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무리한 우리.
서로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슬 포트폴리오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거는 이전에 말했던 JH 인베스트먼트 법인에 대한 서류이고, 나머지 하나는 투자를 진행했을 시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보고서여요. 아따, 분명 괜찮았는디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겄네……. 천천히 읽어 보십쇼, 형님.”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수익률 이전에 재성 씨가 건네준 법인에 대한 서류는 이미 이전에 읽어봤기에, 한번 훑어보고는 변한 게 없다는 걸 확인하고 다음 종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종이가 4개월이 걸린 포트폴리오.
물론 4개월 동안 이거에만 매달리지는 않았을 거다.
JH 인베스트먼트에 필요한 직원들, 그 외의 것들도 챙기며 시간을 보냈을 테고.
그렇다고 해도 4개월이란 시간은 꽤나 넉넉한 시간임이 분명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전생에 머릿속에 있던 재성 씨를 기준으로 둬서는 안 된다. 그때는 자신만의 기준이 정립되며, 여러 가지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완전체였으니까.
그렇다고 일반인을 기준으로 삼아서도 안 될 것 같다.
JH 인베트스먼트의 사장 자리에 앉을 사람인 만큼, 다른 사람과의 차별점이 존재해야 했으니.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재성 씨가 건넨 보고서를 집중해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
그렇게 한참을 집중해서 보고서를 읽어 나갔을까?
어느덧 보고서 마지막 글자까지 다 살펴보았다.
일단 보고서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수익률이 예상보다 높은 것 같았다.
처음 재성 씨에게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라는 말을 건넸을 때 예상했던 수익률은 5,000퍼센트.
지금 보고서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6,000퍼센트의 수익률이 적혀 있었다.
실제로 여기 적힌 대로만 대비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수익률이었고.
분명 수익률은 기대 이상인 것은 맞았다. 그럼에도 만족스럽다는 감정이 들지 않는다.
아마 재성 씨가 준비를 완벽하게 했기에 이런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재성 씨가 보고서에 적어둔 방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안전하고, 더더욱 많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런 완벽한 방식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돈을 다 잃을 각오로 임하지 않았다는 것.
보고서를 읽어보면, 실수하더라도 최소한의 피해만 감수하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보셨어요, 형님? 지가 열심히 한다고 혔는디, 마음에 들랑가 모르겄네요.”
“수익률은 합격입니다. 애초에 제가 기존에 생각했던 수익률보다 1,000퍼센트가 높으니까요. 그럼에도 한 가지 아쉬움이 느껴지는군요. 이 보고서는 너무 조심히 투자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생각했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습니다. 저는 돈을 다 잃는다는 각오를 하고 투자에 임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흐미……. 이거 하나를 더 준비 안 했으믄 형님에게 실망을 줄 뻔혔네요.”
“…….”
“사실 형님이 말한 것처럼 최대한의 위험을 끌어안고 투자를 진행했을 때의 상황을 보고서로 작성하긴 했는디, 이게 진짜 맞는 건가 고민혔거든요. 가져오길 참말로 잘했네요.”
가져오길 잘했다면서 또 하나의 종이를 주섬주섬 꺼내는 재성 씨.
내 예상을 깨는 사람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대충 눈에 보이고 짐작이 가능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재성 씨가 가져온 보고서는 여기서 끝일 줄 알았다.
비단 재성 씨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내가 최대한의 리스크를 끌어안고, 투자를 가정해 주라고 말했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재성 씨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느껴졌던 거고.
‘재밌네.’
그런 내 예상을 깨고, 추가로 준비해 온 보고서를 나에게 내미는 재성 씨를 보니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어째서 이 남성의 한마디에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회사들이 휘청거렸는지도 알 것 같다.
경험이 없는 지금도 이 정도의 준비를 해왔다.
여기서 경험까지 쌓이면 어떻게 될까?
전생에 봤던 재성 씨를 넘어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후……. 이번에는 형님 마음에 들어야 할 텐디…….”
보고서를 읽으려 하자 한숨을 내쉬는 재성 씨.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서를 펼치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수익률 13,000퍼센트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것도 최소치로 잡았다는 글씨가 덧붙여져 있었고.
과연 어떤 차이가 있길래 두 가지 보고서에 두 배가 넘는 차이가 존재할까?
궁금증이 느껴진 나는 다시금 집중해서 보고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 방법은 자칫 잘못하면 남는 게 없겠군…….’
보고서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남는 게 없을 정도로 위험한 투자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꺼려지는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반대라고.
내가 원하는,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투자 방법이 바로 이 앞에 적혀 있었다.
미국 대선과 내가 말해 준 탄핵 가결 시기에 맞춰서 이루어지는 투자들.
레버리지와 인버스를 최대한 이용해서 극대화한 수익률.
이 모든 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역시 이 방법은 좀 위험하겄죠?”
“아닙니다.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오는군요.”
“수익률만 보면 그럴지 몰라도, 위험성을 따지면 말도 안 되는 건디……. 하기야 실제로 일어나는 일도 아니니, 이게 맞을지 모르겄네요.”
“재성 씨, 제가 만족한 결과물을 가져올 시 성과금이 얼마라고 말씀드렸죠?”
“1억이라고 혔는디……. 솔직한 말로 1억을 받기는 민망하긴 허네요. 일도 안 하고 시험 보는데, 월급도 꼬박꼬박 받고…….”
아직까지 내가 시험하는 거라 생각해서일까?
재성 씨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부담스러워 했다.
내가 생각했던 기준을 넘을 시 주기로 한 1억.
지금 와서는 1억이란 돈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글을 읽다 보니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도 많이 보였다.
도중에 세금을 최대한 합법적으로 피해 가는 법, 큰돈을 운영하면서 생길 문제점들.
사소한 거 하나하나 챙겨 가는 이 보고서를 보면, 결코 1억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성 씨, 성과금은 2억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아따, 형님 그게 뭔 소리다요!! 실제로 투자를 진행한 것도 아니고, 조사만 했는디 그리 큰돈을 줘도 되는 거요?”
“걱정하지 마십쇼. 여기 적혀 있는 그대로 일을 진행시킬 테니.”
“…….”
성과금 2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욱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재성 씨.
저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금 시기에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테니.
하지만 몇 달만 지나면 내 말이 맞다는 증거들이 한둘씩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은 촛불 시위.
다른 시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로 이루어진, 전대미문의 시위였다.
그때 가서 투자를 진행하려 한다면, 이상함을 눈치챈 은행들이 상품을 거둬들일 가능성이 있기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했다.
“반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성과금도 그대로 나갈 것이며, 연봉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향후 10년은 사장 자리에 앉게 보장해 드리죠.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두 번째 보고서처럼 진행해 주세요.”
“…….”
내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 재성 씨.
기다려줄 수 있다. 그만큼 어려운 결정일 테니.
아무리 자신에게 손해가 오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비정상적인 일인 건 틀림이 없을 테고, 이 투자가 실패한다면 향후 자신의 입지에 손해로 돌아올 테니.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결정을 지은 듯한 재성 씨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제 기준에서는 납득이 안 가네요. 조사하면서도 왜 이렇게 쓸데없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냐고, 주변에서 많이 들었고요.”
“…….”
“제 감을 믿겄습니다. 이번 투자를 하는 건 단순히 형님이 지시해서 한 것도 아니고, 형님에게 모든 책임이 있기에 하는 것도 아니요. 제 감이 지금 신호를 보내네요. 이건 놓치지 말라고.”
“그렇다면…….”
“하겄습니다. 형님이 말한 대로 한번 인생을 걸고, 도전해 보겄습니다. 이런 경험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다행이다.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서.
솔직히 재성 씨가 거부해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어찌 됐건 일을 진행하는 건 재성 씨이기에 당사자의 의견이 중요했으니까.
많은 고민이 들었을 테다. 재성 씨 말대로 조사를 진행하면서 주변에 들려오는 말이 있을 테니.
그래도 나를 믿음과 동시에 자신의 감을 믿으면서 일을 진행한다는 의견을 전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일에는 성과가 있어야 된다.’
무슨 일이든 성과가 있어야 된다.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성과금 정도만 챙겨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법적으로 어긋나는 것도 없고, 재성 씨도 이해할 만한 일 처리니 당장은 불만이 없을 거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담당해서 일을 진행하는데, 계속해서 막대한 수익이 회사로 돌아온다.
그런 돈을 보면서 욕심이 안 생길 수 있을까?
불순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건 아닐까?
재성 씨가 나쁜 행동을 한다는 게 아니다.
단지 미래에 독립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될 뿐.
‘나는 함께할 방법은 알고 있고.’
함께할 방법은 간단했다.
성공을 나누면 되는 거다.
재성 씨 성격상 알아서 챙겨준다면, 내가 미래를 걱정할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고 투자를 진행해 준다고 하셔서 고맙군요. 저도 그것에 맞게 보답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투자가 성공적으로 끝날 시, 수익금의 1퍼센트를 재성 씨에게 드리는 걸로 하죠.”
“…….”
결심을 다짐한 재성 씨가 내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번 투자가 성공적으로 끝날 시, JH 인베스트먼트가 얻을 수익은 약 10조.
그 돈의 1퍼센트라면 1,000억.
계산이 빠른 재성 씨가 내 말을 듣고, 놀라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최, 최선을 다해 보겄네요, 형님. 절대 지금 말한 그 조건이 부끄럽지 않게, 만족할 수 있는 결과로 보답하겄소.”
“오늘 곧바로 800억을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오늘부터 움직이는 걸로 하죠.”
“저번에 말했던 금액하고 완전히 똑같은 금액인디……. 설마 형님만 아는 정보가 따로 있는 거요? 일단은 제 감을 믿고 최선을 다해서 투자를 진행해 보겄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섯 달 뒤면 제 말에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다섯 달 뒤.
대한민국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어두운 하늘을 밝히려고 움직이기 시작한 날.
그날이 다가오면 재성 씨도 알 수 있을 거다.
내가 했던 말들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었단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