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 *
‘이건 무조건 잡아야 된다…….’
앞에 남성들이 내민 자료를 살펴본 일론 머스터.
도저히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각 자동차 트림마다 모터를 정형화시키는 기술.
이것만 있다면 자동차 공정 비용을 말도 안 되게 절감시킬 수 있었다.
더군다나 티슬라도 공장을 증설하기 전.
시기마저도 딱 맞아떨어지는 기술이었다.
‘공정 비용을 절감해서 다른 쪽에 투자하면…….’
그렇게 되는 순간, 앞으로 있을 경쟁에서 치고 나갈 수 있다는 건 꼬맹이가 오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JH 자동차 측에서 가져온 기술은 잘 봤습니다. 솔직히 욕심이 나긴 하는군요. 하지만 이게 끝이라면, 아쉽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방금 보여 준 모터의 정형화는 좋은 연구 결과는 아닙니다. 그저 지나가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죠.”
“…….”
“단순히 회사를 이제 막 설립했기에 그에 맞춘 연구 결과를 내놨을 뿐입니다.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묻고 싶군요. 혹시 킴은 자동차 업계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에게 경악을 준 연구 결과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
문득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 남자는 앞으로 있을 자동차 업계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남자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만약 바라보는 목적지가 같다면, 같이 손을 잡고 그곳으로 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의 자동차 업계는 성능에 따라 가격을 나누는 경우가 컸습니다.”
“성능을 중점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말인가요?”
“단, 앞으로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자동차 업계는 성능은 기본으로 갖춰야 되고, 그 외의 운전자를 편안하게 해줄 AI, 최소한의 에너지로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연비. 실용과 함께 날렵한 이미지를 가진 디자인. 이 세 가지를 갖춘 자동차 회사가 경쟁에서 치고 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덤덤하게 앞으로의 업계 현황을 말하는 이 남성.
경악을 하고 있는 나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을 선사한다.
단순히 기술력만 좋은 게 아니었다. 내가 보는 미래를 정확하게 짚어주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이 방금과 같은 연구 결과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젠장……. 나는 천재가 아니었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는 남성을 보니, 이때까지 나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했던 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천재라는 단어는 내가 아닌, 이 남성에게 어울리는 말.
아니, 천재가 아니라 괴물이라고 불러야 하나 고민이 들 정도였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죠?”
오랜만에 질문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한 나는 이때까지 생각해 왔던 문제점들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와 동시에 아까와 같이 아무렇지 않은 듯, 해결 방안에 대해서 말해 오기 시작한다.
이 남성과 나눈 대화 10분.
1년 동안 고군분투하며 연구했던 그 날들보다 훨씬 값지게 느껴졌다.
‘뻐킹……. 무조건 함께해야 돼.’
이건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이 남자를 놓치는 순간, 자동차 업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럴 때마다 티슬라의 현 사태가 아쉽게 느껴졌다.
당장 몇 년만 있었으면 흑자 전환을 마치고, 당당하게 제안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킴이라는 성을 가진 남성.
킴이 경쟁 업체와 손이라도 잡았다가는 우리 티슬라가 흑자로 전환하는 시기가 미뤄질 것만 같았다.
티슬라가 경쟁에서 세운 모토는 압도적인 기술이다.
티슬라가 가진 기술보다 앞서가는 킴이 다른 자동차 회사와 손을 잡는다면, 우리 그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사라지게 되는 거나 다름없었다.
생각을 이어 갈수록 이성이 마비된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 버렸다.
“킴!! 저희 회사에 들어올 생각 없습니까? 얼마든 드리도록 하죠. 그 돈이 천만 달러, 수억 달러까지 드리도록 할게요.”
“저는 지금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질 때 저를 알아보고 손을 내밀어 준 회장님을 배신할 생각 죽어도 없습니다.”
“킴!! 그건 배신이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서로를 위한 선택 아니겠어요! 분명 회장이라는 분도 킴의 선택…….”
나도 모르게 흥분하며, 킴을 설득시키고 있을 때 누군가가 멀리 떠나가 있는 이성을 붙잡게 만들어 줬다.
턱―
흥분하며 킴의 손을 맞잡고 있는 나의 손에 또 하나의 손이 올라왔다.
“일론? 이 이후의 이야기는 저와 나누는 게 맞는 것 같군요.”
“…….”
젠장…….
오랜만에 질문이 가능한 사람을 만나서인지, 큰 결례를 범했나 보다.
지금의 대화들은 비즈니스를 위한 것들.
이런 얘기는 그 후에 하는 게 맞는 순서였는데…….
실수했단 걸 느낀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며, 비즈니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재성 씨와 식사 자리를 갖고 있던 박제환.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전화 좀 받아도 될까요?”
“뭘 그런 것 같고 죄송하다고 헌데요. 편하게 하셔유.”
할아버지와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것 같다.
그동안 언론에서는 계속해서 JH 자동차와 동성 그룹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고, 최근에 좀 관심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재성 씨에게 들어 온 연락.
투자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갔다는 말을 전했다.
‘좋은 소식은 동시에 들어온다는 건가?’
그런 재성 씨와 식사 자리를 갖고 있을 때, 걸려 온 전화.
번호를 확인하니 비서실장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일주일 전에 머스터와 약속을 잡았다고 했으니, 그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려고 전화를 걸었나 보다.
“전화 받았습니다.”
- 저 이민호 사장입니다, 회장님. 보고드릴 게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이번에 비서실장님이 JH 자동차의 사장 자리에 앉으면서, 호칭에 변화가 있었다.
이민호 비서실장님은 사장님으로. 나는 사장에서 회장님으로.
전생에 들었던 회장님이라는 호칭이 낯익으면서, 묘한 감정을 가져다줬다.
“이번에 티슬라와의 만남에 대한 보고입니까?”
- 맞습니다, 회장님.
“간략하게 설명 가능하겠습니까? 지금은 식사 자리를 갖고 있어서,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만나서 듣도록 하죠.”
- 최대한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지분 교환을 하기로 했습니다. 서로 10퍼센트의 지분을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
지금 티슬라의 시가 총액이 50조 원가량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티슬라 모델 3에서 사고가 나, 주가가 내려가고 있는 상태.
그렇다고 하더라도, 50조 원의 10퍼센트면 5조 원가량의 가치를 갖고 있다.
더군다나 서로 똑같은 지분을 교환했다는 건, 그쪽에서 우리 회사의 가치도 자신들과 똑같다고 평가한 셈.
아무래도 사장님이 성공적인 협상을 한 것 같았다.
“다른 조건은 없습니까?”
- 일단 기술적 제휴를 향후 10년 동안 이어 가기로 했습니다. 더해서 형찬 씨가 10년 동안 경쟁 업체에 입사하지 않는 걸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형찬 씨의 의견이 중요했겠군요.”
- 맞습니다. 형찬 씨는 JH 자동차를 떠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고, 자연스럽게 협상이 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 각 연구진을 1년에 한 번씩 파견한다는 조건. 형찬 씨가 1년마다 한 번씩 미국으로 가서 기술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로 하고 협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들을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죠. 섭섭하지 않게, 성과금은 챙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럼.
요즘 들어 일이 한꺼번에 잘 풀린다는 생각을 져버릴 수가 없다.
방금 들려온 소식.
대현 그룹에게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정보였다.
한 달이 지났음에도 아무 소식이 없는 JH 자동차에 대현 그룹은 해프닝으로만 치부하고 있을 거다.
실제로 그동안 아무런 성과가 없던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이번 미국 대선이 끝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릴 JH 인베스트먼트의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
‘JH’라는 두 글자에 흠칫하는 감정을 지을 수 없을 거다.
또 한 번 JH 그룹에 관심이 쏠리고 있을 때, JH 자동차에 수조 원의 투자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런 JH 자동차가 티슬라와 10퍼센트의 지분 교환을 했으며, 기술적 제휴를 맺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언론은 JH 그룹이 차지할 거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거다.
‘그때 대비해서는 늦었다.’
그때 가서 대비하는 순간, 늦었을 거다.
이미 그사이에 생산 공장을 만들기 시작했을 거고, 국내에 있는 자동차 회사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대현 그룹에게 들어갈 거다.
그때부터가 진짜 경쟁이 시작되는 순간.
전생에서의 입장이 뒤바뀌어지는 그 날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형님, 얼핏 듣기로는 좋은 소식 같던디, 축하드리네요.”
“감사합니다. 재성 씨도 일이 마무리되면, 같이 식사 자리를 갖도록 하죠. 저희 JH 그룹에 한 축을 담당하게 될 JH 자동차의 사람들입니다.”
“워메, 그 방송에서 말했던 자동차 회사 아녀요? 방송 보자마자 어떤 회사일지 궁금혔는디, 빨리 보고 싶네요.”
“이번에 JH 자동차 연구소장님이 이사를 간다고 하니까, 집들이 때 같이 가는 걸로 하죠. 제가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아따, 감사혀네요. 형님 덕분에 많은 사람도 알게 되고……. 저도 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움직여야겠네요.”
열심히 움직이겠다며 다짐을 하는 재성 씨.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아 줄 차례가 왔음을 느꼈다.
“재성 씨는 이번 투자가 마무리되면, 큰 방향에 맞춰서 투자를 진행해 주세요.”
“어디에 맞추면 되겄을까요?”
“AI에 관련된 회사에 투자를 진행하도록 하죠. 남은 여유금은 가상화폐에 투자하도록 하고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그 짝을 추천해 드리려고 혔는 디……. 역시 형님이네요. 가상화폐는 시장에 피해 안 줄 정도로 투자해 보겄습니다. AI도 제가 보던 종목이 있응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가상 현실에 대한 투자도 진행해 주도록 하세요. 그 외에는 재성 씨가 판단해서 괜찮다 싶은 종목에 투자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말어요, 형님. 제가 역사를 한번 써보려니까.”
“응원하겠습니다.”
역사를 써 보겠다며 주먹을 들어 올리는 재성 씨.
이미 이번 투자로 역사는 시작된 거나 다름없었다.
앞으로의 투자는 시작된 역사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는지에 대한 행동.
그 끝에서 남들이 재성 씨를 기억했을 때, 전생보다 더욱 대단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워렌 버핏이 아닌, 고유명사가 됐으면 좋겠네.’
다음 세대에 재성 씨의 길을 따르는 이름 있는 투자자가 생겼을 때, 그때 재성 씨의 이름을 빗대어 그를 칭찬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모두가 잘할 수 있을 거다.’
그런 기준이 JH 그룹을 이끄는 모두가 해당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만들 자신도 있었다.
자동차에서는 형찬 씨가.
금융 부분에서는 재성 씨가.
원전 산업은 우크라이나의 소녀가.
‘그런 JH 그룹을 이끄는 컨트롤 타워는 이민호 사장님이.’
나는 작가 박제환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라면서, 재성 씨와 술자리를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