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이번에 큰아버지가 원전 쪽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너도 원전 쪽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게냐?”
“그것도 맞지만, 어차피 동성 그룹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업입니다.”
“그게 무슨 소린 게냐. 제환이 너도 정환이랑 같이 원전 산업의 미래를 안 좋게 생각한다는 게야?”
이전에 정환이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할아버지를 찾아가 큰아버지가 진행하는 원전 산업에 반대하라고.
원전 산업을 계속 이어 가기에 아직 말을 하지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말을 했지만, 원전에 가능성을 느낀 할아버지가 허락을 해주셨나 보다.
“먼 미래에는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당장 10년 뒤가 될 수 있고, 20년 뒤가 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어째서 원전을 너에게 넘겨야 되는지 설명해 보거라. 대성이가 납득할 이유가 필요하겠구나. 그게 아니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제환이 네가 원전 산업을 가진다고 이어 갈 수 있는지도 궁금하구나.”
“천천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방금 말했든 동성 그룹은 원전 산업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어떠한 부연 설명 없이 아까와 같은 말을 해서일까?
할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동성 에너지 단일 회사라면 그나마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동성 에너지는 동성 그룹의 계열사. 동성 에너지로 인해 동성 그룹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구나.”
“제가 보여줬던 대로 이번 대통령이 탄핵당한다면, 자연스럽게 야당에 있는 민주당이 정권을 가져갈 확률이 높습니다. 민주당이 이전부터 말해 왔던 탈원전은 공약으로 가져가기 아주 좋은 분야입니다.”
“…….”
“탈원전만큼 좋은 공약이 없을 겁니다. 임기 동안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고, 운이 좋다면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공약이 말입니다. 임기 동안 다른 나라에서 원전으로 인한 피해를 입는다면, 이번 정권은 반대급부로 그에 대한 칭찬을 받을 겁니다.”
“그게 끝이 아닐 텐데.”
“더군다나 민주당은 친중 친러의 행보를 가져가고 있습니다. 탈원전한다면 자연스럽게 러시아와의 관계를 다질 수밖에 없죠. 그만큼 러시아의 천연자원은 매력적인 자원이니까요. 당연히 다음 정권을 잡은 대통령은 원전 산업에 압박을 넣기 시작할 겁니다. 할아버지는 5년 동안 동성 그룹이 압박 속에서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다음 정권 또한 민주당이 잡는다면요?”
“…….”
할아버지가 나처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모르겠다.
다음 정권 또한 야당으로 정권 교체가 된다는 걸.
하지만 그런 미래를 예상하기 쉽지는 않을 거다.
이번 대통령이 탄핵당한다면 자연스럽게 민주당이 국회 의원 수를 더욱 많이 가져갈 거고, 다음 정권인 민주당은 더욱 장기 집권을 할 거라고 예상할 테니.
그렇게 되면 최소한 민주당은 임기가 10년. 과연 그동안 동성 그룹은 정권의 압박을 받으면서 원전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렇게 버틴다고 해도 원전으로 인한 이득이 정권의 압박에 의한 실보다 높을까?
한마디로 동성 그룹에 있어 원전 산업은 보기 좋은 계륵이라는 얘기다.
“확실히 제환이 네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알겠구나.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구나. 도대체 그런 원전 산업을 제환이 너는 어째서 가져가려는 거고, 어떻게 유지하려는 거냐?”
“첫째, 저는 동성 그룹처럼 정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권이 어떠한 수작을 부린다고 해도 크게 피해를 보지 않을 거고요. 둘째, 제가 말한 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대한민국에 다시 없을 전설적인 펀드 매니저가 탄생하게 되죠. 저는 5년 동안 현상 유지만 할 생각입니다. 원전 산업이 후퇴하지 않게요. 다른 그룹과 다르게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거죠.”
“…….”
“마지막으로 자신이 있거든요. 그 모든 걸 버텨내고 큰 메리트를 가진 회사로 바꿀 자신이. 할아버지가 제 말을 듣고도 원전 산업을 고집하신다면 크게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다음 정권에 큰 피해를 보고 철수할 수밖에 없을 테니.”
내 말을 들은 할아버지가 고민에 빠진 게 보였다.
사실 이번 제안도 어떻게 보면 호의에 가까웠다.
내 입장에서는 다음 정권에 들어가서 버티지 못할 동성 에너지가 원전 산업을 포기하면, 그때 움직여도 되니까.
물론 그렇게 되면 조금 귀찮기야 하겠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한 귀찮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내 말을 오해하지 않고 정상적인 판단을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은 내가 대성이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마. 분명 쉽게 주지는 않을 게야. 다음 정권에 들어서고 대성이가 현실을 마주할 때, 그때 넘기도록 하마. 그때 넘기는 게 제환이 너한테도 이득이지 않으냐.”
“그럼 저야 고맙죠.”
“우리 그룹이 이번에 어떻게 움직이면 되겠느냐. 한번 도전해 볼 때가 된 것 같구나.”
“동성 그룹의 역할은 많지 않습니다. 그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가져가면 되지요. 일단 제가 말했던 검사를 만나 후원을 약속해 주세요. 자료도 넘기면서요. 그다음은 이번 정권이 교체되면서 피해를 볼 대기업 회장님들과 만나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분명 민주당 의원들도 대기업들이 큰 피해를 보는 걸 원치 않을 겁니다.”
미우나 좋으나 대한민국에서 대기업들이 가진 위치가 적지 않았다.
국회 의원들도 대기업들과 가지고 있는 관계도 있었고, 대기업들이 무너진다면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도 넘쳐날 테니.
이걸 빌미 삼아 대기업 회장과 민주당 의원들의 중간 다리를 동성 그룹이 자처한다면, 충분히 일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도 없을 테고 그 안에 존재하는 영향력도 챙겨나갈 수 있을 거다.
‘검사는 중간 관계를 유지하면 될 테고.’
동성 그룹에서 만날 검사는 중간 관계를 유지시키면 될 것 같다.
분명 이번 정권 탄핵에 앞서는 검사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관심을 받을 거다.
그런 관심을 받은 검사를 민주당이 무시할 수만은 없을 테고, 그렇게 되면 검사는 다음 정권에서 한 자리를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유지하다 보면 계륵 같은 검사는 대통령에게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눈엣가시인 검사는 결국 청와대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런 검사를 야당에 입당시켜 다음 정권을 준비시키면 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그다음의 대통령은 동성 그룹의 사람이 된다.’
그 모든 게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환경 범위를 넓혀주는 영향력이 돼줄 거다.
동성 그룹과 나에 대한 미래를 위해서 이번에 움직임은 한 치의 오차도 존재해서는 안 됐다.
내 머릿속에 있는 계획들을 할아버지가 완벽하게 이해해야 했기에, 오늘 하루는 할아버지에게 시간을 양보하기로 결정했다.
‘3일 뒤 시작하면 되겠군.’
모든 계획은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3일 뒤에 시작하면 될 것 같다.
이미 그렇게 상황을 만들고 있었고.
3일 뒤, 과연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움직일 수 있을지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 * *
KBK 방송국.
“팀장님, 이거 한번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
“이번에 저희랑 드라마화하기로 계약한 원작 소설 있지 않습니까?”
“「회고록」이라는 소설?”
“예, 그거 말입니다. 지금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번에 계약한 「회고록」이란 소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이 대리.
새삼스럽게 왜 그런 말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회고록」이라는 소설의 반응은 심상치 않았다.
내용적인 면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전문 지식은 서울대 교수조차 놀랄 정도였지 않은가.
그로 인해 많은 화제를 불러왔건만, 새삼스럽게 왜 똑같은 말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원래 반응 좋았잖아. 이 대리가 몰라서 그런가 본데, 그거 국장님께서 담당 작가한테 최대한 맞춰주라고 해서 한 번 더 시끄러웠었잖아.”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소설 내용이 현 정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저만 그런 게 아닌가 봐요. 사회적 위치가 높은 여러 명이 이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면서 각종 SNS에 올리고 있어요.”
“뭐?! 그게 정말이야? 무슨 내용인데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거야?”
“이게 조금 위험할 수 있는데……. 지금 정권의 대통령이 허수아비라는 내용과 그 뒤에 있는 사람이 각종 비리와 뇌물을 받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게 진짜야?”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원래는 보고만 받고 말려고 했다. 드라마화하기 전에 이런저런 논란이 생기는 건 다반사였으니까.
하지만 이 대리가 말한 내용은 무시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양날의 검이 되는 거다.
지금 정권에 밉보일 수도 있는 내용. 그게 아니라면 정권 교체를 위한 신호탄이 되는 내용.
두 가지 중 무엇이 됐든, 작품이 또 한 번 대중들에 관심을 받을 거라는 건 사실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급한 마음이 든 나는 서둘러 소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
한 시간 동안 소설을 읽었을까?
이건 확신할 수 있다. 충분히 이용할 만한 상황이란 걸.
이 대리 말대로 세간의 반응 또한 심상치 않았다.
인터넷에 「회고록」이라는 소설을 적으면, 작가가 실제로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와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여럿 보였다.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게 중요할 뿐.
지금 상황을 생각하니, 작가가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모르겠다.
방송국에서 가만히 있는데도, 자연스럽게 작품이 홍보가 되고 있다.
바이럴 마케팅이든, 진실이든 이 상황을 더욱 이용해 대중들에게 다가가야 했다.
“어이, 이 대리!! 지금부터 10분 뒤 회의 들어간다!! 어쩌면 역대급 시청률을 찍을 방송 아이템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다들 10분 뒤 회의할 테니, 하던 일 잠시 멈추고 회의 준비해!!”
소설을 읽어보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이 진실이라면 하나의 역대급 방송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이걸 엮다 보면 드라마 또한 큰 관심을 받고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 국장님의 허락이 중요했다.
어쩌면 이번 정권을 저격하는 내용이 될 수 있는 방송.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 * *
할아버지와 만남을 가진 지 3일 뒤.
‘반응이 올라오고 있군.’
예상했던 대로 반응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생각했던 이상의 반응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만약 출판사에서 내 개인 정보를 넘겼다면, 핸드폰을 만질 수 없을 정도.
실제로 소설을 집필하는 사이트에서 한 번만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제는 진짜 시작되나 보다.
국민의 손으로 한국을 개혁시키는 그 순간이.
그 시발점을 내가 터뜨린 것 같아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재밌겠네.”
앞으로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전생과 같이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번 결과에 따라 판돈이 아예 사라지느냐, 역사적인 인물의 탄생이냐 하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더욱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판돈이 커야 재밌군.’
이번 결과에 판돈을 크게 걸어서인지, 상황을 지켜보는 게 더욱 재밌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