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 *
길거리를 걷고 있는 두 남성.
“야, 뭘 그렇게 집중해서 보고 있냐?”
“말 걸지 마. 지금 집중하고 있으니까.”
“…아니, 집중하는 거 알고 말 걸었으니까 대답을 해주라고요, 님아.”
“하… 흐름 끊게 만드네. 이번에 박제환 작가라고 웹소설 쓰는 사람 있는데 경영물 소설을 썼더라고. 너도 박제환 작가는 알지 않냐?”
“와, 그 작가 신작 냈어? 대박이네.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개재밌게 봤는데.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어플 깔았는데 나도 봐야겠다.”
친구가 보고 있던 글에 호기심이 생긴 내가 뭘 보냐는 질문을 하자, 박제환 작가의 글을 읽고 있다는 친구.
박제환이라면 나 역시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웹소설이란 걸 접하게 만들어주고, 결제까지 하게 만든 게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라는 작품이니.
그런 작가가 신작을 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급하게 핸드폰을 켜고는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
“…….”
그렇게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친구는 소설을 다 읽었는지,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다.
“와… 이거 미쳤네……. 야, 너도 한번 읽어…….”
“…….”
“뭐야? 벌써 읽고 있었네. 야, 개지려. 어디 부분 읽고 있냐?”
“…….”
“그 부분 지리지 않냐? 어떻게 그 상황을 그렇게 이용해서…….”
“아, 좀 다물어 봐. 읽고 있잖아.”
“…….”
아까와 반대 상황으로 바뀌어버린 우리의 입장.
10분 정도가 더 지나자 나 역시 글을 다 읽고는 고개를 들었다.
“야……. 이거 개지린다. 솔직히 말해서 교수님이 추천해 준 책보다 더 전공에 어울리는 것 같은데?”
“너도 느꼈냐? 나도 읽으면서 작가가 실제 경영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니까.”
“이거 교수님한테 한번 보여주자. 우리가 뭘 몰라서 그렇게 느끼는 거일 수도 있잖아.”
“크… 교수님도 인정하면 대박이겠네.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님의 인정을 받은 웹소설이라……. 빨리 가 보자.”
글을 읽고 서로 의견을 공유하던 두 남성은 교수님에게 보여주자는 결론을 내렸고, 이내 마음이 급해진 건지 느릿하던 발걸음을 건물로 향해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계속해서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고 있는 박제환.
작품이 올라간 걸 확인한 나는 계속해서 새로 고침을 눌렀다.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고, 어떤 평가를 내릴지, 전작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고 느낄지, 많은 부분이 궁금했기에 30초마다 한 번씩 새로 고침 하며 댓글이 달리기를 기다렸다.
“…….”
새로 고침을 누르며 30분 동안 확인한 지금, 이제는 인정해야 될 것 같다.
전작보다 사람들에게 공감받지 못했다는 걸.
전작은 처음부터 많은 댓글들과 함께, 추천도 많이 달렸었다. 그에 반해 지금 작품은 조용히 조회 수만 올라갈 뿐, 댓글들과 추천이 전 작보다 현저히 적게 달렸다.
‘현실은 냉정하다… 인가?’
솔직히 기대도 많이 하고 있었다.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기에.
역시나 이상과 현실은 큰 차이가 있던 건가?
나도 모르게 실망감을 느꼈다.
‘아니지…….’
실망감을 느끼던 나는 정신을 차리기로 결정했다.
비록 전 작보다 초반 반응이 좋지 않을 뿐,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댓글들과 추천을 해주셨다.
단지, 내 기대치가 그보다 훨씬 높았을 뿐.
글을 처음 쓰기로 할 때는 이렇지 않았다. 그냥 글을 쓰면서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펼치기만 해도 즐거웠다.
사람들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너무 성적에만 집중하다 보면 글에 대한 애정이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정신을 차리기로 마음먹고, 3권 이후의 분량을 집필하기로 결정했다.
이게 맞는 거다. 글에 집중하는 것이 내 글을 사랑해 주는 독자에게 보답하는 길이었고.
정신을 차린 나는 새로 고침을 누르던 인터넷을 끄고는 글을 쓰는 프로그램을 열어, 그 이후의 글을 적기 시작했다.
4권부터는 외부에 칼을 빼 드는 시점.
기대감을 느낀 독자들에게 충분한 보답을 줘야 했다.
여기서 어물쩍 넘어가는 순간,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던 독자들은 허무함을 느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기대감에 보답하기 위해 과하게 움직여서도 안 됐다. 너무 이른 시기에 거대한 적을 무너뜨렸다간, 현실성도 사라지고 그다음의 이야기도 중구난방으로 써지게 될 거다.
‘적당한 적을 처리한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시시하지도 않은 적당한 적.
낮은 순위의 회사를 쓰러트림으로써 생기는 부산물.
그 부산물을 주인공의 능력을 이용해 가치를 크게 올리는 걸 4권에 쓰면 될 것 같았다.
4권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나는 집중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글을 쓰기 전에 머릿속이 복잡했음에도 집필을 시작하는 순간, 머릿속이 비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풀어가는 데 신경이 집중되며 다른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
이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이번 성적이 좋지 않아 조금은 걱정됐는데 역시 글을 쓰는 게 답이었던 것 같다.
지이잉―
머릿속에 드는 상념을 지운 채, 글을 쓰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온다. 지금 시기에 전화 올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전화번호를 확인하니 역시나 팀장님.
아마 전 작에 비해 떨어지는 반응에 나를 위로하려고 전화를 걸었나 보다.
팀장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큰 상심을 하지 않았기에, 괜찮다는 말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 받았습니다.”
- 와!! 작가님!! 혹시 반응 보셨어요? 지금 장난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팀장님이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과한 반응을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전작보다 반응이 많지가 않았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면 심하게 들떠 보였다.
- 아직 확인 안 하셨나 보네요. 저야 성공할 건 확신하고 있었지만, 진짜 이번에 완전 소름 돋았다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고 있을 때는 댓글들이랑 추천 수가 전작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작가님도 저랑 같은 생각 하고 계셨나 보네요. 저도 계속 새로 고침을 누르다가 이번에는 제 눈이 잘못된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
- 그러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인가? 갑자기 1화부터 댓글들이랑 추천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댓글들을 확인해 보니까, 다들 추천이랑 댓글 달 정신도 없이 최신화까지 달렸다고 하더라고요. 완전 대박입니다, 진짜.
팀장님의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저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단지, 나 스스로 희망 고문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애써 떠올리지 않았을 뿐.
지금 상황을 들어보니 희망 고문이 아니었나 보다.
소식을 들은 나는 곧바로 사이트로 들어갔고, 팀장님 말대로 작품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림 또한 마찬가지다. 아까는 두 자릿수의 알림이 지금은 네 자릿수로 바뀌어 있다.
그중에 제일 많은 댓글을 가지고 있는 회차는 1화.
끝까지 다 본 사람들이 처음으로 돌아와 댓글을 달았나 보다.
[와…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작가님. 전작보다 더 재밌게 읽었어요. 보통 한 화 한 화 댓글을 달면서 읽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저도 모르게 마지막까지 읽고 있는 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서 빨리 글을 써주십쇼.]
[못 믿으실 수 있겠지만,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15학번 학생입니다. 처음엔 언제나와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웹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회차를 읽을 때, 대학교를 다닌 1년보다 이 소설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 어떤 경영학보다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꼭 읽으세요.]
[선발대입니다. 최신 회차까지 읽었음. 그냥 긴 말 필요 없음.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그 이상이라고 홍보했었나? 그 홍보 정확한 팩트만 적은 것 같음.]
제일 ‘좋아요’가 많은 댓글들을 차례대로 읽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다행히도 이번 작품 또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나 보다.
댓글들도 저번 작과 약간의 차이가 존재했다.
사소한 악플이 달렸다는 건 전 작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다음 반응이 전작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대댓글로 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반박하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 댓글 달지 말라며 격하게 반응해 주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시나 보군요…….”
- 그 정도가 아닙니다. 작품을 올린 지 몇 시간도 안 지났는데, 출판사에 메일이 쏟아져 오고 있습니다. 2차 창작물을 더해서 혹시 작가님의 사인회를 열어볼 생각 없냐는 제안도 많이 오고 있고요.
“그 부분은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할게요.”
- 작가님이 좀 더 시간이 날 때, 제가 정리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와… 근데 진짜 저 소름 돋은 게 뭔지 압니까?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님이 출판사를 통해 이 소설을 토론 주제로 선정해도 되냐고 묻더라니까요?
“그런 사소한 부탁은 팀장님이 판단해서 처리해 주세요.”
- 예, 알겠습니다. 작가님 다시 한번 대박을 터뜨리신 거 축하드립니다. 나중에 요청 온 것들 정리해서 한번 찾아뵐게요.
전화를 끊고 이번 작품에 대해 생각하니 얼떨떨한 감정이 들었다.
물론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지식과 내 경영 철학을 웹소설 형식으로 풀어썼으니까.
남들보다 약 20년을 앞서는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당연히 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받았기에 얼떨떨한 감정이 드는 것 같았다.
이런 과분한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선 역시나 글로 보여줘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팀장님에게 소식을 듣기 전과 똑같은 결론.
작가로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글을 쓰는 게 맞나 보다.
다시 한번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거에 감사함을 느끼며, 작가로서 보답하기 위해 4권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 * *
JW 출판사 사장실.
“그러니까… 300억으로 출판사를 인수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쇼.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장님께서는 300억이란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까?”
“하지만…….”
출판사를 300억에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엔터 출판사의 김상우.
보통이었다면, 팀장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 정도의 금액을 부르진 못했을 거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이 남성. 충분히 전권을 가지고 행동하는 거라고 예상된다.
엔터 출판사의 사장 아들이지 않은가.
마음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300억.
앞의 남성 말대로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이었다. 마음 같아선 곧바로 수긍하고 넘기고 싶었다.
아니, 마음이 거의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을 뵐 면목이 없단 말이지…….’
이번에 두 번째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하신 박제환 작가님. 1년 만에 300억이라는 인수 금액을 받을 수 있게 가장 큰 기여를 하신 분이다.
물론 엔터 출판사에 인수가 되면, 작가님은 더욱 잘될 확률이 높았다.
그만큼 엔터 출판사의 뒷배경인 대기업의 자본금은 튼튼했으니까.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건, 작가님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과연 엔터 출판사가 작가님의 2차 저작권을 이런저런 이유로 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압박을 가하다가, 비율 조정까지 다시 하자는 말은 건네면?
지금까지 봐 온 바로는 작가라는 개인은 출판사라는 집단을 결코 이길 수가 없었다.
내가 출판사를 넘겨 2차 저작권으로 작가님에게 피해를 줄까 봐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사장님. 도대체 왜 망설이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300억이면 지금 JW 출판사를 열 번은 더 세울 수 있을 정도의 금액입니다. 왜 망설이는 거죠?”
“혹시 저희 출판사를 인수하시는 게 박제환 작가님의 두 번째 작품을 계약해서입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2차 저작권에 대한 의사 결정권도 출판사에서 가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300억이란 비용을 제시한 거고요.”
“제가 출판사를 넘기면, 작가님에게 피해가 갈 일이 생기는 겁니까?”
“초짜처럼 왜 그러시는 겁니까, 사장님. 평생 작가님이 여기 출판사에 있을 것 같아요? 당장 다음 작품은 다른 출판사와 함께할 수도 있어요. 그런 작가님과 의리를 지키겠다고 300억을 거부하겠다는 겁니까? 잘 생각해 봐요. 지금 JW 출판사 역량으로는 이번 작품 300억 수익 못 올립니다.”
“하지만…….”
“긴말 안 하겠습니다. 만약 거절할 거면 빠른 답변 주시죠. 거절 주시면, 곧바로 작가님을 찾아가서 50억을 줄 테니, 차기작은 저희와 함께하자고 말할 생각입니다.”
“……!!”
섬뜩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앞에 남성이 50억을 들고 작가님을 찾아가 출판사를 옮기라는 말을 전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결정이 있고 나서도 우리 출판사가 300억이란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다음 작품을 다른 출판사와 함께한다면?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300억이란 돈을 충당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 들기 시작한다.
300억은 저 남자의 말대로 출판사를 열 번은 더 차릴 수 있는 금액.
아니, 어쩌면 스무 번도 더 차릴 수 있는 금액이다.
이 제안을 거절한다고 우리 출판사 역량으로 300억이란 순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부정적인 결과가 도출된다.
꿀꺽―
“300억이란 돈은 확실히 주시는 겁니다…….”
“이틀 내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
이 결정은 절대 나만을 위한 게 아니다.
분명 작가님도 대기업을 뒤에 둔 출판사와 같이 일을 하다 보면, 더욱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 다 행복하기 위해서 옳은 결정을 한 거다.
“계약서를 살펴보기로 하죠…….”
계약서를 살펴보겠다는 말을 전하니, 환하게 웃으며 종이를 꺼내는 남성.
나 역시 300억이란 돈이 통장으로 들어올 거라 생각하니 흥분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