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인터넷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조금 더 기름을 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회고록」에서도 각종 비리들이 밝혀지고, 문제점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제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상황을 이끌어 나가야겠다.
현실의 내가 아닌, 소설 속 주인공인 박제환으로.
마음을 결정한 나는 곧바로 집필에 들어갔다.
‘불만을 심는다.’
현재 소설의 주인공은 감정이 메말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태에서 현 정권에 불만을 품는다고 글을 읽던 사람들이 분노를 느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현실에서도 느끼는 불합리함을 심어주면 될 것 같다.
일을 진행하려던 주인공에게 돈을 바라는 대통령의 내연남. 여기서 주인공이 당하는 불합리함에 독자들의 불만을 심어준다.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단순히 돈만 바란다고 주인공이 불만을 가지기에는 개연성에서 어긋난다고 봐도 된다.
작중의 주인공이라면 그걸 이용해 돈을 불릴 생각을 하지 불만을 품고 답답함을 느낄 사람이 아니니까.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내연남이 주인공에게 불만을 느끼게 하는 한 가지. 바로 주변 사람을 건드는 거다.
작중에서 주인공이 유일하게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는 주체인 동성 그룹의 가족들을 내연남이 건들기 시작하는 거다.
국정원과 검찰을 자신의 입맛대로 움직여 주인공을 압박하는 현 정권. 그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무기력함과 동시에 분노를 느끼는 주인공.
어떻게든 복수하고자 하는 주인공.
주인공은 이 정도로 준비하면 될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일반 시민들이다.’
주인공 시점은 여기서 마무리 짓고, 사람들에게 더욱 공감을 불러오기 위해서 일반인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이번 정권 동안 말도 안 되는 일이 여러 번 생겼다.
각종 재해와도 같은 일이 생겼을 때, 국민의 입장에 서지 않고 심각성을 못 느끼던 대통령.
피해자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세상이 무너진 듯한 감정을 부여한다.
동시에 대통령의 시점으로 돌아가, 일반인과는 다른 시선으로 사건을 쳐다보는 장면을 만든다.
이걸 본 독자들은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며 자신도 모르게 작중의 대통령에게 분노를 느끼게 될 거다.
동시에 분노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준다.
‘이게 촛불 시위가 될 거고.’
분노를 느끼는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해결 방안.
대한민국을 각자의 손으로 밝혀낼 촛불 시위다.
물론 단순히 글만 보고, 촛불 시위를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그래도 괜찮다. 단 한 사람만 먼저 나서서 촛불 시위를 하는 순간, 그때 움직이면 된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사람들에게 감정을 호소한다면, 현 정권에 불만을 가지고 나의 소설을 읽다가 대통령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동참해 세상을 밝히려고 노력할 거다.
“후…….”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다시금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서일까? 작중에 있는 대한민국 현 실태에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 내가 글을 적고 있는 것처럼 동성 그룹이 피해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방금 적었던 일반인처럼 피해를 입고도, 나 몰라라 하는 정부를 마주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사실들이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개연성을 조금 무시하더라도 감정을 과잉시켜야겠군.”
등장인물의 감정 과잉은 필연적으로 개연성의 어긋남을 가져온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독자들에게 더한 감정 이입을 요구할 수 있다.
지금은 작품의 완벽성보다 사람들에 공감을 얻어내야 될 것 같다.
결정을 내린 나는 개연성을 살짝 어긋나게 만들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극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여기까지가 총 10화 분량.
아직 5화 연재가 덜 된 상태.
15일이라는 시간을 기다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 나는 뒤에 내용을 추가로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곧바로 연재 사이트에 들어가 글을 올렸다.
방금까지 쓴 15화.
분노가 극에 치달아 오르고,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 장면.
글을 연재 사이트에 올린 나는 방금 연재분을 출판사에게 넘기며 다음 장면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 * *
한 회사의 사무실.
“김 주임! 오늘 일 마무리하고 삼겹살에 소주 어때!? 완전히 죽일 것 같지 않아?”
“죄송해요, 대리님. 오늘은 일 끝나고 할 일이 있어서요.”
“할 일? 뭔데? 가정사야?”
“그건 아닙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거절을 한다 해도 그렇다 하고 넘어갔을 것 같다.
거절하는데 계속 술 먹자 하는 게 잘못된 거니.
하지만 김 주임이 거절한다니까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술을 좋아하는 김 주임이 술자리를 거절하다니…….
이 정도면 가정에 일이 생기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가정에 일이 생겼으면,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조심스럽게 질문을 이어 갔다.
“김 주임, 어려운 일 있으면 털어놔.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최선을 다해 볼게.”
“사실… 회사에 정치색 드러내는 것 같아서 말 안 하려 했는데, 이번에 집회한다고 해서 참여하려고요.”
“김 주임도 그 글 봤구나?! 그렇지 않아도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려는 게 그거였거든. 나도 그 글을 보고 막 가슴이 찌르르한 거 있지? 이게 진실인가 싶으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설마 대통령이 저런 짓을 했겠어 하는 생각도 들더라니까?”
“그거 KBK에서 보도했잖아요. 명칭이랑 사건이 조금씩 다를 뿐, 다 현실에서도 일어난 일이라고. 도저히 그걸 보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 같네요. 누구는 야근 밥 먹듯이 하면서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데, 누구는 그 세금을 받아먹고 비리나 저지르고 있으니…….”
김 주임이 술을 거부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요즘 한국에서 제일 뜨거운 주제인 「회고록」이라는 소설.
그 소설을 읽고 많은 상실감과 분노를 느꼈나 보다.
이번에 내가 술을 마시자고 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였다.
나 역시 연일 화제인 「회고록」이라는 소설에 관심을 가졌고, 글을 읽다가 가슴이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든 이 답답함을 풀고자, 댓글을 확인하니 모두가 하나가 되어 외치고 있었다.
우리도 소설의 국민처럼 들고 일어서자고.
그 댓글을 확인하고 나는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소설로 사람들을 이렇게 뭉치게 만들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이게 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 문제지…….’
만약 소설에서만 일어났던 일이면, 이 정도로 답답함이 느껴지진 않았을 테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면,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게 했던 사건들.
그 모두가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서 더 감정이 격해진 것 같았다.
“근데 김 주임. 사람들이 많이들 참여할까? 사실 그런 데 나갔다가 찍힐 수도 있고, 시간만 낭비한 건 아닌가 모르겠네.”
“모르겠어요. 시간을 낭비해서라도 이 답답한 감정을 해소해야 될 것 같아요. 아무도 나오지 않아도 좋아요. 저 혼자여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현실에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해야겠어요.”
“…….”
“절대 강요하는 거 아닙니다. 그래서 말 안 하려고 했던 거고요. 이 대리님이 괜히 이상한 상상하실까 봐 그냥 말한 겁니다.”
김 주임의 말을 들으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세상은 저런 작은 움직임 하나로 변화하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동시에 그래도 바뀔까 하는 회의감이 동시에 들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고민하는 게 느껴졌을까? 김 주임이 절대 부담가지지 말라는 말을 전해 왔다.
사실 나도 나가서 이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다.
김 주임 말대로 야근하며 세상이 좀 나아지고자 애써 가슴을 삭히며 낸 세금. 그 세금이 다른 사람의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는 데 사용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한다고 뭔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에 망설임이 더 컸던 것 같다.
“김 주임님!! 혹시 저도 같이 갈 수 있을까요!? 이거 빨리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저도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요. 안 그래도 일 끝내고 광화문으로 가려고 했는데, 같이 갑시다!”
“저도 추가요~ 제가 뭘 한다고 바뀔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기엔 답답하네요. 저도 마무리하고 합류하겠습니다.”
“크흠… 김 주임. 나도 같이 감세. 요즘 한국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아. 뭔가 바뀔지 모르겠지만, 같이 노력해 보자고. 당장 우리 사무실만 해도 이렇게 바뀌었는데, 뭐라도 변하지 않겠어?”
“…….”
김 주임과 나의 대화를 듣던 사람들이 모두가 함께하겠다는 말을 전해 온다.
심지어 이번 정권을 지지하던 부장님조차 말이다.
처음에는 변화할까 하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의문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변하지 않아도 좋다. 단, 내가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주임!! 나도 같이 갈 테니까 다들 일 빠르게 마무리 짓자고!! 부장님, 오늘은 다들 야근 없이 광화문으로 가도록 하죠!!”
“그래. 다들 하던 거만 마무리하고 다 같이 이동해 보자고. 이렇게 하다 보면 뭐라도 변하지 않겠어? 움직이지 않는데 세상이 바뀌길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되잖아.”
지금 사무실에 있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한국이 바뀌길 원하고 있다.
변화의 시작을 외치는 사람이 지금은 이 작은 사무실 하나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좋다.
원래 변화는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어떻게든 가슴 속에 있는 이 응어리를 풀고 싶은 나는 빠르게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팀원들의 업무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게.
이 마음이 단순히 우리들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길 바라며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 * *
뉴스를 살펴보고 있는 박제환.
‘시작됐나?’
드디어 시작됐나 보다.
전생에서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던 그 집회가 말이다.
상황을 살펴보니, 아직까지는 규모가 미비하게 느껴졌다.
‘이게 시작이라는 거지.’
지금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스스로 움직여 모이기 시작했다는 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하야를 외치고 있다는 점.
이것만 보더라도 이미 폭탄에 불은 붙었다고 볼 수 있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다행이군.’
만약 대통령이나 그 뒤에 있는 내연남이 조금만 똑똑했더라면, 이 정도까지 사태를 관망하지 않았을 거다.
애초에 시발점인 내 소설부터 제재에 들어갔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머리가 나쁜 걸 넘어서 오만하기까지 했다.
고작 이런 일들이 자신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릴지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아니, 지금도 생각조차 못 하고 있을 거다.
지금의 작은 촛불들이 한국의 그림자를 밝혀낼 태양으로 성장한다는 걸.
그들이 버틴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잘 가라.’
그간 국민들의 세금을 자신의 입맛대로 썼던 두 남녀.
이제는 심판받을 때가 다가온 것 같다.
심판의 주체는 국민.
국민들이 판사가 되어 그들에게 형벌을 내릴 거다.
오늘은 이번 일을 통해 들어 올 수익보다, 글로써 사람들에게 다가갔다는 이 사실이 너무 황홀한 감정을 느끼게 해줬다.
글을 읽고, 스스로 움직여준 국민들을 보고 행복한 것도 마찬가지.
지금의 흐름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게 앞길을 터야 했기에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