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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재벌-36화 (36/175)

36화

“그, 그러니까 제환이 네가 글을 써서, 100억을 벌었단 거니? 그것도 1년 만에?”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치? 운이 많이 따랐나 보네……. 그래도 100억을 스스로 벌었다는 게 어디니. 축하한다. 제환이 네가 그룹 경영을 포기한 이유가 있었구나.”

“뭐… 감사합니다.”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큰어머니도 빠르게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거 같아 길게 끌지 않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매끄럽지 않은 마무리여서일까? 모두들 궁금한 게 남아 있는 거 같았지만, 다시금 이야기를 꺼내기 부담스러웠는지 누구도 나서지 않은 채 대화는 넘어가 버렸다.

‘다들 필사적이네.’

흔히 말하는 재벌 3세.

즉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친척들이 할아버지에게 눈에 띄기 위해 노력하는 걸 보니, 다들 필사적이라는 게 느껴졌다.

저번 생에서는 이 정도의 간절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아마, 나라는 벽이 있었기에 다들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던 부분이 큰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라는 존재가 경영에서 제외됐기 때문일까? 다들 희망을 느꼈는지, 할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그렇다고 나쁘게 볼 건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전생에 저것보다 더욱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니.

단지,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니 모든 부분이 새롭게 느껴졌다.

‘차기작을 재벌가의 인생을 빗대어 쓰고 있기도 하고.’

물론 우리 그룹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엄청난 재벌가 축에는 속하지 못했다.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게 내실이 단단하고, 사람들이 그룹명을 알고 있을 정도의 대기업이기에 작품을 쓸 때, 참고가 될 것 같았다.

“동성 에너지는 이번 연도에 어떤 운영을 해볼 생각인 게냐.”

할아버지는 이제 미래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려나 보다.

이곳에서 제일 연장자인 큰아버지에게 이끌고 있는 회사의 방향을 묻는다.

이 질문에 나도 궁금증이 들었다.

과연 큰아버지는 이번 연도에 어떤 움직임을 보일까?

그룹이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할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는 쉬어갔지만.’

전생에는 동성 무역을 넘볼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을 내려서일까?

그렇게 도전적인 선택도, 그렇다고 너무 소극적인 선택이 아닌 현상 유지에 집중하는 한 해를 보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던 만큼, 괜찮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도는 벌써부터 나비 효과를 직접 겪어서 그런 진 몰라도, 다른 선택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에 눈에 들기에는 이번 연도가 제일 큰 기회이지 않은가.

선택에 리스크가 따를 테지만, 그걸 감수하더라도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저희 동성에너지는 한 가지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전이라고? 어디 얘기라도 들어보자꾸나.”

“아버지도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지금 원전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탄소 중립을 추구하기 위해 환경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탈원전 역시 이 흐름을 피해 가지 못할 거고요.”

“그래서?”

“저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간 원전에 대한 수요는 무조건적으로 발생할 거라고요. 지금이 도전하기 제일 좋은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큰아버지가 비서실장님의 음식이 독이 퍼진 줄 모르고 관심을 가지셨나 보다.

이른 시일 내에 도전할 거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 칼을 빼 들다니.

여기는 시험을 보는 장소. 만약 큰아버지의 도전이 성공으로 끝난다면 더한 상을 얻을 것이고, 실패로 돌아간다면 더 한 처벌을 받는 장소였다.

‘제대로 포장했나 보네.’

얼떨떨해하는 할아버지에게 계속해서 어필하는 큰아버지. 그 안의 내용을 들어보니, 내가 말한 부분에서 나름대로 조사를 진행해 요리에 맛있는 향을 추가했나 보다.

실제로 큰아버지가 주장하는 것처럼 2022년까지 버틸 수만 있다면, 성공적인 사업가로 이름을 남기지 않을까?

‘문제는 2022년까지 버틴다면 말이지…….’

이번 정권이 탄핵되면서, 야당이 빼 든 탈원전이라는 공략.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5년 동안 노력하는 다음 정권.

나중에 가서는 원전을 버리지 못하고 버티는 세력을 적폐 세력으로 만들어 버리는 다음 대통령.

과연 한국의 대기업이 이 수많은 핍박을 버틸 수 있나 하는 가를 따져봐야 했다.

‘대기업이 진행하는 순간 이득보다 실이 크다.’

지금은 다들 모를 거다. 다음 정권이 탈원전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압박을 가해 오는지.

어쩌면, 그룹 전체의 피해로 번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다들 큰아버지의 말에 납득을 하며, 넘어가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나 역시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가 예상한단 말인가. 원전이란 산업을 핍박하기 위해 적폐 세력으로까지 만들 줄은.

심지어 다음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쯤에는 그도 원전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향후 60년을 책임질 미래 에너지 산업이라는 말을 했다.

이런 와중에 그 누가 원전에 대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할까.

“그렇다면 네가 맡아서 진행해 봐. 언제까지 우리 그룹이 현실에 안주하면서 도전을 안 할 수는 없지. 만약 이번에 성공하면, 승계 구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게 생각해 보도록 하마.”

“감, 감사합니다. 아버지!! 무슨 일이 있어도 원전 산업을 떠올릴 때 우리 그룹을 생각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래도 조심히 진행하도록 해. 지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놈한테 돈을 가져다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은 맞아. 대신 철저히 검은돈으로 증거가 남지 않도록 진행해.”

“예, 아버지!!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다며, 힘껏 고마움을 표현하시는 큰아버지.

마치 실망시키지는 않는다는 게 나를 향한 말이 아닌가 한 착각마저 들기 시작한다.

아니, 실망은커녕 예상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큰아버지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마 큰아버지는 원전이라는 산업을 지금쯤 1킬로그램에 억 단위를 넘어가는 흰 송로버섯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그 버섯에는 엄청난 독이 들어 있단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승계 구도에서 큰아버지가 완전히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을 정환이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뀐다.’

지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정환이한테 말해야겠다.

할아버지를 따로 찾아가 정치에 대해 설명을 하며, 반대하라고.

할아버지가 정환이의 말을 듣든, 안 듣든 두 가지 다 상황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만약 할아버지가 말을 듣지 않아 원전 산업을 진행한다면, 정환이는 미래를 보는 눈을 증명함과 동시에 큰아버지의 견제를 없어지게 만들 수 있었다.

그 반대로 할아버지가 정환이 말을 듣는다면, 이 앞의 성과보다 조금은 부족할지언정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큰아버지의 의견을 정면으로 부딪쳐 막아냈다는 사실을 가져갈 수 있으며, 그 의견이 맞았다는 결과물도 챙길 수 있었다.

‘전자였으면 좋겠군.’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전자대로 일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일이 진행된다면 큰아버지는 완전히 승계 구도에서 제외되고, 무너진 원전 산업을 내가 깔끔하게 삼켜낼 수 있지 않은가.

나의 귀찮음을 큰아버지가 대신해 주는 상황이 된다.

‘원전이란 산업은 나만이 가져갈 수 있다.’

원전이란 산업을 가져가기 위해선 많은 게 필요했었다.

일단 제일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미래에 대한 확신.

과연 사람들은 다음 정권이 국회 의원 180석을 챙겨가고, 임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다시 한번 대통령 자리를 반납하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5년이란 시간을 탈원전에 대한 압박을 견뎌내야 했다. 이것만 하더라도 원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압박을 견딜 수 있는 대기업이 없다.’

대기업들이 국회 의원 180석 힘을 뒤에 업은 대통령의 압박을 견뎌낼 수 있을까?

원전 산업만 압박받으면 모르겠지만, 다른 회사까지 피해가 확산될 게 확실했다.

그렇게 되면 득보다 실이 많아지는 셈.

이런 걸 감수하고 일을 진행할 대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대기업만큼의 자본을 가지고 있으며, 대통령의 압박으로 인해 피해를 많이 보지 않는 사람만이 원전 산업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방사성 폐기물 정화 물질이 발명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앞에 정보를 모두 종합해 봤을 때, 대한민국에서 원전산업을 챙길 수 있는 사람은 나 혼자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있으니, 차라리 큰아버지가 욕심을 내다가 승계 구도에서 제외되고, 준비하던 원전 산업을 내가 먹는 게 제일 좋은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도 할아버지는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향방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선이 있기 전에 조금 조심하자는 말을 하며, 현 상황을 유지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할아버지는 아쉽나 보네.’

그런 선택들이 할아버지는 아쉽게 느껴졌나 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선 도전도 필요한 데 비해 다들 안주를 선택하였으니.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이번 한 해는 저 선택이 맞다고 느꼈기에, 다들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식사 자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꾸나.”

그룹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할아버지는 식사 자리를 마무리 짓고는 각 가족들에게 약간의 자유 시간을 주셨다.

그 시간에 나는 정환이를 불러 원전에 대한 미래를 얘기하며 나중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반대 의견을 건네라는 말을 전했고, 내 말을 들은 정환이도 느낀 바가 있는지 알겠다고 답했다.

전생에서 나 다음으로 그룹 중에 제일 뛰어난 정환이였기에,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명절, 할아버지 집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곳에 오지 않고, 집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면 이 아쉬운 기회를 놓쳤지 않았겠는가.

내가 준비한 선물을 잘 받아주신 큰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설날을 보낼 수 있었다.

* * *

설날이 지나 일주일 흐른 지금.

JW 출판사에서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 온다.

어쩌면 예정되어 있던 소식.

이 소식을 전하는 팀장님의 목소리에서 결과를 듣지 않아도,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예측할 수 있게 됐다.

- 작가님!! 완전히 미쳤습니다!! 지금 해외에서 작가님의 만화책을 구하고 싶다는 연락이 쏟아지고 있어요!!

“반응이 괜찮은가 보네요.”

-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니까요? 지금 대한민국 만화책 역사를 작가님이 새로 쓰려고 하는 중이란 말입니다!

“그건 조금 기쁜 소식이군요.”

- 이게 아니지. 안 그래도 차기작 홍보를 동시에 진행하려고 했는데, 내일 한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일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점심에 늘 만나던 곳에서 보도록 하죠.”

- 카페 말씀하시는 거죠?

“맞습니다.”

- 내일 뵙겠습니다!!

만화책이 대박이 났다는 팀장님.

이번에도 내 작품에 대한 소식이어서일까?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는 내 예상과 다르게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팀장님과의 내일 만남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은 나는 두 번째 작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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