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40화 (40/175)

40화

* * *

책상에 앉아 생각을 이어 가고 있는 박제환.

팀장님과 술자리를 가진 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알아본 결과, 확실히 JW 출판사가 엔터 출판사에 인수된 게 맞았다.

엔터 출판사는 도전할 시기라 판단해서인지, 출판사를 확장할 제일 좋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백억 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나라는 작가와 나의 두 작품이 계약된 JW 출판사에 시선을 돌린 거였고.

‘그때 만남도 한몫했을 테고.’

여기까지는 괜찮다. 충분히 JW 출판사는 인수할 메리트가 있는 출판사였으니까.

하지만 담당자를 바꾼다는 것.

여기서부터는 그때 만났던 남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들어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담당자와 최고의 시너지를 내고 있는 작가를 굳이 변화를 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담당자를 다독이면서, 작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출판사에서 해야 될 일이었다. 그게 정상적인 흐름이었고.

역시나 담당자를 바꾼 건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담당자를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말을 전하니, 그건 곤란하다며 내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이 들려왔다.

‘가소롭네.’

하는 짓이 가소로워 죽겠다.

자신 정도 되는 위치라면 작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거다.

만약 내가 아니라 일반 작가였다면 충분히 먹혔을 방법이고.

안 그래도 글을 쓰는 데 바쁜 작가가 출판사와 문제를 일으키며 싸우려고 할까?

그게 자신에게 큰 이득으로 돌아올까?

차라리 손해를 감수할 바엔 불합리함에 기분만 상하며, 다음 계약만을 기다리며 지금 작을 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작가라면 말이지.’

그 사람에게 아쉬운 얘기지만 나는 보통 작가가 아니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재벌가의 사람.

자신이 믿고 있는 뒤에 기업도 우리 그룹에 비하면, 부족한 위치에 있는 기업이었다.

엔터 출판사 뒤에 있는 삼영 그룹.

삼영은 식품 쪽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정확하게 말하면 준 대기업에 속하는 그룹이다.

일반인에게는 충분히 대기업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그룹.

그런 그룹이지만 동성 그룹에는 한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그룹이다.

동성 무역이 삼영 식품을 해외에 수출해 주면서, 많이 양보해 준 걸로 알고 있다.

아버지 역시 욕심을 내고 있지 않기에, 국민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삼영 식품에게 양보를 해준 거고.

‘정환이 친구 그룹이기도 하고 말이지.’

내일은 바뀔 예정이라는 담당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담당자를 교체할 생각하지 말라고.

그런 내 의견에도 불구하고 우위에 있는 위치를 이용해 압박하려는 순간, 작가 박제환이 아닌 동성 그룹의 박제환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정도의 일은 경영에서 제외됐다 하더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당장 할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니,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동안 삼영 식품에 양보했던 계약을 손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있을 만남.

별 탈 없이, 작가 박제환으로 남아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 날.

오늘은 새로운 담당자라는 사람을 만나는 자리.

솔직한 말로 그 남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 사람의 첫인상을 생각하면 좋게 넘어가기 힘들 것 같았다.

“박제환으로 예약돼 있을 겁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나온 자리는 식사 자리.

자기 나름대로 대접을 하려 한 건지, 고급 한식당으로 예약을 해놨다고 했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드르륵―

“…….”

“반갑습니다, 작가님. 이전에 한번 본 적 있으시죠? 엔터 출판사의 김상우 팀장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지는지 모르겠다.

이전에 인연을 상기시키며, 손을 내미는 김상우라는 남자.

얼굴에 맺혀 있는 비열한 미소를 보니, 오늘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반가워요.”

“하하, 이런 자리에서 또 만날 줄을 몰랐네요. 저와 작가님이 보통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

“일단 식사부터 들기로 하죠.”

저 남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 우위에 섰다는 희열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안 좋게 끝났다고 할 수 있는 인연을 자신이 움직여 다시 이어지게 만든 거나 다름없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한 가지만 알고 둘은 모를까.

그 인연이 자신에게 독이 될 줄은 몰랐을까?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밥맛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노도 아니고, 짜증이었다.

화를 낼 가치도 없는 사람.

나방 한 마리가 자신의 운명도 모르고, 불을 향해 뛰어들려고 하니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남자를 상대하기 위해, 집필할 시간을 줄여야 하다니. 고작 저런 사람 때문에 팀장님이 피해를 봐야 한다니.

탁―

밥맛이 떨어진 나는 음식을 몇 숟가락 뜨지 않은 채, 숟가락을 식탁에 올려놨다.

나의 이런 모습이 즐겁게 느껴졌을까?

그는 아까보다 더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작가님 입맛에 안 맞으시나 보네요. 하하. 그러면 일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할까요?”

“일 이야기를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먼저 정하고 가겠습니다. 담당자를 바꿀 생각 없으니, 원래 이철민 팀장님으로 배정해 주시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작가님. 물론 작가님과 의견을 맞춰서 진행해야 하는 건 맞지만, 출판사 내부 사정도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작가님이 갑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얘기예요.”

“저는 JW 출판사를 봐서 계약한 게 아니라, 이철민 팀장님을 보고 계약했습니다. 이 이상 더한 이유가 필요합니까?”

“하하, 우리 작가님… 글만 써서 그런지, 사회생활은 안 해보셨구나?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랍니다. 일단 화 좀 식힐 겸 차 한잔 마시도록 하죠.”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하는지, 차를 먹자는 말과 함께 직원분을 불러 차를 주문시킨다.

그렇게 나온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하는 김상우.

“일단 그 부분은 어렵다는 말밖에 전할 길이 없네요. 이철민 팀장은 출판사 내부에서 따로 할 일이 많습니다. 사실 팀장이라는 직급이 작가 한 명을 담당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좋습니다. 저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위약금은 지불하고 계약을 파기하도록 하죠”

“위약금이라……. 선인세로 받은 금액의 두 배를 뱉어내야 하는 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감수하면 되는 거죠.”

“잘 생각하세요, 작가님. 그렇게 되는 순간, 이번 작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다른 출판사를 가면, 저희가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작가님이 잘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각 플랫폼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요. 그냥 저희와 함께 가시죠.”

“제 조건은 단 하나. 담당자님을 그대로 두도록 하세요.”

“좋습니다. 단, 담당자가 일을 진행하다 출판사를 퇴직하는 경우는 저희가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점 참고해 주시죠.”

퇴직하면 어쩔 수 없다는 앞에 남성.

이제는 더럽게 나올 생각인가 보다.

사실 계약을 파기할 생각을 하고 있진 않았다. 계약을 파기하는 순간, 이때까지 계획한 모든 일을 다시 조정해야 되니.

어떤 식으로 나오나 궁금한 마음이 들어 강하게 나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저분하게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작가님. 제가 2차 저작권에 대한 계약을 살펴봤는데, 비율이 좀 그렇더라고요. 저희 출판사가 움직이는 데 필요한 비용이 있어서 조금 조절해야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죠? 이미 계약한 거 아닙니까?”

“업계 표준 비율보다 10퍼센트를 더 양보한다라……. 저희 출판사는 그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움직일 수 없습니다. 돈 더 버시려면, 계약을 다시 하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행동하시는 겁니까. 제가 입을 열면 출판사 입장에서도 큰 손해일 텐데요?”

“하하하. 작가님……. 저희 손해?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손해를 작가님이 감수해야 돼요. 여기서 더한 금액을 작가님에게 부과할 수 있고요. 그리고 그사이에 법적 공방, 과연 작가님이 그 시간 동안 집필할 정신이 있을까요? 저희 좋게 좋게 가기로 하죠.”

“하…. 아무래도 이야기를 다시 나눠봐야 되겠군요. 일주일 뒤에 다시 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뭐, 그렇게 하시죠. 다음 만남에는 조금 더 현실을 바라보시고, 좋은 관계로 만났으면 좋겠군요.”

아무래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보다.

담당자님의 교체를 하지 않기 위해선 2차 저작권에 대한 비율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렇게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출판사 내부에서 팀장님에게 사내 정치를 하며, 퇴직을 유도할 것이다.

이럴 바엔 귀찮음을 감수해서라도 상대의 기세를 꺾어놔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처음에는 정환이 친구에게 이야기해 가볍게 넘어가려고만 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사회의 쓴맛을 보여줘야겠다.

삼영 식품의 사장님을 만나서 이야기 좀 나눠 봐야 될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삼영 식품과 우리 그룹은 갑을 관계.

만나서 갑질할 생각은 없지만 경각심은 심어줘야겠다. 그 경각심은 사장님의 분노로 변해, 앞의 남성에게 쏟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쉽네요. 여기 음식 맛있는데, 즐겁게 드시지도 못하고. 다음에는 맛있게 드실 수 있길 바라면서 저 역시 일어나 보겠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채 일어서는 우리.

과연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언제까지 가지고 있을지 궁금증이 든 나는 식당에서 나가, 곧바로 아버지를 통해 삼영 식품 사장님의 전화번호를 얻었다.

그사이에 아버지가 궁금증을 드러냈지만, 개인적인 일이라는 말을 전하니 깊게 파고들지 않고 흔쾌히 넘어가 주셨다.

‘오늘만큼은 작가 박제환이 아닌, 동성 그룹의 박제환으로 돌아가야겠군.’

경영에서 제외됐기에 변한 위치.

하지만 그것도 우리 그룹보다 높은 재계 순위를 가진 그룹에서나 변한 거다.

우리 그룹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그룹들에게는 여전히 나는 동성 그룹의 사람이며, 동성 그룹의 손자. 동성 무역 사장의 아들로 여겨질 테다.

오랜만에 동성 그룹의 박제환으로 돌아간 나는 곧바로 아버지에 받은 전화번호를 입력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삼영 식품의 김성호 사장님 되십니까?”

- 맞습니다. 누구시죠?

“아직 연락이 가지 않았나 보군요. 박제환이라고 합니다.”

내가 급하게 전화를 걸어서일까? 아버지가 미리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소식을 듣지 못하셨나 보다.

- 박제환이라면…….

“제가 급하게 전화했나 봅니다. 아버지가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동성 그룹 3세 박제환입니다.”

- 아!! 근데 어쩐 일로 전화를 주신 겁니까?

“혹시 만나서 이야기 좀 나누실 수 있겠습니까? 최대한 이른 시일로 부탁드립니다.”

- 아이고, 저야 시간이 널널하죠. 제가 하는 일이 사장님 같은 분을 만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내일 가능하십니까?”

-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전하고는 옆에 비서에게 스케줄을 확인하는 사장님.

곧이어 그는 내일 약속이 괜찮다는 말을 전해 왔다.

- 내일 괜찮을 것 같군요. 점심 괜찮겠습니까?

“괜찮을 것 같습니다.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희 편의를 봐주는 동성 그룹 아닙니까. 당연히 시간 내드려야지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있을 약속.

오늘과 다르게 위치가 바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삼영 식품의 재계 순위는 60위 언저리.

그에 반해 우리 그룹은 15위.

더군다나 자금력 또한 비교가 안 되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강하게 나갈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잘못. 대신 일 처리를 제대로 해주라는 부탁을 확실하게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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