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화난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나가자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은 나는 아버지를 부르며, 무엇 때문에 이러시는지 질문을 던졌다.
“아, 아버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뭐라도 설명을 해주셔야 제가 납득을 하죠.”
“납득? 하… 네가 납득을 안 하면 어떻게 할 건데? 너 내가 출판사에 들어올 때 처음에 뭐라고 했어?”
“처음에요……?”
처음에 뭐라고 했냐고 묻는 아버지.
왜 이런 상황이 왔는가에 대해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한 가지 문제가 떠올랐다.
이번에 내 입맛대로 바꾸기 위해 박제환 작가에게 압력을 넣은 것.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아버지가 처음 뭐라고 했는지가 기억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작가는 사람으로서 대우해 주라는 것.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먹고살 수 있는 거니까 갑질할 생각을 절대 하지 말 것.
하지만 이 말을 출판업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아마 박제환 작가를 압박하는 게 아버지 귀까지 들어갔나 보다. 지금은 변명보단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살아 나가야 했다.
어찌 됐건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분명 호통을 치시겠지만 기회는 다시 주어질 거라고 확신을 가졌다.
“죄송해요, 아버지. 제가 욕심을 부렸나 봐요. 사실 출판사를 위해 행동한 거지만 의도가 어떻게 됐든, 작가님을 함부로 대한 건 제 불찰입니다.”
“이런 병신 같은……. 네가 건드린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이번에 삼영 식품 사장님이 연락 와서 말하더구나. 이딴 식으로 일 진행할 거면 그냥 출판사에서 손 떼라고.”
“예?! 박제환 작가님과 삼영 식품 사장님이 어떤 관계길래…….”
“하…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주의받았지만, 네가 어떤 분을 건드린 건지 알아야 덜 억울하겠구나. 박제환 작가님이 동성 그룹 회장님께 제일 사랑받고 있는 동성 그룹 3세야, 이 자식아. 이런 덜 떨어진……. 이런 것도 자식이라고 기회를 준 내가 어리석었지.”
“…….”
아버지가 말하는 동성 그룹.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는 그룹 중에서도 대기업에 속하는 그룹이었다.
비록 계열사 숫자가 많지 않아 재계 순위는 다른 그룹에 비해 낮은 걸로 알고 있지만, 만약 단일 회사들만 따지면 능히 10대 그룹 안에 들 정도였다.
솔직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어째서 작가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방금 아버지가 말했던 말 중 동성 그룹 회장님께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니…….
상식적으로 그런 사람이라면 경영을 해야지, 왜 웹소설을 쓰고 있냐는 말인가.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떻게든 작가님께 사과드리고, 최대한 편의를 드리도록…….”
“개소리하지 말고 나가. 내가 이것만 가지고 너한테 뭐라 하는 것 같아? 여기 오기 전에 네가 담당하던 작가들한테 연락 돌리고 오는 길이다. 하나같이 좋은 소리를 하는 작가가 없더구나.”
“…….”
“출판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작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달려왔기에 이 정도 위치에 오를 수 있던 거고. 그런 회사의 모토를 반대로 생각하는 너는 출판사에서 일 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그리고 다시 시작해. 이때까지 벌었던 돈은 건들지 않으마. 단, 집안에서의 지원은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이 버는 돈이 가벼운 게 아니란 걸 깨닫도록 하거라.”
“…….”
이 정도면 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만약 박제환 작가님의 문제만 걸렸었다면 회사의 이득을 위해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 몰랐다.
그다음은 박제환 작가님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면 되는 것이고.
하지만 나머지 작가들과 연락을 마쳤다는 아버지.
그간 내 담당인 작가들에게 해왔던 행동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관계 우위에 서기 위해 해왔던 말들.
그로 인해 상대가 기분 상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던 과거들.
여기까지 드러난 순간, 아버지의 출판사를 떠나라는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도 괜찮다…….’
그래…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비록 지금처럼 갑의 위치에서 해왔던 행동들을 못 하긴 하겠지만 해왔던 행동들을 못 하긴 하겠지만 여기 말고도 아버지가 가진 돈이라면, 어디서든 지금 위치에 오르는 건 쉬울 테니.
하지만 지원을 끊는다는 아버지.
그렇게 되면, 내가 설계했던 미래가 사라지게 된다.
한마디로 그렇게 경멸하던 아르바이트를 내가 해야 된다는 것.
평소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던 나에게는 그것만큼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조금씩 현실 파악이 되기 시작한 나.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리며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 * *
삼영 식품 사장님과 만난 후, 글을 집필하고 있던 박제환.
사장님이 바쁘게 움직여서일까?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 작가님!! 좋은 소식 전해 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어떤 소식이죠?”
-제가 다시 작가님 담당자가 됐습니다. 진짜 퇴사를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더군요.
“그럼 새로 왔다던 총괄팀장은 어떻게 됐습니까?”
- 이번에 엔터 출판사 사장님이 작가님에게 했던 행동들을 어떻게 알아챘는지, 출판사에서 퇴사시키던데요? 와… 진짜 아들이라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 이렇게 보면 새로 오신 사장님도 좋으신 분인 것 같아요.
아무리 그 사람의 잘못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출판사에서 내쫓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쨌든 자신의 아들이기도 했고, 총괄팀장 자리에 앉힌 걸 보면 경영 승계도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
더러운 싸움으로 들어가지 않고, 재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귀찮게 나오면, 그만큼 글을 쓰는 시간도 줄어들었을 테니.
- 그리고 사장님이 저를 불러서 한 가지 말을 전했습니다. 저는 작가님을 담당하는 데 최선을 다하라고, 다른 일들은 다른 직원들이 할 거니까 여기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다행이네요.”
- 2차 창작물도 저한테 단독 결정권을 주셨다니까요? 나중에 자리도 보장할 테니 열심히 일해 보라고 합니다. 똥차 뒤에 벤츠 온다더니, 딱 그 말대로 인 것 같네요.
“축하드려요. 이제 저한테 집중해 주세요. 출판사도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
- 물론이죠!! 작가님, 집필은 잘돼 가고 있습니까?
“지금 5권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전의 팀장에 대한 얘기는 길게 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팀장님이 곧바로 주제를 돌렸다.
돌린 주제는 내 두 번째 작에 대한 이야기.
4권을 끝마치고, 5권에 대한 세세한 구성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현재 상황을 팀장님에게 전달해 드렸다.
- 다행히도 여유가 있는 편인데요. 사실 놓치기 아쉬운 제안들이 들어와서 작가님과 의견을 나누려고 했거든요.
“제안들 말입니까?”
- 각 공중파에서 작가님 글을 읽고는 드라마화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중에 제일 좋은 조건은 KBK 방송국이고요.
“…….”
KBK 방송국. 공중파 방송국이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더군다나 그곳의 주인은 할아버지의 친구분.
만약 내 웹소설이 계약이 이루어진다면,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넬 수 있을 것 같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팀장님도 KBK 방송국이 제일 좋은 조건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2차 창작물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긍정적인 말을 전했다.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팀장님이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얘기를 나눠주세요.”
- 오!! 맡겨만 주십쇼.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손해는 보지 않게, 계약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네, 작가님!! 5권도 좋은 내용 부탁드립니다.
팀장님과 전화를 끊은 나는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뒤로 미루면 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곧바로 할아버지의 번호를 눌러 소식을 전했다.
* * *
제환이의 전화를 받은 박대호 회장.
방금 걸려 온 전화. 손자놈이 하는 일에 대한 소식이었다.
자신이 쓴 글이 KBK에서 드라마화될 수도 있다는 소식.
전화를 거는 손자놈에게는 별거 아닌 것처럼 대답을 했지만,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건 막아내지를 못했다.
이 얼마나 기특한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며 나간 지 1년. 그 짧은 시간에 손자가 쓴 글이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전하다니.
더해서 그냥 방송국도 아닌 공중파 방송국.
그것도 자주 만나서 술자리를 가진 한병국 회장의 방송국 아닌가.
‘일단은 한번 읽어봐야겠군.’
사실 그전부터 궁금한 마음이 컸었다.
도대체 무슨 글을 쓰길래 곧바로 억 단위의 돈을 버는지.
그리고 이번 명절에 말했던 백억이라는 돈.
자신이 알기로는 말도 안 되는 수익으로 알고 있다.
제환이가 웹소설을 쓴다는 보고를 받은 그때, 그 어떤 작품도 아직까지 그 정도의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 제환이가 그쪽 업계에서 제일 성공한 사람이란 말이다.
역시 우리 손자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최고의 위치를 1년 만에 올랐으니.
‘「회고록」?’
제환이가 말한 사이트에 들어가, 제환이의 이름을 치니 「회고록」이라는 소설이 나온다.
제환이는 특이하게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드러냈기에, 이 글이라는 확신을 가지고는 소설을 클릭했다.
‘이 정도나 본다고?’
1화를 확인하니 조회 수가 상당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우리 제환이의 글을 본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손자가 쓴 글은 과연 어떤 재미를 가져다줄까?
궁금증이 든 나는 집중하기 시작하며, 1화부터 글을 읽기 시작했다.
“…….”
‘벌써 끝인가?’
집중하고 글을 읽다 보니 어느새 다음 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보였다.
제환이가 자신을 가지며 재밌게 읽을 거라는 말을 전한 이유를 정확히 알 것 같다.
이곳에 담겨 있는 제환이의 경영 철학, 더해서 미래를 다루는 이야기.
글을 읽으면서 재밌다는 감정과 아깝다는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이런 식견을 가지고 있는 제환이가 그룹을 경영한다면, 기업 순위가 한 자릿수에 진입하는 것도 먼 미래는 아닐 것처럼 보여졌기에.
‘제환이에 대한 이야기인가?’
글의 시작을 알리는 부분.
제환이가 나에게 처음 반항하던 그 날을 모티브로 삼았나 보다.
그리고 소설 속 중간중간 드러나는 주인공이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제환이가 썼다고 생각해서일까? 중간마다 이상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에잉, 쯧.”
글을 다 읽고 나니 괜히 제환이가 미워졌다.
이렇게 짧은 분량을 가지고 할아비에게 보이다니.
똥을 싸다 중간에 끊긴 것 같은 기분에 어떻게 하루하루 기다려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도움이 된다.’
그리고 글에 적혀 있던 경영에 대한 식견과 미래에 대한 식견.
분명 나에게도 큰 도움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한 회장은 뭐 하고 있으려나~”
이렇게 얽힌 인연.
오랜만에 한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손자 자랑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