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35화 (35/175)

35화

* * *

명절 당일.

“제환아, 친척들이 기분 나쁘게 해도 참아야 돼. 우리 아들이 잘나서 질투해서 그러는 거야. 알았지?”

“걱정하지 마세요. 애도 아니고, 적당히 걸러 들을게요.”

“그래도 명절을 같이 지내니까 좋네. 작년에는 명절에 우리 아들이 없으니까, 얼마나 허전하던지.”

“앞으로 신경 많이 쓸게요.”

할아버지 집으로 향하는 차 안.

어머니께서 많은 걱정을 해 오신다.

아마 친척들의 반응 때문에 내가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고작 그런 거로 상처받기엔 전생에서 더한 일들도 많이 겪어 봤기에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

‘잘돼 가고 있기도 하고.’

만약 지금까지의 준비가 잘되지 않았다면 어머니 말대로 대처는 제대로 했을 테지만, 거슬리기는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준비했던 일들이 생각 이상으로 잘 돼서일까? 오히려 친척들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당신들의 위치, 얼마 가지 않을 거라고.

물론 친척들의 위치가 내려가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 가족의 위치가 올라갈 뿐.

그렇다고 친척들이 마냥 좋게 생각할까? 자신들보다 높아진 위치에 질투했으면 질투했지. 절대 축하를 보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친척들에게는 공격당하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의 복수로도 괜찮을 것 같다.

‘공격만 안 해 온다면 말이지.’

이상한 정치와 말도 안 되는 공격만 하지 않으면, 친척들도 챙기고 싶었다. 어쨌거나 피로 이루어졌고, 궁지에 몰릴 때면 같은 입장이 되는 사람들이니.

그러니, 제발 전생처럼 이상한 짓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생에 회장 자리에 앉으면서, 내 손을 더럽혔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단 말이다.

전생이야 내가 회사를 운영했기에, 어쨌든 나만의 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경영에 참가하는 사람은 정환이. 친척들이 더러운 공작을 해오면 정환이의 손이 더럽혀지지 않는가.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선 내가 더욱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 걸 알고 있기에, 이번 생만큼은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그래도 기죽지 마라. 아빠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남들보다 잘살고,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지금 아들이 하는 것도 보기 좋구나.”

“고마워요. 나중에 어디 가서 자랑하실 수 있게, 열심히 해볼게요.”

“그러려면 형, 해리포터 작가만큼, 유명해져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되면 되지.”

“…가능한 거야?”

“가능하든 안 하든, 사람들이 원하는 글을 쓰는 게 내 재미인 걸 어떡하냐. 분명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어휴, 왜 이렇게 애 늙은이가 된 거야. 누가 보면 형 40대로 알겠다.”

나도 모르게 또 나이에 맞지 않는 말투를 내뱉었나 보다.

말을 듣던 정환이가 고개를 저으며, 나이에 맞지 않다는 말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부분은 고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당장 다른 사람들도 갑자기 나이가 어려져 초등학생이 된다고 생각해 봐라. 어머니라 부르던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고, 정신 연령이 맞지 않은 주변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

이 부분은 불가능의 영역이라 생각했기에, 경각심만 가지기로 하며 고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해리포터라…….’

말투에 대한 생각과 함께 정환이가 말한 해리포터를 생각해 봤다.

사람들에게 제일 성공한 판타지 소설이 무엇이냐 하면, 누구에게든 거론되는 소설.

나중에 가서는 보유 자산이 한화로 1조를 가뿐히 넘는 작가.

나 또한 이런 작가가 될 수만 있다면, 그때는 가족을 넘어 할아버지도 인정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손자가 아닌, 한 사람의 작가로서.

이번에 준비하는 외의 것들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들이 아닌 작가로서도 인정받고 싶었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세상들.

그 세상들 속에서 뛰어다니는 등장인물들.

그들로 인해 펼쳐지는 사건들.

그 모든 것을 글로써 풀어내 사람들에게 공감받는 작가.

아직은 멀다고 느껴졌지만, 언젠가는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하며, 좀 더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작가가 되자고.

* * *

“동서, 지금 온 거야? 조금 늦었네.”

“죄송해요, 형님. 급하게 온다고 왔는데, 조금 늦었나 보네요. 호호.”

“아니야, 잘했어. 천천히 와야지. 우리야 집안의 중심을 잡아야 되니까, 일찍 온 거지. 동서 정도면 제시간에 왔네.”

“어머!! 그게 무슨 말이세요. 형님도 참~ 그럼 저희는 짐 좀 풀고 올게요.”

짐을 푼다고 말하고는 곧바로 다른 곳으로 향하는 어머니.

큰어머니의 말에 조금은 심통이 나셨나 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내가 경영에서 제외되고 나서 큰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일이 할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을 동성 무역에 넣어줄 수 없겠냐는 물음이었으니.

그래서 집안의 중심이라는 말에 마음이 편치 않으시나 보다.

물론 내가 잘못한 게 아니지만, 이런 광경을 직접 보게 되니 나 역시 마음이 불편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내 계획을 말할 수도 없고…….’

어디까지나 나 계획은 미래를 위한 준비.

지금 순간에는 그 누가 보더라도, 성공적인 투자라고 말할 수 없을 거다.

재성 씨에게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

천재적인 투자자를 잘 영입했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한테 돈 낭비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형찬 씨 역시 마찬가지. 지금의 형찬 씨는 사내 정치에 당해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으로만 보일 거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밝힌다면, 분명 안심은커녕 걱정의 시선만 잔뜩 받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오!! 진짜 열 받아 죽겠네. 우리 제환이가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을 땐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저러니까 더 열 받아!”

“엄마, 그래도 형 잘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형이 뭐가 돼…….”

“우리 아들이 잘하고 있는 걸 아니까 더 화가 나는 거야!! 우리 아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지금과 같은 삶을 이어 가고 있는데, 자기들은 물려받은 거 말고는 지금 수준으로 살아가지도 못하면서 비웃잖아. 우리 아들이 얼마나 대단한 건데.”

“잘 모르니까 그러죠. 당장 제가 소설로 100억을 벌었다 하면, 조금은 다르게 보지 않겠어요? 그러니 어머니가 참도록 하세요.”

“후… 그래야지. 엄마보다 아들들이 더 침착하네.”

어머니 역시 내가 승호 결혼식에서 겪었던 상황과 비슷한 경우인가 보다.

나 또한 내가 욕먹는 건 괜찮다. 내가 무시당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그 순간에 가족이 있거나, 가족이 모욕받았다면 참지 못했을 거다.

실제로 정환이가 지켜보고 있기에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고, 어머니도 그런 부분 때문에 욱하셨던 것 같았다.

“형님 마음대로 쉽게 되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정환이도 이른 시일 내에 동성 무역으로 들어올 거고. 제환이는 글을 쓰는 걸 허락받았으니까 우리는 그만 아쉬워하고, 응원만 하면 되는 거야.”

“누가 뭐라고 했나……. 그냥 제환이가 하는 걸 비웃는 것 같아서 그러지.”

“저는 괜찮아요. 누가 어떻게 보던 지금이 가장 행복하니까.”

“에효. 그래, 우리 아들이 행복하다는 게 가장 중요하지. 나가자. 너무 안에 있어도 안 좋게 볼 거야.”

침울해하시는 어머니가 짐을 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생각했을까, 서둘러 나가자는 말을 전했다.

예전에는 명절에 단 1분도 편히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경영에 대한 집착이 없어서일까?

그저 사이가 좋지만은 않은 가족들과 모인 기분이 들어,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식탁에 모인 동성 그룹 일가.

달그락달그락―

조용한 적막 속.

동성 그룹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큰 식탁.

그 누구도 말은 주고받지 않은 채, 밥을 먹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이곳에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발언권을 얻은 사람뿐, 발언권은 동성 그룹의 회장인 할아버지만이 부여해 줄 수 있었다.

“대성이, 너는 요즘 어떠냐? 동성 에너지를 잘 이끌고 있던 것 같은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무래도 동성 에너지의 분야가 도전하는 쪽보다, 유지만 하는 쪽이다 보니 큰 이변은 없었습니다.”

“원래 현상 유지가 젤 어려운 게야. 너 정도면 잘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슬슬 그룹 점검에 들어가려는 건지, 할아버지께서 큰아버지를 시작으로 각자 이끌고 있는 회사에 대해 물어 오기 시작했다.

지금 하는 질문은 작년에 대한 보고를 받기 위한 질문. 아직 미래에 대한 얘기는 그 어떠한 것도 나오지 않았다.

“정아, 너는 그리고 있는 거는 잘돼 가고 있느냐? 곧 있으면 전시회 준비한다고 하던데.”

“그림에 재능이 조금 있었나 봐요. 운이 좋아서 전시회 준비도 잘돼 가고 있어요.”

“어머, 정아야. 자랑할 건 자랑해야지. 명절인데 언제 또 이런 얘기하겠어. 아버님, 글쎄 정아가 그린 그림이 한 점에 천만 원을 호가하더라니까요? 예술이란 분야에서 돈을 벌기 쉽지 않잖아요.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어요.”

“유학 생활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기특하구나. 전시회 때 할아비가 찾아가서 한 점 정도 구매하도록 하마.”

“고마워요, 할아버지.”

지금은 자식을 자랑하는 시간인가 보다.

큰아버지의 딸인 정아 누나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자신의 자식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자랑하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도 뭔가 말을 꺼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간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어서일까? 그 어떠한 말을 하지 않은 채, 정환이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만 전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동서네 집도 예술 계열이네. 물론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체능이잖아. 제환이가 글 쓴다고 하던 것 같던데 수입은 괜찮으려나? 우리 정아야 그간 해온 노력이 있으니, 생활비 정도는 번다지만 아무래도 제환이는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 그냥 문학도 아니고 판타지 소설이라고 한 것 같던데…….”

“어머,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형님. 저희 가족이 제환이한테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잘 버는 것 같더라고요.”

“에이, 동서. 가족끼리 부끄러워하지 말자. 혹시 몰라? 내가 주변 사람에게 말해서 한 권이라도 더 팔릴지. 근데 그거 글 쓰면 한 달에 천만 원은 벌 수 있으려나? 제환이가 해오던 생활이 있는데…….”

“호호, 제환이가 재능이 있나 봐요.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래? 얼마 정도나 버는 거야?”

“저는 잘 모르고, 제환이한테 물어보면 될 것 같네요.”

어머니는 계속해서 대답을 회피하는 것 같았다.

정확히 내가 얼마 버시는지도 모르고, 괜히 자식들끼리 비교하는 것 같았기에.

하지만 계속해서 집요하게 물어오던 큰어머니가 확답을 들어야겠는지, 직접적으로 얼마를 벌어오는지 물어왔다.

‘정아 누나가 한 점에 천만 원이라 했었나?’

정아 누나가 그림 한 점에 번다는 천만 원.

속으로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쓰면서, 천만 원을 벌려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다른 플랫폼까지 생각하면… 한 편이면 되겠네.’

다른 플랫폼까지 합쳐서 계산하면, 한 편에 천만 원 정도는 버는 것 같았다.

자세히 들어가면 천만 원이 아닌, 두 배를 넘어서는 걸로 알고 있고.

하루에 집필하는 양이 평균 세 편.

글을 쓰는 시간이 하루에 열 시간 정도 되니 세 시간에 한 편 쓴다는 거다.

될 수 있으면 이런 수익으로 비교하고 싶지 않았지만, 회피함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니 말해 드려야겠다.

“세 시간 정도 글 쓰면 못 해도 그림 두 점 정도 가격은 나오네요.”

“뭐?! 그게 무슨 말이니! 그러니까 정환이 네가 3시간 일 해서 2천만 원이 넘는 돈을 번다는 거야?”

“단순히 따지면 어렵긴 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정산받은 게 100억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작년 동안 정산받은 총금액.

투자를 하는 데 쓰인 비용과 세금을 빼고 계산해서 말하니, 놀라는 큰어머니가 보인다.

“…….”

잘못 생각했나 보다.

다들 글을 쓰면서 이 정도 수익을 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일까?

주위를 둘러보니 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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