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인터넷의 반응을 확인해 보니,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일단 각종 커뮤니티에서 슬슬 음모론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이런 글들이 올라올 경우 부정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내 글을 읽고 그에 관해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말들이 있어서일까?
사람들이 진짠가 하는 반응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사들도 올라오기 시작했군.’
그다음으로 올라오고 있는 기사들.
확실히 정보를 교차 검증한 기사들이 아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정리해서 올라온 기사들이었다.
한마디로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도 노출되기 시작했다는 소리.
인터넷의 반응을 확인하고, 제일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10위라…….’
실시간 검색어 10위에 ‘회고록’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회고록은 내 소설의 제목.
이제는 폭탄이 준비됐다는 게 느껴졌다.
여기서 누군가가 작을 불씨를 지핀다면, 감당할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된다.
그 불씨를 붙이는 것은 동성 그룹이 접촉하고 있는 검사.
지금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으니, 조만간 불씨를 지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확인을 마친 나는 핸드폰을 들어 재성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재성 씨, 저예요. 마지막에 말했던 대로 움직이면 될 것 같습니다.”
- …진짜로 석 달 뒤에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다, 이 말이요, 형님?
“이미 움직임은 시작됐습니다. 이제는 누가 나서도 막기 힘들 겁니다. 원래 균열은 작은 곳에서 시작되거든요.”
- 아따… 안 그래도 요즘 분위기가 이상허다고 생각혔는디……. 대통령에게는 다시 없을 악몽이겄네요…….
“우리에게는 다시 없을 잔치가 될 거고요.”
- 우째, 한 살 차이밖에 안 되는디 이렇게 차이가 난데요……. 완전히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시네. 일단 최선을 다해서 움직여 보겄네요.
재성 씨도 준비를 하겠다는 대답을 했다.
방금 재성 씨에게 말했듯, 불붙은 폭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설령 모든 걸 준비한 나라고 해도 말이다.
이 끝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있는 나는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거다.
그 막대한 이득은 다시 한번 나의 영향력이 돼 줄 거고.
전생에서는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이겠지만, 이번 생은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을 내가 만든 거라고.
이런 기분 좋은 오해.
충분히 이용해야겠다.
이 오해는 나중에 대현 그룹을 집어삼킬 무기가 돼 줄 거다.
대현 그룹이 끝이 아니다. 대현 그룹을 시작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삼오 그룹. 그리고 삼오 그룹을 다리 삼아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그룹들.
나중에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런 그룹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글을 쓰고, 똑같은 영향력을 가지면 어떨까?’
글을 통해서 앞당긴 이번 대통령의 탄핵.
그 어떠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주인공이 돼서 독자들에게 개혁을 외치는 그 기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공감할 수 없을 거다.
전설적인 가수 중에 노래로 전쟁을 멈춘 사람이 있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글을 쓰고, 그걸 통해서 전쟁을 멈출 수도… 개혁을 이끌어 낼 수도 있는 그런 작가가 말이다.
이번 탄핵은 그 길을 들어서는 시발점이라고 생각한 나는 계속해서 상황을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 * *
동성 그룹 회장실에 앉아 있는 박대호 회장.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회장님.”
제환이와 만남을 가진 지 일주일.
이제는 인정해야 될 것 같다.
제환이 말대로 한국이 변하고 있다고.
지금까지 들려오는 반응들은 태풍이 불어오기 전 고요함과도 같았다.
모두가 변화를 감지한 듯, 조용히 물 밑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한국.
이 모든 걸 제환이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니 오랜만에 소름이 돋았다.
“대성이 너도 「회고록」이라는 소설을 알고 있느냐?”
“제환이가 쓰고 있는 소설이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읽었느냐?”
“확실히 제환이 나이에 맞지 않게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고, 날카로운 식견을 가지고 있더군요. 하지만 너무 위험한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이번 정권에 찍히기라고 할까 봐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무리 레임덕이 온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마지막에 힘을 쓸 정도는 될 겁니다. 혹여나 제환이의 글을 읽고 우리 그룹에 피해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자신의 큰아들인 박대성은 이게 아쉬웠다.
분명 소설대로 한국이 흘러가고 있단 걸 생각해 볼만도 하건만, 자신의 조카가 썼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게 느껴졌다.
자신도 알고 있을 거다. 그 안에 적힌 지식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인정이라도 했다가는 자신의 위치가 또다시 애매해질까 그게 두려운 거다.
“지금 한국이 심상치 않은 건 알고 있느냐?”
“그것도 제환이 글을 읽은 일반인들이 뭣도 모르고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제환이가 글을 쓰고 그런 영향력을 갖췄다는 게 신기하긴 하더군요.”
“그런 호들갑을 대기업 회장도 떨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
“이번에 다들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차라리 이번 정권을 빠르게 갈아치우고 다음 정권에 잘 보이기로.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환이가 그 사실들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더욱 위험하군요. 그런 사실을 소설에 적다니…….”
“선후 관계가 잘못됐구나. 제환이의 글이 먼저였다.”
“…….”
아마 외면하고 싶었을 거다.
자신의 조카가 이런 일들을 만들어냈다는 걸.
하기야 나조차 이번 일을 겪으면서, 촘촘한 그물망과 그에 맞는 자료들. 그것으로 얻는 이득들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정권을 교체시키면서 기득권 중에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 대통령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러니 대기업 회장들도 흔쾌히 알겠다는 대답을 건네며 넘어갔던 거다.
각 당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
여당은 이미 느끼고 있었을 테다. 자신들이 다음 정권을 가져가기 힘들다고.
그걸 이용해서 그나마 자신들의 손으로 끌어내리겠다는 이미지를 챙길 수 있게 했다.
야당들도 마찬가지. 이번 정권 덕분에 야당들은 여당이 될 기회가 생겼다. 다음 정권을 가져가며 대기업들과 이야기를 미리 마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한 정권 교체란 말인가.
대통령과 그 내연남, 두 사람을 제외하고 서로가 이득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대성이 네가 준비하고 있던 원전 산업, 그거 포기하고 제환이한테 넘기기로 하거라.”
“아니,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원전 산업을 포기하라니요!! 제가 그걸 위해서 이때까지 썼던 돈과 시간이 있는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조용히 못 하느냐?! 여긴 회사다. 회장님이라고 부르거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건 쓸모없는 짓이니까, 그렇게 알고 좋게 정리해서 넘길 준비나 해.”
“…그렇게 못합니다. 제대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순순히 넘겨줄 수 없습니다.”
“에잉, 쯧쯧……. 이렇게 상황판단이 느려서야……. 정환이도 알고 있는 걸 대성이 네가 모른다는 게 답답하기만 하구나.”
이래서 큰아들에겐 동성 에너지를 맡겼던 거다.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재벌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동성 에너지.
판단력이 부족하고 욕심이 많은 대성이에게는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그런 걸 모르고 이렇게 욕심을 내다니.
다시 한번 2세 중에는 인물이 없다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제환이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나마 3세 중에 제환이가 있어서 안심이 됐거늘…….
“납득하게 설명해 주십쇼, 회장님. 분명 회장님도 허락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야당에서 대선에 출마할 사람과 만나고 오늘 길이다. 그 사람이 가장 크게 미는 공약이 탈원전이라더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큼은 꼭 지키겠다며, 탈원전에 반대하는 세력은 적폐 세력으로 간주한다는구나.”
“…….”
“원전 산업을 지키고 얻을 이익보다는 실이 한참은 높아. 이번 정권이 이렇게 끝났는데 다음 정권은 최소 두 번은 야당에서 가져간다. 10년 동안 버틸 수 있겠느냐? 그렇게 버텨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이득이 있을지언정, 그게 동성 그룹이 받는 피해를 감수할 정도라고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제환이가 가져가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환이는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사업을 한다더구나. 그리고 너와 다르게 원전 산업을 유지할 뿐, 더욱 나아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고. 너도 그렇게 할 생각이라면 끝까지 버틴다고 해도 뭐라 하지 않도록 하마. 단, 동성 에너지 사장 자리는 반납해. 동성 그룹은 손 떼는 걸로 할 테니까.”
“제환이는 동성 그룹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얘깁니까?”
하기야 대성이 입장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자신이 이때까지 준비했던 사업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제환이가 가진 재산이 없으니.
하지만 하나만 알고 열은 모르는 것 같다.
지금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은 제환이가 만들어 놓은 밑그림이다.
그런 아이가 돈을 벌고자 한다면 원전 산업의 유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다.
큰아들 녀석은 자신이 준비한 사업을 뺏긴다고만 생각해, 좁아진 시야에 그 뒤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나 보다.
“지금 한국에 불어오고 있는 바람. 이 밑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아느냐? 바로 제환이가 처음부터 준비한 거다. 우리 동성 그룹은 제환이가 준비한 그림에 물감을 들고 색칠만 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국내 그룹에서 보이지 않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됐지.”
“…….”
“그런 아이가 우리 그룹의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진정 내가 너희 세대를 건너뛰고 제환이에게 후계자 자리를 맡긴 이유를 모르겠느냐? 다시 한번 회사로 돌아가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거라. 네 녀석이 무시하던 조카가 어떻게 한국을 움직이는지.”
“…지금은 시야가 좁아진 느낌입니다. 한번 회사로 돌아가 머리를 식히고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너의 빠른 반성이 그나마 동성 에너지 사장 자리를 유지하게 해주는 거다. 네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욕심을 버리고, 가지고 있는 강점을 생각하고 움직이도록 노력해 보거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머리를 식히겠다는 말을 끝으로 인사를 하고 나가는 박대성.
대성이도 자신만의 강점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공격적인 확장보다 수비하는 데 재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
그렇기에 확장보다는 현상 유지가 중요한 동성 에너지를 맡긴 거다.
이번에 머리를 식히고, 자신이 가진 강점을 생각하고 그 부분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도 지켜봐야겠군.’
동성 그룹이 나서서 하는 색칠도 끝나 가고 있다.
이제는 불어오는 태풍을 지켜봐야겠다.
과연 제환이가 생각하는 대로 국민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을까?
이 과정을 지켜보는 거 또한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