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 * *
잠이 들어 있던 김형찬.
“자기야! 밥 먹어!!”
아침이 되자 나를 깨우는 아내의 소리.
그걸 듣고 드는 가장 처음 생각.
하루의 시작을 정해 주는 첫 기분.
끔찍하다.
회사에 출근할 생각을 하니까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하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다.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선 출근해야 됐기에, 힘겹게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아윤이는?”
“자고 있지. 내가 오빠 힘내라고 맛있는 거 해 놨으니까, 기운 좀 내. 요즘 오빠 표정이 다 죽어 가는 사람 같다니까?”
“미안……. 요즘 연구를 너무 열심히 했더니 피곤한가 봐.”
“그래? 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 들어오더라. 자, 이것 좀 먹어 봐.”
아니다……. 연구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게 아니다.
편안한 안식처인 집마저 요즘은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늦게 들어오는 거다.
그나마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면, 조금이나마 속이 뚫리지 않는가.
그걸 보고 아내는 회사에서 늦게 왔다고 생각하나 보다.
“여보, 만약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도 모르게 속에 있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어 버렸다.
후회가 되면서도 궁금했다.
과연 아내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오빠가 힘들면 그만둬야지!! 왜? 요즘 누가 힘들게 해? 당장 그만둬 버려!! 우리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 인재인데 그걸 못 알아봐?”
“아니, 그냥 궁금해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 편. 그러니까 힘들면 말해. 우리 가족이잖아.”
“…….”
차라리 욕을 해 줬으면 좋겠다.
그만두면 들어오지 않을 수입에 한숨을 내쉬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그만둘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렇게 말을 해 오면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다.
회사를 그만두면 얼마나 힘든 미래가 있을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당장은 괜찮겠지.’
당장은 괜찮을 거다.
금방 취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아내도 믿음을 보내 줄 테고.
그런 일상이 한 달을 넘어 두 달, 석 달까지 이어지면 어떻게 될까?
나를 응원하던 아내도 지칠 수밖에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외국어를 공부해야 했던 건데…….
지금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관련 업종으로는 다른 대기업에 들어갈 수도 없다.
핵심 부서에서 일했기에 분명 기어 그룹에서 막을 거다.
내가 다른 그룹으로 향하는 걸.
이런 사실을 모르는 아내이기에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녀올게…….”
“오빠!! 오늘도 파이팅하고!! 우리 서방님 기죽지 말고, 누구보다 멋있는 남자니까!! 잘 다녀와.”
“고마워…….”
무섭다.
지금 건네는 고마워란 말이 나중에 미안해로 바뀔까 봐.
두렵다.
나를 배웅하는 아내의 표정이 우울한 표정으로 변할까 봐.
그러니 이런 고통은 내가 견뎌 내면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 내면 우리 가족은 웃을 수 있지 않은가.
오늘도 지옥 같은 회사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오빠, 일어나.”
“으, 응…….”
어떻게 지옥 같은 하루를 또 견뎌 냈나 보다.
이제는 나 스스로도 지옥에서의 기억을 갖고 싶지 않아서일까?
하루가 지났지만, 그 안에 내용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낸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끔찍한 기억은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는 게 좋으니.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를 거다.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벌레 보듯이 쳐다보는 시선.
그들에서 느껴지는 경멸감.
억울함을 호소해 봤자, 듣지도 않을 거라는 무력감.
악플로 좋지 않은 선택을 하는 연예인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오빠, 밥 먹어. 무슨 일 있었어? 깨워도 잘 일어나지도 않던데.”
“미안……. 피곤했나 보다.”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정신에, 아내에게 미안하단 말을 건넨 뒤 세수를 하고는 식탁으로 향했다.
또다시 지옥으로 향해야 함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어서일까?
수저마저 들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표정 진짜 안 좋아 보여……. 진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줘. 가족은 비밀이 있어선 안 되는 거잖아.”
“그런 거 없어.”
“…….”
예전이었다면 나를 걱정해 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 같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니어서일까?
걱정해 주는 아내에게 오히려 화가 나는 것 같다.
내가 여기서 고민을 말한다고 뭐라도 바뀐단 말인가?
바뀔 수 없는 현실을 왜 그렇게 물어오는지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 반응에 상처라도 받았는지, 묵묵히 밥만을 바라보는 아내.
그런 모습을 보니, 다시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나 자신 스스로조차도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다.
제대로 절제되지 않는 기분.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
내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인 것처럼 느껴진다.
“오빠, 오늘도 조심히 다녀와…….”
“그래…….”
조심히 다녀오라는 배웅을 받고 집 밖으로 나섰다.
집에서 나와 회사로 향하는 나.
차라리 이 세상이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누구도 고통받지 않고, 평화롭게 마무리될 수 있지 않을까?
불가능한 일인 걸 알면서도 괜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빵빵―
“어이, 아저씨!!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다니는 거야!!”
“…….”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나.
정신을 차리고 신호등을 바라보니 빨간 불인 게 보였다.
지금 상황은 미안한 감정이 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어째서 미안한 감정보다 차라리 치였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애써 미안하단 말을 건넨 나는 오늘도 기억 속에 남기기 싫은 회사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X발…….’
회사 안으로 들어가, 나의 자리로 향하니 오늘도 어김없이 나에게 쏟아지는 경멸 어린 시선들이 보인다.
애써 무시하자는 마음을 먹고 회사 안으로 들어오는데도 이 순간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저 사람들에게 나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일까?
마치 해충을 보는 것 같은 시선이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내가 저들에게 피해를 끼친 적이 있었나?
오히려 부당함을 당하고도 회사의 분위기를 위해서 참고 넘어간 기억밖에 없다.
그게 그렇게 큰 죄였던 건가? 이 모든 상황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야!! 김 대리!! 정신머리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출근은 기본적으로 30분 전에 자리에 있어야 되는 거 몰라?!”
“…….”
팀장이다.
나에게 지옥을 가져다주는 개새끼.
오늘도 어김없이 큰 소리로 꼬투리를 잡으며 시작한다.
팀장의 소리에 시계를 바라보니, 출근 시간 5분 전인 게 보인다.
이게 그렇게 잘못된 행동이었던 건가?
이제는 억울한 감정을 넘어서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 5분 전입니다.”
“이런 제기랄, 너 지금 나랑 해 보자는 거야?! 더 일찍 나오려면 일찍 들어가서 발 뻗고 처자야 할 거 아니야!!”
“…….”
“그게 아니면, 이번에도 남의 연구 자료 훔쳐보려고 밤늦게까지 남아 있던 건가?”
“……!!”
이게 나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긴가?
이렇게 나를 벌레 같은 존재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의 잘못을 마치 진짜 내 잘못인 것처럼 비꼬는 이 상황이 현실이란 말인가?
스윽―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삭이며,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팀원들이 보인다.
그 사이에서 비웃는 팀원들도 보인다.
이런 악마들이 나랑 같은 인간이라 말인가?
아니면……. 진짜로 내 존재 자체가 잘못됐던 걸까?
내가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이 저들에게 그토록 피해가 가는 일인 건가?
이제는 우울감이 분노로 바뀌기 시작한다.
도대체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사과를 받고 싶다는 한마디?
아니면, 회사를 위한 공정을 발견했던 그 순간?
도저히 내 상식선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김 대리, 벙어리야?! 말대꾸한 거하고 지각한 거 시말서 작성해.”
“이런 젠장…….”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시말서를 작성하라고 하는 건가.
차라리 내가 진짜 잘못했더라면, 이렇게 화가 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참지 못한 분노에 나도 모르게 욕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런 내가 우습게 보였을까?
아니면 이 상황을 유도했던 건가?
그런 나를 보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팀장이 보인다.
“젠장? 허……. 회사 아주 개판으로 돌아가는구만……. 내 연구 자료 훔쳐 가려는 거 공론화 안 시키고 덮어가 주니까 이딴 식으로 나와?! 잘 생각해, 김 대리.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간 회사 생활 편하지 않을 거니까.”
“네 마음대로 해. 지금 하는 행동 내가 수만 배로 갚아 줄 테니까.”
저질러 버렸다. 분명 평소대로라면 참아야 하는 상황인데 나도 모르게 질러 버렸다.
“하하, 재밌네……. 야, 김 대리. 화난 건 알겠는데 현실 파악은 해야지. 우리 김 대리는 다 좋은 데 현실을 너무 모르더라. 그래서 복수는 어떻게 할 건데? 너 지금 복수는커녕 앞으로 살 걱정이나 해야 되는 상황이야.”
모르겠다.
그딴 거 다 모르겠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새끼 내가 박살 낼 거다.
그게 얼마나 걸려도 좋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좋다.
저 개자식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으로 복수해 줄 거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칼로 찔러서라도 죽이고 싶다.
그것마저도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자식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권력과 돈.
그 모든 걸 빼앗고 허탈한 감정을 느끼게 복수를 할 생각이다.
“김 대리야. 슬슬 현실 파악 안 되냐?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무릎 꿇는 게 어때? 그렇게라도 해야, 우리 김 대리가 회사 다니기 편하지 않을까? 아니면……. 뭐 그만두기라도 하려는 건가?”
처음 목적이 이거였나 보다.
일말의 불안함마저 없어지게 하려고.
자신이 연구 자료를 훔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내가 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어서.
이 모든 전후 관계가 보이기 시작하자, 도저히 이곳에 머물 수 없겠다는 혐오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곧바로 종이를 꺼내 세 글자를 적었다.
[사직서.]
다 적힌 종이를 개새끼에게 던졌다.
“꺼져. 이제부터 이딴 쓰레기 회사 직원 아니니까.”
“이야……. 우리 김 대리 계속해서 후회할 짓을 하네?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버틸 수 있겠어? 사회생활이 장난이야?!”
“너희들같이 쓰레기들이 모여 있는 회사, 붙잡아도 안 다녀. X발 나중에 두고 보자.”
나를 지켜보며, 비웃는 새끼들에게 경고를 하고는 문을 박차고 회사 밖으로 향했다.
지금 행동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퇴직금을 받아야, 아내와 아윤이가 살아갈 수 있으니.
그래도 죽어도 저 새끼한테 비굴하게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복수할 생각이다.
대출을 받든,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든, 어떻게든 돈을 끌어모아 저 벌레들이 모여 있는 회사를 박살 낼 생각이다.
저들이 가장 자신이 있는 기술력으로.
자신 것이라고 주장하던 그 기술력으로.
마음을 굳게 먹은 나는 마지막으로 놀이터로 향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암담한 현실 속에 주저앉아, 허공만을 바라보는 시간은.
이제부터 악마가 될 생각이다.
착한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면, 내가 적응하면 된다.
이곳은 악마가 성공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을까요?”
“…….”
마음의 안식처가 돼 주던 놀이터에 앉아 분노를 삭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 왔다.
딱 봐도 귀티가 넘쳐 보이는 남성.
도대체 무슨 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걸까?
저 남자도 내가 살아 숨을 쉬는 게 불만이어서일까?
“지금 상황이 지옥 같지 않으세요? 제가 도와 드리죠. 김형찬 씨가 복수할 수 있게 모든 지원을 해 드리겠습니다.”
“…….”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듯, 복수를 도와주겠다는 말과 함께 손을 내미는 남성.
저 남성은 나에 대해서 알고 손을 내미는 걸까? 처음 본 사람이 손을 내미는 이 상황이 정상인가?
모르겠다. 지금 손을 내미는 남성이 악마 같은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손을 잡을 생각이다.
악마 같은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나 역시 악마가 돼야지 않겠는가.
“이야기를 자세히 나눠 보도록 하죠.”
“좋습니다.”
승낙의 말을 건네니, 환한 웃음으로 반기는 남성.
왜 이렇게 저 웃음이 소름 끼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