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 * *
KBK 방송국.
“국장님, 하루라도 빨리 저희가 선점해야 됩니다.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가야 관심을 쓸어 담을 수 있다고요.”
“나라고 그걸 모르는 것 같아? 임 팀장, 제대로 된 정보는 갖고 지금 밀어붙이는 거야? 확실한 정보가 있어야 방송할 거 아니냐고. 우리가 무슨 유사 언론도 아니고, 확신이 없잖아, 지금.”
“하… 확신은 뒤에 가서 찾아보는 거고, 지금은 불씨라도 던져야 된다고요. 국장님은 억울하지도 않으세요? 우리나라 국민이 어렵게 낸 세금으로 내연남에게 갖다 바치고 각종 법안을 자신에 입맛에 맞게 조정하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요.”
“나 참……. 임 팀장, 내가 언제 안 한다 했어? 잠시만 시간을 달라는 거잖아. 왜 이렇게 급하냐고.”
“저도 알고 있는데 억울해서 그러죠.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주관도 없이 사이비 말을 듣고, 한국을 조종하는 이 상황이 얼마나 말이 안 됩니까.”
임 팀장이 하는 말.
나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주관도 없이 내연남의 말을 듣고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국정을 농락하고 있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임 팀장과 나와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정보량의 차이.
나 역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면, 임 팀장처럼 불씨라도 던졌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조만간 한국이 크게 바뀔 거라는 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 부국장에게 제보가 들어 온 정보를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똑똑―
“들어와.”
임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임 팀장은 물러갈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부국장.
지금 상황에 그의 입장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밀어붙이고 있는 임 팀장에게 설명할까 말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부국장의 보고를 같이 들으면, 어떠한 설명 없이 진행해도 될 것 같다.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말이다.
“국장님, 지시 내렸던 것들 모두 조사를 마쳤습니다.”
“어때? 기자들이 가져왔던 정보들이 다 사실이야? 끝에 그 사람이 닿아 있냐고.”
“전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일을 진행하면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은 대기업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마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고요. 아마 꼬리 자르기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그것만 해도 어디야. 이제 진짜 움직여도 될 것 같네.”
“부국장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혹시 이번에 기자들이 모아 온 정보들을 전부 조사했다는 겁니까?”
“임 팀장. 자네가 아는 걸 국장님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국장님의 위치가 있기에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던 거야. 여기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데스크 한번 구성해 봐. 언론인의 역할이 뭔지 보여주라고.”
“ 부국장님…….”
“참 나. 지시를 내린 건 난데 멋있는 역할은 부국장이 하는고만. 임 팀장, 알아들었으면 어서 나가서 일 봐. 속보로 구성해서 내일 바로 방송 구성해 봐.”
“국장님!!”
관련 서류를 받아 들고 나를 쳐다보는 임 팀장.
이런 것들을 보면 아직까지 한국은 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들 대부분이 기레기 혹은 언론은 썩었다며 많은 비난을 해오지만, 아직까지 임 팀장같이 언론인의 자세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사건은 나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임 팀장에게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전했다.
‘다행히 윗선에서도 허락을 내렸나 보군.’
만약 윗선에서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이런 방송도 내보낼 수 없을 거다.
부국장에게 조사를 맡기면서 동시에 내렸던 지시.
윗선의 의사를 확인해 보라는 말이었다.
부국장이 말이 없는 걸 보니 허락받았나 보다.
이번 대통령을 끌어내리는걸.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한 마음과 동시에 기대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임 팀장. 방금까지 했던 말은 그냥 내뱉은 말이야?”
“아, 아닙니다!! 그럼 나가서 일 보겠습니다!!”
일 보겠다는 말과 함께 허겁지겁 나가는 임 팀장.
저런 직원들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국장 자리에 앉으며 그간 회의감도 많이 느꼈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일내 보고 싶었다.
그 첫 번째. 내일 속보가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돼 줄 거라 생각했다.
* * *
대구 검찰청 앞.
드디어 한직으로 물러놨던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솔직히 후회도 많았었다. 괜히 정권을 가진 대통령에게 칼을 겨눠 검사 인생이 끝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감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찾아온 동성 그룹의 사람. 뒤를 봐준다는 말과 동시에 임명된 특검팀 팀장 자리.
검찰의 모든 수뇌부가 압박해 오던 그때와는 상황 자체가 달라졌다.
이제는 수뇌부 사람들이 격려를 해줄 정도.
어서 빨리 대한민국을 정상적인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늘 검사 생활하면서 불만이 많았었다.
검사들이 법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닌, 사람에 따라 움직이는 그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내게 새로운 기회가 왔으니, 제대로 철퇴를 내려 볼 생각이다.
국정을 가지고 논 그 사람을 향해 말이다.
찰칵찰칵―
“이석후 검사님, 이번에 새로운 특검팀장을 맡으신 소감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번에 정권을 향해 칼을 빼 들다 한직으로 밀려난 경험을 갖고 계십니다. 혹시 그에 대한 복수가 아닌가 하는 의견들도 다수 존재합니다.”
“모든 건 결과가 알려줄 겁니다. 이번에도 제가 진다면, 그때는 외칠 겁니다. 대한민국이 썩었다고. 하지만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아직 대한민국에 정의는 살아 있다는 걸.”
“그렇다면 아직까지 현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하고, 여론을 조작했으며 자신의 비리를 위해 국정원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주장하시는 겁니까?”
“단 한 번도 외면한 적 없습니다. 국정원을 압수 수색을 하는 그 날부터 저의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삼국일보 김현성 기자입니다. 이번에 「회고록」이라는 소설에서 현 정권을 저격하는 듯한 글이 보였습니다. 혹시 확인해 본 적 있으십니까?”
“하도 시끄러워서 읽어봤습니다.”
이번 사태를 수면 위로 올랐던 소설을 기자가 물어온다.
처음 그 소설을 접했을 때, 국정원에서 일하던 사람이 소설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때까지 대통령이 저지른 비리, 그리고 청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
이 상황들이 소설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지 않던가.
이 소설을 쓴 사람이 걱정된 동시에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증이 들었었다.
기자가 물어오는 걸 보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나 보다.
“소설을 읽고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현 정권의 실태가 소설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고. 소설을 읽고 댓글들을 확인하니 말도 안 된다며 현실성이 없다는 의견도 많이 존재하는 것 같더군요. 단언합니다. 현 정권이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현실에서 하고 있다고요.”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얘깁니까?”
“지금부터 제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일들이 허구가 아닌 사실이라는 걸 밝혀내는 거겠죠.”
“대기업들에게 뇌물수수 혐의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수색 범위 안에 있습니까?”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벌을 받을 겁니다. 법대로 수사를 진행할 뿐, 그 어떠한 외압도 저를 막아서지 못할 겁니다.”
안타까운 사실이다. 대기업 회장까지는 내 칼이 닿을 수 없다는 게.
하지만 이걸로 만족해야 한다.
만약 대기업 회장까지 칼을 들이민다면, 수사를 시작조차 못 하고 다시 한번 한직으로 물러나야 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을 처벌하기보단 대한민국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게 중요했다.
마침 여기저기서 의문들이 들려오고 있고, 수면 위로 문제점이 드러난 상황.
지금 상황을 이용해서 속전속결로 대통령의 목 밑으로 칼을 들이밀어야 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대통령이 머리가 좋지 않다는 것.
지금도 자신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을 거다.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됐을 때.
사람들이 많은 불만과 의아함을 가지고 있을 때.
수뇌부가 압박을 가하지 않은 지금, 빠르게 일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럼 기자회견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다음 기자회견은 법정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검사님!! 질문…….”
“한 가지 질문만 더!!”
“이 검사님!!”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진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상황이 아깝다고 느껴졌을까? 기자들이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나를 찾는 기자들.
나중에는 기자들을 넘어 전 국민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도록 만들기를 다짐하며, 칼날을 대통령에 목 끝에 겨누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방에 앉아 있는 박제환.
요즘 들어 여기저기에 뿌려졌던 씨앗들이 제대로 발아하고 있었다.
일단 KBK 방송국.
KBK에서 현 대통령의 내연남 태블릿 보도 이후, 안 그래도 내 소설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던 문제점들이 이제는 아예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상황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목소리.
시작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검사님도 잘 움직이고 있고.’
동성 그룹의 뒤를 약속한 이 검사님.
뒤가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아니면 수뇌부끼리 말을 맞춰놔 아무런 압박이 없어서일까?
이전에 국정원을 압수 수색할 때보다 더욱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기업들도 꼬리는 이미 잘랐고.’
이번 정권에 뇌물을 바친 기업들도 각자 꼬리를 잘라 준비를 마친 상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데 걸림돌이 없다는 얘기다.
이제야 대한민국이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게 느껴졌다.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하야를 외치는 시기.
사람들이 말로 하는 시기도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자진해서 하야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국민들이 직접 들고 나설 차례다.
각자 자신들의 소망을 담은 촛불을 들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와 어두운 한국을 불빛으로 밝힐 차례.
이번 생도 전생처럼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고,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리게 될지 궁금증이 들었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 흘러가도 좋다.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게 기정사실이 되었으니.
재성 씨가 움직이는 데에는 변화가 없을 거다.
‘곧 있으면, 소설 속에서도 촛불을 들고 일어난다.’
이렇게 되니 소설과 시기가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뒤 소설 속에서도 대통령의 비리와 내연남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뛰쳐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현실에서 많은 시간이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나올 시기가.
‘나비 효과 따위는 내가 다시 바꿀 수 있다는 얘긴가?’
이번에 느꼈다. 나비 효과를 겁낼 필요가 없다고.
변화가 생기면 나 역시 변화를 주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며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글로 말이다.
지금 흘러가고 있는 상황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시작될 대현 그룹과의 경쟁.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