 이어 가다가, 욕심이 생긴 나는 두 번째 작을 슬슬 마무리하기로 결정지었다.

작가에 애정이 끝난 작품은 길게 끌고 가봤자, 사람들에게 실망감만을 안겨 줄 뿐, 그 이상의 무엇도 줄 수가 없었다.

그런 작가가 되기는 싫었다. 지금 작품의 인기를 이용해 돈을 더 버는 그런 작가 말이다.

돈은 외적인 것으로 챙기면 됐기에 두 번째 작을 어떤 식으로 의미 있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끝내야겠군.’

이번 작품은 재벌이 독하게 마음먹으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시작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재성 씨의 말을 듣고, 중간에 방향을 틀게 된 작품이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닌, 작품의 목표만 바뀐 것뿐 여전히 나에게는 소중한 작품이었다.

비록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바뀌었지만, 성공적으로 사회를 바꾼 만큼, 마지막도 메시지를 던지며 작품을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다음 정권 5년 동안 심각한 사회의 문제로 자리매김하는 그것.

갈라치기 말이다.

정부가 나서서 진행했는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는 작품에 추가하지 않을 생각이다.

단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점차 갈라치기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을 때, 내 작품을 떠올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정도 걸리겠네.’

사람들에게 갈라치기의 심각성을 알리면서 당신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작품을 마무리 짓는 데 한 달이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물론 중간중간 사람들을 만나고, 명절을 고려했을 때 걸린 시간.

그동안 다음 작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재밌겠네.’

이 메시지를 받고도 갈라치기가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나 역시 그 과정을 지켜보는 데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설날이 다가오기 3일 전.

「회고록」을 마무리 짓기 위해 정신없이 집필을 이어 가던 나는 슬슬 일도 조금 해야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이전에 온 연락 중에는 연락이 너무 많이 왔던지라 답이 늦었다는 등의 말을 전해 놓은 상태다.

그중에 관계를 유지할 사람들을 골라보았다.

‘일단 대통령과는 만나야 된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연락은 현재 정부를 이끌고 있는 대통령의 연락이었다.

다음 정권에 바뀐다고 하지만, 앞으로 5년 동안 정부를 이끌 사람이었기에 절대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됐다.

‘그렇다고 굽히고 갈 이유는 없지.’

좋은 게 좋은 거기 때문에 서운하게 만들 생각은 없지만, 정부에 눈치를 보며 굽히고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번의 성과로 JH 그룹은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오히려 정부가 JH 그룹의 눈치를 봐야 되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한참 국민들에게 관심을 받고, 국위선양이라며 칭송을 받는 우리 그룹이 정부에게 서운함을 느껴 다른 나라에 생산 시설 같은 것들을 두겠다고 말하는 순간, 정부는 수많은 원망을 받게 된다.

이것들을 감안하면, 정부와 좋은 관계를 맺기는 하겠지만 굽히고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 사람도 만나면 재밌겠네.’

이제 막 30대 초반이 되며, 향후 정치계의 거물이 되는 사람. 아직은 많이 어리숙하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만나봐도 재밌을 것 같다고 느꼈다.

나중에 가서는 다음 정권을 가져가는 여당에 당 대표가 되는 젊은 사람.

이번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과는 한 달 뒤 정도로 약속을 잡고, 이 사람은 내일 당장 만남을 가지기로 결정했다.

아직은 어리숙하고, 영향력도 부족한 사람인 만큼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전하면 내일이라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번화가 술집.

“형님, 정치하시는 사람치고 너무 이미지 소비 많이 하시는 거 아닙니까? SNS가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꺼리는 이 행동이 미래에는 나의 힘이 돼줄 거다.”

“당장 낙선만 되고 있는 데, 너무 먼 미래를 보시는 거 아닙니까?”

“먼 미래는 아닐 거다. 한 5년 정도만 돼도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달을 수 있을 거야.”

“참… 하버드 나온 형님이 하는 말이니, 맞겠죠.”

오랜만에 홍대에 나와서 후배와 가지는 술자리.

후배가 걱정하는 바도 이해가 간다.

지금은 SNS를 하는 정치인을 좋게 보는 사람이 적은 시대이니.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은 변화를 배척해 왔고, 무서워만 했다.

그러다가 변화가 시작되면 어떻게 될까?

배척하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피해를 보던 사람들은 승리의 트로피를 들 수 있을 거다.

그 트로피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작가님께 연락이 닿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박제환 작가님? 어렵사리 연락하긴 했지. 물론 유의미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크…….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희보다 어린 나이에 그런 성공을 거두고.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번에 얻은 성과들 동성 그룹에서 도움받은 게 하나도 없다던데요?”

“나도 그렇게 들어서인지 더 만나고 싶더라고.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이지.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야 되는데…….”

후배와 말을 나누다 보니 더욱 아쉬움이 커져만 갔다.

이번에 연줄을 타서 겨우겨우 번호를 얻고 연락을 드렸건만, 들어온 대답은 시간이 많지 않아 다음에 만남을 가지자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형식상 다음이라는 대답을 받았지만, 그 속에는 정중한 거절의 의미가 담겨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짠―

꿀꺽―

“크… 쓰네……. 이번에 번호를 얻고 만남까지 성사될 거라고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역시 세상 살아가는 게 쉽지 않고만.”

“아이고, 형님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어린 나이에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계신데.”

“아쉬워서 그런다. 박제환 작가님과 연락이 돼서 친분만 생겼어도 다음 선거는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건데.”

이번에 느끼는 아쉬움이 커서일까?

앞에 있는 소주가 쓰지 않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형님이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이해가 가지 않네요. 박제환 작가님이 대단하신 건 맞지만, 그 정도로 아쉬워하실 정도입니까?”

“너도 정치하려면 길게 생각해라. 박제환 작가님이 가진 카드를 생각해 봐. 일단 이번에 대통령을 끌어내림으로써 증명해 낸 영향력. 아무리 시기가 맞아떨어졌다고 하지만 누군가 실수하고 있을 때, 그 실수를 깊게 파고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그렇긴 하죠…….”

“그것만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이야. 거기에 JH 자동차. 이번에 생산 공장을 신설한다는 얘기가 있지. 지금 만나서 친분을 가져가는 순간, 그 지역의 선거는 작가님의 친분이 있는 사람이 가져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듣고 보니 엄청나네요…….”

“끝이 아니야. 지금 10대, 20대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을 뽑으라 하면, 누구든 박제환 작가님을 말할 거야. 지금이야 10대, 20대 투표율이 낮아서 무시하겠지만, 언제까지 그들이 투표하지 않을 것 같아? 요즘 젊은 사람들이 SNS를 하면서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어.”

“…….”

“언젠가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은 정치인들에게 불합리함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투표할 날이 다가올 거야. 그때 가면 작가님의 영향력은 재계를 넘어서 정치권에 더욱 크게 느껴지겠지.”

후배에게 작가님에 대한 영향력을 설명하니, 계속해서 느껴지던 쓰라림이 더욱 커져 가기 시작했다.

사실 연락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음에 만나자는 답장이라도 와서인지, 일말의 희망 때문에 더욱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이잉―

“형님 전화 오네요.”

“몰라. 술자리에서 전화 받는 건 실례되는 행동이잖냐.”

“에이. 그래도 받아봐요. 혹시 모르죠. 막 신이 도와줘서 박제환 작가님에게 연락이 온 건지.”

후배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전화를 받지 않는 게 싫어서인지, 장난을 치며 확인해 보라는 말을 전했다.

그런 후배의 장난에 나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가지고 있어서일까? 혹시나 신이 있어서 나를 도와준다면, 진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번호를 확인했다.

“…….”

“왜요, 형님? 표정이 왜 그래요?”

“야, 내가 다음에 제일 비싼 술로 살게. 그리고 신은 존재하는 게 확인됐으니까 앞으로 기도 잘 드려라. 내가 이 자리 계산할 테니까, 다음에 보자.”

“형, 형님!!”

뒤에서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후배.

평상시였다면 이런 민폐인 행동을 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상식적으로 술자리를 갖고 있는데, 전화 하나 왔다고 설명도 없이 자리를 뛰쳐나갈 리가 없지 않은가.

‘상식적인 상황이었다면 말이지…….’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상식적이지가 않았다.

평상시 전혀 믿지 않던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 정도.

마음이 급해진 나는 인근이 소란스럽다는 걸 느끼고는 가장 조용하게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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