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43화 (43/175)

43화

“여보세요? 한 회장 자네 많이 바쁜가?”

- 마침 골프 좀 치다가 쉬고 있었네. 자네가 웬일로 전화를 건 게야.

“크흠… 누가 들으면 평소에 내가 전화를 안 하는 걸로 알겠어.”

- 그게 사실 아닌가.

“됐고. 자네 방송국에서 이번에 내 손자에게 연락했다는 소문이 들려서 말이지.”

- 자네 손자?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는 듯 반문을 하는 한 회장.

사실 한 회장 위치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일을 진행하는 데 일일이 보고를 받지 않았을 거다.

더군다나 아직 KBK 방송국과 함께하기로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

한 회장이 모르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 정도는 이미 예상한 사실.

단지, 내 손자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자랑하기 위해서 전화를 걸었다.

“허허……. 회장이라는 양반이 그런 것도 모르면 어떻게 한단 말이야.”

- 예끼,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방송국에 회장이 어딨나. 운이 좋아 감투를 쓰고 있는 거지.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자네가 원하는 사람이 사장이 되는데, 그게 회장 아니겠나.”

- 그래도 늘 조심해야지. 그건 그렇고, 자네 손자에게 연락했다는 말이 뭐야? 방송국에서 자네 그룹 사람에게 연락할 일이 없을 텐데…….

“아이고, 참. 글쎄 내 손자가 쓴 글을 자네 방송국에서 제발 좀 드라마로 만들게 허락해 주면 안 되냐고 그렇게 사정한다고 하더구만.”

- …….

“내 자네가 부탁하면 우리 손자에게 말은 해줄 수 있네.”

- 가만 보니까 손주 자랑하려고 전화했구만.

말을 하면서도 제환이에 대한 자랑을 하는 게 티가 나서일까, 전화를 건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한 회장이 본질을 파악했다.

“크흠……. 꼭 그런 건 아니고, 언제 한번 골프나 같이 치자고.”

- 맨날 도망만 가는 양반이 웬일이래. 자네 기분이 좋긴 한가 보구만.

한 회장 말대로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아마 욕심을 내려났기에 이런 기분도 느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처럼 제환이가 경영에 참여해 그룹을 이끌게 만들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온전히 기쁜 마음을 즐기긴 어려웠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제환이가 글을 쓰고 즐거워하는 그 모습을 보니 할아버지 된 입장으로서 욕심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겠다는 일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최고의 위치에 올랐는데 어떻게 내 욕심만을 고집하겠는가.

내 마음을 돌려준 손자가 고마우면서도 뿌듯했기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 참. 자네도 한번 손자가 쓴 글을 읽어보게. 배울 점이 많을 게야.”

- 참,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자네 손자가 무슨 글을 썼길래 내가 배울 게 있다는 거야?

“보면 알게 돼 있네. 자네 직원들이 눈이 잘못된 게 아닌 이상에야 우리 손자 글이 대단한 게 아니겠나. 그럼 한번 읽어보고 나중에 소감이나 들려주게. 난 이만 끊음세.”

여기까지가 적당한 것 같다. 이 이상은 누가 봐도 손주 바보로 보일 정도의 주책밖에 되질 않는다.

딱 손자의 글을 읽고 그 대단함을 객관적으로 알리는 여기까지가 적당하다고 판단을 내렸기에, 한 회장과는 다음 골프 약속을 잡고는 전화를 끊었다.

* * *

두 번째 작품에 몰두한 채 시간을 보내서일까?

글만 썼을 뿐인데 벌써 5월이 다가왔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중간중간 들어오는 비서실장님의 보고.

그리고 「회고록」의 드라마화 확정.

이때까지 벌어들인 모든 돈을 다시 원화로 환전해서 통장에 찍힌 800억 원이라는 돈.

글만 쓰는 게 직업이라서 그런지, 글만 썼다고 생각했는데도 주변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할아버지의 인정도 있었지…….’

물론 직접적으로 할아버지가 인정한 건 아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내 글을 관심 가지며 읽고 있다는 걸.

글을 쓰는 중간마다 할아버지에게 연락이 왔었다.

이 부분은 어째서 그렇게 진행을 하는지, 경영에 있어서 이것은 약점으로 돌아오지 않는지 등, 할아버지가 생각했을 때 반대 의견이 있는 회차에는 꼬박꼬박 연락이 왔었다.

그와 동시에 뒤에는 어떻게 전개할 생각이냐고 자주 묻던 할아버지.

이것만으로도 할아버지가 내 글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재밌었다.’

지금까지 「회고록」을 집필해서 비축해둔 원고는 8권. 즉 200화 분량을 적어놨다는 말이다.

그동안 재밌는 일도 여럿 있었다.

그중 제일 재밌었던 사건은 할아버지와 의견 충돌.

내가 생각했던 부분과 할아버지의 생각이 충돌했을 때, 우리는 서로가 맞다는 의견을 내세우며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도 그간 경영을 해온 경력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서인지 서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결론이 나오지 않은 토론을 끝마친 채, 전화를 끊은 우리는 곧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내 글을 읽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텔레비전에 나와 우리가 토론했던 주제를 연구해서 발표한 것.

이 일이 있고 난 후, 난 다시 한번 할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졌고.’

처음 「회고록」을 연재했을 때는 웹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기를 자랑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작가로서 너무나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내 작품의 인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드라마화가 결정되고 주연 배우 캐스팅이 발표되던 날. 주연 배우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들이어서일까?

웹소설을 읽는 사람이 아닌, 웹소설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내 작품을 찾아보며 한 번 더 대중적인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게 됐다.

이때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각 방송국의 인기 예능에서 한번 출연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 계속해서 들어왔을 정도였다.

물론 앞으로 할 일이 많은 나는 당연히 거절했고, 점차 나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님의 발언.’

이 소설이 자신이 작성하고 있는 논문보다 훨씬 뛰어난 지식을 보이고 있다는 발언.

그 발언을 텔레비전에 나와서 입 밖으로 내뱉은 그 순간, 또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읽었을 때,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며 소설을 읽는 것.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위치에 있는 전문 지식인이 인정하는 말을 내뱉는 것.

두 가지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해서일까?

내 작품은 또 한 번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웹소설의 인식을 조금은 바꿔놓은 건가?’

이 부분에 대해선 작품을 연재하며 겪었던 일 중에 가장 뿌듯한 감정이 들었던 사건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교수란 직책이 학부모한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평소에 웹소설을 읽는다 하면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내 작품을 접하고 웹소설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고쳐 나가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작가로서 이보다 뿌듯한 결과물은 없을 것 같다.

내 작품이 웹소설의 한계를 부순다니. 이 얼마나 축복받은 상황인가.

내 작품이 웹소설 업계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꿔준 것 같아 더욱 보람찼었던 것 같다.

‘이제는 일을 해야 할 때인가?’

내일이면 포트폴리오를 작성한 재성 씨를 만나는 날.

당장 내가 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중간에서 조율해 줘야 되는 게 많았기에, 오늘은 집필을 이어 가는 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시간이 남을 때, 더욱 열심히 글을 써서 꽤 여유 있는 분량을 비축해 놨기도 했었고.

‘날 만족시킬 수 있으려나?’

내일 있을 만남을 생각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과연 재성 씨는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까?

내가 정했던 수익률 5,000퍼센트라는 기준을 넘어설 수 있을까?

자신이 가져온 포트폴리오대로 실제 일이 일어났을 때 능숙하게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과 함께 기대감이 동시에 들기 시작했다.

걱정은 과연 이 시기에 재성 씨가 만족스러운 투자를 진행할 수 있을지, 기대는 자신이 만든 포트폴리오대로 일이 진행됐을 때 들어 올 자본이 얼마나 될지.

그 자본은 다시금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물이 돼 줄 거다.

2018년에 있을 미·중 무역 전쟁.

나머지 돈은 각종 가상화폐를 시세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천천히 매수하기 위한 자본.

이 두 가지를 생각하면, 또 한 번 거대한 성장을 치를 2018년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때가 되면 정환이가 동성 그룹에서 승승장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을 거다.

단, 그다음을 봐야 했다.

동성 그룹의 내부를 정리했다면 이제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릴 때.

내가 만든 JH 자동차와 손을 잡고 대현 그룹과의 경쟁을 시작해야 했다.

‘이것만으로도 압박이지.’

대현 그룹에는 이것만으로도 압박일 거다.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JH 자동차와 세간에서 시선을 끌어모을 JH 인베스트먼트.

한국에서 단단한 내실을 다지고 있는 동성 그룹의 합작.

아무리 대한민국의 2위 그룹인 대현 그룹이라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똑같이 겪게 해주마.’

전생에 췌장암 말기라는 병을 갖는 데 큰 도움을 준 대현 그룹.

이번 생은 반대 입장이 돼서 괴롭혀주리라고 다짐했다.

그사이에는 많은 이득도 존재할 거다.

당연히 일이 잘 풀린다면 동성 그룹의 순위는 한 자릿수로 올라갈 수 있을 테고.

‘내일이 중요하겠군.’

내일 있을 재성 씨와의 만남.

그 뒤에 있을 2018년을 생각하니, 내일의 만남이 더욱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오늘은 재성 씨를 만나기로 한 날.

오랜만에 제대로 된 옷을 챙겨 입고는 이번에 구매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를 많이 타고 다니지 않기에, 중고차로 구매한 벤츠 S 클래스.

사업을 하는 이상, 바깥에 보여주는 것도 큰 부분을 차지했기에 부담이 가지 않은 S 클래스 중고차를 구매했다.

‘슬슬 사옥을 구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네.’

재성 씨와 약속을 잡은 장소로 향하며 창문 밖을 바라보니 근사하게 지어져 있는 사옥들이 보였다.

JH 자동차와 JH 인베스트먼트.

내 계획대로라면 내년에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을 거둔 만큼 투자도 필요했기에 눈에 보이는 사옥들을 기억하며 내년을 기약했다.

‘도착했군.’

시간에 맞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너무 늦지도 않고, 너무 이르지도 않는 5분 전.

혹시 재성 씨가 먼저 와 있을 수도 있기에 예약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역시나 먼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재성 씨가 보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반가워요, 재성 씨.”

그는 그간 연락을 나누며, 나에게 형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싶다고 말을 전해 왔었다.

나 역시 호칭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편한 대로 부르라는 말을 전했고.

그래서일까? 그동안 익숙해진 형님이라는 말로 나를 반기는 재성 씨.

그런 재성 씨가 반갑게 느껴졌다.

‘잘 준비했나 보군.’

나를 보며 반갑게 형님이라며 인사하는 재성 씨.

표정을 보니 자신이 가지고 온 결과물에 자신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오늘 이 자리는 심사받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심사받는 자리에 저런 미소를 보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면 저런 표정과 밝은 태도를 쉬이 보이지 못했을 거다.

“아따, 형님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워 죽겄네요.”

“저 역시 반갑군요.”

나를 만나고는 계속해서 반가움을 표현하는 재성 씨.

이 분위기가 식사가 끝나고 포트폴리오를 확인하는 그때까지 계속해서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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