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 *
KBK 방송국에 도착한 박제환.
오늘 생방송이 있을 방송국에 도착하니 사람들의 시선이 나한테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이내 내가 「회고록」 작가라는 걸 확인하고는 서로 귓속말을 나누기 시작하는 사람들.
「회고록」의 작가가 그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많은 차이가 있어서 그런가 보다.
‘겉모습도 괜찮은 편이고.’
사람들이 재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의 겉모습을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충분히 사람들에게 미남이라고 들을 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진 것 중에 한 가지 요소로 작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 혹시 박제환 작가님이세요?”
“네, 맞습니다. 오늘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머!! 대박!! 작가님 완전 팬이에요!! 와… 진짜 대박이다. 저는 솔직히 50대 남성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로 스물여섯 됐습니다.”
“헐… 이거 세상 너무 불공평하네……. 저보다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그런 재능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시다가 시간 맞춰서 저희가 작가님을 부르면, 그때 이쪽으로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옆에서 계속해서 이것저것 물어오는 사람.
아마 내 팬이었나 보다.
연신 놀랍다는 말과 함께 작품에 대한 질문을 던져오기 시작했다.
이런 대화가 즐겁게 느껴진 나는 작가 박제환으로서 대답해 주며, 시간을 보냈다.
‘윽… 팔이…….’
방송국에 온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대기실에서 쉬고 있는데, 아까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한둘씩 다가와 종이를 내밀더니 금세 대기실은 사인회의 현장이 돼버렸다.
그동안 내가 한 사인의 양이 전생을 통틀어서 한 사인 양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래도 작가 박제환으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니,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전생과는 관심의 종류가 크게 차이 났기 때문에 더 그런지 모르겠다.
전생에서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부정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은 독이었고.’
설령 부정적인 시선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사람들의 관심은 사업가로서 독으로 작용했다.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선, 은밀함이 최고의 무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내 외모 덕분인지는 몰라도, 다른 그룹의 회장님들보다 나에게 향하는 시선이 더욱 많았었다.
정치를 한다면 그게 이득이 될 수 있겠지만. 사업을 하는 나에게는 그게 손해로 작용했고, 그때부터 관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전생은 떨쳐내야지…….’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나는 전생의 안 좋은 습관을 버려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늘 있을 인터뷰에 대해 생각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제 JH 자동차에 대한 소식을 듣고 생각한 게, 대현 자동차와 전면전을 열어야겠다는 거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 때, 우리 그룹에 대한 소식을 대현 자동차가 듣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저기서 개수작이 들어올 건 당연한 사실.
기술에 자신 있는 우리로서는 그런 공작보다는 전면전을 하는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있었다.
오늘 방송으로 국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분명 오늘 방송을 본 사람들은 새로운 자동차 회사 등장을 반갑게 맞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작가님!! 방송 들어가시기 5분 전입니다. 준비해 주세요.”
대기실에서 오늘 있을 방송에 대해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을 때, 들려오는 5분 전이라는 말.
남은 5분 동안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오늘 있을 질문들에 대한 답변 또한 검토하며 시간을 보냈다.
* * *
“자, 이제 여러분이 그토록 기다리던 작가님을 마주할 시간입니다. 박제환 작가님을 모시겠습니다!!”
드디어 사람들에게 작가 박제환을 드러낼 시간이 다가왔나 보다.
아까 나에게 사인해 달라며 종이를 내밀었던 리포터분이 나의 자리를 가리키며, 반기는 멘트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회고록」이라는 작품을 쓰고 있는 박제환 작가라고 합니다.”
“와… 진짜 아까도 놀랍지만, 다시 봐도 또 놀랍네요. 오늘부로 신이 불공평하다는 말은 사실인 거로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젊은 남성이 잘생기기까지, 더군다나 대한민국을 뒤바꿀 정도의 전문 지식과 필력. 아주 불공평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기본적인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스물여섯 살, 웹소설 작가 박제환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간단한 인적 사항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작가님에게 가장 궁금한 것부터 풀고 가겠습니다. 혹시 미래에서 온 건 아니시죠?”
“많은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예지를 한 게 아니냐, 혹시 미래에서 온 사람이 글을 쓴 게 아니냐는 질문을요.”
“저도 장난으로 치부하고 있었지만, 방금 들은 작가님의 나이를 생각하면 신빙성이 느껴지는데요?”
“사실 글을 쓰면서, 일정 부분 현실에 있는 문제들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작품이 그런 쪽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정보를 조사하다가, 이상한 점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이 말도 안 되는 돈들은 도대체 뭔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사태는?”
“…….”
“그렇게 한 가지씩 의아한 점을 모아보다 보니, 그것들이 향하는 방향이 한 군데를 가리키고 있단 걸 알 수 있게 되더군요. 현 정권에 국정을 갖고 논 그 사람에게요. 안 그래도 주변에 들려온 소문도 있어서 모든 걸 종합해 보니,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미래에서 온 게 아니냐는 말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전생을 경험한 사람이라고 밝힐 수도 없었기에 그럴듯한 변명을 준비해 왔다.
“방금 작가님이 한 말을 들어보면, 한 가지 소문에 힘이 실리게 되는데요. 항간에 작가님이 재벌 3세가 아니냐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미리 전달받은 정보.
사실 나오기 전에 고민을 하긴 했었다.
내가 동성 그룹의 사람이란 걸 밝힐지 말지.
그렇게 고민을 이어 가다 나온 결론.
밝히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결론이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재벌인지는 모르겠네요. 아버지가 동성 무역을 이끌고 계시긴 합니다.”
“혹시 할아버지 되시는 분이 동성 그룹 회장님 맞으실까요?”
“그렇습니다.”
“……!!”
앞에 리포터는 몰랐던 사실이었을까?
내 대답을 듣고, 놀라는 게 보였다.
“그 정도면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동성 그룹이라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기업 아니겠습니까.”
“뭐… 그럴 수는 있겠네요.”
“이거 대한민국이 한 번 더 불타오르겠는데요? 혹시 작품을 집필하면서, 동성 그룹의 도움을 받은 게 있을까요?”
“사실 이것 때문에 밝힌 게 큽니다. 제 가족은 처음에 제가 글을 쓰는 데 반대가 심했을뿐더러 글을 쓰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만난 게 이번 「회고록」 작품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나서입니다. 그전에는 어떤 일체의 도움도 없었고, 동성 그룹은 어떠한 연관조차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에 하나.
동성 그룹과 나라는 존재를 별개로 만들기.
이번 답변으로 인해 소정의 목표를 달성했다.
그 후로도 리포터는 사소한 질문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들을 계속 이어 가기 시작했다.
이번 작품의 내용은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차기작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손흥만 선수와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 많은 질문을 해왔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건넸다.
“이제 슬슬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네요.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아요. 혹시 작가 박제환이 아닌, 사람 박제환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요?”
왔다. 내가 인터뷰를 하기로 한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질문.
“사실, 가까운 시일 내에 작가 박제환이 아닌, 사업가 박제환으로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거 마지막에 특종을 하나 잡았군요!! 혹시 어떤 업종인지는 알 수 있을까요?”
“자동차 업계에 출사표를 내던질 생각입니다.”
“…자동차 업계면 보통 소식이 아니군요……. 막대한 금액이 들어갈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돈도 돈이지만 기술력 또한 자신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자금 투자를 권하지 않더라도, 기술력을 알아본 사람이라면 제발 자신의 돈을 받아달라고 찾아올 날이 머지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내가 말한 것.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분명 형찬 씨의 기술력을 알아본 사람이라면 지분을 사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들고 올 거라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받을 생각이 없지만.’
하지만 내가 받을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 투자를 마무리하면 들어 올 금액.
그것과 더불어 티슬라와 이야기가 잘된다면, 서로 있을 지분 교환.
그걸로 인한 대출을 받다 보면, 충분히 다른 사람의 돈을 받지 않고 운영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사실 자동차 업계는 대현 그룹이 독점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데요. 혹시 그에 맞서는 전략이나 기술이 따로 있을까요?”
“그 부분은 앞으로 지켜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마 방금 제가 말했던 자동차 업계를 향한 출사표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시장의 원리상 한 회사가 독점한다면, 그 피해는 소비자가 부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대현 그룹이 한국 자동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대현 자동차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겁니다. 경쟁을 해보자고. 그렇게 되면 긴장을 놓지 않은 대현 자동차가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밖에 없겠죠.”
대현 그룹 입장에서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기업 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드디어 시장을 집어삼킬 수 있었는데, 난데없이 이상한 날파리가 날아와 훼방을 놓지 않는가.
더군다나 지금 당장은 날파리지만, 티슬라와 협업이 성공한다면 더 이상 날파리가 아닌 제대로 된 경쟁 상대의 등장이나 다름없었다.
‘생방송에서 말했기 때문에 더러운 짓도 쉽게 못 한다.’
지금 발언으로 아무리 JH 자동차가 실적이 없고, 무슨 회사인지 모를지언정 사람들의 인식 속에 제대로 박혔을 거다.
새로운 자동차 회사의 등장이.
‘이제 시작이다.’
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대현 그룹을 향한 공격.
가벼운 잽으로 시작했지만, 서로 링 위에 올라오게 만드는 한 방이었다.
이에 관한 인터뷰도 계속 진행하면서, 앞으로 있을 대현 그룹과의 경쟁을 생각하니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있을 사업가로서의 행보. 저희도 끝까지 기대하며, 이번 방송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내가 던진 출사표에 대한 파급력을 방송국도 알아서일까?
시청률을 생각해서인지, 이어서 들려오는 질문이 계속해서 대현 그룹과의 경쟁으로 인식이 되게 만들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대현 그룹과 비교되는 자동차 회사로 인식이 박힌 셈.
이번 방송이 성공적인 것 같아 입가에 머문 미소가 내려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