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22화 (22/175)

22화

* * *

집으로 돌아온 박제환.

집으로 돌아와 이때까지의 상황을 생각하니, 단 한 가지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한 조각. 발판을 완성하는 데 이 한 조각만 완성시킨다면, 그 어떤 발판보다 튼튼한 발판이 돼 줄 게 틀림없었다.

마지막 조각은 이민호 비서실장님.

내가 알기로는 다방면으로 최고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하기야, 만약 그 정도의 능력이 없었다면, 제일 밑바닥에서 시작해 내 곁을 지키던 비서실장까지 되지도 못했을 거다.

“흠…….”

어떻게 하면 비서실장님을 6월에 합류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된다.

어떤 달콤한 말로 비서실장님을 다시 내 사람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본 결과 별로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만 만족한다면 말이지…….’

단 한 가지.

그를 위해 단 한 가지만 준비하면 다시금 내 사람으로 만드는 데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서실장님은 전생부터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다.

2016년 6월.

내가 동성 무역에 합류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큰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동성 무역 내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아버지 라인을 잡은 비서실장님은 제일 큰 위협이 되는 존재.

그런 비서실장님을 그룹에서 쫓아내기 위해 큰아버지는 사내 정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나는 비서실장님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큰아버지의 견제를 약화시키기 위해 비서실장님을 제물로 삼으려 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비서실장님은 악착같이 버텨 냈지만.’

분명 모두가 적인 상황 속에서 비서실장님은 끊임없이 자신의 필요성을 회사에 어필을 하면서 악착같이 버텨 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큰아버지의 견제보다 비서실장님을 끌어들이기로 결정했다.

물론 과거로 돌아와 내가 경영을 포기하면서, 비서실장님이 사내 정치에 당하지 않을 확률이 존재했다.

하지만 확신하고 있다. 그 시기가 당겨졌으면 당겨졌지, 비서실장님의 회사 생활이 평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분명 큰아버지는 지금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을 거다.’

그 어느 때보다 동성 무역에 관여하기 제일 좋은 타이밍.

이 시기보다 늦어지게 되면, 정환이의 합류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큼, 6월쯤이면 비서실장님에 대한 견제가 들어갈 거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비서실장님은 6월쯤에는 자신의 미래를 느끼지 못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을 테고.

이런 비서실장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최고의 시나리오를 작성할 수 있을까.

바로 미래를 못 느낀 사람에게 더욱 가능성이 높은 미래를 보여 주는 거다.

내가 준비한 조각들.

6월이면 충분히 미래를 확인할 정도의 정보가 모이기 시작할 거다.

과연 이런 가능성을 비서실장님에게 보여 줬을 때, 그가 무시할 수 있을까?

그런 미래에 당장의 급여마저 지금보다 높게 측정해 준다면?

비서실장님 입장에서도 거절하기 어려운 달콤한 과실 이 준비된 거다.

‘이 사이에 한 가지만 더 추가하면 되겠군.’

방금 생각한 일련의 과정 중의 하나만 더 추가하면 더욱 확실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서실장님에게 균열을 심는 과정.

뒤가 보장된 사람과 뒤가 없다고 판단된 사람은 버티는 것부터가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6월 달에 자신이 사내 정치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더라도 뒤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면 비서실장님이 쉽게 그만둘 수 있을까?

반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련의 가능성마저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비서실장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당신이 회사에 위협을 느꼈을 때, 내가 뒤를 받쳐 줄 테니 생각해 보라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비서실장님은 내 말을 흘려듣지 않을 거다.

내가 동성 그룹의 후계자로 내정돼 있었다는 걸 알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분명 나를 바라보고 최소한의 보장은 돼 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다.

그런 비서실장님에게 사내 정치와 함께 압박이 들어간다면?

나와 손을 잡고, 미래를 그리며 자신에게 정치를 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꿈꿀 거다.

그 부분이 정환이에게 도움을 주는 형식으로 친척들의 라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일석이조의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다.

비서실장님에게는 동기 부여를.

그런 동기 부여가 정환이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사내 정치를 당하고 있지 않다면, 미래에 대한 확신을 보여 주면서 회유시킨다.’

나비 효과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만약 비서실장님이 사내 정치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면, 지금 생각한 조건보다 더욱 달콤한 과실로 끌어들일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지금 비서실장님이 전략기획실에 있을 때인가?’

이때의 비서실장님을 만나 볼 생각하니 뭔가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전생 마지막까지 나의 힘이 되어 주던 그는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까?

미래의 누가 보더라도 완성된 경영인이라 느낌을 주던 그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전생의 내 인생에 제일 큰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을 만나려고 하니, 기쁘기도 하면서 떨리는 마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전생에는 펼쳐 보지 못한 꿈을 한 번 펼칠 수 있도록.

비서실장님의 꿈은 그룹 경영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말년에는 자신의 꿈을 세상에 펼치는 걸 확인했지만, 그때 가서 펼치는 것과 이른 시기에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을 비서실장에게 나의 행동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동성 그룹 본사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는 이민호.

‘요즘 나에게 향하는 시선이 바뀐 것 같은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분명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사수분과 팀장님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누가 봐도 좋은 시선이란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관심을 줬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런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못 느끼겠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애초에 눈치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닌가.

아무리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 떨어진다 평가를 받고 있는 동성 그룹이라 하더라도, 본사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남들이 흔히 말하는 인 서울이 아니라, 지방 국립대를 나온 내가 입사했다는 건 쉽게 보기 힘든 경우였다.

‘이전과 달라진 점부터 찾아야겠어.’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지 못할 때는 그 위로 올라가 이전과의 차이점부터 알아내야 한다.

그곳에서 원인이 발생하는 게 당연한 순서였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고민하며, 범위를 넓혀 가기 시작했다.

일단 제일 근본적인 주제.

나라는 인간에게서 달라진 점이 있나 하는 것부터 생각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니다.’

결론은 나에게 문제점이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외부로 눈을 돌려야 된다.

나를 제외한 채 무엇이 달라진 게 있나 변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업무도 제외해야 된다.

업무적으로 큰 변화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남은 건 사내 정치.

승계 구도까지 생각이 닿기 시작했다.

‘찾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동성 그룹 승계 구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원래 지금 시기라면 동성 무역 사장님. 즉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이곳 사장님의 아드님이 입사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변수가 생겼었다.

사장님의 아드님이 다른 일에 눈이 멀어 경영권에서 제외됐다고.

사장님의 둘째 아드님이 계시긴 했지만, 아직 경영에 참여할 나이도 못 됐거니와 그 둘의 능력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동성 에너지 사장님이 제일 큰 이득이다.’

동성 무역 사장님의 아드님이 차기 후계자로 내정되면서 승계 구도에서 밀렸던 동성 에너지 사장님.

당연히 밀렸던 원인이 사라졌으니 승계 구도에도 변동사항이 생긴 게 당연했다.

내가 알기로는 동성 에너지 사장님에게도 아들이 존재하고 있다.

동성 그룹의 컨트롤 타워인 동성 무역을 넘보는 건 당연한 일.

아마 사수분과 팀장님은 라인을 갈아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풀리지 않던 매듭이 점차 풀려 나가기 시작한다.

그들이 나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가, 갑자기 시선이 바뀐 이유.

겉으로는 모르겠지만, 은연중에 나는 사장님의 라인이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연히 성과를 올리고 있는 나이기에 다른 라인으로 갈아탄 그들에게는 위협을 느끼는 게 당연했었다.

‘좀 더 알아봐야겠어.’

마냥 흘러가는 회사 생활에 넋을 놓고 있다면, 나중에 들어오는 공격에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 같은 집단 내이지만, 이곳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한 가지 흠이 보인다면, 죽을 때까지 파고드는 맹수들이 존재하는 곳.

대처하기 힘든 상황인 건 잘 알고 있지만, 미래가 걸린 일인 만큼, 좀 더 지켜보고 판단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 * *

일주일 후.

아무래도 내가 추측한 게 맞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야근을 하지 않고 퇴근하는데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게 말이 안 된다.

보통은 장난식이라도 뭐라고 해야 되는 게 정상이다.

그걸 노리고 정시에 퇴근을 하는 거고.

하지만 그런 나를 바라보는 모두가 잠시 눈길을 줄 뿐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는다.

이 정도면 인정해야 될 것 같다.

지금 이들은 라인을 갈아타기로 결정했다고.

‘젠장 재벌 3세의 변덕 때문에 무슨 낭패냐.’

짜증이 난다.

누구는 부모님의 빚을 물려받아, 갚아 나가기 위해 노력을 하는 데 누구는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거에 대해 소중함을 뿌리친 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간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순수한 능력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장담한다. 재벌이라는 타이틀을 떼면 그들은 지금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거란 걸.

참담한 마음을 가진 채, 짐을 쌓고 있는데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만약 내가 인사를 함에도 심드렁한 대답이 들려온다면, 지금은 심각한 수준임에 틀림이 없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

짐을 챙기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만 그 누구도 인사를 건네주지 않는다.

아니, 인사를 건네주려던 사람들도 팀장님의 눈치를 보고 다시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면 오래 못 갈 것 같다.

분명 악으로 버텨 본다고 해도, 이른 시일 내에 어떠한 조치가 내려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버텨야 돼.’

여기서 무너지면,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에게 큰 죄를 짓는 거나 다름없다.

동성 무역 전략기획실에 입사했을 때, 가장 기뻐하시고 어디 가서 열심히 자랑하시던 부모님.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그걸 제외하더라도, 다른 그룹을 들어가면 미래가 없다.

지방 국립대 나온 사람이 전략기획실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들어간다고 해도 로열패밀리들의 라인을 잡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밝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다 보니, 원망이 사장님 아들한테 향하기 시작한다.

만약 내가 사장님의 아들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결코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을 거다.

중간만 하더라도 회사를 물려받을 수 있을 위치.

그런 위치를 차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러 간다?

이래서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배고픔을 못 느끼는 거다.

배고픔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으니.

“X발…….”

회사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데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난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고작 재벌 3세의 변덕 때문에 위기에 봉착하다니.

조급함과 함께 암담한 미래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누구…….”

뭐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런 게 아니라면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에 환상이라도 보고 있는 걸까?

길을 걸어가던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남성.

일주일 동안 승계 구도를 파악하다, 이제는 머릿속에 저장된 그 남성의 얼굴이 보인다.

방금까지 나의 분노가 향하던 그의 얼굴.

자신이 얼마나 복에 겨운지 모르고, 자신의 할 일을 찾아간 그 자식.

내 잘못이 없음에도 나에게 피해를 준 개자식.

그 자식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건가?’

그게 가장 합리적인 것 같다.

분명 지금 내가 들었던 목소리는 환청이고 앞에 있는 남성은 환상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현실이 내 상식선을 벗어나고 있지 않은가.

“반갑습니다. 박제환이라고 합니다.”

“…….”

내 앞에 있는 사람은 환상이 아닌 진짜인가 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생생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너무나 믿기지 않은 현실에 그 자리에서 발걸음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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