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 * *
삼영 식품 사장님과 식사 자리에 나온 박제환.
“허허, 이거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요. 젊은이들은 요즘 한식을 즐겨 먹지 않던데.”
“아닙니다. 한식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거 진짜 다행이네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식사 자리에 대해 묻는 삼영 식품 사장님.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거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만나도 나의 아버지를 만나지, 나를 만날 일은 전혀 없었으니.
더욱이 내가 경영을 참여하지 않기로 한 지금, 나를 만날 이유가 더더욱 없었다.
“혹시, 어떻게 연락을 주신 건지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어제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더군요.”
“이거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사실 제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웹소설이란 것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들은 것 같군요. 마침 저희 삼양 식품 자회사 중에 출판사가 있어서 그 소식을 듣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엔터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 알고 계시는가 보군요. 혹시 저희 출판사를 이용하고 싶으신 겁니까?”
사장님은 오늘의 만남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한 만남이라고는 생각을 전혀 못 하나 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시종일관 웃음을 지으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시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밑에 사람을 관리를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까지 대중들에게 친화적인 이미지를 가져가며, 우리 그룹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득을 챙겼는데, 아랫사람이 하는 행동으로 인해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았는가.
아랫사람의 관리도 지도자의 책임.
오늘 나와의 대화에서 경각심을 좀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엔터 출판사가 한 출판사를 인수하기 위해 300억이란 금액을 쓰신 건 알고 있습니까?”
“보고를 받은 것 같군요. 출판 업계에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자금을 빌려달라는 말을 하더군요. 사실 출판사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생각보다 많아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허락한 적이 있습니다.”
“인수당한 출판사가 저와 계약을 맺고 있던 출판삽니다.”
“아니,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제가 엔터 출판사에 언질을 주겠습니다. 우리 작가님 잘 챙겨드리라고. 거기 사장이 아주 능력 있는 친구입니다. 아무리 초반에 도움을 줬다 하더라도 업계 1위를 하기는 쉽지가 않은데…….”
“그렇지 않아도, 엔터 출판사 사장 아들을 한번 만났습니다.”
사실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김성호 사장님의 말이 맞다.
엔터 출판사의 사장은 충분히 출판 업계에서 인정받을 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다.
그만큼 대여점 시기에서 웹소설 시기로 넘어가는 도중 작가들에게 많은 배려를 해줬고.
하지만 자식 농사를 실패한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노력해서 그 자리에 오른지 모르고, 갑자기 오른 위치에 호가호위하며 자신이 뭐가 된 것마냥 행동하는 김상우라는 남성.
그 자식만 아니었다면 나 역시 인수를 당한 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갖지 않았을 것 같았다.
“역시 젊은 사람들끼리 미리 이야기를 나눴나 보군요.”
“맞습니다.”
“이거, 제가 다 기분이 좋…….”
“안 좋은 쪽으로 말이죠.”
“…….”
대답이 자신의 머릿속에서는 없던 대답이어서일까?
말을 듣자마자 그의 표정이 굳어지는 게 보였다.
“자세히 좀 들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엔터 출판사에서 제 작품이 욕심났나 봅니다. 글을 잘 쓰고 있는데, 갑자기 담당자가 바뀌더니, 사장 아들이 오더군요. 그러면서 협박을 하더군요. 비율을 바꾸지 않으면, 손해를 볼 거라고.”
“…….”
“처음에는 좋게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경고하더군요. 개인이 출판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 같냐고.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장님?”
어떻게 생각하냐는 나의 말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사장님.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렇게 침묵이 1분가량 흘렀을까?
그가 고개를 들고 사과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거 입이 열 개라도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올바르게 돌아가는 걸 원합니다. 출판사 사장의 아들이라고 그런 갑질을 하고 다니는 게 정상일까요? 제가 이번 일을 빌미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말해 삼영 식품을 압박하는 것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물론 제가 그러겠다는 거는 아닙니다. 제가 혐오하는 일이거든요.”
“좋게 넘어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그룹을 경영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동업을 하는 사람들과의 상생입니다. 그런 제 생각 때문인지 저는 어딜 가서 삼영 식품 사장이라는 거에 자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었죠. 처음입니다. 이런 부끄러움.”
“사장님이 좋은 기업인이신 게 정말 다행이군요. 더러운 싸움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이때까지 동성 그룹이 얼마나 많은 양보를 해줬는데 그러겠습니까. 단지 면목이 없군요.”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 엔터 출판사 사장 아들이 총괄팀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자리는 이철민이라는 팀장이 맡았으면, 이번 일을 좋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곧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죄송합니다.”
계속해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건네는 사장님.
이래서 좋게 이야기를 통해 풀어나간 거다.
삼영 식품의 사장님은 어딜 가든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지 않은가.
지금만 봐도 그랬다. 자신의 회사에 피해가 올까 봐 사과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과하는 게 느껴졌다.
“그럼 이쯤하고 식사 자리를 즐기기로 하죠. 제가 주제넘은 말을 했다면 죄송합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몰랐다면 제 경영 생활에 오물을 끼얹을 뻔했군요. 감사합니다.”
그 뒤로 우리는 공통된 주제인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눴다.
내가 쓴 글이 어떤 거냐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용기를 내서 글을 쓰기 시작했냐는 질문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 자리를 즐길 수 있었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충분히 자신보다 어린 나이의 내가, 어떻게 보면 경영에 참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데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하며 올바르게 바꾼다는 말을 건네줘서.
만약 삼영 식품이 이후에 어려운 일을 겪는다면, 언젠가 한 번쯤은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겠다 생각하며 사장님과의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 * *
JW 출판사 사무실에 있는 김상우 팀장.
‘시간 더럽게 안 가네.’
어제 박제환 작가에게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을 들어서일까,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간다고 느껴졌다.
이런 걸 보면 작가란 족속들은 참 상황 판단이 느리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일주일이 지나고 달라지는 일이 생길까? 오히려 상황이 악화됐으면 악화됐지, 그 작가에게 더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봐요. 지금 팀장이나 돼서 담당하고 있는 작가가 박제환 작가님뿐입니까?”
“아무래도 작가님의 위치가 있기도 하고, 워낙 신중히 컨택하는 타입이라…….”
“정신 차려요. 무슨 장인 정신을 가지고 일하는 겁니까? 그럴 거면 따로 나가서 출판사를 차리든가 하세요. 이게 뭡니까? 남들은 열 명 이상의 작가들을 관리하고 싶어서 합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마지못해 하는 거예요.”
“…….”
앞에서 억울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남자.
이전까지 박제환 작가를 담당하던 사람이다.
지금부터 기를 죽여놔야 된다.
그래야 일주일 뒤, 박제환 작가가 비율을 포기하고 기존의 담당자를 유지한다 해도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앞의 남성을 출판사에서 쫓아낼 수 있을 테니.
‘하나씩 건덕지를 찾아가면 되겠군.’
억울하다고만 생각할 게 아니다. 방금 말했던 대로 다른 직원들은 한 사람당 작가 열 명 이상을 맡아 일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리 박제환 작가 체급이 크더라도 팀장이라는 사람이 한 사람만을 담당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물론 JW 출판사가 기존에 운영하던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선택과 집중.
좋다. 하지만 인수된 마당에 계속해서 그대로의 방식을 고집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일주일에 한 명씩 컨택해서 무조건 담당 작가 수 열 명 이상으로 늘리도록 해요. 요즘은 작가 개인의 능력보단 작가의 수가 수입을 좌지우지하는 시장이 올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박제환 작가님의 작품을 살펴볼 시간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2차 창작물에 대한 관련 일들도 진행해야 되고요.”
“하……. 왜 이렇게 이해를 못 합니까. 그런 거 제가 할 테니까 다른 일이나 하라고요.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먹습니까? 이러니까 JW 출판사가 이 모양 이 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이 팀장이라니……. 정식으로 사장님에게 건의해서 직급 이동을 생각해 봐야겠네요.”
“…….”
내 말을 듣고, 이를 꽉 깨무는 앞에 남성.
이럴 때마다 즐겁다.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이 사람의 위에 있음을 증명하는 시간이.
어쩌면 이런 시선이 좋아서 박제환 작가를 내 밑에 두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박제환 작가.
지금 웹소설을 쓰는 작가 중에 이름값이 제일 높은 작가임이 분명했다.
두 번째 작마저 성공함으로써 전작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단 게 증명이 된 상태.
그런 작가가 내 아래에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빨리 그 순간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려졌다.
“팀, 팀장님. 엔터 출판사 사장님이 이쪽으로 당장 올 테니 이곳에서 움직이지 말고 있으시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을 전하려면 똑바로 해야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란 말을 누가 그런 식으로 전달합니까!!”
“…….”
JW 출판사.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직원이 없다.
아버지가 이곳으로 온다는 건 나를 총괄팀장 자리를 맡긴다고 정식으로 인사시키려고 오는 게 틀림없다.
그런 아버지의 말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게 전달하다니.
만약 총괄팀장으로서 제대로 자리 잡으면 이곳에 있는 직원들 정신 개조부터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쾅―
“사장님 오셨습니…….”
짝―
“아, 아버지…….”
“아버지? 이놈의 호로자식이, 내가 네놈을 그렇게 가르쳤느냐? 내가 삼양 식품 사장님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는 알고 있는 거야?!”
“그게 무슨…….”
“너 따라 나와. 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처맞고 싶으면 가만히 있고.”
화를 내며 따라 나오라는 말을 전하는 아버지. 태어나서 저렇게 화난 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 뇌가 굳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빨리 안 나와!!”
“네, 네!!”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밖으로 미리 나가는 아버지가 빨리 나오라며 소리를 질렀고, 겁에 먹은 나는 곧바로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나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오해가 있는 게 틀림없다.
아무런 이야기조차 없이 뺨을 맞은 게 억울했지만, 저렇게 화난 아버지를 처음 봤기에 오해부터 푸는 게 먼저라고 느낀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