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53화 (53/175)

53화

* * *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지 석 달.

이제는 점점 마무리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촛불들은 지방 할 거 없이 대한민국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고, 당연히 국민의 여론을 살피던 정치인들은 의견을 모아 입장 표명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협상을 한 게 9월 2일까지 자진으로 물러나지 않을 시, 탄핵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연히 당일이 지나고 나서도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고, 전생과 같이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며, 결국 9월 8일, 대통령은 권한이 정지되었고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하게 됐다.

‘국무총리도 여론이 있기에 함부로 하지 못한다.’

처음,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한다 했을 때, 사람들의 반발이 거세었다.

국민들이 보기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한통속. 하지만 야당에서는 자신들이 지켜본다는 말과 함께, 걱정하지 말라는 의견을 전하니 조금은 수그러드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전생보다 세 달은 줄였다.’

전생에서는 지금과 같은 일들이 12월이 돼서야 진행이 됐었다.

당연히 여당에서조차 여론이 압도적이라고 생각했는지, 탄핵을 바라보는 자세를 바꾸기 시작했고, 이는 전생과 또 다른 결과가 도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생에서는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탄핵 심판이 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3개월.

이번 생에서는 2개월 뒤면 탄핵 심판이 될 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형님은 여기까지 다 예견한 거요? 우째, 일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형님 말대로 세상이 돌아간대요. 저도 한 능력 한다고 생각혔는디 형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요.”

“아닙니다. 다행히 시기가 맞아떨어져서 수익률은 올릴 수 있겠네요.”

“어유… 말도 마요. 형님 말처럼 미국도 트럼프가 당선되면 총수익이 16조 정도 될 것 같다니까요? 워메……. 말을 뱉고 나니까, 금액이 상당허네요. 저도 1퍼센트를 받으면… 헉!! 1,600억이 제 돈이라는 거 아니요!!”

“그만한 성과를 내셨고, 세금을 생각하면 분명 수익이 줄어들게 될 겁니다.”

“아따, 그게 뭐가 중허데요. 이 정도만 혀도 부자가 되는 건디……. 막말로 재벌 중에서도 현금을 이 정도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건디…….”

오랜만에 중간 점검을 하기 위해 만남을 가진 재성 씨.

한국에서의 투자는 끝났기에 이어지는 투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자리를 만들었다.

이번 정권의 탄핵은 기정사실이기에, 한국은 끝났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이제는 미국의 대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이 정권을 가져가는 상황에 맞춰 준비해야 될 때이다.

‘다행인 건 한국에서의 일이 마무리됐다는 건가?’

한국이 내가 말했던 대로 흘러가면서 재성 씨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가 변했을 거다.

물론 그전에도 나에 대한 존경심이 엿보였고, 믿고 있는 것 같은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결과가 없는 믿음과 결과로 보여주는 믿음이 같을 수 있을까?

지금 한국에서의 결과는 재성 씨가 미국의 대선을 예측하며 진행하는 투자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거다.

“이번에 투자는 저희 JH 인베스트먼트의 시작입니다, 재성 씨. 앞으로 다가올 18년. 저희는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둘 것이며, 다가오는 해에도 유례없을 수익률을 올릴 겁니다.”

“…….”

“이번에는 처음이기에 기쁜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 즐거움이 자만이 아닌 자신감으로 향했으면 좋겠군요.”

“걱정 붙들어 매도 돼요, 형님……. 형님이랑 같이 일허는디 우째 자만을 한대요. 이번 투자도 제가 한 게 뭐가 있데요. 형님이 말해 주신 결과에 맞춘 거지…….”

“충분히 잘해 내셨습니다. 만족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재성 씨의 역할은 이다음입니다. 이번에 거둬들인 수익금으로 각종 회사에 투자를 진행할 거고, 가상화폐도 거래 금액을 조절하며, 매수에 나설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재성 씨의 판단으로 진행할 겁니다.”

앞으로 재성 씨가 할 역할은 절대로 적지 않았다.

재성 씨 말대로 지금까지의 재성 씨 역할은 작다고 말할 수 있다. 재성 씨가 아니더라도, 미래를 정해 주고 투자를 진행하라 했다면 지금과 비슷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고.

단, 앞으로 있을 투자는 단언컨대 재성 씨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전생에 재성 씨가 한국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 투자 방법.

가치 투자였다.

재성 씨가 오를 것 같다고 생각한 회사는 과정이 아닌 결과로 보여줬고, 그것들은 재성 씨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는 영향력이 됐었다.

지금은 전생보다 더 잘할 거라고 예상한다.

재성 씨의 결정을 뒤 바쳐줄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가.

“근디 혹시나 혀서 물어보는디, 형님 「회고록」 작가랑 아는 사이 아녀요? 그 소설을 읽는디 암만 생각혀도 형님이 말하는 거랑 똑같더라고요…….”

“…….”

고민이 되었다.

내가 작가라는 걸 밝히면 관계에 악영향을 가져올까?

지금 진행하고 있는 투자는?

고민을 이어 가다 말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과 같이 작가 박제환이 사람들에게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될 때가 밝히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직접적으로 물어오는 지금 말하지 않고, 나중에 이 사실을 밝혔을 때, 오히려 그때가 관계에 악영향을 가져다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소설 제가 쓰는 겁니다.”

“…….”

“지금 상황과 맞물려서 사람들에게 과한 관심을 받고 있긴 하더군요.”

“왐마!! 환장하겄네!! 참말로 그 소설을 형님이 썼단 거요? 이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신이 불공평하다고 한탄해야 헐지 모르겄네요.”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투자를 진행할 때는 말 하지 않은 게 심리적으로 괜찮을 것 같아, 나서서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네요……. 소설을 읽으면서, 형님을 제외하고도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얼마나 낙심했는디……. 세상에 형님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일 게 틀림없을 거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내가 「회고록」 작가라는 사실을 말해 주자,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던 재성 씨가 연신 대단하다며 나를 치켜세워 주기 시작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재성 씨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이번 대통령의 탄핵이 기정사실 된 지금, 대통령에게 향하던 관심들이 다른 곳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향한 곳의 목적지는 「회고록」.

이런 관심 속에서 밝혀지지 않은 작가의 정체에 사람들의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기 시작했다.

‘드러내야 되나?’

요즘 들어 드는 고민 중의 하나였다.

상황이 흘러가는 걸 보면, 머지않아 내 정체가 드러날 일이 발생할 거라고 예상한다.

그렇게 밝혀진 내 정체는 나에게 이득이 될까, 손해가 될까?

이득보다는 손해라는 결론에 생각이 닿았다.

동시에 두 개의 행동을 저울질에 올렸다.

내가 나서서 먼저 밝히고는 방송에 한번 출연하는 것.

사람들에게 밝혀져, 나라는 사람을 방송으로 해부하는 것.

전자와 비교하면 후자는 리스크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볼 때, 떠올리는 이미지 재벌 3세.

과연 그런 나를 좋게만 봐줄까?

오히려 음모론이 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바에는 내가 먼저 나서서 인터뷰를 진행하며, 사람들이 가지는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 그룹에 피해가 갈 수도 있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동성 그룹에도 관심이 쏟아질 거라는 건 당연한 사실.

지금까지는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내 이미지가 가장 좋을 때이니, 동성 그룹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는 순간 동성 그룹과 박제환 작가라는 주제가 서로 합쳐지기 시작한다.

동성 그룹의 행동은 곧 작가 박제환의 행동으로 인식이 될 거고, 나의 소설 속에 드러나는 생각은 동성 그룹의 생각으로 여겨질 테다.

‘역시 방송에 출연하는 게 낫겠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송에 출연하는 게 맞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관심도 나중에는 무기로 작용 되기에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형님은 계속 글만 쓰실 생각이요? 사실 글을 쓰면서, 회사를 운영하기는 쉽지 않을 턴디……. 가만 생각해 봉께 이게 좀 걸리네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듣고, 좋아하던 재성 씨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질문을 던져왔다.

마침 좋은 질문인 것 같았다.

어쨌거나 재성 씨에게는 회사경영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는 걸 밝혔어야 됐으니까.

이참에 관계를 확실하게 맺어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 나는 재성 씨에게 답변을 건넸다.

“이전에 말했듯 경영과 운영은 전적으로 재성 씨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이번처럼 큰 사건을 다룰 때는 제외하고요. 저는 돈도 좋지만, 글을 쓰는 게 더 좋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을 돈을 버는 데 크게 할애하고 싶지 않아요.”

“…역시 대단하시네요. 뭔가 형님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돈 정도야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네요. 절대 형님이 신경 쓰지 않게, 제가 최선을 다할게요.”

“그렇게 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행히 내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재성 씨 입장에서는 방치한다는 생각에 걱정과 함께 불만이 들 수 있는데, 좋게 생각해 준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일이 끝나면, JH 자동차라는 회사에 투자를 진행해야 됩니다. 이 점 유의해 주세요.”

“일단 일을 마무리하고 한 번 더 이야기하는 걸로 하면 되겄네요. 미국 대선까지 석 달 정도 남은 것 같은디, 그때 다시 보고드릴게요.”

재성 씨 말대로 이번 투자를 마무리 짓기까지 석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 석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도 외부 활동을 할 생각이다.

이번에 대통령 탄핵이 기정사실 되면서 옮겨진 관심.

그걸 석 달 동안 해결할 예정이었다.

“이제 편하게 술을 마시도록 하죠. 투자 얘기는 마무리된 것 같은데.”

“오! 저야 좋죠, 형님! 그럼 아우가 한 잔 올리도록 하겄네요.”

편하게 술을 마시자는 말을 듣고, 반색하는 재성 씨.

이때까지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나 보다.

나 역시 한 번의 고비가 넘었다는 생각에 오늘은 조금 편한 하루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 * *

다음 날.

“윽… 속아…….”

어제 술을 조금 과하게 마셔서일까?

일어나자 머리를 흔드는 숙취에 나도 모르게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불편한 하루를 보낼 거라고 생각이 든 나는 곧바로 해장을 위한 음식을 시킨 뒤, 하루 일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매니지에게 의견을 전달한다.’

그간 출판사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은 걸로 알고 있다.

사방에서 물어오는 나의 정체.

그걸 숨기기 위한 출판사.

물론 동성 그룹의 도움이 있다고 하지만, 곤란함을 겪었다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작가님. 전화 받았습니다.

“이른 아침에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전할 말이 있어서요.”

- 아이고, 작가님. 그런 말씀 마세요. 편하게 말씀해 주시는 게 오히려 감사하죠.

“이번에 방송을 나가서 인터뷰 형식으로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 줄 생각이에요. 관련 요청이 많이 온 걸로 알고 있는데, 한 곳 정해 주셔서 연결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오!! 드디어 작가님의 정체를 세상이 알게 되는군요!! 이거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시끄러워지겠는데요?

한국이 다시 한번 시끄러워질 거라는 팀장님의 말.

이번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팀장님 말대로 나를 향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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