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 * *
계약에 대해서 생각하는 박제환.
이번 계약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최대한의 이득을 받을 수 있을까?
일단 기준부터 잡아야겠다.
내가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작품으로 벌어들인 수익.
회사가 얻었던 이득들.
이 모든 걸 생각해 보고 판단을 내려야겠다고 결정했다.
“일단 계약에 앞서, 기준을 잡기로 하죠. 혹시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작품의 매출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노트북에 남아 있을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노트북을 이용하는 팀장님.
이때까지 수익을 기록해 둔 파일이 있나 보다.
나 역시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수치를 알기 위해 물어봤다.
계약을 진행하기 전에 팀장님의 의식 속에 심어주는 과정이다.
내 첫 작이 얼마의 이익을 얻었고, 그 작품이 출판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안겨다 줬는지를 알고 계약을 진행하는 것과 그냥 이대로 계약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 팀장님의 생각에 큰 차이가 있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작가님에게 입금된 금액이 90억 정도이니, 저희 출판사는 10억의 이득을 봤습니다. 웹툰은 인제 막 출발했기에, 아직 정확한 수치를 내리지 못했지만, 소설보다 더 큰 매출을 올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차 창작물까지 더한다면, 그 수익은 더욱 늘어나겠군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작으로 인해 내가 벌어들인 돈이 90억.
다른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수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금액이었다.
일단 글을 쓰는 속도가 남들과 비교하면 훨씬 빠른 만큼, 남들이 약 2년 동안 집필할 양을 난 1년 만에 끝냈다. 더군다나 아직까지는 플랫폼 간 독점 벽이 세워지기 전.
충분히 가능한 수익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통장에 들어온 돈을 생각하면, 팀장님이 말 한 부분에 거짓말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차기작을 계약할 때는 얼마의 돈을 받아야 적당할까?
순식간에 많은 계산이 머릿속에 오가기 시작했다.
계약금을 없애고, 선인세만 생각하면 되니 한결 수월함을 느꼈다.
‘그렇게 하면 되겠군.’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계산을 마친 나는 팀장님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기로 하죠. 이번에도 선인세만 받기로 하겠습니다. 계약 조건은 9 대 1. 선인세는 혹시 모르니 15억을 받기로 하죠.”
“아무래도 금액 크기가 큰 만큼, 이 자리에서 곧바로 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사장님을 설득할 생각이니, 안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죠.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을 더 추가하면 어떨까 생각이 드는군요.”
“한 가지 조건이라면…….”
선인세 15억. 차기작 리스크를 고려했을 때 합리적인 결과가 15억이었다.
그럼에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남들에게 15억이란 돈이 크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지금 들어오는 돈은 앞으로 있을 투자에서 몇십 배로 불려질 돈이었다.
뒤에 들어오는 안정적인 돈보다는 지금 당장 리스크를 안고 최대한 많은 돈을 받는 게 최고의 선택이었기에 팀장님에게 한 가지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2차 저작권. JW 출판사를 통해서 계약하기로 하겠습니다. 선인세 15억을 추가해서 30억으로 바꾸도록 하죠.”
“…작가님, 2차 저작권을 양보해 주신다면 저희 출판사 입장에서는 좋습니다. 솔직히 욕심도 나고요. 하지만 작가님한테 어쩌면 손해가 갈 수도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충분히 영상화가 가능해서 전 작보다 2차 저작권이 중요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모든 걸 감안해서 선인세 30억을 부른 겁니다. 팀장님도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나름대로 양보했다는 걸. 계약금도 아니고 선인세만을 올리는 건 제 입장에서 많은 양보를 한 겁니다.”
“잘 알고 있죠. 그래서 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계약금도 아니고 선인세만을 고집하시니 그렇다고 강제로 계약금을 줄 수도 없고…….”
“괜찮습니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생각해 보니 출판사에 한번 들러야 되네요. 한정판에 친필 사인을 해야 되니까. 그때 대답을 들으면 될 것 같군요.”
그렇지 않아도 만화책에 친필 사인을 하러 가야 됐는데, 겸사겸사 계약 얘기도 그때 들으면 될 것 같았다.
“계약 얘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죠.”
“후… 진짜 이 순간만 되면, 떨려서 죽을 것 같습니다. 분명 저보다 동생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계약할 때만 되면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드네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근데 작가님은 어떻게 그 정도의 금액을 듣고, 침착하실 수가 있는 겁니까? 사실 제 입장에서는 출판사의 돈이니 그렇다 쳐도 작가님은 몇십억 단위의 돈을 받는 건데 생각보다 무덤덤하네요.”
“성격이 무덤덤한 편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거치고 작품 이야기하실 때는 눈이 반짝이던걸요?”
“작품에 한해서는 무덤덤하지 못하겠더군요.”
나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돈에 관해서나 일에 관해서는 남들이 느끼는 감정에 비해 무덤덤한 편이었다. 아마 전생에 여러 변 겪었던 일인 만큼, 당연한 결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얘기. 다른 사람들이 내 작품에 관해 얘기를 할 때,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 작품을 어떻게 봤는지, 내가 의도한 부분을 읽으면서 느꼈는지. 이 모든 게 궁금했고, 흥미로웠다.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작품에 관한 얘기가 많았기에 두 가지 사이의 간극이 느껴졌나 보다.
그 뒤로도 작품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나누던 우리는 이른 시일 내에 출판사를 찾아가기로 약속하며, 각자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이번에 얻은 30억. 안 그래도 부족한 초기자금에 아쉬움이 느껴졌었는데,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30억밖에 안 되는 돈이지만, 6월쯤에는 최소 두 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 푼 한 푼이 아까운 지금에는 저 돈도 큰돈이었기에, 큰 성과를 낸 거에 대해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아니지…….’
어쩌면 이 뿌듯한 감정은 수익에서 오는 게 아닌, 내 작품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온 것 같았다.
30억이란 돈은 단순히 30억이 아닌, 내 작품의 가능성을 매긴 금액이지 않은가.
만족스러운 만남을 가진 것 같은 나는 집으로 돌아가 차기작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팀장님과 만남을 가지고 3주 후.
출판사에 친필 사인을 하러 간 나는 이전에 말했었던 조건대로 계약을 진행하기로 이야기를 나눴다.
동시에 연재하는 사이트는 전작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나중에야 독점 벽이 생겨 다른 플랫폼도 고려해 볼 만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기존의 방향이 최선이었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전했다.
‘2권까지 마무리됐네.’
팀장님과 만남을 가지고, 또다시 글에만 집중하다 보니 2권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원래라면 계약이 진행되자마자 곧바로 글을 올리는 게 맞았다. 하지만 팀장님이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이번 작품은 완벽하게 시작해 보자고.
전 작품이 성공한 만큼, 차기작에 대한 홍보를 진행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연재하자는 말이었다.
나 역시 이번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알겠다는 말을 전한 후 글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2권 분량까지 완성할 수 있었나 보다.
지이잉―
다 쓴 원고를 팀장님에게 보내기 위해 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번호를 확인하니 비서실장님이었다.
벌써 약속한 한 달이 다 됐나 보다.
“전화 받았습니다.”
- 이민호입니다. 사장님을 한번 만나 뵙고 일의 경과를 보고드려야 할 것 같은데, 언제쯤 시간이 되십니까?
그때 이후로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비서실장님.
전생과의 호칭과 큰 변화가 없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보는 걸로 하죠. 지금은 조금 여유로울 때라 민호 씨 시간에 맞추면 될 것 같군요.”
- 그럼 이틀 뒤는 어떻습니까? 이때까지 했던 일을 완전히 정리하는 데 이틀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이틀 뒤, 그때 만났던 한식당에서 보는 걸로 하죠.”
- 그때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흥미로운 감정이 들었다.
비서실장님은 내가 준비해 준 재료로 어떤 요리를 만들었을까? 그 요리를 큰아버지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까?
불과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그때 말했던 것들을 정확하게 실행했는지 궁금증이 느껴졌다.
만약 제대로 일을 처리했다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금 비서실장님도 전생의 비서실장님과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다는 걸.
‘형찬 씨가 한 가지 성과만 내더라도 좋을 것 같은데.’
비서실장님이 내가 생각하는 기준치를 넘는다면, 형찬 씨의 성과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미국의 티슬라가 크게 두각을 드러내기 전이다. 만약 형찬 씨가 성과를 내고, 한국의 자동차 회사를 하나 인수해 티슬라에 접촉하면 어떻게 될까?
운이 좋다면 정식 계약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 MOU는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생에서도 형찬 씨의 연구 결과를 탐낸 티슬라가 어떤 식으로든 접근하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렇게만 일이 흘러가도, 대현 그룹의 대항마가 생겨나는 셈.
시간이 흘러, 티슬라가 자리를 잡고 JH 자동차 역시 관련 기술을 적용하다 보면 대항마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지 능력부터 확인해야겠군.’
방금 말했던 바를 진행하기 위해선 비서실장님의 능력이 중요했다.
이틀 뒤 만남에서 비서실장님의 능력에 확신이 생긴다면, 티슬라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비서실장님은 협상 부분에서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걸로 알고 있으니.
‘재밌게 흘러가는군.’
막상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는 걸 보니, 사업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비서실장님과의 만남.
그날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 * *
한식당에 도착한 박제환.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비서실장님이 보였다.
“미리 와 계셨군요.”
“와서 생각 정리 좀 하고 싶어서, 좀 더 서둘렀습니다.”
“많이 배고프실 텐데, 밥부터 먹기로 하죠.”
아무래도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천천히 들어도 될 것 같다.
내 눈에 비치는 비서실장님의 모습.
그를 오랫동안 봐 왔던 나는 알 수 있었다.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고.
만약 일을 진행함에 있어 한 가지 아쉬움이라도 존재했다면, 비서실장님은 저런 미소를 보이지 않을 거다.
대화를 나누면서 보이는 미소.
일을 완벽하게 처리했을 때 봤었던 그 미소가 보였다.
‘어떤 식으로 처리했으려나…….’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했길래, 짧은 한 달이란 시간 만에 다 처리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의심이 들긴 했다. 아무리 내가 아는 비서실장님이라 해도, 한 달이란 시간은 짧게 느껴질 테니.
계속해서 드는 궁금증에 즐거운 마음이 들면서, 계속해서 나오는 음식을 음미하며 본격적인 대화를 나눌 시간을 기다렸다.
맛있는 음식은 천천히 즐겨야 더욱 가치가 있는 법이다.
비서실장님의 진행 상황 보고.
어느 음식보다 맛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