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이야……. 저렇게 서울대 교수가 나와서 말허니까, 형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알겄네요…….”
“제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대단한 거 아니겠습니까.”
“아따, 여기 있는 누가 그렇게 생각헌데요. 다들 이야기 나눠본께 형님 아니었으면, 그냥 직장 생활이나 했을 것 같은디……. 아, 절대 형님들 비하 아니요. 오해하지들 말더라고요.”
“아니에요. 재성 씨 말대로 저도 회장님 아니었으면, 암담했을 것 같아요. 제 재능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겠죠. 회장님 덕분에 아윤이랑 서윤이에게 가장 노릇도 하네요.”
“절대 아닙니다. 다들 능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거 아닙니까. 저 그렇게 착한 놈 아닙니다. 능력 보고 접근한 거지, 절대 선의로 움직인 것도 아닙니다.”
자신들이 이뤄 낸 성과를 계속해서 서울대 교수분이 말도 안 된다며, 경악을 하고 있어서일까?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금칠해 주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곧 끝나나 보네요.”
“그렇게 말입니다.”
재성 씨 말대로 대화가 점점 마무리돼 가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쯤 되니 한 가지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어째서 할아버지는 오늘 방송을 꼭 챙겨보라는 말을 전했을까?
앵커가 나에게 우호적인 게, 할아버지의 덕이 크다는 의미였을까?
그게 끝이 아닌 것 같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 지금까지 박제환 작가님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업적을 세웠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던 것 같군요. 그럼, 여기서 한 가지를 빼놓고 넘어갈 수는 없죠.
- 혹시 다른 무언가가 준비돼 있습니까?
- 역시 교수님이어서 그런지 눈치가 빠르군요. 이분을 모실 수 있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저 역시 가능하리라 짐작조차 못 했고요. 지금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해서 채널을 돌리는 분들은 후회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 도대체 누구길래…….
- 아마 교수님도 아시는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들 박제환 작가님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저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지. 그래서 모셨습니다. 박대호 회장님 나와주십시오!!
- …….
“…….”
“…….”
방송을 보고 있던 나는 두 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들은 이름 세 글자가 정확히 들었던 게 맞는 건가?
내 귀가 이상한 게 아닌지, 주변을 둘러보며 반응을 확인했다.
그런 나에게 재성 씨는 왜 그런 표정을 짓느냐는 얼굴로 맞받아쳤다.
재성 씨는 모를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사장님에게 시선을 건넸다.
“…….”
“…….”
역시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니었나 보다.
방금 들려온 이름.
할아버지의 이름 세 글자가 방송에서 흘러나온 거다.
“회장님……. 방금 제가 잘못 들은 겁니까?”
“저도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제대로 들은 것 같군요.”
이민호 사장님보다 내가 더욱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는 할아버지 성격상 언론에 노출되는 걸 즐기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아니,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즐기지 않는다고 하는 거지, 지금까지 꺼리는 걸로만 알고 있었다.
‘이래서 할아버지가 방송을 보라고 했던 건가?’
이제야 할아버지가 이전부터 전화하며, 방송을 꼭 챙겨보라며 신신당부했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따, 형님들 왜 그런 표정 짓고 있는데요. 저도 좀 같이 알면 안 되겄소?”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방금 이름 불린 게 나의 할아버지라고?
할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재성 씨에게는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해를 못 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소개해 드리죠. 이분은 동성 그룹의 회장님이시자, 박제환 작가님의 친할아버지 되시는 분. 국장님까지 나서서 어렵게 섭외한 분이십니다.
- 허허, 반갑습니다. 제환이 할아비 박대호라고 합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나를 쳐다보는 재성 씨.
“엥? 형님, 방금 저 짝에서 뭐라 혔는지 들었데요?”
“…….”
“분명 제환이는 형님 이름인디…….”
“제 할아버집니다.”
“왐마!! 저 짝 방송국 섭외력이 장난 아니네요. 형님 할아버지까지 섭외하다니. 근디 왜 그런 표정 짓고 있데요?”
“제 할아버지 되시는 분이 방송을 싫어하거든요.”
“예……? 그런 거치고 표정이 밝은 걸로 보이는데요?”
“그래서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통하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 번 더 대화의 어려움을 더 해주는 할아버지의 말이 들려왔다.
- 박제환 작가님의 어린 시절과 성장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 허허, 말도 못 합니다. 고놈이 얼마나 영특하던지,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못한 게 없었고, 뭐 말했다 하면 그 누구보다 앞서 나가니 어떻게 보면 지금의 결과가 당연한지도 모르겠군요. 이거 보세요. 제 손자 덕분에 사업가가 아닌, 박제환 할아비로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게 됐습니까.
“형님, 할아버지분께서 저 정도면 방송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한 생각이 드네요…….”
“그러게요. 저도 같은 생각 중입니다.”
마지막이나마 서로의 의견을 맞춘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의도치 않은 상황에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나와서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을까?
JH 그룹의 출범을 알리는 방송이 마무리되었다.
“아따, 미치겄네. 평소에 연락도 없던 사람들이 우째 알고, 이렇게 전화하는 겨.”
방송이 끝나자 계속해서 걸려 오는 전화를 무시한 채 한탄하는 재성 씨.
가령 재성 씨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모두의 핸드폰에 멈추지 않고,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했다.
“자기야. 이 사람 자기 전 직장 상사 아니야?”
“맞네. 전화 받지 마. 내가 그 사람은 절대 가만 안 둔다. 나중에 기어 그룹 한번 찾아가서 한마디 해줄 거니까, 전화 절대 받지 마.”
“와……. 이 사람들 다 어떻게 알고 전화하는 거야. 우리 엄마랑 아빠까지는 자기를 아니까 이해하겠는데, 어떻게 연락 없던 친척까지 전화가 오는 거지?”
“이번 방송 파급력이 장난 아닌가 보네.”
형찬 씨 말대로 이번 방송의 파급력이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방송은 중간 다리였을 뿐, 그 안에 있던 성과들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내 핸드폰에도 오랜만에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생방송에 나가서 내가 「회고록」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밝혔을 때도 이 정도의 연락은 오지를 않았다.
지금은 말 그대로 한번 스쳐 갔던 사람들마저 나에게 연락을 해 오고 있었다.
“다들 당분간은 조심하도록 하세요. 여러분들이 성공한 걸 알고, 접근해 오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다들 회사 생활에 영향이 안 갔으면 좋겠네요.”
“유의하겠습니다. 형찬 씨도 제가 옆에서 잘 돕도록 하겠습니다. 형찬 씨? 분명 친인척들이 돈을 보고 접근할 겁니다. 법적인 문제나 그 외의 문제도 해결이 필요할 때 연락주도록 하세요.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아따, 형님 서운하네요. 지도 같은 JH 그룹인디 너무 JH 자동차만 챙기는 거 아녀요?”
“재성이 너도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근데 내가 재성이 너의 생활을 잘 모르니까, 나보다는 JH 인베스트먼트랑 계약한 법률 사무소에 연락하는 게 나을 거야.”
“저도 장난이었어요. 지가 애도 아니고, 이런 거 하나 관리 못 하겄소?”
“재성 씨, 만만하게 볼 게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수익은 때로 불행을 가져오기도 하죠. 이걸 지켜내느냐는 재성 씨의 몫입니다.”
“형님, 걱정 말드라고요. 지는 이전에 성과금 받았을 때, 한번 겪었던 일이지라.”
다들 갑작스럽게 오는 연락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 정도로 곤란함에 처할 사람들이었다면, 전생에서도 그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했을 거다.
더군다나 전생에서는 나처럼 도와주는 사람이 있던 게 아닌, 자신들 힘으로 쟁취한 자리.
그때도 성공했던 걸 보면,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문젠가?’
이들은 괜찮은 걸 알았으니, 이제는 내가 문제였다. 일반인들에게 전화가 걸려 오는 이들과 다르게 나에게는 정치인과 회장님들에게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이번 정권을 가져갈 대통령도 포함돼 있었다.
이전에 할아버지가 전화번호를 알려줬기에 피할 수 있었지, 하마터면 방금 전화를 받을 뻔했다.
아마 이전부터 내 글에 대한 파급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만남을 가지고 싶어 했겠지만, 이번에 방송을 보고는 몸이 달아오른 것처럼 느껴졌다.
‘적당한 관계는 이득이 된다.’
이번 정권이 연임을 못 한다고 해도, 5년은 눈치를 봐야 했기에 적당한 선을 조절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이번 정권은 미국을 피해 친중, 친러의 행보를 걷는 걸로 알고 있다.
이 부분은 내가 어떻게 판단을 내릴 게 아니었다. 당연히 이번에 당선된 트럼프가 압박해 왔기 때문에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결정을 내려야 했고, 그 방향이 친중, 친러의 형태가 됐을 뿐이다.
‘나는 이걸 이용한다.’
나는 순간순간 그 부분을 이용만 하면 되는 거다.
이번 정권을 어떻게 이용할까 고민하던 나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라고 느꼈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자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에 보답하듯 다른 사람들도 계속해서 오는 연락에 핸드폰을 치워두고, 서로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소속감을 느끼며 서로 더욱 친해지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마지막이나마 삼촌이라고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인가?’
계속해서 나만 아윤이에게 회장님이라 불리던 게 마음에 걸리던 나는 마지막이나마 호칭을 변경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회장 삼촌이라며, 조금은 이상한 호칭을 얻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며 즐거운 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 * *
대현 자동차 사장실.
“사장님, 아무래도 가만히 지켜보기에는 사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들려온 소식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니, 오히려 방송에 축소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렇게 지켜만 보고 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JH 자동차가 추격할 거라고 예상됩니다.”
“그놈이 민우랑 같은 나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보니 민우가 너무 부족하게 느껴지는군…….”
“절대 정민우 상무님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제가 알아보니, 이번에 출범한 JH 그룹의 모든 그림을 박제환 작가가 그렸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자연재해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재능입니다.”
“한국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반가우면서, 한편으로 짜증이 나는군. 그런 사람이 하필 우리 그룹과 경쟁 구도가 잡히다니…….”
“지금이라도 결정해야 됩니다. JH 자동차와 손을 잡으면서 선의의 경쟁을 이어 갈지, 그게 아니라면 둘 중의 한 명은 죽을 치킨 게임을 벌일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박제환이라는 아이와 비교되는 민우 자식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민우가 부족한 게 아니었다. 단지 박제환이라는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성과를 거둬들였던 거지.
‘저러니 자격지심을 가질 만하지…….’
민우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민우가 그 아이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자격지심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경영에서 제외된 아이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단 게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 화도 났지만 어쨌든 경쟁할 상황이 사라져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자격지심을 느끼던 민우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번에 명절 끝나고 회의에 들어가도록 하지. 회사 임원들 명절 끝나고 다들 의견 하나씩 들고 오라고 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사장님.”
“그럼 나가 봐.”
“예, 그럼.”
방금 비서실장이 말했듯, 이제는 지켜만 봐서는 안 될 정도로 JH 자동차가 성장했다.
아니, 이 정도면 성장이 아니라 이미 준비돼 있던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이번 사태가 심상치 않은 만큼, 곧바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기에 이번 명절이 끝나고 회의를 통해 앞으로의 자세를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