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32화 (32/175)

32화

* * *

시간에 맞춰 카페에 도착한 박제환.

이제는 자연스럽게 내 음료를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는 팀장님이 보인다.

만날 때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정이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를 이끌 때는 이런 나를 경계했었다. 언젠간 정으로 인해 손해를 볼 날이 올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글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손해를 볼 일이 없었으니.

괜스레 팀장님이 반가운 마음이 든 나는 내 마음을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오! 작가님 오셨군요. 다행히 시간에 맞춰서 음료가 나왔네요.”

“매번 감사합니다.”

“에이, 작가님이 저희 출판사에 해주시는 게 얼만데 이 정도야 제가 노력해야죠.”

팀장님과 인사를 나누고는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이전에 말했었던 책으로 된 웹툰인가 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만화책.

웹툰을 만화책으로 만들었을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저번에 말했던 만화책인가 보군요.”

“맞습니다. 진짜 공장에서 책을 받자마자 작가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하나만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원래 한정된 숫자는 사람들에게 소장욕을 느끼게 하죠. 더군다나 제 글을 좋게 봐준 팀장님이니 갖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작가님 팬이라 더 그런지 모르겠네요. 여기 책을 한번 살펴보시고 하자가 없으시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작가님 친필 사인을 100부에 적어서 한정판으로 뿌릴 생각입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100부.

그 이상으로 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사인해야 될 양이 늘어나기에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다.

‘겉표지는 괜찮군.’

팀장님이 내미는 책을 받아들여 겉을 살펴보니 만족스러웠다.

그 누가 보더라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표지. 웹툰의 하이라이트를 표지로 그려놓은 것 같았다.

“제가 만화책을 살펴볼 동안 팀장님도 차기작 글을 한번 살펴보는 게 괜찮겠군요.”

“혹시 차기작 원고 파일을 저한테 보내셨습니까?”

“오기 전에 보내고 나왔습니다. 마침 노트북도 가져오셨으니, 한번 살펴보시죠.”

“이거 뜻밖에 희소식을 들었네요. 그렇지 않아도 작가님 차기작을 빨리 보고 싶어서 어떻게 물어봐야 되나 고민했는데. 실례지만, 차기작 원고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팀장님이 내 팬이라는 말은 입에 발린 말만은 아닌가 보다.

차기작 원고를 보냈다는 말을 전하자마자 표정이 변하기 시작하며, 곧바로 노트북을 꺼내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 작품을 좋아해 준다는 게 느껴졌기에, 기분이 좋아진 나 역시 기쁜 마음으로 만화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거는 통하겠네.’

만화책을 살펴보는데, 한 가지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통한다고.

분명 손흥만 선수 팀에 있는 각 나라의 선수들도 내 작품에 빠질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자신감의 근거는 전생에 봤었던 한 작품에 있다.

나보다 약 1년 뒤 작품을 내고, 웹툰 화를 한 그 작품. 그 작품 또한 각 나라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며 300억이란 매출을 올린 걸로 알고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만화책.

충분히 그 작품보다 퀄리티가 높은 걸 알 수 있다.

‘더군다나 마케팅으로 한정판 만화책을 뿌리면 홍보가 될 테니.’

지금 하려는 마케팅이 없더라도, 충분히 그 작품을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의 마케팅이 합쳐지면 어떻게 될까?

충분히 300억이란 매출을 넘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확신하며, 다 본 만화책을 덮고 팀장님을 바라봤다.

그런 내 눈에 비치는 팀장님. 단순히 내 작품을 살펴보는 게 아닌, 몰두하며 읽고 있는 게 보였다.

자신의 얼굴을 노트북 앞에 갔다 대며,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팀장님.

내 작품이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작가에게 제일 좋은 상황은 누군가가 내 작품을 사랑해준다는 걸 확인할 때인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감정이 들었다.

‘조금은 기다려줘야겠군.’

내가 준비한 분량은 1권.

살펴보기만 한다면 금방 끝날 분량이었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팀장님처럼 집중해서 본다면 족히 한 시간이 걸릴 정도의 분량이다.

다른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내 작품에 몰두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기분 좋게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작품을 살펴보고 있는 이철민 팀장.

‘미쳤군…….’

작가님이 쓰신 차기작은 전작과 또 다른 의미로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이번 작품은 조금 주춤할 거라고 생각했다. 작가님이 성공한 처음 작품은 판타지 내용이고, 지금 차기작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재벌물이니.

두 장르를 동시에 잘 쓰는 작가님은 좀처럼 드물었다.

더군다나 내 앞에 있는 작가님은 나이가 스물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재벌물의 특성상 사회 경험이 많은 작가님들이 잘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착각이었어…….’

작가님이 주춤할 거라는 생각은 내 착각이었다.

오히려 전 작품보다 더욱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의 전 작품은 고된 일로 지친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작품은 전 작품과 반대로 성공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재벌가 사람을 표현하고 있다.

완벽히 상반되는 작품임에도 전작보다 오히려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발전이라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발전이라 표현하기도 애매한 게 그렇다고 전작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냐 묻는다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전작도 완벽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

뭐라고 표현할 수 없겠지만, 저번 작보다 더욱 몰입되는 게 느껴졌다.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주인공,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이용해 무한한 이득을 창출해 내는 과정.

이 모든 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개연성을 챙겨 가고 있다.

그렇다고 재미가 떨어지냐?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읽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뒤의 내용만을 기다릴 거라고 확신한다.

어떻게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해 나갈지, 그로 인해 어떠한 이득을 얻을지. 전작과 마찬가지로 한번 작가님의 소설을 접한 사람은 끝까지 따라올 거라는 걸 자신할 수 있었다.

‘전작보다 수익적인 부분도 훨씬 늘어나겠어.’

전작의 장르는 판타지. 이 장르의 경우 2차 창작으로는 웹툰이나 게임이 최선이다.

이번 차기작의 장르는 현대 판타지. 더욱 깊게 파고들면 재벌물이란 장르. 이 장르는 드라마로 만들기 어려운 판타지와 다르게 영상화로 하기 적합한 장르였다.

2차 창작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님의 작품을 살펴볼수록 감탄이 나왔다. 처음에는 간단히 살펴보자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집중하며 내용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뭐야… 벌써 끝이야?’

읽다 보니 어느새 모든 분량을 다 읽어 버렸다.

느낌상으로 5화까지만 읽은 것 같은데 벌써 한 권 분량을 읽었나 보다.

작가님의 작품에 감탄하며, 생각을 이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보통 내가 한 권을 빠르게 읽을 때 드는 시간은 30분. 이번에는 집중하고 읽었으니, 1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렸을 거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카페. 그것도 작가님과 이번 프로젝트 이야기와 동시에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러 나온 곳. 한마디로 최소 50분가량 작가님을 기다리게 했다는 거다.

식겁한 기분이 든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올렸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작가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큰일이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기작에 대한 확신이 생긴 지금, 작가님과 또다시 계약 얘기를 나눠야만 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그 시간이 무섭게만 느껴졌는데, 하물며 실수까지 해버린 상태.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 시간을 더 끌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곧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작가님에게 사과드렸다.

“그… 죄송합니다, 작가님. 가볍게 살펴본다는 게 끝까지 집중해서 읽어버렸네요…….”

“뭐, 그건 괜찮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집중해서 읽어주는데 그 어떤 작가가 싫어하겠습니까.”

다행히도 작가님 기분이 괜찮으신가 보다.

이번 일로 기분이 상하지 않으셨을까 걱정했었는데, 안심이 되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읽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실 이번 프로젝트보다 저는 차기작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더군요.”

“이걸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이럴 때마다 말로 표현해야 된다는 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나마 표현한다고 하면 대박이란 단어가 맞겠군요. 아니, 미쳤습니다.”

“…….”

“자칫 잘못하면 식상하다고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을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멍청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들어오기 쉬운 주제고요. 하지만 작가님 작품은 그런 단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천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작가님 작품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자 한다면,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그중에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을 방금 말했다.

보통 전문가 물이나 재벌물을 쓸 때, 독자님들에게 들어오는 지적 중 제일 많은 게 주인공을 똑똑하게 만들려고, 주변 인물의 지능을 유아 수준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이 부분은 나 역시 공감하는 게, 이때까지 살펴봤던 작품들 대부분이 이 경우에 속했다.

하지만 작가님 작품은 달랐다. 마치 진짜 천재가 있고, 그 천재가 재벌가였다면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주인공의 생각 말고도 세계관. 분명 현실을 참고한 걸로 보인다.

이 부분도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현실을 참고해서 작품을 쓰다 보면, 개연성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분명히 들어온다.

확신할 수 있는 게, 이때까지 본 작품 중 단 하나도 이 지적을 피해 간 걸 보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님 작품은 달랐다. 개연성을 놓치지 않고, 다 챙겨 갔으며 미래에 대한 부분도 실제로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 반영을 잘해놨다.

‘이러니 한 권을 그 자리에서 다 보지…….’

어떻게 이런 작품을 잠시 살펴볼 수만 있다는 말인가.

내가 아닌 그 누가 와도 처음 부분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작품을 끝까지 다 읽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말의 걱정마저 사라지게 만들어 주시는군요.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

꿀꺽―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는 작가님.

제일 무서운 시간이 다가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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