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은 「회고록」이라고 정했다.
제목에서 직관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웹소설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생 마지막에 그 작품이 생각나서인지, 이 제목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첫 작이었으면 이런 제목은 피해 갔을 거다.
실제로 첫 작의 제목은 ‘* * *’로 웹소설 형식에 어울리는 제목이었고.
이게 다 첫 작이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사람들에게 제목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노출될 수 있다.’
제목을 「회고록」으로 결정지은 나는 지금까지 집필한 원고를 살펴봤다.
현재까지 집필된 원고는 총 세 권 분량으로 75화.
지금 주인공은 할아버지에게 인정받아, 회사에 입사한 후 내부 경쟁자들을 제거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3권 마지막 부분에는 회사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마무리.
이제는 외부의 적에게 시선을 돌려 4권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줬다.
‘이 부분에선 두 가지 효과를 줄 수 있다.’
회사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거에 대해 독자들에게 시원함과 뿌듯함을.
이때까지 외부에서 건드리던 사람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빼 들기 시작할 거라는 기대감을.
4권 분량을 이렇게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계속 따라와 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마지막 퇴고를 하고, 오늘은 쉬자.’
3권까지 쌓여 있는 원고는 퇴고를 거치지 않은 초고.
오탈자와 어색한 문장을 점검해야 완전한 작품이 되는 만큼, 팀장님에게 3권을 보내기 전에 퇴고를 거치고는 오늘 하루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 * *
“작가님! 여깁니다!!”
팀장님과 만나기 위해 나온 카페.
평소에 늘 앉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있어,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나를 발견한 팀장님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줬다.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 주는 팀장님. 처음에는 어리숙한 사람으로만 보였는데, 이제는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에는 사업적으로 바라보다, 지금은 같이 일을 진행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파트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명절은 잘 보내셨어요, 작가님?”
“나쁘지 않은 명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내주신 선물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선물 잘 받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사실 비싼 시계 같은 것도 생각했는데, 그런 것보단 명절에 가족끼리 좋은 술 드시라고, 양주로 골랐습니다.”
“시계는 좋은 걸 가지고 있어서, 양주가 더 괜찮은 선택지였네요.”
“하기야… 작가님 버시는 돈이 엄청나시니까 당연하겠네요. 근데 집은 이사 안 가세요?”
“가긴 가야죠. 내년에 이사 갈 생각입니다.”
사실 지금만 해도 이사 가기 충분한 돈이 모이긴 했다. 이사를 간다고 해도 투자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큰 소비도 아니었고.
하지만 내년 초 결과를 보고 이사를 가고 싶었다.
내년 초에 재성 씨가 가져올 수익. 그 수익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이사 갈 생각이었다.
“그러면 일 얘기로 넘어갈까요?”
“좋습니다, 작가님. 일단 이번에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해서 말씀 먼저 드릴게요.”
“그렇게 하시죠.”
“지금까지만 하더라도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단 건 알고 계실 겁니다. 더해서 손흥만 선수가 있는 팀의 선수들이 각 계정에 만화책을 올린 지금, 이전까지의 관심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전 세계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수익이 괜찮겠네요.”
“괜찮은 정도가 아닙니다. 수익도 두 배로 발생할 것 같습니다. 웹툰 말고도 만화책으로 출판해 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거든요.”
확실히 팀장님의 말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 부가 수익이 더 늘어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종이책 시장은 분명 처음 시작하는 데 많은 위험을 안고 가야 되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대여점 시절에는 작가가 지금과 같이 높은 비율을 양보받지 못했었고.
하지만 내 작품은 성공이 보장된 시작이었다.
팀장님 말을 들어보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 어쩌면 웹툰으로 벌어들이는 수익만큼, 만화책으로 또 한 번 벌어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웹툰은 그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고, 혹시 제 차기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사실 작가님 차기작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오늘 만남을 가진 겁니다. 이번에 손흥만 선수 덕분에 작가님 이름값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갔습니다. 일반인도 알 정도로요.”
“지금이 제일 적기이군요.”
“저희도 그렇게 판단을 내렸습니다. 지금 시기가 제일 홍보가 잘 될 시기고, 작품이 잘 팔릴 시기라고요. 그래서 일을 진행하기 전에 작가님에게 의사를 물어보려고 합니다.”
“의사요?”
내 의사를 물어본다는 팀장님.
확실히 저번에 말했던 게 효과가 있나 보다.
이전에는 상황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온전히 작품으로만 승부를 보려던 팀장님이 사람들의 관심이 제일 많은 지금 상황을 이용하자고 하고 있으니.
‘괜찮네.’
이제는 괜찮은 것 같다. 팀장님에게 일 처리를 맡기는 게.
물론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다면 다시 한번 노선을 틀어야겠지만, 작품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팀장님에게 맡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작가님이 활동하시는 사이트는 하루에 한 편씩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루에 한 편씩 올리는 이유는 독자님들을 끌어모아 유료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당연히 1권 분량보다 더 길게 끌고 가는 것도 최대한 노출되기 위한 방법이고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생략하는 겁니다. 다른 작품과 다르게 작가님의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홍보가 됩니다. 굳이 무료 회차를 25일로 나눠서 진행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절정인 지금 두 권 분량을 한 번에 푸는 거죠. 물론 1권까지만 무료이고 그다음은 유료로 푸는 거죠.”
“확실히 그게 괜찮을 것 같네요.”
지금까지 내가 비축해 놓은 원고는 75화. 50화를 한 번에 푼다고 해도 일일 연재는 이어 갈 수 있는 원고량이다.
팀장님 말대로 독자들의 관심이 이미 집중된 상태인데, 굳이 길게 끌고 갈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유료 베스트에 오를 거고.’
유료 베스트에만 오른다면, 무료 투데이 베스트에 길게 노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지금 상황을 고려했을 때는, 팀장님 말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그게 사람들의 반응을 더 빨리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고.
“제가 3권 분량까지 원고를 비축한 상태입니다. 오늘 곧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홍보를 일주일 동안 진행한 다음 바로 2권 분량과 함께 유료화를 들어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과연 사람들이 작가님의 차기작을 어떻게 볼지 궁금하네요. 저는 진짜 재밌게 봤는데, 사람들도 저랑 똑같이 보겠죠?”
“뭐… 저는 최선을 다했으니, 사람들이 판단하는 일만 남은 거죠.”
“무조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작가님 작품이 성공 못 한다면, 저는 출판 업계에 남아 있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런 작품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떤 작품이 성공하겠어요.”
아무래도 팀장님은 자신의 불안감을 나에게 질문함으로써 안심을 하고 싶나 보다.
물론 자신이 재밌게 봤기에 자신이 있긴 할 거다. 그렇다고 해도 언제나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갈 수 없는 법.
출판사에서 선인세로 많은 투자를 한 만큼, 일말의 불안감이 남아 있나 보다.
“어차피 확인하기까지 일주일밖에 안 남았네요. 둘 다 힘내 보기로 하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크게 없지만,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희 출판사를 믿고 차기작을 계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번째 작의 시작까지 남은 일주일. 불안을 느끼기보단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불안으로 바뀌는 결과 따위는 없으니까.
언제나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게 미래에 변명과 핑계를 없애준다.
그 어떤 변명도 하고 싶지 않은 나는 남은 일주일 이때까지 써 놓은 3권을 돌아보면,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했다.
* * *
팀장님과 만남을 가진 지 일주일.
‘드디어 오늘인가?’
오늘은 두 번째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날.
이번 일주일 동안 최선을 다했던 만큼,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작도 집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고 두 번째 작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였나?
확실히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작은 사건보다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에 반해 두 번째 작은 사건과 그것을 이용한 여러 가지 상황을 풀어나가 이득을 챙기는 과정.
첫 작에 비해 당연히 두 번째 작에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0분 정도 남았나?’
사이트에 「회고록」이란 작품이 연재하기까지 남은 10분.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흘러감을 느낀 나는 사이트에 들어가 내 작품을 홍보하는 글을 클릭했다.
홍보하는 글의 제목은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를 뛰어넘은 두 번째 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과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증이 든 나는 스크롤을 내려 살펴보기 시작했다.
[와… 두 번째 작은 재벌물이네. 과연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보다 더 잘 쓸 수 있을까? 작가님이 쓰는 재벌물은 다를 거라고 기대하면서 오늘만을 기다렸습니다.]
[진짜 시간 더럽게 안 가네. 만약 이번 작품도 성공하면 제발 팬 사인회 좀 열어주세요. 작가님 꼭 보고 싶습니다.]
[작가 지망생입니다. 작가님의 첫 작을 보고, 저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꿈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번 작품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늘 응원하겠습니다.]
[홍보 너무 무식하게 하는 거 아닌가?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가 어떤 글인데 더 뛰어넘는다고 하냐. 첫 작 대성공 거두고 망한 작가가 얼마나 많은데. 더군다나 두 개 장르도 다른데 그 정도 흥행하겠냐? 딱 봐도 이름값 이용하려고, 발악을 하나 보네.]
[기본적인 내공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이 작가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길 바라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댓글들을 살펴보니,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보였다.
나의 두 번째 작품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첫 작의 명성을 망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여럿 존재했다.
댓글을 확인하다 보니 어느새 남은 1분.
확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내 작품을 읽고 어떤 판단을 내릴까?
첫 작에 빠져 의심하고 있는 그들도 인정하게 만들 수는 있을까?
결과는 모르겠지만, 빨리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깍―
‘올라왔네.’
그사이 1분이 지난 지금.
새로 고침 키를 누르니,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내 작품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