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31화 (31/175)

31화

* * *

팀원들과 공장에 도착한 이철민 팀장.

만화책을 빠르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까? 분명 평소와 같은 속도로 운전했음에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도착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의 부탁으로 만화책을 가지러 간 사장님을 기다리는데, 1분 1초가 너무나도 느리게 흘러갔다.

“자, 여깄소. 각 나라 언어로 20부씩 한번 확인해 보고, 하자가 있으면 지금 말해 주십쇼.”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확인해 보라며 만화책을 내미는 사장님.

사장님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만화책에 자신이 있다고.

저 표정을 보니 빨리 확인하고 싶다. 작가님의 작품을 웹툰을 넘어 만화책으로 옮겨진 결과물을.

“자! 다들 각자 하나씩 맡아서 살펴본다!!”

지금 완성된 만화책은 총 100부.

총 다섯 개 국어로 만들어졌으니, 한 개 국어당 20부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 많은 책을 혼자서 확인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기에 함께 온 팀원들에게 각자 맡아서 확인하라는 말을 전했다.

다른 나라의 언어는 확인하기가 어려울 테지만, 최소 그림이라도 확인해야 했다.

20부란 한정판에서 실수가 나온다면, 그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을 거다.

1초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나는 각 팀원에게 수량에 맞춰 배부하고는 책을 펼쳐 살펴보기 시작했다.

만화책의 첫인상과도 같은 겉표지.

누가 보더라도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큼, 사람의 눈길을 끄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1권 분량에서 하이라이트와도 같은 부분.

겉표지만 봤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스윽― 스윽―

“…….”

마음 같아서는 빠른 속도로 만화책을 확인하고 싶었다. 실제로 책을 보기 전에는 빠르게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시 직원들과 회식하려 했고.

하지만 아깝다. 한 장 한 장 넘기기에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올 때, 맛을 음미하는 듯한 기분.

한 장 한 장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팀원들한테 맡기는 수밖에 없겠네.’

한 번에 넘기기에는 나 자신을 말릴 수가 없음을 깨달은 나는 확인 절차를 팀원들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빠르게 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만화책을 살펴보려던 나는 결국 마음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나와 같이 만화책을 살펴보던 팀원들.

모두가 나와 같은 속도로 책을 살피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웹툰과 만화책으로 보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각 나라 언어 별로 한 권씩 챙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한정판이라는 글자는 나의 가슴을 울리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그래선 안 됐다. 20부라는 한정이 책에 가치를 올려줄 테니.

내가 한 권을 가져가는 순간, 그 가치는 깨질 수밖에 없었다.

‘아쉽네…….’

만화책이 잘 나옴에 기쁜 마음과 동시에 내가 가지지 못한다는 마음에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쉬운 마음을 삼킨 채, 한 장 한 장 살펴보다 보니 마지막 한 장이 남은 게 보인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마지막 장면이 보였다.

또 한 번 아쉬움이 느껴졌다. 이 한 장을 마지막으로 만화책이 끝난다는 게 너무나도 아쉽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낀 게 아닌지, 주변에 팀원들 모두 여운에 잠긴 듯한 모습이 보였다.

“팀장님, 이거 저희도 한 권씩 챙기면 안 되겠습니까? 너무 갖고 싶네요.”

“안 돼. 그건 한정판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거다. 정 갖고 싶으면 2차로 풀리는 날을 기다려야지.”

“하… 아쉽네요. 작가님 사인이 들어갈 한정판을 눈앞에서 놓쳐야 된다니…….”

“그래서 소장 가치가 올라가는 거다.”

자신의 손에 있는 만화책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팀원들.

이것만 보더라도,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자, 다들 빠르게 확인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오늘 사장님 허락받아서 소고기로 가자!!”

“와!! 법인 카드로 소고기만큼 맛있는 게 없는데, 빠르게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늘은 무리해서 소고기를 사도 될 것 같다.

지금 살펴보는 만화책들. 성공을 못 시킨다면, 우리 팀의 능력 부족인 게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우리 팀원들의 능력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한마디로 성공시킬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이 정도 성과라면 사장님도 허락해 주실 거다. 아니,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내가 사비를 써서라도 회식을 진행할 생각이다.

이런 만화책을 읽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아쉽지 않은가.

“사장님도 할 거 없으면, 같이 고기나 먹으러 가시죠.”

“그래도 되겠어요?”

“그럼요! 이런 결과물을 보고도 아무런 대접 못 하면, 그게 잘못된 거죠.”

“하하, 그럼 오늘은 눈치 안 보고 고기 좀 얻어먹겠습니다.”

역시 사장님도 자신의 결과물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이런 자리는 부담스러워서 피하는 게 대부분인데 웃음기를 머금고 참여한다는 의견을 전달하지 않나.

나 역시 이번 결과물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확인 절차를 빠르게 마무리 짓고는 회식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 * *

차기작 집필을 시작한 박제환.

작품 구상을 맞추고 집필을 시작한 차기작.

쓰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작품이 나에게 뜻깊어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이번 작품, 전생 마지막에 썼던 「회고록」과 비슷한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전생의 내가 과거로 돌아와 선택을 하는 장면.

첫 장면은 똑같이 시작됐다.

‘글을 쓰는 걸 포기한다.’

전생의 마지막 작품은 회사의 성장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글을 쓰는 선택을 했다.

이번 작품은 반대의 선택.

글을 쓰는 걸 포기하고, 회사에 집중했을 때의 얘기를 담고 싶었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감정을 결여시키고, 성장에만 모든 걸 쏟아붓는 소설.

글을 쓰면서 재밌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현실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10화까지는 전생의 기억을 정리시키고, 계획을 세우는 걸로 마무리 짓는다.’

처음 시작.

할아버지에게 불려 가 글을 쓰는 걸 포기하고 회사에 집중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부터 할아버지에게 실망감을 안겨줬기에 더욱 성과를 내야 했다.

성과를 위한 미래 지식을 정리하고 노트에 기록한다.

처음 선택은 중국 증시에 대한 의견을 할아버지에게 전달하는 것.

2015년 3월쯤.

중국은 부동산 등기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달 뒤, 급격하게 버블이 붕괴되면서 중국 증시가 6퍼센트 가까이 떨어지게 된다.

동성 무역으로서는 이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면, 때에 맞춰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25화까지 여기에 맞춰 움직인다.’

1권 분량인 25화.

여기까지 첫 번째 선택으로 내용을 전개하면 될 것 같았다.

관련 정보를 이용하기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

이를 지켜보며, 다시금 믿음을 보내는 할아버지.

이번 사태를 예견함으로써 성장하는 회사.

그로 인해 견제하기 시작하는 주변 그룹들.

많은 내용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이번 작품도 재밌게 집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번 작품을 쓰면서,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됐다.

1권 분량이야 이제 지나간 과거인 만큼, 소설에 주요한 사건들을 다뤄도 크게 문제가 없을 거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다음에는 지금 시점에도 미래에 일어날 일.

소설에 욕심을 부리다가 나비 효과가 일어날 확률이 높았기에, 미래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최대한 피하기로 결정했다.

그나마 다루는 사건들도 미래를 바꾸지 않을 자그마한 사건들.

어차피 이 소설의 주는 경영과 그에 맞는 경영 철학인 만큼, 이것만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얻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중하다….…’

글을 집필하고 있던 나는 문득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지 않고, 소설처럼 회사를 위한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로 했기에, 두 감정도 느낄 수 있게 됐다…….’

글을 쓰기로 선택했기에 두 가지 감정도 다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절대로 느껴보지 못할 이 감정.

다시 한번 과거로 돌아와 글을 쓰기로 한 선택에 만족스러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려나…….’

이번 작품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과연 경제에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때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할아버지의 생각.

물론 할아버지가 나의 글을 볼 확률이 낮은 건 알고 있다. 그래도… 혹시나 할아버지가 글을 봤을 때, 내 글을 어떻게 평가할지가 궁금해졌다.

그러기 위해선 글을 먼저 쓰는 게 최선. 나머지 생각을 머릿속에 지우고는 다시 한번 글에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진행해 나갔다.

글에서 펼쳐질 또 다른 현실들. 주인공이 되니,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 * *

1권을 마무리 짓는 박제환.

이번 작품은 내 또 다른 인생을 쓴다고 생각해서일까?

1권을 작성하는 동안, 그 어떠한 일도 하지 않은 채 작품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회사를 운영할 때, 이 정도로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하면 피곤함에 찌들어 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는 피곤하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잠을 자기 위해 누울 때마저도 글을 어떻게 전개 시킬까 하는 생각에 날은 세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1권.

빨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자신 있다.’

첫 작을 쓸 때도 자신은 있었다.

그렇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냐? 그건 아닌 게, 잘못하면 사람들에 관심을 못 받을 수 있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작품은 자신감을 넘어 확신을 가지고 있다. 무조건 사람들이 사랑해 줄 거라고.

재벌가에서 태어난 남성이 성공만을 위해 움직일 때, 어떠한 결과물을 불러오는지.

도중에 방해를 해 오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복수를 할지.

모든 상황을 웹소설 형식으로 전개를 이어 가며, 중간중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이 넣지 않았는가.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른 시일 내에 사람들에 반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에게 전화 걸어야겠군.’

어제인지 그제인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팀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만화책이 완성돼서 나의 친필 사인이 필요하다고.

1권을 마무리 짓기 전에는 다른 활동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를 짓고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전했다.

1권이 마무리된 지금, 팀장님의 반응도 확인하고 싶었기에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 네, 작가님. 전화 받았습니다.

“제가 늦게 전화한 게 아닌가 싶군요. 이번에 1권 분량을 마무리해서 전화드렸습니다.”

- 이거 행복한 소식이 동시에 들어오는군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처럼 일이 잘 풀린 날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도 만화책을 보시면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 볼까요? 굳이 미룰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 저야 감사드리죠!! 작가님 차기작도 기대되네요. 오늘 당장 확인하고 싶지만, 날이 늦었네요. 혹시 내일 미팅을 하면서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저야 상관없습니다. 그럼 내일 점심에 그때 만났던 카페에서 보는 걸로 하죠.”

-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팀장님과 약속을 잡은 날을 매번 기대가 되는 것 같았다.

과연 내일 팀장님이 가져올 만화책을 어떤 모습일까?

웹툰으로 봤을 때의 그 감정을 잘 살릴 수 있을까?

종이책의 감수성을 잘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동시에 또 다른 기대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팀장님은 내 차기작을 읽고 어떤 판단을 내릴까.

물론 그 자리에서 다 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1권이란 분량을 읽기에는 시간이 걸리니.

그래도 느낌은 볼 거라고 생각했기에, 빨리 내일이 다가와 서로의 성과물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기작에 대한 평가를 듣고, 팀장님은 만화책에 대한 평가를 듣는.

‘오늘은 이만 자야겠군.’

글을 마무리 짓느라 날이 늦었기에, 오늘은 간지러운 이 감정을 가진 채 잠자리에 들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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