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내 질문에 생각에 잠긴 비서실장님.
그렇게 5분이란 시간이 지났을까? 자신의 생각이 정리가 됐다고 느꼈는지, 원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제 주관적인 의견을 넣지 않고, 객관적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탈원전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호……. 탈원전이라……. 혹시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를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이미 우리나라는 탈원전이라는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더군다나 제 생각에는 다음 정권은 야당이 잡을 거로 생각하고 있고요. 과연 야당이 이 흐름을 가만히 둘까요? 탈원전이라는 공약을 걸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
확실히 비서실장님은 시류를 읽을 줄 아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이번 정권이 마무리되면서, 야당이 빼낸 공약 중 하나가 탈원전이다.
그렇게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탈원전은 급속도로 진행이 됐고, 임기 기간 동안 원전 산업은 완전히 죽어 버리며, 관련 인재들도 해외에 빠져나가 버리게 됐다.
여기까지가 2017년부터 5년 동안 일어날 일.
비서실장님이 앞서 말한 대로, 그대로의 흐름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도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발발.’
아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21세기에 전면전이 발생할 줄은.
당연히 세계의 경찰로서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미국은 제재에 나섰고, 모든 국가가 한마음이 돼서 러시아를 제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발생한 문제.
우리나라는 탈원전으로 인해 러시아의 천연자원에 의존도가 높아진 상태.
더군다나 다음 정권은 친중, 친러의 행보를 이어 나가며, 러시아의 수출 의존도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당연히 비인도적인 러시아 제재에 동참해야 되지만, 그동안의 관계가 있기에 망설이게 됐다.
그런 우리나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미국의 학자 한 명이 그런 한국에 대하여 비판했다.
무려 반세기 전, 전쟁으로부터 세계에 도움을 받은 한국이 실리를 위해 눈치만 보고 있다고.
관련 글을 본 한국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된다고.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던 정부는 제제에 동참하게 되고 당연히 러시아의 천연자원은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니 원전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높아졌지.’
그 이후로는 당연한 순서였다.
모든 나라가 러시아를 등지니, 당연하게도 천연자원은 수출 금지 목록.
천연자원을 대체할 에너지가 전 세계적으로 필요해졌고, 이번 사태로 심각성을 느낀 다음 정권이 마지막이나마 원전에 대한 정책 노선을 바꿨었다.
원전이 향후 60년을 책임질 정도로 중요하다고.
당연히 그때는 이미 늦은 상태다.
원전 관련 산업은 정치의 제물이 돼서 다 죽어 버린 상태.
다시 복구하기에는 엄청난 인적, 자원적 손해가 막심했다.
이미 전문 인력은 빠져나가게 되고, 다른 나라에 수출하던 우리는 오히려 수입까지 해야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정보를 무기 삼는다.’
자동차 산업을 이어서 내가 가져가야 할 산업.
원자력 발전소 사업이다.
이 부분을 민호 씨에게 말하고 싶다.
원전은 필요악이며, 필요악의 대부분은 대체자가 없다는 걸.
“단기간을 보면 민호 씨의 의견이 맞을지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제환 씨의 생각은 다르단 겁니까?”
“탈원전이라……. 좋습니다. 최근 들어 환경에 대한 규제도 커지고 있고, 심각성도 느껴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탈원전을 거론하기에 앞서 두 가지를 살펴봐야 됩니다.”
“두 가지라…….”
“첫째, 한국의 지형에 대한 문제.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게 땅이 넓지가 않습니다. 원전과 같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30배에서 50배의 면적을 차지하는 친환경 에너지. 효율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납니다. 관리 비용과 더불어 국토 비용, 비용적인 면에서 막대한 손해는 당연합니다.”
“…그리고 뭐가 있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 지금이야 세계가 평화에 물들어 있어 상상하지 못할 일이죠. 하지만 최근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살펴보면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과연 탈원전으로 인해 러시아에만 기대야 하는 상황. 이걸 사람들이 그냥 지켜만 볼 거라고 생각합니까?”
현재 이 문제들이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
언제까지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향만 바라볼 수 없다.
더군다나 2025년.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원전을 전 세계에서 찾게 되는 계기.
한국으로 이민해 온 우크라이나인 중에 세기를 이끌 천재 과학자의 탄생.
2025년 당시. 불과 스물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가 한 가지 물질을 발명해 낸다.
물질의 효능은 방사능 폐기물의 정화.
천재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시킨 발명가의 탄생이었다.
나는 두 가지를 묶어 낼 생각이다.
2017년 대거 탈출하는 원자력 발전소 전문가들.
원자력 발전소의 근본적인 문제인 방사능을 무력화시킨 천재 발명가.
이 두 가지를 합쳐서 JH 중공업을 만들 생각이었다.
‘새로운 재벌 탄생이 되겠지.’
금전적인 부분은 재성 씨가.
대현 그룹에 대한 복수는 형찬 씨가.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칠 에너지 부분은 천재 발명가가.
만약 일이 내가 계획했던 대로만 흘러간다면, 대한민국에 다시는 보기 힘들 재벌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이 세 가지를 적절하게 융화시킬 사람이 내 앞에 있는 비서실장님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각 분야의 천재.
내 앞에 있는 민호 씨 또한 경영의 천재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을 민호 씨가 자연스럽게 융화시킬 수 있다면, 세계적인 그룹도 충분히 노려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을 쓰고 말이지.’
이 모든 게 이뤄졌을 때, 성장해 있을 그룹보다 그로 인해 맘 편히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졌다.
* * *
대화를 하며, 생각에 빠진 이민호.
‘이래서 동성 그룹의 차기 후계자라고 불린 건가…….’
내 앞에 있는 남자.
조사해 본 결과 스물여섯 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이제야 스물여섯 살이다.
그런 남자가 나에게 건넨 질문.
그동안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한순간에 부끄럽게 만들어 버린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남들과는 보는 시점이 다르다는 거였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남들과 다르게, 나는 미래를 생각하며 그에 맞춰서 행동하며 회사 생활을 이어 갔었다.
직장인 중에 나 같은 사람은 많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당장 한 달 안에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대기업에서 누가 미래까지 생각한단 말인가.
그런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며,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는데 앞에 남자와 이야기하니 모든 게 부정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나?’
나 역시 다른 사람보다 살짝 앞설 뿐 마찬가지였었나 보다.
나보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남성은 그다음을 바라본다.
가능성 하나를 제시하며, 그다음의 다음까지 생각한다.
그렇다고 막연한 미래냐?
그런 것도 아닌 게,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그런 일들이다.
당장 탈원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나조차 단 두 번의 대화로 설득당해 버리고 말았다.
분명 앞에 남성의 말이 일리가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이 일어난다면, 발생할 일들.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쟁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
탈원전을 고집하다, 일이 자칫 잘못되면 러시아에 끌려다니는 그런 그림이 발생한다.
우리나라가 그런 걸 가만히 보고 있을까?
‘다른 나라에 지는 걸 싫어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서로 싸우기도 하고, 무관심하게 살면서도 다른 나라에 지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아니, 싫어하기보단 다른 나라에 인정받는 걸 좋아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이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분명 러시아가 천연자원을 무기로 삼아, 외교를 하다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분노를 할 게 틀림없다.
당연히 원인을 찾아 탈원전까지 시선이 닿게 되면, 자연스럽게 원전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금 사회의 화제로 올라올 거다.
그 뒤로는 많은 문제가 언론에 드러날 거다.
과연 탈원전과 원전을 고집했을 때의 차이. 그게 드러난다면 사람들이 환경을 위해 탈원전만을 고집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 21세기는 하루가 다르게 과학이 발전하고 있죠. 당장 10년 전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원전에서 제일 큰 문제로 여겨지는 방사능. 과연 10년이 지나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까요? 10년이 아니라 20년이 지나도?”
“…….”
“분명히 누군가는 해결책을 낼 것이고, 그때 뒤따라가려고 하면 이미 늦었습니다.”
이 의견 또한 맞는 말이다.
현재 21세기.
과연 10년 전에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발전할 줄 누가 알았는가.
10년 전까지도 가지 않고, 몇 년 전만 보더라도 우리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발명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접속해 정보를 습득하고, 게임을 한다.
10년 전에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앞에 남성의 말대로 10년 뒤쯤이면 방사능에 대한 해결책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재벌가의 후계자인가?’
어째서 어린 나이에 후계자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때까지 봐 왔던 재벌가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장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며 본, 재벌가의 자식들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동성 에너지 사장님의 자제분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감탄이 나올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일 처리에 실망했었다.
‘그런 사람이 이끄는 동성 그룹에 내 미래를 맡겨야 하나?’
나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대기업일지언정, 그런 사람이 이끄는 그룹에 내 미래를 맡겨야 하는가?
만약 앞에 이 남성을 만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렇다는 대답이 나왔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 같이하자는 제안과 함께, 미래를 보여 준 남성.
한순간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이 남자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과연 저런 미래를 그리는 남자와 같이 일을 하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수익은 떨어질지언정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갈림길에 놓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전이냐, 안주냐.
두 가지를 저울에 넣고 비교하기 시작했다.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기운 쪽에 위치한 마음은 도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동성 에너지 사장이 동성 무역을 넘보기 시작했다.’
내 앞에 있는 동성 무역의 아드님이 곧바로 입사해 자리를 잡았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내부에서의 분열을 막지 못할 게 틀림없다.
사장님 라인 중에 큰 실적을 내고 있는 내가 가장 먼저 제거 리스트에 오르는 건 당연한 순서.
그런 걸 다 이겨 내고, 회사 내에 살아남아도 큰 성장을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남성과 손을 잡으면, 불과 5년만 지나더라도 큰 성장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한다.
실패해도 괜찮다.
그 안에 배우는 게 있을 테니.
“함께하고 싶습니다.”
생각 정리를 마치기 전.
마음이 너무 급했을까?
나도 모르게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내뱉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