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똑똑―
“접니다, 할아버지.”
“들어오거라.”
할아버지가 계신 방의 문을 두드리니,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혹여나 미리 말을 해주지 않은 것 때문에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어제 방송 잘 봤다. 여기저기서 방송을 보고 연락이 오더구나.”
“저도 아침에 일어나니 연락이 많이 와 있더라고요.”
“그만큼 너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거겠지……. 아주 잘했구나.”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잘했다는 저 한마디.
비록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그 어떠한 말보다 나를 격려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사업을 통해서 들은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글.
할아버지가 그토록 반대하던 글을 쓰면서 들은 칭찬이었다.
나에게 있어 저 한마디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묘한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할아비가 원망스러우냐? 제환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반대하고, 경영에서 제외시킨 게 원망스러운지 묻고 싶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 또한 경영에서 제외됐다 하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데 집중했을 겁니다. 회사 일을 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이 줄어들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구나. 어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할아비의 도움이 없어도 잘해 내는 손자를 동성 그룹이란 울타리로 막아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말이다.”
“아닙니다. 어린 시절부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방금 했던 말 중에 가식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진심으로 할아버지에게 감사드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입장도 이해가 가긴 했다. 분명 동성 그룹을 물려주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동시에 동성 그룹이 없어도 지금처럼 성공한 나를 보고 복잡한 생각이 들었을 테고.
단언컨대, 할아버지의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지도 못했을 거다.
전생을 통틀어서 할아버지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기에, 글을 쓰면서도 이 정도의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일도 동성 그룹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고.’
내가 만들어둔 판이라고 하지만 동성 그룹의 이름이 없었다면, 일을 크게 돌아가야 했을 수도 있었다.
물론 동성 그룹 입장에서도 이득밖에 없는 거래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어제 방송에서 말 한 자동차 회사는 무슨 말인 게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시려나 보다.
애초에 오늘 부른 이유가 저 자동차 회사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더군다나 어제의 나는 방송을 통해 동성 그룹의 사람으로 인식이 됐을 거다.
아무리 내가 관련이 없다고 말해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에 대현 그룹과 경쟁을 하겠다고 하니, 할아버지도 마냥 응원만은 해줄 수가 없을 거다.
그러니 여기서 안심시켜 줘야겠다.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말한 게 아니라고.
“사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 있습니다. 나중에 가서는 JH 홀딩스라는 회사가 컨트롤 타워가 돼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할 예정입니다.”
“그렇담…….”
“어제 말한 자동차 회사도 그중 하나입니다.”
“굳이 돌아가려는 이유가 뭔 게냐. 충분히 동성 그룹에서도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더냐?”
“할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제 꿈은 작가입니다. 제 직업 또한 작가이죠. 나머지 것들은 잘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적재적소로 배치할 생각입니다.”
“허울뿐인 상상은 아니겠지?”
이제는 어제 고민해 왔던 것들을 할아버지에게도 말 해 줘야겠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과 이때까지 해왔던 일들을 말이다.
“이번에 탄핵과 미국 대선이 끝나는 동시에 한국에 전설적인 펀드매니저가 탄생하게 됩니다.”
“무얼 말하고자 하는 게냐.”
“그 펀드매니저가 얻을 수익은 약 1,600억. 자신이 얻어낸 성과의 1퍼센트죠.”
“그렇다면 16조의 수익을 올린다는 게냐?”
“맞습니다. 그 회사는 제가 만들 그룹의 자금을 담당할 것 같습니다.”
“…….”
“그걸 필두로 이번에 방송에서 말했던 JH 자동차. 티슬라와 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동일 지분을 교환할 수 있겠죠.”
“하지만 티슬라는 적자만 보고 있는 회사가 아니냐. 아무리 기술이 좋더라도, 적자를 보고 있는 회사에 그렇게까지 고 평가할 이유가 있느냐? 차라리 대현 그룹과 손을 잡는 게 낫지 않았냐 이 말이다.”
할아버지 말대로 지금은 티슬라가 적자만을 보고 있는 시기다.
하지만 전생을 겪은 나는 알고 있다.
적자가 흑자로 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걸 넘어서 나중에는 시총 1위의 회사로 탈바꿈할 거라는 걸.
“할아버지도 아시다시피 대현 그룹은 제가 만든 회사와 손잡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술력만을 빼먹고 이런저런 이유로 없애버리려고 하겠죠.”
“하기야…….”
“그리고 자신이 있습니다. 2년 이내에 성과를 낼 자신이.”
“제환이 네가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그건 그렇고 방금 말한 16조는 순순히 제환이 네 자산인 게야?”
“맞습니다.”
“……!!”
“최소로 잡아서 16조 정도가 발생하겠죠.”
“…….”
내 말을 듣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처음에는 경악으로 시작하더니, 점차 생각에 잠긴 표정을 변하기 시작했다.
믿기 힘들 수도 있다.
16조라는 돈.
그것도 자산이 아닌 현금으로 들어올 돈.
더욱이 최소로 잡은 수익.
이 모든 게 할아버지의 상식선에서 벗어나는 범위였으니까.
“정수 네가 단번에 할아비의 재산을 따라잡았구나…….”
“재산이 무슨 소용입니까. 한국에서 재산을 지킬 힘이 없다면, 졸부 그 이상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긴 하구나…….”
“다 할아버지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한 가지 물으마. 제환이 너는 이번 미국 대선이 공화당의 승리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게냐?”
“맞습니다. 이때까지 미국이 자체적으로 잘살기보단, 다른 나라에 퍼주기식에 실망하고 있던 일부 사람들이 공화당을 뽑게 될 겁니다.”
“우리 동성 그룹도 그에 맞춰서 한번 움직여 봐야겠구나.”
“판단은 할아버지 몫입니다.”
할아버지도 내가 이번에 얻을 수익에 대해서 욕심이 생겨서일까?
한번 도전해 본다는 말을 전했다.
그에 맞춰서 나에게 의견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동성 그룹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고, 그에 따라 어떤 이득이 돌아오는지.
이제는 그저 손자가 아닌, 한 사람의 경영인으로서 대우해 주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 나는 전생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최대한 풀어서 이야기를 해드렸고, 몇 시간가량을 대화 나눈 우리는 점심까지 같이 먹으며 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큰어머니가 좋아하셔서 다행이군.’
큰어머니에게 사인을 건네주면서, 한 가지 희소식을 건넸다.
나중에 원전 산업이 안정되면, 지우 형에게 경영을 한번 맡겨보겠다고.
전생에서야 서로 경쟁했던 사이였기에 이런 생각을 못 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한번 맡겨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하게 친척 중에서 나와 경쟁을 했던 사람이다.
대부분 초기에 나와의 경쟁을 포기하고, 나머지를 챙기는 쪽으로 노선을 돌렸다면 친척 형은 끝까지 나에게 맞서 그나마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충분히 경영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기에 JH 중공업을 한번 맡겨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대현 그룹과 경쟁이 먼저겠네.’
그 전에 대현 그룹의 공격을 막아서지 못한다면 입지가 곤란해질 걸 잘 알고 있기에, 2년 안에 최소 동등한 위치까지는 만들기로 다짐하며, 할아버지 집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 * *
티슬라 경영진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이민호 비서실장.
“긴장하지 마세요, 형찬 씨.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이들보다 높으면 높았지, 절대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티슬라라고요. 기술력만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 티슬라요.”
“당신도 기술력만으로 회장님에게 인정받지 않았습니까.”
“후……. 하긴 대한민국을 바꾼 사람이 인정해 줬는데, 자신감을 가져야겠네요.”
자신이 집중한 분야에서 높은 지식수준을 갖고 있는 사람과 만남을 기다리고 있어서일까?
형찬 씨는 긴장한 듯 보였다.
솔직히 긴장하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동안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형찬 씨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니.
물론 경영을 제외한 자동차에 대한 지식 한정이다.
하지만 그거 하나로 대현 자동차를 이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낮게 평가하니, 조금은 답답한 감정마저 느껴졌다.
“오래 기다리셨군요. 티슬라를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JH 자동차를 이끌고 있는 민호 리라고 합니다. 이쪽은 JH 자동차의 모든 지식과 연구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형찬 킴입니다.”
형찬 씨의 긴장감을 풀어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 어느새 약속 시간이 다가왔나 보다.
자신의 통역사와 일론 머스터가 함께 들어오며, 인사를 건넸다.
“제가 듣기로는 저희 티슬라와 협업을 하고 싶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욱 가서는 지분 교환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저희 JH 자동차는 역사만 부족할 뿐, 그 어떤 회사보다 앞서 나가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옆에 있는 이 남성. 이번에 기어가 발표한 기술도 여기 있는 이 남자의 머리에서 나온 거죠.”
“오!! 공정을 조금 손본 그거 말이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감탄하고 있었는데, 이거 반갑네요.”
“저도 반갑습니다.”
그동안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와서일까?
통역이 없음에도 일론의 말을 알아먹은 형찬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갑다는 말을 전했다.
“혹시 오늘 협상 카드로 가져오셨다는 것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사실은 정중히 거절하려고 했는데, 방금 말을 들으니 흥미가 동하는군요.”
“물론입니다. 자료는 준비돼 있고, 설명은 옆에 있는 이 남성이 진행할 겁니다.”
오늘 우리가 가져온 기술은 모터의 정형화.
과연 이 기술을 보고 일론 머스터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비용을 절감하는 획기적인 방법이라며, 감탄을 할까?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드리기에는 아쉽다는 느낌을 받을까?
내가 내민 자료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일론 머스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호…….”
자료를 읽으며,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일론 머스터.
그에 맞춰서 우리 둘의 표정도 같이 변하고 있었다.
이내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자료를 다 살펴본 일론 머스터가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왓 더 뻑……. 이거 뭐라고 말해야 될지…….”
“어떻게 보셨습니까?”
“일단 옆에 남성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방금 저도 모르게 나온 욕은 사과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이제 나는 옆으로 물러서 있을 차례인가 보다.
아까 나에게 관심을 주던 일론 머스터는 자료를 접하고는 시선을 형찬 씨에게 고정했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지를 건네는 일론 머스터.
일이 잘 풀린 건가 하는 희망이 들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당신을 티슬라로 납치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게 아니면, 제가 그쪽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이 상황이 짜증이 나는군요.”
“…….”
“저에게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실 수 있겠어요, 킴?”
머스터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형찬 씨.
옆에서 그 모습을 본 나는 형찬 씨가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