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다섯 달 뒤가 좀 아쉽긴 허네요. 두 달만 당겨졌어도 수익률을 더 올릴 수 있었을 텐디…….”
“두 달이 줄어드는 게 많은 차이가 있습니까?”
“아무래도 조사하면서 미국 선거랑 엮어서 하려다 보니까 계속 두 달이라는 시간이 아쉽더라고요. 만약 두 달만 줄어들었어도 수익률을 20,000퍼센트를 달성할 수 있었는디, 계속 조사하면서 그게 걸리던데요?”
“두 달이라…….”
확실히 재성 씨의 보고서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미국 대선과 연관 관계를 맺어 투자 수익을 극대화 시켰다는 거다.
말을 들어보니 두 달이 줄어들면 수익률이 늘어난다는 말도 이해가 가기 시작하고.
‘두 달을 줄일 방법이 없으려나…….’
물론 방법이 없지는 않다.
내가 총대를 메고 지금 대통령의 현실과 그간 비리를 조사하려고 마음먹으면 시간이 줄어들 확률이 높았고.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는 순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감정을 느낄 시간이 줄어들게 되니까.
어디까지나 돈은 부차적인 것이어야 했다.
‘재밌겠는데?’
그럼에도 방법을 찾아 나선 나는 재밌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하지 않고,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확실하지는 않다. 미래를 확신하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했으니까.
그래도 시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제는 수익률을 제외하고서라도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성 씨. 혹시 두 달이 줄어든다면 그에 맞게 준비할 수 있습니까? 석 달 뒤와 다섯 달 뒤를 동시에 준비하는걸요.”
“뭐… 그때가 될 때까지 모른다면 문제겠지만, 어떤 조짐이 보이면 괜찮을 것 같은디…….”
“확실히 조짐은 보일 겁니다. 그게 석 달 뒤가 되는지 다섯 달 뒤가 되는지.”
“글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근디 형님은 뭐 하시는 분이길래 이런 정보도 다 아는 거요? 참, 신기허네…….”
“나름대로 조사한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재성 씨에게 작가라는 사실을 말해도 상관은 없었다.
단, 지금은 아니다. 지금만큼은 재성 씨에게 내 정보가 사실이라는 믿음을 줘야 했기에, 지금과 같이 신비로운 이미지를 고수해야 했다.
“그럼 형님이 말 한대로 움직이면 되겄소?”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빠르면 석 달 뒤에 조짐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이번 대통령이 탄핵이 될지, 만약 두 달이 당겨지지 않는다면 다섯 달 뒤가 되겠군요.”
“그렇게 맞춰서 움직이도록 하겄네요. 그래도 형님 마음에 든 것 같아 참말로 다행이네요.”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저도 이제부터는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오늘 자리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네요. 이후 대화는 이번 일이 끝나고 나누기로 하죠.”
재성 씨와 대화를 나누는데, 계속해서 아까 떠오른 재밌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빨리 집에 가서 계획을 짜보고 싶다는 생각뿐.
대화에 집중도 못 하고 같이 있는 건 재성 씨에게 민폐임과 더불어 이제부터는 재성 씨도 바쁘게 움직여야 했기에 자리는 이쯤에서 끝내기로 결정했다.
지금의 자리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만났기도 했고.
이 아쉬움을 남겼다가, 다음 만남에 만족으로 바꾸면 될 것 같다.
그때는 일이 끝난 다음일 테니.
마음이 급해진 나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 재성 씨를 애써 달래고는 집으로 향했다.
* * *
집에 도착한 박제환.
‘노트가 어딨지?’
재성 씨와 헤어지고 집을 오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재밌는 계획을 그렸다.
일단 머릿속에 있는 걸 밖으로 좀 꺼내야 할 것 같아 나는 서둘러 노트를 찾기 시작했다.
서랍에 있는 노트를 찾은 나는 빠르게 노트를 펼쳐 펜을 들고, 생각을 이어 나갔다.
‘일단 객관적인 위치를 파악하자.’
지금 쓰고 있는 「회고록」의 객관적인 위치.
그것부터 파악하는 게 제일 첫 번째 순서였다.
제일 먼저 사이트에 들어가 내 작품을 몇 명이나 보고 있는지 확인했다.
‘삼십만 명은 넘는 것 같군…….’
지금 있는 플랫폼과 다른 플랫폼을 합치면 백만 단위는 될 거라는 판단이 섰다.
그것도 총 조회 수가 아닌, 내 작품을 접한 사람의 숫자가 말이다.
이 정도로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단, 도전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재성 씨의 두 달을 줄이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도울 방법이 있나 하는 생각부터 시작됐다.
그러다가 떠오른 생각.
「회고록」의 작중 시기도 현실과 겹쳐 있다는 사실이다.
‘마침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고.’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를 시작으로 각 전문가가 내 작품을 칭찬하고 나서, 웹소설을 떠나 대중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한 번쯤은 작가로서 지금과 같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내 작품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
재성 씨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지금이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많은 댓글 중 하나가 현실성이 뛰어나다는 말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과거에 대한 일이었으니, 충분히 납득이 간다는 댓글들과 현실을 기반으로 한 게 맞다는 댓글들도 달렸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현재 대통령이 처한 상황과 그간의 비리, 그리고 대통령의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내연남.
이 사실을 묶어서 소설에 이용하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 말이다.
‘충분히 재미도 가져올 수 있고, 씨앗도 심을 수 있다.’
웹소설 형식으로 재미도 충분히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공이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그로 인해 탄핵당하는 대통령. 그것으로 얻어내는 수익들.
에피소드가 끝날 때 독자들이 사이다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웹소설 형식이었다.
‘그럴듯하게 쓰는 게 중요하겠어.’
그럴듯하게 의문을 던지는 거다.
민감한 주제지만, 국정 농단을 시작으로 대통령 뒤에 있는 내연남에 대한 의문, 각종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
이것들을 조금씩만 각색해서 글을 쓰다 보면 사람들이 진짜인가 하는 의문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방송국 기자를 섭외해서 기사를 쓰게 한다.’
이게 시발점이 돼줄 거다.
대중들에게 여기 있는 사실들이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방향성을 정한 나는 머릿속에서 앞으로 적어 나갈 이야기를 각색해 나가기 시작했다.
“됐다.”
머릿속으로 정리를 마치는 나는 곧바로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고, 빠른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골프 치고 있는 박대호 회장.
“김 비서, 지금 몇 시야?”
“오후 3시입니다, 회장님.”
“뭐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하여간 이 회장하고 골프를 치면 승부욕 때문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다니까.”
몇 시냐는 질문에 오후 3시라는 김 비서.
박 회장은 시간을 듣고는 골프 장갑을 벗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매일 오후 3시. 우리 손자의 글이 올라오는 시간이다.
지금 와서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언제 자신이 이런 웹소설을 읽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지금 내 모습이 낯설게 보일 정도였다.
‘뭐야…….’
평소와 같이 어플을 통해 소설을 보려는데, 평소와 다른 점이 보였다.
원래라면 1화나 운이 좋으면 2화가 올라왔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올라온 신규 회차는 30화 정도가 넘게 올라와 있었다.
‘맛만 볼까?’
지금은 이 회장과 내기 골프를 치는 중.
오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기에 원래 생각했던 대로 1화만 보기로 결정했다.
“…….”
…
…
“어이 박 회장!! 뭐 하는 거야!! 골프 안 칠 거야?”
“…….”
“박 회장!!”
자기 말에 응답하지 않자, 나의 팔을 건드는 이 회장.
아무래도 오늘 골프 내기는 여기서 그만둬야 할 것 같았다.
1화만 보기로 마음먹은 손자의 소설.
이건 도저히 멈출 수 없음을 느꼈다.
“이 회장, 내가 오늘 진 걸로 치고 여기서 그만하자고. 아무래도 바쁜 일이 생긴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가 무슨 바쁜 일이 있다고 골프를 그만 쳐? 자기 아들 생일에도 골프 치는 양반이.”
“거 미안하게 됐으니까, 다음에 보자고.”
“박, 박 회장!!”
1초라도 빨리 다시 손자의 소설을 보고 싶은 나는 이 회장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 쉬는 곳으로 이동했다.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은 흥미와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손자가 어떻게 지금 대통령의 상황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적혀 있는 내용은 실제로 현재 청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었다.
다른 대기업 회장들과 만날 때마다 불만을 드러냈던 내용. 그나마 돈을 주고 이용하기는 쉬워서 놔뒀던 내용들.
그것들이 이 소설에 약간의 각색만 입힌 채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어떻게 안 거야, 이 자식은…….’
도대체 자신의 손자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걸까?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 대통령이 멍청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보통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소설을 읽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곧바로 움직여서 언론을 막고, 손자에게 접촉해 협박할 거라고 예상이 됐다.
그렇게 되면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손자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움직여야 했고, 지금 대통령 뒤에 있는 남성과 관련된 또 다른 대기업 회장들도 나서야 하는 상황.
그렇게 되면 상황이 많이 곤란해졌을 거다.
‘아니……. 지금만 하더라도 곤란할 수 있겠군.’
소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내용이 너무 위험하다는 거다.
만약 이 소설대로 일이 진행되면 모르겠다.
국민들이 실제로 들고 일어나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이를 거부한 대통령이 탄핵 된다.
이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대기업들은 쉽게 움직일 수 없을 거다.
그만큼 손자에게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될 거고, 다른 일들을 처리하기 바쁜 대기업들이 나설 시간조차 없었으니.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과연 국민들이 스스로 들고 일어날까?
들고 일어나는 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거론 부족했다.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들고일어나야 했다.
모든 국민들이 대통령의 탄핵을 외쳐야 일어날 만한 상황이었다.
30화라는 새로운 분량을 다 읽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댓글을 확인했다.
역시나 진짜가 아니냐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짜로 위험하다…….’
그 안에는 사회의 한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자신이 서울대 교수라는 사람과 기업의 임원이라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며, 이게 사실이라는 댓글들이 적혀 있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 각 대기업을 이끄는 회장들이 알기라도 한다면 손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다.
걱정이 된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손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까지는 골든타임. 내 말을 듣고 바로 글을 내린다면 별 일없이 흘러갈 수 있었다.
- 전화 받았습니다.
“제환이 네가 지금 뭐 하는 짓인 게냐!! 어서 글을 내리지 못하겠느냐? 어떻게 그 사실을 안 줄은 몰라도 사회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일이야!!”
- 제 글을 보셨나 보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많은 것을 준비해 둔 상태니. 아마 현실도 소설과 같이 흘러갈 겁니다.
“그게 무슨 말…….”
- 대통령이 탄핵 될 거란 얘깁니다. 안 되면 제가 가능하게 만들 겁니다.
걱정된 마음에 전화를 거니 오히려 말도 안 되는 대답을 내놓은 손자.
그런데 왜일까…….
왜 이렇게 손자가 말 한대로 일이 진행될 것 같은가…….
손자의 목소리에 단단한 힘이 실려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난 한 기업의 회장. 먼저 인생을 살아온 선배로서 손자가 하는 짓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 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