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26화 (26/175)

26화

* * *

계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박제환.

비서실장님에게 긍정의 대답을 듣고, 그 뒤로 계약과 함께 일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가 끝나자 비서실장님에게는 김형찬 씨의 연락처를 남겼고, 비서실장님은 한 달 후 합류하겠다고 하였다.

이제는 미래를 풍족하게 만들어 줄 완벽한 발판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좋게 흘러가고 있군.’

솔직히 비서실장님이 거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가지고 있었다.

나야 확신이 있다지만, 비서실장님은 제대로 된 미래를 모르기에 불안함을 가지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비서실장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도 JH 자동차에 곧바로 합류하는 게 좋다는 입장이었다.

전생에서라면 조금 이른 시기이겠지만, 내가 과거로 오면서 나비 효과가 일어났는지, 비서실장님은 이르게 사내 정치에 노출되었다.

그런 마당에 현재보다 더한 급료와 어쩌면 더욱 빛날 미래를 보장하니, 지금 당장 합류하고 싶은 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겠군.’

성공적으로 세 사람에게 투자했던 것과 완벽한 발판을 만들어냈다는 것, 이것 또한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다시 마음 놓고 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더 기쁘게 만들었다.

역시 글을 쓰기로 결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면서도 충분히 두 가지의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게 결과로 드러났지 않은가.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고 판단을 내린 나는 다시금 작품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갔다.

‘첫 번째 작을 완벽히 마무리하자.’

작품을 마무리하는 과정.

글만 다 썼다고 해서 그 작품이 마무리되는 게 아닌 것 같다.

플랫폼에 글을 완결 짓고 독자들의 댓글을 확인하는 게 완전한 마무리라 생각했다.

글이 완결하고 나면 여러 사람에게 댓글이 달린다. 그 사람들 중에는 분명히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이 존재했다.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는지, 어느 회차에서 유독 반응이 좋았고, 안 좋았는지. 이것들을 확인하는 게 완전한 마무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작 집필에 들어가기 전에 이 일을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연재 사이트에 들어갔다.

역시 완결된 글을 보니, 여러 사람들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대부분이 완결을 축하하며, 차기작을 기다린다는 댓글들. 좋은 마무리를 해줘서 고맙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긴 힘들다.’

그런 댓글들 사이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전하는 댓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씁쓸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댓글들이 나중의 나에게 피와 살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나는 다시 댓글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안 좋은 댓글들을 살펴보니, 대부분은 내용 전개보다 주제에 아쉬움을 느끼는 듯했다.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지만, 지금보다 진중한 주제에 이런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줬다면 더욱 즐겁게 볼 수 있을 거라는 댓글들이 많이 있었다.

아무래도 헌터라는 주제가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느껴질 수 있기에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욕심이 나는군.’

이런 반응을 보니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과연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 분야인 재벌들의 삶, 이 부분을 웹소설 형식으로 풀어쓰면 사람들이 어떻게 봐줄까?

현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인 만큼, 더욱더 공감해 주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어쩌면 작가로서 당연한 욕심.

이전에는 재미를 가져갔다면, 다음 작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함께, 재벌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작에 대한 욕심이 다시금 피어나기 시작한 나는 댓글들을 확인하는 걸 마무리하고는 쪽지함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둬서인지 세 자릿수를 넘어가는 쪽지들이 보인다.

그중에 특정 쪽지들이 눈에 밟혔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팬심으로 보낸 사람들도 많지만,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출판사의 쪽지들.

한 번만 연락해 줄 수 있느냐는 쪽지들이었다.

‘한번 조정할 때는 됐지.’

지금 출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차기작을 아무 조건 없이 계약하겠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연락이 온 출판사들을 한 번씩 만나봐야 될 것 같다.

그런 만남들이 나의 객관적인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셈이니.

과연 그들을 나를 어떻게 판단할까?

궁금증이 들기 시작한 나는 연락이 온 출판사 중 체급이 있는 곳을 골라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 * *

일주일 뒤.

오늘 만날 출판사가 연락 온 출판사 중 마지막 출판사다.

만약 오늘도 이전에 만나본 사람들과 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JW 출판사와 협상하는 카드로만 써야 될 것 같았다.

“반갑습니다. 엔터 출판사의 김상우 팀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박제환 작가입니다.”

카페에 미리 와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 상대방이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첫인상은 이전 출판사들과 같이 좋은 이미지로 보이지 않았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인 만큼, 일단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첫인상은 단지 외견을 보고 판단하는 것.

사람 일은 또 모르지 않는가.

물론 이전 출판사들은 첫인상을 보고 느낀 것과 큰 차이가 있지 않았다.

“일단, 연락을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즐겁게 본 한 사람의 독자로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차기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하하, 이야기 좀 나누다가 말씀드리려 했는데, 역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죠?”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이전 출판사들의 모든 공통점이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는 거다.

물론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들로서는 최대한 친분을 만들고 계약 이야기로 넘어가는 게 최고의 상황일 테니.

이해는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다.

무엇보다 이 자리가 만들어진 게 계약이 주지 않는가.

시간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저희 출판사를 잘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먼저 간략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저희 출판사는 대기업 자회사로 탄탄한 자본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자금 부분에선 어디에도 안 밀린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네.”

“그다음은 프로모션 부분을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각 플랫폼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각종 프로모션을 따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 부분도 작가님에게 큰 도움이 될 부분이죠.”

“…….”

자신의 출판사가 가진 장점을 설명하는 상대방. 솔직히 좋은 점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부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가 자금력이 좋은 건 알겠다.

그런데 그게 나한테 큰 도움이 되나?

잘 모르겠다. 자신들이 돈 줄 것도 아니고, 각종 플랫폼에서 정산이 될 텐데, 자금력이 탄탄하단 게 나한테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다.

다음으로 말한 프로모션.

이것 또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출판사만 하더라도 나에게 각 플랫폼의 최상위 프로모션을 다 따내 준 걸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프로모션은 글만 좋으면, 어렵지 않은 부분인 만큼 큰 도움이 된다는 말에 공감이 가질 않았다.

“그건 건너뛰고, 조건부터 들어보기로 하죠.”

“…크흠. 아직 작가님이 한 작품만을 써서 그런지 이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시나 보군요. 알겠습니다. 조건으로 넘어가기로 하죠.”

어떻게 대형 출판사는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자신 있게 출판사를 설명하다가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면 금세 표정이 변한다.

아마 여태까지는 작가들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일반인들에게는 대기업의 자회사란 사실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하지만 나는 그게 뭔 의미인지 모르겠다. 당장 상대방의 출판사가 모회사로 둔 대기업이라고 해 봤자, 우리 동성 그룹 밑으로 알고 있다.

나에게는 전혀 구미가 끌리는 항목이 아니란 얘기다.

자신이 자신 있게 말 한 부분이 무시당했다고 느껴졌는지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로 조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일단 선인세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출판사에서 얼마나 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보단 적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선인세 5억에 비율은 8 대 2, 계약금 1억을 드리도록 하죠.”

“…….”

“아마 이 정도의 조건은 처음 들어볼 겁니다. 작가님이 아무리 첫 작을 성공시켰다 하더라도 차기작은 미지수이니까요.”

“…….”

확실히 이전 출판사들과 비교하면 조금 더 좋은 조건인 건 알겠다.

그렇다고 JW 출판사와 큰 차이가 있나?

있다. JW 출판사는 첫 작의 성공을 확인하지 않고 저것과 비슷한 조건을 말했지 않은가.

새삼 JW 출판사가 얼마나 큰 도전을 했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의 경제 관념이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있나 보다.

고작 저 정도의 조건을 들이밀면서, 저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니.

만약 내가 저기 입장에 있다면, 저런 조건을 들고 자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지 못할 텐데.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눠봤자, 현 출판사보다 좋은 조건을 말할 것 같지도 않고, 지금 담당자인 팀장님보다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기에 대화를 그만하기로 결정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계약은 언제 진행…….”

“하지만 계약을 하기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 조건이군요.”

“…그게 무슨…….”

“다음에 좋은 인연이 있으면 좋겠군요.”

내 말에 긍정의 답변이라고 생각했을까? 곧바로 계약으로 넘어가려던 상대방은 내 말이 거절의 말임을 깨닫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에게 말했다.

“후회하실 겁니다, 작가님. 작가님의 성적이 이전과 똑같이 성공할 거란 보장이 없어요. 아직 어리셔서 모르나 본데, 작가님처럼 한 번에 성공하고 주저앉은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지금이라도 올바른 선택을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대방 말대로 첫 작에 성공하고 차기작에서 주저앉은 사람이 많은 건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상대방이 내미는 조건은 좋은 쪽에 속할 테고.

하지만 저런 자세가 싫다. 까보지도 않은 결과에 자들이 뭐라고 나를 판단한단 말인가.

당장 JW 출판사는 저것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차기작을 계약하고 싶다는 입장인데, 자신들이 뭐라고 판단한다는 말인가.

“누가 올바른 선택인지는 나중에 가서 확인하도록 하죠. 엔터 출판사라고 했나요? 이름을 기억해 두겠습니다.”

자신의 말을 듣고 돌아설 거라 생각한 내가 더욱 거센 반발을 해서일까? 뒤에서 여러 가지 말들이 들려왔다.

언제까지 잘나갈 것 같냐는 말과 자신들의 작품을 내 시기와 겹치게 만들어서 견제하겠다는 얘기들.

나한테 겁을 먹으라고 하는 말 같지만, 하나하나가 같잖게 들렸다.

고작 대기업을 뒤에 뒀다고, 저런 갑질을 하려 하다니.

마침, 엔터 출판사 뒤에 있는 그룹의 사람이 동성 그룹과 관련 있는 기업이란 게 기억이 났다.

나중에 한번 찾아가기로 마음먹으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채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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