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 * *
방송을 보고 있던 대현 자동차의 정민우 상무.
“이런 X발. 지금 저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콰직―
도저히 방송을 보고 참지 못한 분노에 방송이 틀어져 있던 컴퓨터를 쓸어버리자, 기기들이 부서졌다.
이렇게라도 내 눈앞에서 저 자식의 얼굴이 사라지지 않으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도대체 왜 국민들은 저 새끼가 쓴 글에 열광하는 것이며, 어째서 저 자식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지.
사실 말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일개 재벌 3세 주제에 글을 썼다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바꾼다는 게.
아무리 이번 정권이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받는다지만, 저 자식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있을 만한 정권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저 자식은 재벌 3세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내 주변 친구들도 저 자식보다 모자란 얘는 없을 정도.
물론 어릴 때부터 보여준 재능을 주변 친구들도 인정해 주기는 했었다.
언젠가 동성 그룹이 10대 그룹 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되지도 않는 글을 쓴다고, 경영을 발로 찬 순간 저 자식은 재벌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사람이 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래서 국민들을 개돼지라고 부르는 거지.”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직관적인 정보에 흔들리기나 하고.
어째서 어르신들이 국민들을 보고, 개돼지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김 비서, 저 새끼가 하는 말 도대체 뭐야? 자동차 회사가 무슨 말이냐고!!”
“상무님이 신경 쓰실 일이 아닐 겁니다. 아마 객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상무님도 아시다시피 이쪽 업계가 쉬운 게 아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한국 시장은 저희가 기어 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경쟁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조금 침착하게 상황을 바라봐 주십시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저 새끼가 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 것 같아? 대현 자동차 경쟁사가 생겼다고 말할 거 아니야!! 이런 X발, 방송국이란 새끼들이 시청률만 생각하고 생방송으로 진행하니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나지.”
“…….”
“당장 알아봐. 저 새끼가 꾸미고 있는 게 뭔지. 그리고 기사를 내도록 해. 어디 돼먹지도 못한 게 경쟁이라는 말을 꺼내!? 우리 대현 그룹이 동네 슈퍼도 아니고. 아니다, 내가 저 새끼를 만나서 자신의 위치를 좀 알려줘야겠네.”
아무래도 박제환 저 자식에게 자신의 위치를 좀 각인시켜 줘야 될 것 같았다.
그전에야 동성 그룹 회장님의 눈치가 보여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갔지만, 이렇게 먼저 이빨을 들이미는 지금, 이 순간은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를 못할 것 같다.
대현 자동차가 한국 시장을 잡아먹기 위해 그간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런 노력을 일절 하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때 방송 하나로 이때까지 노력해 온 대현 그룹과 경쟁 구도를 잡는다.
이런 방법도 어떠한 성과가 있어야 통하는 거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막말 하나로 사람들에게 감언이설을 내뱉으니,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상무님. 지금은 화를 가라앉히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일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으셨는데, 한 번 더 사고를 치시면…….”
“그럼, 내가 저 자식이 하는 짓을 지켜만 보라 이거야?!”
“당장은…….”
“X발!! 당장 해결안을 가져 와! 그러려고 비싼 돈 주면서 일 시키는 거 아니야!”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이 짜증이 났다.
저렇게 도발해 오는데, 저번에 있었던 마약으로 인해 지켜만 봐야 되는 이 사실이.
저 자식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웃고 있는 저 표정이.
개돼지 같은 것들이 뭐가 진실인지도 모르고 치켜세워 주는 이 모든 상황이 짜증이 난단 말이다.
“화 좀 가라앉히지 못하겠느냐.”
“아, 아버지!!”
“김 비서 자네는 나가 보게.”
“네, 사장님. 그럼.”
분명 아버지도 방송을 봤던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시간에 이곳에 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버지! 방송 보셨어요?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입니까? 아버지가 동성 그룹한테 좋게좋게 해주시니까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거 아닙니까!”
“조용히 하지 못하겠느냐!! 동성 그룹이랑 척을 져서 우리 회사에 좋을 게 뭐냐. 득도 없는 싸움을 왜 하느냔 말이다!”
“예전에 동성 에너지랑 동성 무역이 탐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득보다 실이 더 컸으니, 탐이 난다고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느냐.”
“그럼 이곳에 도대체 왜 오신 겁니까? 저를 말리기 위해 오신 겁니까? 그것도 아니면, 저와 같은 나이인 박제환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걸 보고, 저와 비교하시러 오신 겁니까?”
이래서 더 짜증이 나는 거다.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고, 같이 경쟁하던 박제환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아버지가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늘 박제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당신도 모르게 비교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래서 박제환만은 성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늘 기도해 왔다.
그러다가 박제환이 글을 쓴다고 경영을 포기한 날.
그때만큼 인생을 살면서 행복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없던 것 같았다.
남들은 자격지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말하고 싶다.
어떻게 나보다 못난 사람에게 자격지심을 느낄 수 있냐고.
나보다 가진 것도 없고, 집안 또한 나보다 부족한 그에게 어째서 내가 그런 감정을 느낀단 말인가.
단지, 경쟁에 불과했다. 같이 경쟁하다 뒤처진 그에게 통쾌함을 느낀 거란 말이다.
“그런 거 아니니, 넘겨지지 말거라.”
“그럼 이유가 뭡니까? 동성 그룹을 이대로 놔둬야 되는 겁니까? 온 국민이 보는 생방송에서 저희를 거론하는 저 상황을 지켜만 봐야 되는 거냔 말입니다.”
“내가 아까 뭐라 했느냐. 이유가 없었다고 했지 않느냐. 동성 그룹이 이빨을 들이민 지금은 이유가 생긴 거나 다름없겠구나.”
“그렇다면…….”
“슬슬 동성 그룹을 삼킬 차례가 된 것 같구나. 이때까지 내실을 다지느라 참았지만, 기어 자동차도 인수한 마당에 참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지금 당장 움직이겠다는 겁니까?!”
다행이다. 아버지와 마음이 통해서.
나 또한 재계 순위도 낮은 동성 그룹 따위가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아버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단!! 지금은 안 된다.”
“어째서…….”
“이번에 정권이 바뀌면서 중간에 동성 그룹이 많은 일을 했다. 그것들이 동성 그룹에 영향력을 키워주게 됐지. 아마 정권이 바뀌고 1년 정도는 지켜만 봐야 될 게야. 복수는 그때 해도 늦지 않겠구나.”
“하지만… 방금 박제환 저 자식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우리 그룹과 경쟁을 하겠다고. 괜히 시간을 줬다…….”
“좀 더 차분해지거라. 자동차 회사를 만드는 게 쉬운 줄 아느냐? 아무런 내실도, 그렇다고 결과도 없는 말에 왜 이렇게 겁을 먹는 거냐.”
“겁이라뇨…….”
아버지의 말을 듣다 보니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말대로 자동차 업계가 쉬운 것도 아닐뿐더러 박제환이 말하는 자동차 회사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그런 회사와 경쟁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니…….
“1년이다. 1년 뒤에 동성 그룹과의 전쟁을 시작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예, 아버지. 제가 잠시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 버릇 좀 고치도록 해. 너도 알다시피 대현 자동차는 자연스럽게 네게 될 건데 급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예, 아버지.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말대로 대현 자동차는 결국 내 것이 될 터였다. 그런 마당에 불안함을 느꼈다는 게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내가 어렵게 해왔던 일들은 쉽게 해내는 박제환에게 나도 모를 불안감을 느꼈나 보다.
‘학창 시절과 사회는 다르다…….’
학창 시절은 배경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 시기.
사회는 배경이 전부인 만큼, 불안함을 애써 떨쳐내며 1년 뒤를 기약하기로 마음먹었다.
* * *
다음 날.
어제 했던 생방송 인터뷰가 확실히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송이 끝난 이후로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싶었기에 집에 들어와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잠자리에 든 사이, 어제의 방송이 인터넷에서 한 번 더 퍼지게 되면서 끝날 것 같던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더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작가 박제환에서 인간 박제환인가?’
이전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작가 박제환으로 향했다면, 이제는 인간 박제환 그 자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라는 인간이 방송에 비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나의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서 동성 그룹에 관한 이야기들이 인터넷을 점령하고 있었다.
지이잉―
“전화 받았습니다.”
- 욘석아! 방송이 끝났으면, 할아비한테 안부 전화는 줘야 될 거 아니냐.
“어제 너무 피곤해서 미처 고려하지 못했네요.”
- 됐고, 오늘 할아비 집으로 오도록 하거라. 어제 방송에서 얘기한 자동차 회사에서 들어보도록 해야겠구나.
“뭐…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은 할아버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할아버지에게 말해야 될까?
자동차 회사만?
그것도 아니라면, 앞으로 있을 JH 중공업에 대한 얘기까지?
아니면… 곧 마무리될 투자에 대한 결과까지 알려드려야 될까?
‘좀 더 생각해 봐야겠네.’
방금 막 일어났기 때문일까? 머릿속에 생각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음을 느낀 나는 좀 더 생각을 이어 가기로 결정했다.
“…….”
결정을 내린 내가 전화를 끊고,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자 황당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핸드폰에 찍혀있는 부재중과 문자들, 그 외 SNS 알림들.
전생을 통틀어 받은 연락보다 어제 잠든 사이에 받은 연락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시작으로 학창 시절 연락했던 친구들, 경영에서 제외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 그리고 가장 가깝게 지내는 승호, 일을 같이 하고 있는 출판사 직원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나와 인연이 있던 모두가 연락을 보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좀 바쁘겠네.’
앞으로 일주일은 좀 더 바쁘게 지내야 될 것 같다.
결국 내가 저지른 일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동안 글을 못 쓴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지금의 행동이 나중에 글을 쓸 시간을 확보해 준단 걸 잘 알고 있기에,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될 일.
할아버지와 만나서 의견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았다.
* * *
할아버지 집에 도착한 박제환.
할아버지 집에 도착해 집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사람이 보였다.
그중에 한 명이 유독 눈에 밟혔다.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지켜보는 큰어머니.
아마 불만이 많아서 저렇게 쳐다보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일을 진행하면서 큰아버지가 준비한 원전 산업 쪽을 내가 가져가기로 했기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큰아버지 입장에서도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더러운 짓을 한 게 아닌, 정당한 경쟁이었기에 더욱 미안한지도 모르겠다.
“어머, 한창 바쁜 사람이 여긴 웬일이니?”
“할아버지가 부르셔서 왔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큰어머니.”
“크흠……. 그래 어제 방송은 잘 봤다.”
“큰아버지 일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큰어머니도 아시다시피 다음 정권에서 탈원전을 지지하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어 원전 산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얘기는 됐다. 안 그래도 네 큰아버지랑 이야기를 마쳤으니까. 그건 됐고, 좀 이따 나 좀 보고 가려무나.”
“혹시 하실 얘기라도…….”
“어제 방송을 본 친구들이 사인 좀 받을 수 있냐고 하더라고……. 얘들 사이에 엄청 인기라면서? 나는 잘 모르겠지만, 부탁 좀 하마.”
“물론이죠. 그럼 이야기 좀 나누고 오겠습니다.”
뿌듯했다. 처음이나마 가족들에게 작가로서 인정받은 것 같아서.
물론 큰어머니가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다.
그래도 법적으로 이어진 가족.
더군다나 나를 좋은 시선으로 보기 힘들 큰어머니가 저런 말을 건네주니, 더욱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좀 더 열심히 한다.’
일 얘기를 나누러 온 할아버지 집.
뜻밖에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