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34화 (34/175)

34화

* * *

식사 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비서실장님은 어떤 결과물로 날 만족시켜 줄까? 계속해서 기대감이 더해져, 식사 자리가 즐겁게 느껴졌다.

“어떻게… 음식이 입맛에 맞습니까?”

“만족스럽습니다. 사장님이 대접해 주신 음식처럼 저의 보고도 만족스러운 느낌을 드리면 좋겠군요.”

“그럼 식사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일단 결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상대 쪽 라인이 관심을 갖게 하는 데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제 동성 에너지 사장님에게 보고가 들어가느냐 마느냐로 나뉠 거고, 그 보고를 받고 일을 밀어붙이느냐가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손을 떠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서실장님 말이 맞다. 방금 말 한 부분까지가 비서실장님의 몫. 그다음은 그들의 행동에 맡겨야 했다.

아무리 비서실장님이 맛있는 음식으로 포장했다 하더라도, 중간에 배달원이 이상한 데로 새기라도 하면, 음식이 주인에게까지 향하지 않을 테니.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큰아버지가 음식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정환이가 들어갔을 때, 그때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으니.

욕심이 그다지 많지 않은 아버지와는 다르게 정환이는 욕심이 많은 아이다.

그런 정환이가 다른 친척들을 제치고 그룹을 갖게 하기 위해선, 이번에 영향력을 줄이는 게 후에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게 틀림없었다.

“일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한번 들어보도록 하죠.”

“처음에는 라인을 갈아탄 팀장님에게 찾아가서 제가 정리한 프로젝트를 보고했습니다.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사장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긍정적인 부분만 다뤘기에 충분히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었고요.”

“그리고요?”

“그 당시에 제가 팀장님을 다급하게 만들었습니다. 동성에너지 사장님에게 보고드리고 싶다는 말을 전했거든요. 이 말을 들은 팀장님이 다급해지기 시작하더니, 조금 보완하자고 말하며 지금은 이르다고 말하더군요.”

“…….”

“여기서 확신했습니다. 제대로 관심을 끌어모았다고.”

확실히 비서실장님 말을 들어보면, 상대방이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게 의도가 어떻든, 퇴짜를 놓은 게 아닌 조금 보완하자는 말은 프로젝트에 흥미가 생겼다는 말이었으니.

“그렇게 프로젝트를 보완하기 위해 야근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다 퇴근하니 팀장님이 찾아오더군요. 그리고는 조용히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라인을 갈아탈 생각이 없냐고. 동성에너지 사장님은 욕심이 없기 때문에 승계 구도에서 밀릴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걸려들었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알겠다고 대답하는 순간, 저는 한 달 뒤에 회사에서 빠져나가기 곤란할 것 같더군요. 그래서 거절했습니다. 사장님을 배신하기 싫다는 말을 전했죠.”

“…….”

“그때부터 팀장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도 존재하던 사내 정치를 이제는 완전히 드러내고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 시절의 비서실장님은 전생 마지막쯤에 봤던 비서실장님과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전생에도 비서실장님의 진면목을 발견하지 못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하는 행동들. 자신이 주도해서 그만두는 게 아닌,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는 일련의 사전 행동들이 아닌가.

“억울한 척도 하고 힘든 척도 해봤죠. 악으로 버티는 연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급기야 전산을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

“저는 아예 모른 척, 억울한 척하며 하나하나 증거를 수집해 나갔습니다. 나중에 사용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요. 끝내는 저보고 비리를 저지른 걸 발견했다고, 나가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 와중에 약점을 가지고 나왔군요.”

“맞습니다. 물론 팀장님은 모르겠지만요. 끝까지 억울한 척하며, 제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항변도 해봤고. 저를 쫓아내기 위한 수작질이 아니냐며 소리쳐 말하기도 해봤죠. 그다음에는 현실을 보라고 말하더군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냐고. 좋게 나가서 퇴직금이라도 받으라고요. 그렇게 해서 회사에서 퇴직했습니다.”

비서실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역시나 찾아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는 과정도 완벽하고, 상대방에 대한 무기도 가지고 온 것 또한 완벽했다.

나중에 정환이가 동성 무역에 들어갔을 때, 필시 팀장이라는 사람이 방해해 올 거다.

그러다가 이전에 수집해 놓은 증거를 약점으로 삼아, 다시금 라인을 갈아타게 하면 어떻게 될까?

또 하나의 무기가 생기는 셈.

만족을 넘어, 완벽한 방법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제가 준비해 놓은 프로젝트를 후임들이나 주변 동료한테 넘겼습니다. 동성 무역 사장님 라인인 사람들이니, 아마 나중에 사장님 동생분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완벽하군요. 제가 사람을 잘 찾은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단지, 그 안에 몇 개의 연기를 통해서 상황을 좀 더 유리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남들은 그걸 못 하더군요. 민호 씨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고,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이상을 보여주는군요.”

“감사합니다.”

역시 말뿐인 인정보다, 정확히 숫자로 말해 주는 게 나을 것 같다. 비서실장님에게 감탄했다고.

일을 잘해 줄지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모든 상황이 나를 위해 행동한 것처럼 느껴졌다.

“급여 부분은 기본 연봉 3억으로 출발하겠습니다. 계약금은 2억을 드리도록 하죠. 성과금 또한 부족하지 않게 챙겨드리겠습니다. 나중에는 JH 그룹의 지분도 생각해 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그 모든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제가 당장 민호 씨에게 부탁할 거는 JH 자동차에 합류해 일정 이상의 궤도로 정상화시키는 겁니다. 아마 김형찬이라는 연구원이 회사를 꾸리고 있을 겁니다. 가서 도와주도록 하세요. 이른 시일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다음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김형찬 씨가 연구에서 성과를 드러낸다면, 그 성과를 가지고 티슬라라는 그룹과 계약을 맺도록 하세요. 지분 교환도 괜찮고, 기술 공유도 괜찮습니다. 최소한 MOU라도 맺도록 하세요.”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지만, 나중에 가서는 전 세계 기업 1위를 달성하는 티슬라.

기업 가치가 1,000조 원을 넘어서는 날이 6년이 채 남지 않았다.

이런 회사와 재빨리 손을 잡고, 한국 시장을 점령해 나간다면, 대현 그룹을 따라잡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더해서 동성 무역과도 손을 잡아, 동성 그룹의 가치를 올린다. 나중에 가서는 JH 중공업과 동성 건설이 손을 잡아 또 한 번 가치를 올린다.

이렇게만 일이 진행된다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생의 꿈이셨던 재계 순위 5위. 그 꿈을 내가 이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설이 지나면, 곧바로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회사도 그만뒀겠다, 효도 좀 하고 싶군요.”

“그렇도록 하세요. 떡값이라도 챙겨드릴 테니 부모님 데리고 백화점 가서 옷이라도 좀 사드리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은 명절 안 챙기십니까?”

“작년부터 건너뛰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심하게 삐지셔서, 아직까지 연락이 없네요. 1년이 넘게 연락을 안 한 적은 처음이라, 먼저 연락드리기가 좀 그러네요.”

“제가 재벌가의 삶은 잘 모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살아온 환경에 달라졌을 뿐. 분명 회장님께서도 사장님을 보고 싶어 하실 겁니다.”

“그런가요? 한번 연락이라도 드려봐야겠네요.”

“사장님도 즐거운 명절 보내십쇼.”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4개월 동안 민호 씨가 할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 나누고 나가도록 하죠.”

“좋습니다.”

내가 다시 일할 때까지 남은 시간 4개월. 그전까지는 이번 작품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미리 그동안의 계획들을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 * *

명절이 다가오기 3일 전.

글을 쓰다가 출판사에서 명절 선물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도 연락 좀 드려야겠군.’

출판사의 연락을 생각하니,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언제 한번 연락은 드려야지 하고 생각했었기에 이참에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핸드폰을 들고, 할아버지의 전화번호를 눌러 쳐다만 보고 있는 나.

떨린다.

왠지 모르겠다.

분명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있다.

누굴 제일 존경하냐고 묻는다면, 부모님을 제외하고 할아버지를 뽑을 정도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거지만, 글을 쓰면서 예전에 못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예전이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걸어 형식적으로나마 인사를 드렸을 텐데.

배우들이 연기에 들어가 몰입하다 보면 그 역할이 곧 자신이 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첫 작을 쓰면서 나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주변 인물들에 대해 생각해 오다 보니, 잊었던 감정들이 다시금 떠올랐나 보다.

더 이상 망설였다간, 전화를 걸지 못함을 직감한 나는 용기를 내서 전화 버튼을 눌렀다.

따르릉―

딸깍―

- 여보세요. 정환이 네가 웬일로 전화 한 게냐. 설마 경영에 다시 참여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지금도 경영에는 관심 없습니다. 이번에 명절이고 해서 할아버지에게 연락이라도 드려야 될 것 같아 전화를 드렸습니다.”

- 그게 무슨 소린 게냐?

“…….”

아직까지 할아버지는 화가 풀리지 않았을까?

하기야 나를 믿었던 마음이 큰 만큼, 충분히 상실감도 크리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어쨌든 나의 일련의 행동들이, 나중에는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선택들이었으니.

“그냥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드리고 싶더군요. 상심이 많이 크신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나중에 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예끼, 이놈! 1년 동안 연락 한 통 없던 것도 모자라, 왜 이렇게 서둘러서 전화를 끊으려는 게냐!!

“…아직 화가 나신 거 아니셨습니까?”

- 그 일은 이미 체념했다. 이미 경영에서 제외했고, 제환이 너도 다시 경영에 발을 담글 의지조차 없는데, 더 화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1년 동안 연락 한번 없던 게 괘씸해서 심술 좀 부려봤다.

“…….”

- 3일 뒤에 아비 따라서 본가로 오도록 하거라. 1년 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연락이라도 드려야 된다고 하니, 괘씸한 게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적어도 세배는 하러 오거라. 오랜만에 손자 세배나 받아 보게.

“…예, 알겠습니다. 그럼 3일 뒤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알겠다.

뚝―

비서실장님의 말이 맞았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고.

할아버지도 서로를 보고 싶다는 감정이 나와 똑같이 들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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