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54화 (54/175)

54화

팀장님과 통화를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 일정을 잡았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작가여서일까? 보통 녹화로 진행되는 방송과 다르게, 생방송으로 진행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생방송을 진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실수와 의도치 못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의도치 않은 답변으로 상황을 좋게 가져가자는 결론이 나왔다.

방송을 이용해서 나에게 이득을 가져오려 하다 보면, 편집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잘려나갈 게 분명했다.

‘그럴 바에는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게 나에게도 이득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번 방송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투자가 마무리되면 시작되는 경쟁.

바로 대현 그룹과의 경쟁이었다.

‘오랜만에 비서실장님과 통화를 해야겠군.’

투자를 진행하면서 비서실장님에게 간간이 연락이 왔었다.

조금씩 연구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조만간 티슬라와 약속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만약 내 생각대로 시기만 겹친다면, 이번 방송으로 많은 부분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았다.

JH 자동차의 존재를 국민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관심을 쏠리게 만드는 일.

국민들의 관심이 JH 자동차로 향하는 순간, 무형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경쟁 그룹의 더러운 수작을 막을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다면, 대현 그룹이 아니더라도 관련 그룹에서 많은 공격이 들어올 거다.

그 공격들이 합법적일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분명 더러운 수작과 함께 불법적인 일도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했다.

더군다나 지금 JH 자동차는 신생 업체.

팀원들 간의 유대감이 돈을 이겨낼 정도로 쌓여 있지 않을 거다.

대기업에서 팀원들에게 접촉해 매수하려는 순간, JH 자동차는 내부에서 썩어 나가기 시작할 거다.

이런 공격을 차단할 방법이 이번 방송이라고 생각했다.

방송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선 일의 진행 상황을 알아야 했기에.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비서실장님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네, 사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오랜만이네요, 민호 씨.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 편하게 물어보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보고드릴 게 있었는데, 사장님이 바쁜 일상을 보내시는 것 같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제가 궁금한 건 JH 자동차가 그간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물론 시기상조일 수는 있지만, 저번에 들었던 보고를 생각하면 얼추 결과가 나왔을 거라 생각이 들어서 물어본 겁니다. 절대 부담 가지지 말도록 하세요.”

혹여나 이번 질문으로 비서실장님이 부담이라도 가질까 봐 뒤에 말을 덧붙였다.

비서실장님이 JH 자동차에 합류해서 일한 기간은 약 7개월이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JH 자동차가 이제 막 시작하는 시기였기에, 형찬 씨가 연구에 들어간 시간은 그보다 더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기간 동안 성과를 못 낸 건 당연했기에, 혹시나 재촉했다고 느낄까 봐 말을 덧붙인 거였다.

- 그렇지 않아도 보고드리려는 게 그와 관련된 거였습니다. 이번에 김형찬 씨가 연구를 진행하다 하나의 성과를 냈습니다. 원래 자동차 모터는 각 트림마다 다른 모형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형찬 씨는 굳이 그래야 되나 의문을 시작해서 정형화된 틀을 만들었습니다.

“…….”

- 저는 이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별거 아닌 듯이 말하며, 이제 막 시작하려는 우리 회사에게는 도움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분명 공장을 이제 막 만들려는 저희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이득이죠. 그렇다고 기존 자동차 회사에게도 쓸모없는 연구 결과일까요?

“도움이 되겠죠…….”

-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연구 결과죠. 더군다나 조금 고생한다면, 다른 자동차 회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모터를 만들 때 각 기종마다 호환되는 틀을 만든다……. 막대한 금액을 절감할 수 있는 연구 결과이죠.

비서실장님의 보고를 듣다 보니, 어째서 그렇게 침착하던 사람이 흥분하며 말해 오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형찬 씨가 대단하단 걸 알고 있었지만, 벌써부터 들려오는 성과에 흥분이 되는 걸 느꼈다.

모든 공정에서 최고의 비용 절감은 정형화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제일 중요한 모터에 정형화를 시킨다. 그 결과가 기존 자동차 회사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성과임에 틀림없었다.

‘티슬라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기존에 많은 공장을 가지고 있고, 공정을 적용한 자동차 회사에서는 협업에 고민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멀리 보면 이득인 게 분명했지만, 당장 교체하는 데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됐으니까.

하지만 현재 티슬라는 공장을 늘리기 전.

시기상 협상할 때 가장 좋은 카드임이 분명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중에 형찬 씨를 한번 찾아봬야겠군요.”

-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티슬라와의 협상이 중요하겠죠. 일단 티슬라와도 날짜를 잡은 상태이니, 결과로 지켜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으면, 두 분 다 기대하는 거 이상의 성과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저야 괜찮지만, 형찬 씨는 특별히 챙겨주시는 게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욱 큰일을 낼 인재입니다. 아끼다가 놓치면 사장님도 피해가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가장 잘 알고 있거든요.”

- 그리고 형찬 씨가 집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내심 새로 이사 가는 집에 사장님을 초대하고 싶어 하는 거 같더라고요. 저도 물어보기 좀 그렇지만,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자리를 빛내주시는 게 어떤지…….

“저도 그런 자리 좋아합니다. 나중에도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나저나 이사를 하기에는 돈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이사를 한다는 형찬 씨.

요즘 집값을 생각하면, 최소 10억은 넘어야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배로 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동산의 가격이 높아지는 걸 알고 있기에, 형찬 씨가 좀 더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적당히 타협해서 대출과 계약금, 나중에 들어올 성과금을 생각하면서 8억 정도의 집으로 이사 간다고 합니다.

“음… 이번에 성과를 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기 문제일 뿐 성과금은 드리는 게 당연하니, 미리 자그마한 선물을 주기로 하죠. 20억 정도 집으로 계약해 주도록 하세요. 제가 입금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이 부분은 단순히 저의 선물입니다. 회삿돈도 아니고, 개인 돈이죠. 나중에 비서실장님도 이사 가실 생각 있으면 미리 말하세요. 이 정도 선물은 드릴 수 있습니다.”

- …소식을 전한다면, 분명 형찬 씨가 기뻐할 겁니다. 저는 확실한 성과 이후에 말씀드리도록 하죠.

“그럼, 일을 더 진행하다가 형찬 씨가 이사 가면 그때 한 번 모이는 걸로 하죠.”

- 알겠습니다.

비서실장님과 전화를 하며, 오랜만에 소비다운 소비를 했다고 생각한 나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최대한의 이득을 볼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제일 잘 활용할 수 있는 건 내일 생방송이다.’

지금 들려 온 성과.

그리고 내일 있을 생방송.

두 가지를 이용하면, 아까 생각했던 대현 그룹과의 경쟁에서 조금은 치고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기상 잘 맞아떨어지는 지금 상황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내일 있을 생방송.

이전에는 방송이 꺼려졌지만, 지금에 와서는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KBK 방송국.

“피디님, 과연 작가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분명 40대의 남성이겠죠?”

“그러지 않을까? 글을 읽은 사람 대부분이 분명 회사를 운영하다 퇴직한 게 틀림없다고 했으니까. 당장 50대가 가장 유력하다고 하던데?”

“하……. 진짜 우리 방송국 대박 났네요. 안 그래도 다른 방송국이랑 실적 비교돼서 스트레스받았는데, 「회고록」 쓰신 작가님 한 분 만났다고 완전히 역전이 되고.”

“그거 하나로 지금 생방송 인터뷰도 챙기고, 현 정부를 가장 먼저 저격한 방송국 타이틀도 챙겼잖아. 더군다나 앞으로 있을 드라마 촬영까지 생각하면, 진짜 박제환 작가님에게 감사드려야지.”

작가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는 피디님.

나 역시 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안 그래도 다른 방송국에 비해 이번 연도 실적이 저조해 비교를 당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런 마당에 우리 방송국이 아닌, 다른 방송국과 작가님이 계약했다면 어떻게 될까?

다가올 연말이 두려울 것만 같았다.

“30분 뒤면, 작가님 얼굴을 볼 수 있겠네요.”

“후… 나도 기대된다.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국장님도 최대한 잘 보이라고 하냐. 국장님한테 다이렉트로 연락이 올 정도면, 확실히 회사를 운영한 것 같기는 한데…….”

“소문 중에 재벌 3세라는 말이 있던 데, 이건 아니겠죠?”

“솔직히 글에 있는 전문 지식만 아니면, 재벌 3세일 수도 있지. 근데 너도 서울대 교수님 말 들었잖아. 절대 젊은 사람이 쓸 수 없는 글이라고.”

“에이… 그래도 기대는 해볼 만하잖아요. 대한민국을 흔든 작가가 재벌 3세에 미남이어 봐요. 이것보다 더한 조건이 어딨어요.”

“확실히 그 정도면 이번 방송은 흥하겠네.”

방금 내가 말 한 조건은 진짜로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사람이었다.

재벌 3세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움직일 정도의 글을 쓴다?

더군다나 전문 지식 또한 서울대 교수에게 인정받을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그 모습에 미남이기까지 한다?

이 정도면 오늘 생방송에서 한마디도 안 해도 최고 시청률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지. 지금만 하더라도 최고 시청률은 예약된 거나 다름없지.’

지금 관심을 생각하면, 최고 시청률을 보장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개인적인 희망으로는 잘생긴 남자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왕 방송을 진행하는 거 잘생긴 재벌 3세면 나도 기분이 좋을 것 같으니까.

“밖이 시끄러운 거 보니까, 온 것 같은데? 과연 소문의 주인공은 어떤 모습일까.”

“후… 피디님. 저 너무 떨려요. 진짜 방금 말했던 대로 재벌 3세에 미남이면 어떻게 하죠? 저 방송하다가 막 실수하는 거 아니에요?”

“아이고,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드라마에서나 일어난답니다.”

“지금이 드라마 같은 상황이 아니면 뭐예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담아 피디님에게 걱정을 전달하니, 그럴 일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나는 점점 가까워져 오는 소리에 긴장하며 한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꿀꺽―

발걸음 소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작가님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몇 초 남짓.

긴장하는 마음으로 침을 겨우 삼켰다.

“…….”

“…….”

“피디님… 저 방송 어떻게 진행하죠……?”

“그러게……?”

역시 드라마는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나 보다.

지금 현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 버렸다.

“미쳤다…….”

작가님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어버리는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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