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60화 (60/175)

60화

* * *

“아따, 역시 차가 좋아야 남자는 면이 서는 갑네요. 분명 5분 전이랑 나는 달라진 게 없는디, 왜 이렇게 어깨가 올라가는지 모르겄네……. 감사하네요, 형님.”

“감사합니다, 회장님. 차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롤스로이스는 꿈의 차나 다름없었습니다. 기술력을 떠나, 장인 정신이 깃든 차이기에 어릴 때부터 한 번만 타 봤으면 하는 차였는데…….”

“동성 그룹에서 나와 회장님과 함께하기로 한 선택에 보람이 느껴지는군요.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선물이라는 말에 신나서 밖에 나간 세 사람은 서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고, 각자 원하는 차를 얻을 수 있었다.

재성 씨는 비교적 젊었기에 벤틀리를.

형찬 씨는 자동차의 끝판왕 롤스로이스를.

이민호 사장님은 사장이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마이바흐를 말이다.

그전에도 성과금이나 지분을 양도할 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지만, 지금만큼 진실된 마음을 받은 적은 없던 것 같았다.

비용적으로 봤을 때는 전자가 훨씬 높은 금액이었지만, 자신들이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았기에 더욱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빠, 아저씨가 우리 붕붕 이 선물해 준 거야?”

“그럼! 우리 공주님이 편하게 이동하라고, 회장님이 좋은 차를 선물해 주셨네.”

“회장님?”

형찬 씨한테 달려가 안기던 아윤이가 나를 가리키며, 내가 선물한 건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더니 형찬 씨에게서 떨어져 내 쪽으로 다가오고는 두 손을 배에 얹고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고마워요, 회장님.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게 차라고 했는데, 회장님이 선물해 줘서 아빠가 좋아해요.”

“아윤이 아빠가 일을 워낙 잘해서 아저씨가 선물한 거란다.”

“그래도 고마워요, 회장님. 우리 아빠 전에도 일 디따 잘해써요. 근데 맨날 들어올 때마다 힘들어했어요.”

“…….”

“요즘은 늦게 드러 와도, 맨날 즐거운 표정으로 들어와요. 고마워요, 회장님.”

“…그래. 우리 아윤이는 참 착하네. 아빠 생각할 줄도 알고…….”

“아니에요! 우리 아빠가 아유니 더 마니 생각해요.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행복한 것 가타요!”

나에게 다가와 아빠를 대신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아윤이를 보니,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결혼에 대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나에게도 평생을 함께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의 행복보다 내가 더욱 원했던 건 성공이었고, 그에 맞게 결혼했었다.

당연히 사랑이 없던 결혼은 이혼으로 마무리됐고, 그 뒤로는 나 스스로 가정을 꾸리는 거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병에 걸렸고.’

그렇게 이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생각하기 전에 걸린 췌장암 말기.

당연하게도 새로운 무언가를 꾸릴 생각을 하지 못했고, 결혼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동떨어진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이 나쁜 것만은 아니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형찬 씨를 생각하는 아윤이를 보고 있으니 전생의 그녀가 떠오르면서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기 시작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나에게 장난을 치는 아윤이를 말리면서 형찬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형찬 씨의 아내분.

활짝 웃고 있는 표정을 보니, 형찬 씨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느껴지게 되면서 더욱 결혼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던 것 같았다.

전생의 나는 아내에게 한 번도 저런 표정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을 피했었나 보다.

어차피 나에게는 남이었기에.

‘저런 게 진짜 가족인가?’

형찬 씨의 가정을 보고 있으니, 결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시작 1분 전.

다 같이 식탁 앞에 앉은 우리는 곧 있을 방송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과연 우리가 1년간 해 왔던 업적을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1년 만에 맨손에서 재벌의 일원으로 끼어들려고 노크를 하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많은 궁금증을 가진 채, 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시작합니다!! 지금부터는 다들 숨소리 하나도 조심해 주길 바라네요. 저 김재성의 출사표를 여기서 던지는 거 아니겄어요.”

재성 씨뿐만이 아닐 거다.

여기 있는 모두의 출사표가 이번 방송을 통해 던져진 셈이다. 그리고 JH 그룹의 출범식. 한국에서 유례없을 출범식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 여러분 반갑습니다. 앵커 정상욱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주제를 방송할 예정입니다. 이번에 대한민국에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한 사람이 세간에서 가장 시끄럽죠? 동성 그룹의 박제한 씨. 아니, 작가 박제환 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지금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방송국은 KBK.

내 작품의 판권을 계약하고, 정보를 건네주면서 최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기에 KBK 방송국에서 JH 그룹의 출범을 알리기로 결정했다.

- 여러분께 전해 드릴 소식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하나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보들. 조금이나마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 드리기 위해,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백하석 교수님.

- 반갑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백하석이라고 합니다.

- 이번에 박제환 작가님이 「회고록」에 썼던 경제와 이전 정권을 풍자했던 내용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요즘 많은 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미래에서 왔다, 그게 아니면 외계인이 몸을 빼앗은 거다. 예, 맞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것들투성이죠. 「회고록」이 그렇습니다.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내용을 담고 있었죠.

- 서울대 교수님이 보기에도 그 지식과 진행 방향이 말이 안 된다는 겁니까?

- 일단 지식과 진행 방향들, 그것들 역시 말이 안 되는 건 사실이지만 필력에 대해서 말하고 싶군요. 대한민국에 현 정권을 풍자하면서 사람들에게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작가님은 현실에서 겪을 만한 부조리를 얹어서 사람들에게 분노를 강조했죠. 이 부분이 어우러지니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처음은 「회고록」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하려나 보다.

앵커분과 교수분이 연신 내 작품에 대해 칭찬하며,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확실히 방송으로 보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게 이해가 갔다.

‘슬슬 다음 얘기로 넘어가려는 건가?’

계속해서 내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앵커분이 다음 주제로 대화를 넘어가려는 조짐을 보였다.

- 교수님에게 또 다른 질문도 하고 싶군요. 이전에 작가님이 직접 방송에 출연하셔서 JH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걸 기억하고 계십니까?

- 당연히 기억할 수밖에 없죠. 저는 작가님이 방송하기 전부터 글을 읽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팬이 된 사람입니다. 그의 말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 JH 자동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안타깝죠. 작가님이 참 도전적인 건 높게 평가하지만, 자동차 업계라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요. 그 잘나가는 삼오 그룹도 견뎌내지 못한 게 자동차 업계예요. 단언컨대 대한민국에 대현 그룹이 있는 한, 자동차 업계는 힘들다고 봐야죠. 실제로 대현 그룹만 남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 제가 이번에 믿기 힘든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교수님이 듣고, 한번 판단해 주시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소식을 들은 그 누구라도 작가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역시 KBK 방송국이 나에게 우호적이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KBK 방송국의 실질적 주인이 할아버지와 친분이 있어서일까?

아니, 앵커분이 말하는 걸 보면 두 가지 다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 그룹에서 사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호적인 발언을 해주는 앵커분. 고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혹시 이번 대한민국 사태를 정확히 예견하고, 미국 대선까지 예측해 무지막지한 수익률을 올린 회사를 알고 있습니까?

- 안 그래도 어떤 회사인지 시끄럽더군요. 여의도뿐만 아니라, 월가에서도 정체를 알고 싶어서 안달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수익률이 20,000퍼센트라고 들은 것 같군요. 역사에 기록될 만한 수익률이죠.

- 그 정체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 그게 정말입니까?! 근데 그 얘기를 왜 여기서……. 혹시 작가님과 관련된 회사입니까?

역시 서울대 교수님이어서일까?

잠시 멈칫하고는 생각하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연결 고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 그 투자회사 이름이 JH 인베스트먼트라고 하더군요.

- …JH 인베스트라면…….

- JH 자동차와 같은 계열사죠.

- …….

- 믿기 힘든 표정이군요.

- 하기야… 그런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 뭐를 하더라도 납득이 갈 만하군요……. 그래도 이 소식은 조금 충격인데요? 한 사람이 여러 가지의 재능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 무슨…….

-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말이 들려오자, 앵커를 쳐다보는 교수님.

어디 한번 해보자라는 표정을 지으며, 앵커의 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 JH 인베스트먼트가 JH 자동차에 이번 수익금 절반을 순차적으로 투자한다고 하더군요.

- …….

- 물론 곧바로 다 투자하는 건 아니지만, 약 8조라는 금액을 자동차 회사에 투자한다는 겁니다. 아마 대한민국 경제가 한층 발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죠?

- 그렇게만 된다면, 확실히 한 지역의 경제를 살릴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산 시설이 들어간 지역은 일자리도 늘어나고요. 하지만 과욕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동차 업계가 돈만 투자한다고 성공하는 시장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JH 자동차는 실질적인 성과도 하나도 없는 회사고요.

- JH 자동차가 쌍양 자동차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미 경영진끼리 이야기를 마쳤고, 계약도 끝났다고 합니다.

- …확실히 가능성은 늘어났다고 하지만…….

- 그리고 미국의 티슬라와 10퍼센트의 지분 교환을 했다고 하더군요. 향후 10년간은 기술 제휴를 이어 갈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

앵커분의 말이 이어지자, 부정적으로 JH 자동차를 바라보던 교수님의 표정이 경악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젠장, 졌습니다. 이건 대한민국에 말도 안 되는 그룹이 탄생했군요. 이 방송을 시청하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은 하나의 재벌이 탄생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것도 1년 만에 말이죠.

- 앞으로 JH 그룹의 전망이 밝다는 얘긴가요?

- 전망이 밝냐고요? 저는 이 방송이 끝나자마자 JH 그룹의 주식을 살 수 있는가부터 알아볼 생각입니다. 단언컨대 주식을 사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 주식에 손댈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미국의 티슬라가 왜 저평가되고 있는지 아십니까? 생산성과 안전성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 …….

-그 평가가 바뀌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곧 흑자로 변할 거라는 의견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티슬라와 지분 교환 10퍼센트를 성공했다? 그것도 동일 지분으로? 이제는 JH 자동차가 대현 자동차를 상대해 줘야 되는 위치로 바뀐 겁니다.

계속해서 흥분하며, 현 사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교수님.

나도 저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지금 들려온 정보만을 생각해서 말한 게 아니다.

티슬라와 계약하고, 현 시간까지 3개월. 그 짧은 시간 만에 들려왔던 또 하나의 연구 결과.

배터리 용량의 증가.

이것들을 생각하면, 방금 교수님이 말했던 대로 이제는 JH 그룹이 대현 자동차를 상대해 줘야 되는 상태가 된 거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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