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좋다, 제환아. 네가 일을 진행한다는 건 그만큼 준비가 돼 있다는 얘기일 테니. 하지만 네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구나. 세상은 제환이 네가 생각한 것처럼 쉽게 흘러가진 않는단다.”
-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저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이는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지!!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차분하게 설명하는 거다. 아무래도 내가 이야기를 들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오늘 집으로 들어오거라.”
- 오늘은 일 처리를 해야 돼서 조금 바쁠 것 같습니다. 내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후……. 그래. 제환이 너도 생각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일 아침 일찍 찾아오도록 하거라.”
- 네, 할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손자를 믿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며 전화를 끊은 손자.
잘 알고 있다. 나의 손자는 그 어떠한 근거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제환이는 학창 시절 때부터 수행 평가나 대외 활동 때도 근거를 가지고 그에 맞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 손자이기에 더욱 믿음이 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나의 손자였기에 믿는 만큼 걱정이 되는 거다.
혹시나 실수로 인해 손자가 피해를 볼까 봐, 내가 어린 시절부터 가장 믿음을 주고 사랑을 줬었던 손자가 이번 일로 상처받을까 봐.
일단은 걱정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기에 내일 만나 손자와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다.
“김 비서. 방금 대화를 들었으면 대충 상황은 파악이 됐을 거라고 믿고 있네. 지금 당장 제환이 녀석의 소설을 읽고, 현실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조사를 해보게.”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도련님은 늘 결과로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저번에 투자했다던 그 비트코인도 현재 다섯 배 정도의 수익을 올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진짜야? 왜 이제야 보고한 거야?”
“도련님에게 눈을 떼시라는 말을 듣고, 모두 철수했다가 최근에 회장님이 관심을 주시는 것 같아 다시 한번 확인해 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끄응……. 역시 제환이의 행동에는 근거가 있다는 건가? 어서 빨리 조사해 보게. 제환이가 이빨을 드러냈다는 건 어디선가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니까.”
“예, 회장님.”
제환이가 이빨을 드러냈다는 건 한 가지다.
모든 일에 확신이 생겼다는 것.
단순히 소설로만 접근해서 일을 진행하는 게 아닐 거다.
소설에서도 드러났다는 건 다른 곳에서 그 조짐이 시작됐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언제나 균열은 작은 틈에서 시작됐다. 거대한 바위를 파괴하는 것도 작은 흠집에서 시작됐다.
자연재해도 마찬가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작은 틈에서 시작된 균열들이 점차 커져 걷잡을 수 없는 자연재해로 돌아오는 법.
과연 제환이가 만들 자연재해가 대통령에게도 먹힐지, 걱정과 동시에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 확신의 과정을 내일부터 가지면 될 것 같다.
제환이와 만남을 가지고, 확신이 생긴다면 그때부터는 움직여야겠다.
우리 그룹도 제환이의 발에 맞춰서.
‘소설대로 흘러간다면 우리 그룹도 자세를 바꿔야겠어.’
만약 제환이의 소설대로 흘러간다면, 우리 그룹도 자세를 빠르게 바꾸는 게 최대한의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거다.
분명 일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다음 정권은 민주당.
친중, 친러의 행보를 이어갈 거라고 생각이 든 나는 급하게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 * *
할아버지와의 전화를 마친 박제환.
확실히 할아버지가 저렇게 반응할 정도면, 일반인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소설만을 믿고 이번 일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일을 진행하면서 소설의 영향력은 20퍼센트 정도.
나머지 80퍼센트를 위해 움직여야 했기에, 곧바로 할아버지를 찾지 않고 내일 찾아가겠다는 말을 전했다.
‘이 정도면 조사해 볼 만하다고 느끼겠지.’
내가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 안에 모여 있는 정보들.
대통령이 저지른 비리에 대한 증거들이다.
물론 하나씩만 살펴보면 별다른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테다.
흥신소 또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위험하다고는 느낄지언정 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고.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수많은 정보는 퍼즐을 맞추듯 연관 관계를 파고들다 보면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이 앞에 모여 있는 정보들.
비어 있는 금액들이 모두 다 한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은가.
그 끝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곳은 대통령의 주머니.
더 따라가면 대통령 뒤에 있는 내연남의 주머니.
이 정보들을 구하기 위해 그간 바쁜 하루들을 보내야 했다.
각 흥신소에서는 한 가지 정보만을 의뢰했으며, 흥신소가 정보를 구해 올 동안 각 구간에서 사용할 말들의 정보를 구하기 시작했다.
칼을 빼 들 검사부터 시작해서, 정보를 나르는 기자들.
그 정보를 대중들에게 퍼뜨리게 하기 위한 각종 커뮤니티.
그로 인해 분노를 일으킬 대기업들.
그런 대기업들을 달래기 위해 민주당 정치인들의 만남.
이 모든 걸 내가 처리하지는 않았다.
비서실장님에 도움을 받았고, 앞으로 동성 그룹의 도움도 받아야 했다.
솔직히 내가 움직이면 일을 마무리 지었을 때 더한 이득을 가져올 수 있을 거다.
비리로 인해 많은 분노를 감당해야 할 대기업들.
그를 달래기 위해 접촉해야 될 민주당의 의원들.
모든 것들이 일이 마무리된 후, 나의 힘으로 돌아오는 거였으니.
‘그렇게 되면 일이 끝나고도 바쁘게 움직여야 된다.’
늘 느끼는 거지만, 그 후의 이득을 생각해도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글을 시발점으로 대중들에게 분노를 일으켜, 많은 공감을 받을 거라 생각하면 다른 거로 그것만큼 짜릿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일이 끝나고 가져올 부산물보다, 일이 마무리됐을 때 내 작품에 향할 관심을 생각하니 더욱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할아버지와 만나서 이 증거들을 보여줘야겠군.’
기자들과 각종 커뮤니티에 정보를 뿌리기 전에 할아버지에게 먼저 보여줘야겠다.
이 행동은 단순히 가족을 위한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에게 이득을 가져다줌으로써 이번 일에 동성 그룹을 이용하는 거다.
국민들 대신 칼을 빼 들 검사에게 접근할 때 뒤를 마련해 줘야 했다.
그 뒤를 맡아 줄 배경이 동성 그룹.
민주당을 만날 때 배경 또한 동성 그룹.
일이 마무리된다면, 동성 그룹 역시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만큼 큰 거절을 하진 않을 거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검사와의 관계다.’
이번에 접근할 검사.
민주당 다음 정권을 가져가는 검사이다.
이런 식의 설명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정치를 해보지도 않은 검사가 정권을 가져간다니.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2022년에 일어나게 된다.
그때 또 한 번의 이득을 가져가기 위해선 검사와의 관계를 끝까지 이어 나가야 했다.
그게 동성 그룹이나 나에게 움직임의 자유를 가져다줄 거다.
일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선 내일 할아버지의 설득이 중요했기에, 마지막으로 자료들을 다시 한번 배열하는 데 집중하며 정리한 나는, 내일 할아버지에게 일찍 찾아가야 했기에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 * *
다음 날.
오늘은 할아버지를 만나는 날.
아침 일찍 찾아오라는 할아버지의 말이 있었기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채비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건 어제 정리해 놓은 자료들.
어제 봤던 자료들과 일어나서 보는 자료들에는 차이가 존재하기에,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괜찮군.”
시간을 들여 자료들을 살펴봤지만, 이 정도면 할아버지를 설득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료의 준비는 끝.
시각적인 준비는 마무리했으니 이제는 나의 말이 중요했다.
시각과 청각을 다 잡는 순간, 그 순간 버튼은 작동할 거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나와 나라를 개혁하려는 그 순간이 말이다.
다가올 그 날을 기대하며, 자료를 정리한 나는 곧바로 짐을 챙겨 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이번에 구매한 S 클래스를 타고 할아버지 집으로 향하니 나를 마중 나와 있는 집사 아저씨가 보였다.
오기 전에 전화를 드렸더니, 시간을 예상해서 나와 계셨나 보다.
“도련님, 제가 주차하겠습니다. 안에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곧바로 들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 역시 할아버지를 빨리 만나고 싶었기에 집사 아저씨에게 자동차 키를 넘긴 후 곧바로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향했다.
똑똑―
“저 왔습니다.”
“들어오거라.”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를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제환이 네가 이곳에 왔다는 건 나를 설득할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이번 일을 계획한 이유를 말해 보거라.”
“부자는 언제나 세상이 바뀔 때 탄생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바꿔보려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구나. 하나 부자가 되려면 우리 그룹을 이어받는 게 낫지 않았더냐?”
“부자가 되는 건 좋지만, 일을 하고 싶지는 않더군요. 이번 일만 마무리 되면 글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그래……. 글을 읽어 보니, 네가 얼마나 글에 진심인지는 잘 알겠더구나.”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건, 이제 완전히 할아버지가 기대를 접으셨다는 거다.
나에 대한 기대가 아니다. 내가 경영에 참여할 거란 기대를 접어버린 거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그게 얼마나 큰 결심인지 잘 알고 있는 나는 할아버지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 제환이 네가 하는 말은 허울 좋은 말들뿐이구나. 세상이 바뀌면 부자가 탄생한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겠다. 좋다. 좋은데 그에 맞는 계획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할아버지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일을 진행했다는 건 모든 상황의 준비를 마쳤다는 걸요. 안 그래도 노트북에 정리해서 가져왔으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걱정이 많으신 할아버지를 안심시킬 수 있도록 준비해 온 계획을 보여드리고자 했다.
자료를 정리한 것들이 노트북 안에 있었기에, 노트북을 할아버지 앞에 가져가 정리한 자료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자료들을 보여주며 필요한 설명들을 하고 나니 할아버지의 표정이 변하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의심의 표정, 그다음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 마지막에는 경악과 함께 인정의 표정을 보여주셨다.
할아버지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지만, 옆에서 자료를 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3일 뒤에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움직여진다는 그 얘기냐?”
“맞습니다. 이미 제 손을 떠난 거나 다름없죠. 그리고 이번에 제 글을 본 사람들은 벌써부터 의심하기 시작하더군요. 이 말은 성공할 확률이 더욱 올라갔다는 얘기입니다.”
“…….”
“할아버지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3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빠른 결정을 내리셔야 할 겁니다. 제 계획에 참여해 동성 그룹 또한 사활을 걸지, 아니면 격변하는 한국을 그저 관망만 할지.”
“크흠…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일단 할아버지가 계획에 참여하시기 전에 한 가지 양보를 받아야겠습니다.”
“한번 말해 보거라.”
솔직히 이번 일에서 동성 그룹은 다 된 밥에 수저만 올린 격이다.
아무리 할아버지가 있는 동성 그룹이라도 공짜로 줄 수는 없으니 나도 한 가지를 가져갈 생각이다.
동성 그룹에서도 계륵이며, 나에게는 이득인 그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